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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val And Restoration
/ C.e / 박도훈
그날밤도 나는 찌들어있었다.
한번쯤 너그러운 야자감독이 들어와서 핸드폰을 쓰거나, MP3를 듣는 녀석들, 그리고 피곤함에 못이겨 자는 녀석들도 봐줄만 할텐데 내가 있는 교실에 들어오는 인간들은 다들 우리와 똑같이 찌들어서는 마치 지들이 야자감독이 된게 나때문이라는 듯이 칼같이 잠자는 녀석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밤도 난 찌들어있었다.
“박도훈, 졸지마.”
안경을 한번 치켜올리고 정신을 차린다.
사각사각 연필 굴러가는 소리와 가끔 들리는 책장넘어가는 소리는, 너무도 규칙적이어서 잠이 올 지경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여러가지 법칙들은 저절로 내 눈을 감게 만든다.
아, 니미럴...
고등학교 3학년, 그날 밤도 난 찌들어있었다.
결국에 난 에라 모르겠다 연필굴러가는 소리와 규칙적인 책장 넘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수학의 정석 위에 엎어졌다. 내가 엎어지자 여기저기서 엎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졸지 말라고 했던 선생은 나를 보더니 저도 엎드린다.
그런 선생을 보자 여기저기서 연필놓는 소리가 들린다. 볼펜 뚜껑닫는 소리와.
탁탁 타다닥... 풀석.
선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밤엔 모두가 찌들어 있었다.
“얘들아...”
“예에...”
“오늘만 봐주는 거다.”
“...”
“자라, 끝날 때 깨워주마.”
5분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월요일 오후, 아홉시 오십오분.
찌들어 있는 우리는 다른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 C.e / 함남주
지독한 감기는 도대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을 뜬 것 같지가 않다.
지금 내가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는지, 자켓을 입고 있는지, 머리를 만지고 있는지 안경을 쓰고 있는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채로 가방을 든다.
거울에는 선생 함남주가 서있다. 그래, 그리고 나는 눈을 떳다.
선생 함남주, 그래. 지겨워도, 싫어도 이게 나다.
머리가 멍하게 아파온다. 목이 따끔거린다.
지독한 감기는 떨어질 듯 떨어질 듯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함선생 오늘 몇교시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7교시...”
“에이고... 난 8교시 풀타임이야.”
투정. 그렇게 추선생은 아침부터 내 맥을 끊어놓는다.
그리고 같은 수업의 반복. 똑같은 소리, 똑같은 농담의 반복.
그렇게 내눈이 다시 감긴다.
지독한 감기는 도대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벗어나고 싶다. 그토록 좋아하던 선생질에서 벗어나고픈게 아니다.
목의 통증에서, 같은 내용의 수업에서, 진절머리가 나는 이 안정적인 생활에서.
매일먹는 똑같은 맛의 조미료들에게서, 야간고등학교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따위 볼 수 없는 이 단발머리 여중생들에게서, 주말마다 선보라고 하는 어머니에게서.
되도록 이면 멀리...
내가 그리워하는 그 어떤가를 찾을 수 있는, 멀리...
지독한 감기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기란, 가끔 나를 생각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속으로.
/ C.e / 정현욱
머리가 띵해지는 전화벨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진다.
그렇지만 그 전화벨소리도 무색하게 내 머리는 자꾸만 책상을 향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형사다. 중학교때부터 꿈을 키워왔었고 그래서 결국 형사가 됬다.
모두가 알아야할 진실이 짓밟히는거, 정의가 패배하는거. 그게 싫었엇다.
그렇지만 형사가 돼서 바라보는 이곳은 좀 다르다.
내가 꿈꿔왔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내가 알아온 진실들과, 내가 정의라 믿었던 것들이 내 앞에서 처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진실은 늘 승리하고 어디서든 정의는 나타난다고 배웠다. 하지만 진실은 늘 권력에게 번번히 패배하고, 돈으로 한껏치장하고 부풀려진 정의가 TV를 통해보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권력을, 무늬뿐인 정의를 위해 박수 치고 있다.
나는 권력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 돈에게 정의라고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대충좀 하자. 응? 떨어졌네. 떨어졌으면 자살이지.”
“그치만 이상한 점이...”
“아 됐어!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자살로 조사서 써.”
“...”
진실에 귀기울이지 말자. 진실을 알려고 하지말자. 정의같은거 눈 감아버리자.
나는 내 본분을 잊고 있다.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건 덮어버리는 것이거늘.
그렇게 나는 계속 책상에 머리를 처박는다.
권력에 가린 진실을 밝혀내려고 하지 않는다. 돈에 싸인 정의를 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중학교때와, 고등학교때와, 대학때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달라져있다.
서른이 넘었고, 처자식이 생겼고, 권력에, 돈에 대항해봤자 버림만 받을뿐이란 걸 알았다. 그권력에 돈에 조아리기 보단 모르는 척하자. 멍청한 척 하자.
그까짓 진실과 정의에 머리를 조아리기 보단, 잘난 무궁화 배찌를 단 놈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보단. 차라리 나는 이 책상에 머리를 조아리겠다!
쿵.
/ C.e / 이철호
“이기자~ 용산!”
툭. 기사거리가 떨어졌다. 용산에 가야한다.
언론에 공정성, 언론의 자유.
조금씩 억압당하는 이 사회속에서 진실을 찾아주는 기자. 그게 내 꿈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진실은 저 멀리로 도망친다.
진실을 찾아주는 기자는 점점 없어지고, 낚시대를 드리우는 기자들은 점점 늘어났다.
용산. 참사와 시위가 이어지는 그곳에는 도대체 어떤 누구도 가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밀려, 밀려. 내 앞에 용산이 떨어졌다.
나는 주워든다. 카메라, 노트북, 수첩.
그렇지만 의욕같은건 금방 사그라든다. 옆에 용산을 던져준 기자형은 저혼자 소설을 쓰고 있다.
A양, B양... K군 L군... 살려는 몸부림, 거짓의 낚시대.
“왜임마?”
“왜 C양은 없습니까?"
"뭐?“
“A양은 누구고 K군은 누구에요? 그 기사 진짜 올리실 겁니까?”
“이새끼가! 넌 빨리 용산에나 가!”
나도 크면 이렇게 되는 건가. 그래, 이니셜놀이보다는 용산참사가 낫겠지.
낚시꾼보다는 그래도 언론 탄압에 대항하는 기자가 더 낫겠지. 생각한다.
난 아직 젊으니까. 스물 일곱이니까. 처자식도 없고, 홀어미 모시는 것도 아니니까.
용산에 가자, 국회에 가자, 청와대에 가자, 광화문에가자, 서울광장에가자, 촛불을 들자, 시위를 하러 거리에 나가자, 노조에 가입해서 파업에 동참하자! 난 아직 젊으니까. 패기빼면 시체니까! 하고 생각만 한다.
수많은 카메라들, 울고 있는 시민들. 저사이에 끼어들어가 몸싸움을 하란 말인가?
후우... 낚싯대가 더 낫겠다. 이니셜놀이 참 재밌어보인다.
그래, 이런 내가 오마이뉴스 막내기자 이철호다.
/ C.e / 박도훈
여기는 대한민국.
나는 고3.
지금은 21세기.
2009년 6월 1일
그리고 지금은 Am 7:30.
퍽, 네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교탁위엔 검은 리본이 휘날린다.
3일전에 담임이 죽었다.
가슴에 달린 명찰같은 부고 리본은 거슬리는 느낌으로 가슴팍을 쿡쿡찌른다.
담임이 죽었다는게 실감나지 않는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다.
그냥 며칠 출장간 듯이. 아이들도, 선생들도 다 그렇게.
그치만 담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담임은 3일전에 죽었다.
팔위에 얼굴을 포개고 눈을 감는다.
잠귀신은 자꾸만 내 얼굴을 책상에 박아넣는다.
가슴판에 거슬리는 부고리본의 느낌. 그런 무의식 중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짝궁이왔다.
“안녕.”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인사를 건넨다.
여자애는 치마폭이 구겨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의자에 앉는다.
“안녕.”
저 여자애. 내 이름은 알까.
무슨 향수인지, 비누인지 모르는 달달한 향내가 난다.
아주 조용한 아이다. 등교할때와 하교할 때 빼고는 거의 미동도 없다.
그간 했던 짝궁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말이 너무없어서 숨이 막히는 건 빼고.
그 여자애의 가슴에도 부고리본은 날리고 있었다.
담임은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찝찝하고 거추장스럽게 아이들의 가슴에 날리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기도, 고3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슬퍼하기도.
교탁위에 잇는 국화는 며칠째 그저 꽃잎만을 흩날리고 있다.
그리고 그 꽃잎은 청소시간에 쓰레받기에 담겨버려지겠지.
미세하게 맡하지는 국화향기사이에서 새로올 선생을 생각해본다.
그 선생도 비슷할 것이다. 같이 슬프자, 해도 그럴것이고, 그만 침울하고 웃자, 해도 그럴 것이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속에서 전 담임에 묻혀살겠지.
가슴에 달린 이 거슬리는 느낌.
결국의 전담임의 존재도, 새로오게될 담임도. 이찝찝하고 거슬리는 느낌을 피하지 못하겠지.
선풍기 바람에 국화꽃이 한번 더 흩어진다.
치마폭에 휩싸인 달달한 냄새가 내 머리를 더더욱 책상 깊은곳으로 박아 놓았다.
/ C.e / 함남주
3교시쯤 지났나, 아니 4교신가?
목이 따끔거리게 아프다. 머리가 멍해져온다.
안경이 위로 올라가도록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늘도 똑같다. 한시간쯤 더 지나면 점심을 먹을거고, 또 몇시간 똑같은 말을 지껄이고 나면 추선생이 와서 어깨동무를 할 것이다. ‘함선생, 나 피곤해.’ 하며.
지금은 피울 수 없는 담배한개피가 너무 그립다.
담배를 피우면 목이더 아프다.
뜀박질도 잘 못하게 되고 금방 숨이 찬다.
그치만 창가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입김을 내뿜게된다.
후우...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입김을 내뿜는다. 후우...
오늘은 급식지도가 없는 날이다.
난 단발머리 녀석들이 가득찬 급식소에서 입속에 밥을 밀어넣고, 쫒겨나듯 급식소에서 나와 여기저기 들려보았다. 전부다 단발머리들이다. 내 주머니의 담배개비들이 태워질 곳이 없었다.
거기에 오늘따라 교장도 어슬렁거린다.
아, 나의 던힐. 이 형이 미안해. 태워주지 못해서.
후우... 후우... 후우...
괜히 입김만 내뿜닌다.
“함선생, 니코틴 부족해?”
“응?”
“함선생 매일 주머니에 손넣고 후우, 후우. 그거 니코틴 부족하다는 거잖아?”
추선생이 날 이렇게 잘 알고 있었나.
나는 그저 눈을 깜박거리며 추선생을 보고 있다.
"등사실 뒤에 숨어서 피워, 참, 등사실도 이젠 없어진다는데.“
”... 그럼 이제 어디서 피우지?“
“별관 뒤에서 피워야지.”
“넌 담배도 안피우잖아?”
“숨어있는건 잘해. 별관뒤에 남자선생님들 많을거야.”
추선생이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간다.
나는 등사실 뒤에서 담배를 물었다.
후우... 후우...
이번에는 정말 하얀연기가 내입에서 내뿜어진다.
담배를 피우면 목도 탁해지고, 폐도 썩어들어가지만 머리는 맑아진다.
일종의 중독이나 환각일지는 모르지만 여튼 난 그렇다.
“함 선생님.”
문득 옆을 보니, 망할 교감...
“얘기좀 하시죠.”
나는 다 피우지 못한 담배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머리가 다시 멍해지는 느낌이다.
/ C.e / 정현욱
“용산은 아주 난리고만.”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 TV로 얼굴을 돌렸다.
참사에 희생된 가족의 영전을 붙들고 울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쉴새없이 터지는 플래시들.
“이럴땐 기자가 아닌게 다행이지. 안그래, 정형사?”
“예? 아... 예... 뭐...”“으이구... 세상 말세구만 말세.”
뜨거운 커피를 모두 마시고 빈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으악 뜨겁다. 입천장이 다 까지는 것같은 느낌이다.
“정형사!”
“예!”
“잠 다깻으면 얼른 복귀하지 않고 뭘 하고 있어?”
“예? 예!”
뜨거운 입천장을 어쩌지 못하고 내 책상으로 돌아갔다.
불량스러운놈 몇 녀석이 우물우물거리며 조사서를 쓰고있었다.
나는 요즘 사건이 없다.
푸우~하며 볼펜만 돌린다.
“담배있냐?”
“헤, 돛대라...”
“너 사건 없지?”
“예.”
“그게 좋은거다. 가서 담배한갑 사와.”
나이가 서른셋이요, 마누라에 세 살된 딸애까지 있다.
그치만 신참이다. 이까짓 담배심부름이나 하는.
편의점에 들어서며 생각한다. 여기 강도같은거 안드나?
“던힐 한갑만...”
‘철컥.“
니미씹할 타이밍, 진짜 강도가 들다니.
난 조용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사... 살려주세요...”
“비상벨에서 손떼, 돈통열어.”
당황한 여점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는 총을 꺼냈다.
‘철컥.’
“경찰이다. 순순히 총 버려.”
“총들었다 그거냐? 알아서해. 니가 날 잡아가면 이 여자도 죽는다.”
저건 진짜 총이 아니다. 알수 있다. 아까의 그 철컥소리. 그것만으로도 알수 있다.
이자식은 그냥 병신이다.
“쏴봐.”
“...”
“총 쏴보라고.”
“...”
“널 강도 및 절도 협의고 불구속 입건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너무 쉽게 그놈을 체포 했다.
/ C.e / 이철호
빽빽한 기자들 틈에 둘러싸여 죽어라 플래쉬를 터트린다.
내가 무슨 럭비선수도 아니고 왜 이렇게 부당한 수만번의 블로킹사이에서 살아나야 하는지, 왜 거기에 사명을 걸고 플래쉬를 터트려야 하는건지.
소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들고 울고있는 참사 피해자들, 여기저기서 플래쉬 터지는 소리와불빛들.
일순간에 머리는 멍해지고, 내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푸하!”
이정도면 됐다. 숨막히는 블로킹사이에서 빠져나왓다.
땀이 흥건히 고인다. 이제야 숨을 내쉴수 있겠다.
“이제 용산 끝!”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사진들을 전송해서 올렸다.
참사의 피해자들이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 이철호 Lee82809@naver.com 2009.6.1
이제야 미소를 띈다. 다시 카메라를 둘러맸다.
그리고 주머니를 꼬깃꼬깃뒤져 담배한가치를 거낸다.
취재후에 피우는 담배는 맛있다.
핸드폰으로 용산 잘 받았다는 문자가 왔다. 담뱃불을 끄고 차에 올랐다.
나는 왜 기자일을 하고 있을까.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려하다가 내 손을 멈추게하는 생각.
진실을 찾아? 내가? 내가 기자의 힘을 너무 크게 봤던가?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블로킹의 현장을 본다.
저기서 내가 찾은게 뭐지?
응. 참사가 일어났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사과를, 보상을,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저 사람들은 울고있어.
그런데,
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지.
이 사진이, 저 사람들에게 뭘 주지?내가 뭘 해줄수 있었지?
응. 난 왜 사진을 찍고있지? 왜일까?
결국엔 돈이다.
나의 결론에 어이가 없어서 핸들에 엎어지면 하하하 웃었다.
결국엔 돈이다, 결국엔 돈이다. 하하하, 하하하
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시키지 않은짓을 해봐야겠다.
어떻게든 진짜 기자가 되야겠다.
그리고 결국엔 돈이다.
/ C.e / 박도훈
찝찝한 뉘앙스를 풍기며 첫교시가 시작됬다.
선생은 떨어진 국화꽃잎을 짓밟으며 들어왔다.
내 짝궁은 무언가 마구 쓰던 손을 멈추고 칠판을 본다.
펄럭, 또다시 부고리본이 흔들린다.
“... 너희들 분위기는 이해하는데, 할건 하고 살자.”
“...”
1교시 선생은 국화를 한쪽으로 슥, 밀더니 책을 편다.
그리고 인사나 뭐 이런것도 없이 그냥 칠판에 무작정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필기하는 소리위에 서걱서걱 넘어가는 공책의 소리와, 딸깍하는 볼펜의 소리가 복잡하게 들리다 이내 서걱서걱하는 규칙적인 소리로 변한다. 가끔 박자에 맞추어 샤프심이 뚝하고 부러지거나 볼펜심이 들어갔다나오고, 화이트가 흔들거린다. 그리고 딱딱딱딱 계속해서 휜글씨가 초록바탕을 채운다.
후욱.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꽃잎은 날리고, 짝궁의 명찰밑에 부고리본은 흩날린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건지도 모른채 서걱서걱 흰글씨를 베낀다.
뚝, 하고 샤프심이 한번 부러졌을 때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과목을 공부하는지 뜨끔하고 느꼈다.
짝궁의 옆머리가 공책에 스치다 또다시 뚝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움찔 고개가 들렸다 내려온다. 그래, 짝궁도 똑같은걸 느꼈나보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뚝, 뚝, 뚝, 뚝, 딸각
모두가 같았다.
그리고 좀더 큰 뚝소리.
분필이 부러지는 소리였다.
“...”
1교시 선생은 뒤돌아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얀 국화를 바라본다.
후욱, 그렇게나 꽃잎이 많이 떨어지는데 꽃송이는 비어보이지 않았다.
“그만하자.”
1교시 선생은 덤덤하게 책을 덮었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꽃을 다시 가운데로 옮겨놓았다.
내짝궁은 아무말없이 부고리본을 만지작거렸다.
한.소.은.
보이지 않던 이름이 갑자기 보인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 이유없는 표정이 슬퍼보인다.
내 눈길을 느꼇는지 그 아이가 나를 돌아본다.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짝궁의 옆머리가 공책에 스친다.
/ C.e / 함남주
“하실 얘기란게...”
“일단 앉으세요.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니요.”
“교내에선 금연인거 아시지요?”
“예. 물론...”
“... 그걸 꾸중하려고 제가 오늘내내 함선생님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부르시면 되지...”
“함선생님.”
움푹깊게 들어간 눈빛이 나를 단호하게 바라본다.
역한 포마드 기름 냄새. 요즘에도 저런걸 쓰나.
“함선생님은 선생님이시죠?”
“... 예...? 에...”
“그렇다면 애들 분위기를 붙잡고 이끌어주셔야죠.”
“...”
“아이들이 멍하고 조용하게 가라앉으면, 선생님도 같이 가라앉으십니까? 도대체 의욕이란게 없어요. 전에 보이던 함선생님의 얼굴이 아니라구요. 제가 무슨 말 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 예.”
“... 후우... 요지가 벗어났군요. 이게 아니었는데...”
교감은 손으로 머리를 집고 한숨을 한번 후욱 토해냈다.
그리고 뭔가 더 할말이 있는 듯 입을 오물거린다.
나는 기대반, 불안감과 초초함 반으로 조신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
“청렴고, 아십니까?”
“임용고시 보기전에 잠깐 근무를 했던 곳입니다.”
“현진하 선생님은 아십니까?”
“예? 아 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시험문제 낼때만 잠깐 잠깐씩 만나던 나이지긋하신 선생님.
가끔만나면 내 담배나 훔쳐가고 그러셨던...
“그분이, 며칠전에 돌아가셨더라구요.”
“...”
“나랑 친분이 좀 있어요. 거기 이사장이랑, 교장이랑...”
“그래서...?”
“그 자리를 메워줬으면 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거긴 사립고등학교이고... 여긴.”
“그래, 알고있어요. 그래... 괜한 얘기를 꺼낸것같군.”
교장은 또다시 한숨을 쉰다.
내가 그렇게 골칫덩어리인가, 갑자기 사립학교로 휙 보내고 싶을 만큼?
그때, 복도에서 단발머리들의 괴성이 들린다.
“꽤 떠드는 구만 그래.”
“생각... 해보겠습니다.”
“응?”
“생각해보고, 내일 말씀드릴게요.”
체육복을 입은 단발머리들이 괴성을 지르며 복도를 달려간다.
나는 그 아이들과 반대로 걸어갔다.
/ C.e / 정현욱
“담배는? 강도만 들고오고 던힐은 안들고왔어?”
“선배님...”
“그럼 니 돛대라도줘 이새끼야.”
“선배님...?”
“진심이야!”
지원을 요청해 점원의 증원가 CCTV자료를 증거로 삼아 그 강도를 잡았다.
그리고 서로 돌아오자 선배가 하는 소리가 고작 이거다.
“에이씨... 저놈의 강도 때문에 담배도 못피우고...”
선배는 빈 담뱃갑을 콰직, 하고 구겨뜨렸다.
그리고 수갑을 차고 온 강도한테 묻는다.
“야, 너 담배있냐?”
“선배, 정말 왜 그래요?”
“담배가 고파서 그래! 너 이리 나와, 조서 내가 쓸테니까 너 나가서 담배좀 사와라.”
“이름.”
선배의 말을 무시하고 강도를 조서를 쓰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검거가 됬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
타닥타닥 타다닥, 자판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야아~ 정형사~”
“왜 그랬어?”
“그냥 잡아주세요.”
머리 터질것같아. 이름 하나 받아적었는데, 선배는 담배달라고 투정, 강도는 대답안한다고 투정.
그 사이에서 전화벨은 미친 듯이 울려댄다.
“아 형! 그만좀해, 피우고 싶으면 나가서 사서 피워!”
“거기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전화벨은 여전히 울리고 가도는 여전히 투정, 그리고 이젠 내 핸드폰도 울리지만.
서 안의 사람들에게는 정적이 일었다.
곱상한 얼굴에 안정한 맵시.
신임반장이었다.
“핸드폰 받으세요.”
문득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젊은 놈이 웃으며 나에게 전화를 받으라 한다. 내가 어정쩡하게 전화기를 들었을 때 전화는 끊겼다.
“이런, 원래는 제가 5일부터 출근입니다. 아니, 오늘이 5일이군요. 지금은 새벽 3시니까요. 여기계신 부장님 잠을 깨워 물어보니, 아직 근무하고 계신다기에 왔습니다. 방해는 안됬겠죠?”
젊은놈. 젊어도 너무 젊은놈. 새파랗게 젊은 놈.
“어휴, 방해는요, 영광이죠.”
“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치만, 조아려 하는놈.
기분 나쁘게 젊은놈.
/ C.e / 이철호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옆의 선배는 이니셜놀이를 잘못해서 결국은 혼나고 있다.
“이철호, 전화 왜 안받아?”
“아, 죄송해요. 몰랐네요.”
“누누이 말하지만, 전화벨 세 번이상 울리게 하지마, 응?”
“...예. 부장님.”
인터넷을 켜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본다.
‘장난감총 들고 위협하던 강도, 담배 사러온 형사한테 잡혀.’
피식
“이철호 부탁하나 하자.”
“예?”
툭.
장난감총 들고 위협하던 강도, 담배 사러온 형사한테 잡혀...
“니 메일로 동영상 자료 올렸어. 형을 국회로 가야하니 니가 그거좀 올려줘 알았지?”
“예... 에에...”
진짜로 동영상에는, 나 할짓없어요 라고 얼굴에 쓰여진 형사가 지갑에서 돈을 빼다가 아주 여유롭게 수갑을 채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형사의 표정에는 “내가 강도를 잡았다!” 보다는, “담배도 못피우게 하는 성가신 자식” 이라고 쓰여있었다.
내가 왜 이일을 해야하는지 모르는채 쩔어있는 얼굴이, 왠지 나랑 비슷했다.
이상한 동질감에 그 동영상을 몇 번이나 넋놓고 바라본지 모른다.
“저 형사, 이름 알 수 있나요?”
“응? 나한테 말한거야?”
“아, 그렇다기 보단... 혼잣말 정도...?”
“어디보자... 누구냐...”
나름 나를 아껴주는 형이 의자를 끌고 내 모니터앞으로 온다.
그리고 동영상을 보더니.
“허, 웃기네. 담배는 피웠을까?”
“...”
“... 쩝... 아니, 모르겠네. 딱 보니 초짜같은데 뭐. 안그래?”
“그래요?”
“근데 이 형사 이름은 왜?”
“아니, 그냥요. 하하하...”
재빨리 자판을 두드려 기사를 올렸다.
댓글이 하나도 안달리는 썰렁한 기사가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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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쓰는글.
뭐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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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긴데 읽어주셔서 ㄳ ㅋㅋ
우아 진짜 길다.. 읽느라고 고생좀 했음..
아직 써놓은 분량이 한 6장 정도 남아있는데.. 뭐 아직도 더 쓰고 있지만 ㅋㅋ ㄳ ㅋ
잘 읽었어요 ㅇㅅㅇ
ㄳ 해요 ㅎ
잘봤습니당
ㄳ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