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 바티칸 박물관 -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
귀족의 석관 장식… 동방박사의 경배 소박하게 표현
‘새해, 어떤 선물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
-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에 전시된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것은 우리 곁에 있고 때로는 우리 안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이나 사랑도 늘 우리 곁을 맴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도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서 값지고 소중한 것을 찾으려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을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내거나 값진 것을 잃고 난 다음에야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내가 가진 것이 참으로 값지다는 것을 깨닫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빛날 것이다. 나는 우리 곁에 보물창고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현재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이 삶은 과거와 깊은 연관을 맺으며, 또한 다가올 미래와도 연결돼 있다. 지금의 내 삶 안에는 과거 선조들의 무수한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공과 실패를 포함한 모든 경험과 기억의 양은 참으로 엄청나다. 독일의 속담에는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가정과 마을의 작은 박물관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어디 노인뿐이랴. 애석하게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와 연관된 모든 것이 사라진다.
우리 곁에 소중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유물을 만나게 되고, 유물을 통해 잊고 살았던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화는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 주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내 자신의 삶이 까마득히 먼 과거와 연결돼 있고 앞으로도 연결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유물을 통해서 수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박물관은 ‘우리 곁의 보물창고’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는 수많은 박물관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박물관이 연일 문을 열고 있다. 그중에는 일반 박물관도 있고 종교 박물관도 있다. 또한 자연사 박물관이나 특별한 주제를 다룬 박물관 등 그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박물관은 모든 계층의 사람이 즐겁게 배우는 평생학교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보다도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배울 수 있는 학교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박물관의 선두 ‘바티칸 박물관’
- 바티칸 박물관의 일부인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세계의 박물관 가운데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이다. 이 박물관은 교황청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단순히 교회 유물만 전시한 곳이 아니다. 예술품과 고문서, 희귀 자료와 벽화 등 세계 인류의 문명을 한자리에 전시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부른다.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바깥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게 된다. 지역이나 나라, 지위나 계층, 사상이나 종교를 초월해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한 문화 유물을 보기 위해 모여들어, 박물관은 언제나 장사진을 이룬다.
바티칸 박물관의 기원은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6년 1월 14일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인근 포도밭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 ‘라오콘 군상’ 조각이 발견됐다. 교황 율리오 2세가 미켈란젤로 등을 보내 이 조각상을 구입하면서 바티칸 박물관이 시작됐다.
바티칸 박물관은 하나의 박물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곳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품이 전시된 비오-클레멘스 박물관, 초대 교회 유물이 전시된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회화가 전시된 피나코테카 미술관, 세계 선교지의 유물이 전시된 외방선교 박물관, 현대 종교 미술품을 전시한 현대 종교 미술관,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 벽화가 그려진 시스티나 경당을 꼽을 수 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바티칸 박물관의 숨은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먼저 바티칸 박물관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교회 유물이 전시된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에 들르고자 한다. 이곳에는 로마의 카타콤바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이 가득 전시돼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은 신자들이 묻혔던 카타콤 벽을 장식한 벽화로부터 시작된다. 이 벽화에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소박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양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 착한 목자, 최후만찬, 성체성사의 상징인 빵과 물고기 그림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카타콤 벽감에는 석관들이 있었는데, 일반인들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석관이나 아마포에 시신을 싸서 벽감에 넣었다. 그러나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석관을 성경과 관련된 부조로 장식해 사용했다. 그 부조 역시 벽화처럼 죽은 자의 구원을 갈망하는 주제로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는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가 있다. 이와 관련된 성경은 마태오 복음(2,1-12)에 나온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 미술 가운데서도 초기 작품으로 약 4세기에 제작됐다. 지금 이 작품이 새겨진 대리석 석관은 손상돼 조각이 새겨진 한 면의 파편만 전해진다. 석관의 높이에 맞추어 조각되었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어린이처럼 작고 통통한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가져와 드리는 모습은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앞에 있는 박사는 자신들을 인도한 메시아별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예물을 봉헌한다. 마리아의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는 공손하게 양손으로 선물을 받는다. 단순하고 소박한 표현이지만 사람들에게 정겨움을 전해 준다.
성탄을 통해 아기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 주셨다. 성탄을 보내고 이제 새해를 맞이한 우리는 어떤 선물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