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동행
김창식
바다건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식이 전해 온지 일 년이 지났네요. 그때는 그렇고 그런 돌림병인가 했습니다. '그러다 말겠지….' 사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500명 아래 선에 머물러 있지만 불안불안 합니다. 올 설 연휴엔 직계가족이라도 5인 이상 모일 경우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코로나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은 데 따른 정부의 조치입니다. 억지로라도 ‘가족 수를 줄여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지금도 가시지 않았지만 코로나와의 1년은 돌이키기도 끔찍합니다. 하루하루를 어렵사리 나며 여러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휩싸였어요. 새삼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허랑방탕하게 살았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나를 찾겠다며 2차, 3차 이 구석 저 구석 싸돌아다니다가 나를 잃곤 하였지요. 그 작태를 ‘시간과 공간의 틈새로 숨는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했지만요. 깊이 뉘우치며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코로나 상황을 맞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말 들이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집콕, 홈트, 언택트, 거리두기, 뉴 노멀, 펜데믹, 자가격리, 화상 회의, 랜선 강의…. 일, 만남, 약속, 운동, 회식 등등 익숙했던 본디 일상은 뒷전으로 물러났죠. 코로나가 준 선물 아닌 선물도 있습니다. 무기력증, 우울증, 상실감.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상호보완관계인데다 오래 전 회사를 그만 둔 후부터 있어온 것이니 한편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상실감은 왜? 특별히 잃어버릴 만 한 것을 갖은 적도 없는데 말이죠.
신조어 중에는 ‘코로나 블루’도 있군요. 코로나 상황을 맞은 우울증을 뜻합니다. 푸른색을 뜻하는 블루(blue)라는 말에 ‘우울한’이란 뜻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인 1960년 대 후반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한 <러브 이즈 블루>를 통해서였어요. <이사도라> <에게해의 진주> <진주조개잡이> <시바의 여왕> 같은 명곡을 발표해 이지 리스닝 계열의 팝 음악을 평정한 그 풀 모리아 악단 말예요. 우리나라도 몇 차례 방문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Blue, blue My world is blue/Blue is my world now I'm without you’(세상은 우울해요/그대 없는 세상은 슬프기만 해요)
이야기가 좀 애상적으로 흘렀네요. 코로나 상황을 맞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날은 무슨 일로 문밖출입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3월 하순 쯤으로 기억하니 코로나가 막 세를 넓히려는 초기단계였고, 생년 월 끝자리에 의한 5부제 공적 마스크 구입을 하러 나갔나 봅니다. 물품을 구하지 못해 이 약국 저 약국 돌다 지친 터에 못 보던 줄이 있어 옳다구나 나도 무리에 섞였지요.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사람들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뭉텅이로 빠지고 나만 남았습니다. 잠시 후 나 역시 얼굴을 붉히며 그곳을 떠났지요. 누군가 나를 지켜본 듯해 착잡했답니다. 그곳은 복주머니 로고가 ‘치사찬란하게’ 나붙은 ‘복권판매점’이었거든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며느리(요즘 시대상을 반영한 권력 순)도 모릅니다. TV에 패널로 출연하는 전문가들은 더더구나 모르고요. 당분간은 코로나와 ‘원치 않은 동행(with corona)’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기약 없는 코로나 상황을 슬기롭게 나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한 예로 주위를 돌아보며 먼저 다가서면 어떨는지요? 모르는 척 데면데면 지내온 이웃주민이나, 환경미화원, 택배기사, 음식배달원, 콜센터직원에게 먼저 인사하기, 따뜻한 위로의 말 건네기, 고개 끄덕여 공감 표시하기. 그 소소한 행위가 실은 나의 기쁨을 위한 일일지라도 안하는 거보단 낫잖아요, 안 그런가요?
*자유칼럼그룹(www.freecolumn.co.kr) 02.09, 2021
2008년 '한국수필' 수필, 2011년 '시와문화' 문화평론 등단.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을 사랑했네>(예정).
현재 <<한국산문>>에 '김창식의 문화 감성터치'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