무소유(無所有)가 참 소유이다. / 지일 스님
삶의 형태를 불교적으로 설명해보자면,
세간적인 삶과 출세간적인 삶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삶의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모두 동일하게 가치와 보람, 나아가 행복과 이상을
실현하려는 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떠한 삶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質)과 행복(幸福)의 지수(指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장 근원적 기준의
생활 방식의 하나로 제시하는 것 중 바람직한 것은
무소유적인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야말로
모든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무소유(無所有)라는 뜻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
소유함이 없는 것 등으로 해석됩니다만,
그렇다고 생활· 경제· 지식· 문화· 여가 등 일상생활 자체를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깨침의 안목· 무분별 의식· 무차별 인식 차원에서 마주할 때
보여 지는 무외도안의 경지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불교에서는 무애인(無碍人)이라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마도 신라시대의
원효성사를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효스님은 자신의 삶을 어디에도 속박하지 않고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는 법요를 깨닫고
무애가를 지어 대중교화를 펼쳤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훌륭한 선지식들이 모두 무소유의 정신으로
무애인으로서 생활하셨습니다.
여기서 무소유라는 뜻은 공(空)· 연기· 무자성 등으로
존재의 속성을 설명합니다.
다시 살펴보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존재· 사물 등은
어디까지나 인연소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영원함도 아니고,
또 본질의 실체도 사실은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전우주적 만물동체지력을 깨달아 상생과 만물일여의
이실법계적인 안목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실체가 있는 양
소유의 집착에 있는 관계로 진실한 소유의 기쁨을 모른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미혹의 業行을 내어 괴로운 과보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렇지만 진실한 소유가 무엇인가를 마음을 가다듬고 깨달아 살펴보면,
무소유(無所有) 즉,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베풀고 해체시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의식소유야 말로
진정한 소유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은 자연대로 보호하고 가꾸고,
삶은 삶의 질서를 바르게 따라가며
생활해 나갈 때 이것이야말로 무소유의 정신과 실천이
참된 소유의 행복으로 더욱 가꾸어가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무소유 정신이라는 말은
무생법인의 도리를 깨달아 욕심내어 가지려고 하지 말고,
베풀고 양보와 이해와 배려와 협력해 가는 것이야 말로
진짜 소유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소유가 되도록 무소유(無所有) 정신을 실천합시다.
-한국불교 법사대학장 지일스님-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