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된 일이지만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교수의 책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이 나온 다음 이 책의 논지(論旨)를 둘러싸고 많은 담론이 있었습니다. 헌팅턴 교수는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 질서', '제3의 물결-20세기 후반의 민주화'등 저작을 낼 때마다 많은 논란을 야기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시대를 앞선 탁월한 정치이론가로 세계 정치학계에서 알아주는 석학입니다. 이분은 그 책에서, 앞으로 전쟁이 나면 문명의 불연속선(fault line)을 따라 일어날 것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
그의 논지에 대해 반론을 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명은 상호 수용과 조화를 통해 충돌보다는 화합으로 간다고 하면서 맞섰습니다. 거대한 담론을 이 한두 마디로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무릇 이론이란 현실을 잘 설명하는 데에 그 의의와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 책이 1997년에 출간되었는데 불과 4년 후에 미 본토와 전 세계를 미증유(未曾有)의 대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9·11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9·11테러는 전통적 의미의 전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서양 문명에 대한 이슬람 일부 세력의 정면 공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헌팅턴 교수의 문명 지도(地圖)는 대략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불교 문명, 힌두 문명, 유교 문명을 포함하는 10여 개의 문명권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는 유교 전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중국 문명의 일부로 편입된 반면 일본은 신도(神道)라는 독특한 믿음 체계를 가졌다고 해서 별도의 문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류가 타당성을 가지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문명론자들의 몫이겠지만 정치학자의 이론적 근거로서는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책이 나오기 전 그의 논문, ‘문명의 충돌’을 읽고 수긍되는 바가 컸으며, 마침 그 책이 나온 지 몇 주 되지 않아 그 교수가 본인이 재직하던 하버드 대학교의 어떤 세미나에서 자기 책에 관한 강연을 한 자리에 저도 참석하여 토론에 참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역사에서 획을 긋는 전쟁들이 종교를 위요(圍繞)하고 일어난 예가 많듯이 현대의 많은 분쟁도 종교에서 연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종교가 빚어내는 갈등과 마찰이 모든 전쟁의 뿌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종교는 그 본연의 역할을 넘어 부정적인 여파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움베르토 에코는 유일신 종교가 많은 전쟁과 테러의 진원지라는 대담한 발언을 하기도 했음). 지금도 중동에서는 종교의 이름 하에 무참한 전쟁과 대량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휩쓸고 있는 이슬람 테러는 여전히 세계인의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이슬람이라고 다 같지는 않습니다. 온건한 이슬람은 종교 활동에만 충실하여 이런 파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이슬람 중 극단적 원리주의(fundamentalism, integralism) 종파 등이 이런 야만적인 전쟁과 비문명적 테러를 자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식민지를 경영했던 유럽 상당수의 나라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형태의 새로운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오히려 서구 국가들의 당국이 촉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와 벨기에가 공공 장소에서 이슬람 여성이 착용하는 일체의 종교적 복식을 법으로 금지하자 이슬람 교도를 비롯하여 이에 반발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종교적 차별 내지는 인종주의로 받아들이면서 강력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회에서는 이 문제로 인한 잠재적, 현재적(顯在的) 긴장이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헌팅턴 교수를 원용(援用)한다면, 이런 문화 전쟁도 그 사회 저변에 깔린 어떤 불연속선을 가로지르면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상징물 착용 금지를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프랑스는 그 근거로 헌법상의 정교분리(laicite)와 시민 안전(남성 범죄자가 전신을 가린 옷을 입고 범행을 한 예가 있음)을 내세웁니다. 정교분리라는 거창한 말보다, 교회 바깥의 공공영역, 특히 학교와 같은 교육시설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역사적 전통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부르카, 차도르, 니캅, 히잡 등 이슬람 여성 복식을 금지하는 것은 이 두 나라뿐 아니라 영국 일각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으며 중국 신장의 우루무치에서도 비슷한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 쪽에서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는 왜 허용되느냐고 반문합니다. 이에 대해 금지 찬성론자들은 그것은 이미 그들 사회의 문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대응합니다. 그렇다면 복식에 대한 이러한 갈등은 결국 문화적 갈등이며 바꾸어 말하면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이슬람교도의 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프랑스는 6% 이상이 이슬람임)에서는 자기들의 고유문화가 이슬람 문화에 의해 퇴색,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문화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슬람 권에서 6년 가까이 보낸 제 나름의 관찰은, 서구와 이슬람의 문화적 갈등의 중심에는 여성인권의 억압이라는 중대한 주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 문명으로서는 이슬람권에서 당연시되는 여성 억압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여성의 머리를 완전히 가리는 히잡(hijab)이나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눈만 망사로 가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등을, 다만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남성 위주의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의 인권을 제약하는 관습적 장치로 봅니다.
헌팅턴 교수의 저서 ‘문명의 충돌’이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그의 이론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오늘날 대량 테러 문제, 이슬람 상징물 착용을 둘러싼 갈등 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분석의 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치학자의 분석을 바탕으로 해서, 인류는 문명의 충돌에서 비롯한 갈등을 당연시할 게 아니라 이를 해소해 나가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교, 유교, 기독교, 나아가 이슬람까지 수용하여 종교 간 상생(相生)의 문화가 정착하도록 해온 드문 나라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종교적 관용과 평화의 전통이 이런 인류적 노력에 큰 몫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