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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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칸데르(Nicander)
축일 3월 15일
의사였던 성 니칸데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시신을 매장해 주었다는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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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문도(Raymund)
축일 3월 15일
1157년 말과 1158년 초 사이에 카스티야(Castilla)의
왕 산초는 톨레도(Toledo)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때 무어인들의 침략이 있었으나 그 도시의 군인
수효가 절대 부족하여 왕과 온 도시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 이때 그곳의 시토 수도원장인 성 라이문두스
(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왕과 대주교 및
주민 2만여 명을 이끌고 칼라트라바로 피신하니,
무어인들은 공격을 포기하였다.
그는 위대한 기사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런 방법으로 라이문두스는 칼라트라바 기사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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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오크리시아(Leocritia)
축일 3월 15일
성녀 레오크리티아(또는 레오크리시아)는
에스파냐의 남부 코르도바 태생인데,
에스파냐 사람이 아니라 부유한 어느 무어인의
딸이었다. 그녀는 부모 몰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는데, 이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성 에울로기우스(Eulogius)의
도움으로 그녀는 완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는데,
사실은 그녀가 여러 신자 집을 전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성 에울로기우스와 함께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루크레시아(Lucreti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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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론지노(Longinus)
축일 3월 15일
전설에 의하면 성 론지누스(또는 론지노)는
빌라도의 지시를 받고 주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다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백부장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지진과 그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며 몹시 두려워했다는 바로 그 백부장이라 한다.
그 후 그가 병들어 누웠을 때, 창에 묻은
주님의 피를 자기 눈에 갖다 대자마자
병이 나았음을 보고 군인 생활을 포기한 뒤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박해를 맞았다.
집정관은 그의 이를 뽑고 혀를 잘랐으나,
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도끼를 들고 이방인들의 신상을 때려 부수면서
“이게 무슨 신들이람!” 하고 외쳤다.
그러자 집정관은 즉석에서 참수하도록 명하였다.
그의 유해는 만투아(Mantua)에 보존되어 있고
성인으로서 공경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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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사악 (Isaac)
축일 : 3월 15일
이사악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그에게 웃으시다'란 뜻이다.
이사악은 구약성서의 인물로서,
그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레베카(혹은 리브가)가 그의 아내이며,
야곱과 에사오가 그의 아들들이다.
창세기 17장과 35장 사이에서 그의 생애에 관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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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리브가(혹은 레베카)
축일 : 3월 15일
리브가는 히브리어로 '그물'이란 뜻이다.
리브가는 이사악의 아내이며,
슬하에 에사오와 야곱의 두아들을 두었다.
리브가는 작은 아들을 더 좋아하여 형의 장자권을
빼앗는데, 야곱을 도와준다. 창세기 22장 - 29장에
그의 생애를 읽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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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악(Louise de Marillac)
축일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었으나 포와시의 수녀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안토니우스 러 그라와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로부터 영적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부터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를 찾았다.
그 당시에 그 성인은 ‘애덕 형제회’를 조직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는 기꺼이 그녀의 소망을 받아들이고
‘애덕의 딸 수녀회’를 설립하니,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녀의 임종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34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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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트로나(Matrona)
축일 3월 15일
성녀 마트로나는 테살로니카(Thessalonica)의
어느 유대인 여주인을 모신 하녀였는데,
자신은 그리스도를 몰래 섬기는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매일같이 비밀리에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다가
그녀의 여주인에게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었다.
마트로나는 여주인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아 죽었다.
이때 그녀는 용감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자신의 순결한 영혼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Barcelona) 출신의 또 다른
마트로나는 로마(Rome)에 살았는데 그리스도인
죄수들을 돌보다가 순교하였다.
세 번째 마트로나는 포르투갈 왕가 출신인데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이탈리아로 갔다가
순교했는데, 이 성녀는 이탈리아의 카푸아(Capua)에서
큰 공경을 받으며 이질을 앓는 이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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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니뇨(Manignus)
축일 3월 15일
성 메니뇨는 염색공(마전장이)으로
데키우스 황제 때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의
파리움(Parium)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라는 황제의 칙서를
찢어 버렸기 때문에 참수되기 전에 손가락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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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페치오소(Speciosus)
축일 3월 15일
성 스페키오수스(또는 스페치오소)는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의 부유한 지주로
그의 형제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성 베네딕투스
(Benedictus)에 의해 수도생활을 받아들였다.
그런 후 성 스페키오수스 역시 테라치나의 새로운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그는 그곳에서 공동체의
일을 맡아 돌보던 중 카푸아(Capua)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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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리스토불로(Aristobulus)
축일 3월 15일
성 아리스토불루스(또는 아리스토불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파견된 72명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6장 10절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였다. 성 아리스토불루스는 ‘천둥의 아들들’인
사도 야고보(Jacobus)와 사도 요한(Joannes)의
아버지인 제베대오와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 후 성 아리스토불루스는
브리튼(Britain)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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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james)
축일 : 3월 15일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다'란 뜻이다.
야고보 카포치는 비떼르보 출신으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파리 대학에서 높은 학문과 신심을 길렀다.
이탈리아로 귀향한 그는 회원들에게 신학을
강의하다가, 재차 파리로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계몽하기 위하여 세 사람의 스승을 주셨는데,
첫 번째는 사도 바오로이고,
두 번째는 아우구스티노이며,
세 번째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1302년, 그는 베네벤또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가,
그 얼마 후에 나폴리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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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윌리엄 하트(William Hart)
축일 3월 15일
윌리엄 하트는 영국 서머싯(Somerset)의
웰스(Wells)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의 링컨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브리지워터 박사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두에(Douai)로 갔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받고 또 뛰어난 교수자격도 있었던 사람으로서
잠적했기 때문에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랭스(Reims)에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다가
로마(Rome)로 가서 사제가 되었고, 그 후에
요크셔(Yorkshire)로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낙천적인 성격과 용감성 그리고 애덕으로
뛰어났는데, 요크의 신자들을 방문하던 길에 체포되어
요크 성에 투옥되었다. 그는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빌리암 하트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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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즈가리야(Zachary)
축일 3월 15일
이탈리아의 산 세베리노에서 태어난
성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가리야)는 원래
그리스계 사람이다. 그가 로마(Rome) 교회의
부제로 있을 때 그의 학덕과 성덕이 뛰어나
그레고리우스 3세(Gregorius III)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741년 12월 10일에
착좌식을 거행한 후 즉시 복잡한 정치 문제를
해결하여 그의 수완이 뛰어남을 입증하였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를 격려하여
독일 선교에 박차를 가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그를 마인츠(Mainz)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또한 그는 피핀을 프랑크 왕으로 인정하여
선교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성상 파괴를 피하여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수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고, 수많은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성 그레고리우스
(Gregorius)의 “대화집”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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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Clement Mary Hofbauer)
축일 3월 15일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의
타스비츠(Taswitz)에서 1751년 12월 26일 태어난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
(Clemens Maria Hofbauer)의 본명은
얀 드보락(Jahn Dvorak)인데 독일 이름인
호프바우어로 개명하였다.
그는 푸주한인 부모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빵 굽는 기술을 배웠다. 비록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그는 항상 은수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로마(Rome)와 빈(Wien)
사이를 오가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오스트리아의
부루크(Bruck) 근교 프레몽트레 수도원에서
빵 굽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나 신성 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Joseph II)
황제가 은수소들을 폐쇄하였을 때, 그는 빈으로
돌아와서 다시 빵 굽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인 베드로 쿤즈만(Petrus Kunzmann)과
함께 이탈리아 티볼리(Tivoli)의 주교
키아라몬티(Chiaramonti, 후일의 교황 비오 7세)의
승낙을 받고 재차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빈과 로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구속주회에 입회하여 178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파견되었으나,
황제가 많은 수도회를 축출하였기 때문에
구속주회 수도원 건립이 불가능하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옛 친구인 쿤즈만을 만나 평수사로 입회시켰다.
그 후 교황대사의 요청에 따라 그들은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zawa)로 갔으며, 그곳에서 2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클레멘스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나폴레옹이 수도회를 탄압할 때
그와 그의 동료 구속주회 회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각자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는 끝내 빈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그곳의
이탈리아 구역에서 일하였으며, 우르술라회의
지도신부로도 활약하면서부터 그의 설교와 성덕
그리고 지혜와 고해신부로서의 이해심 등이
그에게 높은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빈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하였고, 독일 지역의
수도생활 재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클레멘스는 요셉주의자들의 그릇된 사상과
대치하여 힘찬 싸움을 하였다.
그는 1820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사망하였으며, 1909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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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보(Probus)
축일 3월 15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기록에 의하면, 이탈리아 중부 리에티의 주교였던
성 프로부스(또는 프로보)는 환시를 통해
성 유베날리스(Juvenalis, 5월 7일)과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를 만나는 중에
선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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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라치도 리까르디(Placid Riccardi)
축일 : 3월 15일
움브리아의 뜨레비에서 태어난 그는 1868년에
로마 성곽 밖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베네딕또회원으로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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