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지라 집안 청량리 시장앞 도로는 분주하지만 플라모형계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2012년 임진년 새해를 맞이해 요새 미라지가 큰마음먹고 기획중인 2차대전 명전투기 씨리즈.. 이중 미해군에 있어 제로센의 공포를 잊게해준 첫 전투기 F6F HELLCAT 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실기체 스토리는 정리해 올렸는데.. 이제서야 제품 리뷰를 올리게 되었네요~~
그 첫제품으로는 헬켓의 결정판으로 불리고 있는 에듀어드사제 #8221번 F6F-3 Hellcat 을 소개합니다.
제로센을 압도한 미해군 최초의 전투기 F6F Hellcat
번역 및 정리 미라지나이트 (미라지의 콤프방 www.compmania.co.kr )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2차대전 당시 미해군에게 최초로 일본해군의 제로기를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준 위대한 전투기인 F6F 헬켓(Hellcat ; '히스테릭한 여자'내지 '손도 못 댈 말괄량이'라는 뜻) 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F6F 헬켓(Hellcat ; '히스테릭한 여자'내지 '손도 못 댈 말괄량이'라는 뜻) 2차대전 당시 미해군에게 최초로 일본해군의 제로기를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준 위대한 전투기 이다]
사실, 미라지도 예전에는 2차대전 당시 프롭기들은 독일군의 BF-109 메셔수미트 나 볼케울프 영국군의 스핏화이어 그리고 미육군항공대 (당시는 공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의 P-51 무스탕이나 P-47 썬더볼트 같은 이름좀 알려진 유명한 전투기나 좀 알았지 일본군을 대상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미해군의 기체들은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가 즐겨보는 케이블 채널중 하나인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해준 ‘실전 최강 전투기대전’ 이란 전투기 관련 다큐먼터리를 보고 이 기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세계2차대전 초반.. 미해군 전투기들의 불편한 진실
1941년 12월7일 일본의 일방적인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과 미국은 4년간의 긴전쟁으로 들어가게됩니다.
미군은 지금도 그렇치만 당시에도 매우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느데 그중에는 2차대전을 통해 신무기로 개발배치된 항모와 그곳에서 운용되는 함재기들도 있었습니다.
미해군은 1938년 이미 F4F 와일드 캣과 F2A 버팔로를 가지고 자신들이 최고의 전투기를 가졌다고 자만하고 있다가 1941년 비로서 일본과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면서 막상 일본의 제로기를 상대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생각이 큰 오판이였음을 제대로 알게됩니다.
[2차대전개전 초기 미해군은 F2A 버팔로(Brewster F2A Buffalo)(위) 나 F4F 와일드캣 등 자국이 운영중인 항공기가 최고의 전투기라 자신하고 있었다.하지만 막상 개전이 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해군의 제로 전투기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것은 단순히 자신만의 착각이였음을 바로 깨달게 됩니다 ]
(당시 일본의 제로기가 얼마나 뛰어난 기체였는지는 1941년 필리핀 전투에서 50여기 이상의 미공군의 전투기가 격추되는 동안 제로기는 단 10여대만이 격추당했다는 점만으로 충분히 그 성능을 알수 있을듯…)
1938년 당시 그토록 자랑하던 미해군의 전투기들은 일방적으로 제로센이라 불리던 일본의 함재기에 도륙을 당합니다.
일본해군의 기적이라 불리는 미쓰비시 A6M2 제로센 영전(零戰) (zero-sen)
개전 당시 일본해군의 주력기체는 미쓰비시사에서 개발한 A6M2 영전(零戰) (zero-sen)이라 불리는 제로센 전투기였습니다.
[2차대전 개전 당시 일본해군의 주력기체는 미쓰비시사에서 개발한 A6M2 영전(零戰) (zero-sen)이라 불리는 제로센 전투기로 이 전투기는 경쾌한 기동성과 긴항속거리(무려 항속거리가 3,000km나 되었다. 당시 미해군전투기의 평균 항속거리는 1,100km 수준) 그리고 강력한 20밀리 기관포등의 조합으로(대신 방어력과 기체강도가 형편없었다) 초기 태평양전투에 있어 최고의 전투기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만큼 우수한 전투기 였다.]
이 전투기는 경쾌한 기동성과 긴항속거리(무려 항속거리가 3,000km나 되었다. 당시 미해군전투기의 평균 항속거리는 1,100km 수준) 그리고 강력한 20밀리 기관포등의 조합으로(대신 방어력과 기체강도가 형편없었다) 초기 태평양전투에 있어 최고의 전투기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만큼 우수한 전투기 였습니다.
[영식함상전투기로 불리는 제로센은 장갑을 희생한대신 경쾌한 운동성과 긴 항속거리 그리고 뛰어난 무장을 장착한 일본해군의 주력기로 개전부터 종전까지 개량되어 내내 사용되었다]
암튼 1941년부터 1943년 초반까지는 적어도 미해군의 전투기들은 일본해군의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인 것은 확실했습니다.
개전초반 이미 F2A 버팔로는 고물최급을 받던 수준이하의 전투기였고 그나마 F4F 와일드 캣을 방공전투기로 어벤져나 헬다이버등을 뇌격기 혹은 공격기로 사용중이였죠.. 뇌격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강력한 일본의 항공기를 방어하기 위한 방공전투기로서의 F4F 와일드 캣의 성능적 열세는 빨리 이를 대체해야할 전투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2차대전 주력뇌격기로 사용되던 SBD 헬다이버]
[그리고 던트레스는 그런대로 일본해군의 함선공격을 위한 뇌격기로 쓸만한 수준을 가진 튼튼한 전투기였다]
하루속히 더 빠르고 강력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전투기가 필요했다는 점은 틀림이 없었죠..
미해군 신형전투기의 개발에 희망을 맡기다~~
미해군은 1938년 이전에 이미 적의 새로운 전투기의 등장에 대비해 와일드캣을 대체할 새로운 함상전투기를 개발중에 있었습니다.
이미 미해군은 그루만사와 함께 미해군에 기체를 납품하는 대표적인 비행기 제작사인 보우트사에새로운 전투기개발을
의뢰해둔 상태였죠..
[미해군은 1938년 이전에 이미 적의 새로운 전투기의 등장에 대비해 와일드캣을 대체할 새로운 함상전투기를
개발중에 있었다. 미해군은 보우트사에새로운 전투기개발을 의뢰해둔 상태였고 그때 개발중인 전투기가.바로
F4U 콜세어였다. 하지만 초기 개발품을 본 미해군은 생각외의 성능이 나오지 않는것이 실망을 했고 (일단 속
도부터가 제로기에 뒤쳐졌다) 무엇보다 기체설계오류로 항모에서의 이착륙이 어려운 입장이였다 이런 문제점
을 해결할때까지 미해군은 기체들은 인도거부하게 되면서 헬켓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다급해진 미해군은 당시 미해군의 새로운 전투기(이게 바로 F4U 콜세어였다) 를 개발하
고 있었던 보우트사에 신형 전투기 개발을 재촉하는 한편 혹시 이기체가 실패할 것을 대비해 그루만사에 이를 보조할 새
로운 전투기를 개발하게 합니다.
당시는 하루하루 또 한대의 전투기라도 급한 전시인지라 느긋하게 새로운 기체를 개발할 시간이 없었던 그루만사는 기존에 운영중이였던 F4F 와일드캣을 전면 재설계 하여 새로운 전투기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미해군에 제시하였고 이를 본 미해군은 이를 허가하게 됩니다.
[당시 미해군의 주력지체는 F4F 와일드캣으로 이는 1200마력급의 엔진을 장착한 기체였다. 그라망사의 설계로 만들어진 이 기체는 대체로 우수한편에 속하는 전투기였지만 이미 개전전 각국의 기체 (특히 제로기에 비하면)에 비해 그렇게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전투기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 낮은 엔진출력으로 수직상승에 큰 문제가 있었으며 제로센보다 떨어지는 상승속도로 피해가 컸다]
헬켓은 앞서이야기한대로 당시일본해군의 주력전투기였던 미지비시 A6M2 영식전투기 (일명 제로센) 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하여 미국적인 사고로 재설계한 전투기 입니다.
[그루만사는 미해군의 급박한 주문에 기존의 와일드캣을 개량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그결과 만들어지게 된것이 바로 F6F 헬켓 이였던것이다]
일본해군의 제로센에 혼쭐이난 미해군은 바로 이 일본전투기를 능가할 전투기 개발을 서두르게 되고 제로센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때맞침 헬켓이 한참 개발중에 있던중에 기적과 같은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1942년 6월 3일, 알류산 열도의 더치하버를 공격하는 임무를 받은 일본 해군 공격기 부대의 일원이었던 해군 조종사 ‘타다요시 코가(Tadayoshi Koga)’가 조종하던 A6M2 한대가 작전도중 연료부족으로 불시착하게 된것이죠.. 미해군은 이를 바로 수거, 거의 완벽한 상태의 제로기를 재조립하여 면밀하게 적군의 전투기를 연구한 결과 제로기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고(이에 대해서 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제로전투기 회수전에 이미 헬켓은 개발완성단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맞추어 헬켓은 타도목표였던 제로센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이길수 있는 기체로 설계되게 됩니다.
[1942년 6월 3일, 알류산 열도의 더치하버를 공격하는 임무를 받은 일본 해군 공격기 부대의 일원이었던 해군 조종사 타다요시 코가가 자신의 A6M2기와 함께 추락했는데 이는 거의 완벽한 상태로 제로센을 얻는데 성공한 기적과 같은 일이였다. 이후 이를 회수한 그라만사와 미해군은 이를 복원하여 연구하게 되는데 이로써 제로센을 이길 필살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하게된다]
거기에다 2,000 마력급의 신형엔진인 래디알 R-2800-10W 와스프 공냉식 엔진이 개발되어 신형전투기에 이를 탑재하게 되면서 작고 가벼운 기체에 2000마력급의 강력한 엔진, 그리고 12.7밀리 M2 브로우닝 중기관총을 무려 6정이나 장착하고 2천발 이상의 탄을 적재한 무서운 공격력을 가진 전투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헬켓을 개발하던 시절에는 하루가 급한 전시인지라 따로 새로운 설계의 전투기를 개발하기 보다는 우선 기존의 와일드캣 전면 재설계하여 개량하는데 중점을 두게 되는데, 우선 동체를 작게 만들고 오히려 주익의 크기를 늘려 비행성능을 더 좋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일본기들에 비해 뛰어난 점은) 여기에 새롭게 개발된 2,000마력급의 힘을 내는 플랫휘트니사의 R-2800-10W 공냉식 엔진을 탑재했다는 점으로 이로인해 강력한 장갑과 무장을 얻어낼수 있었다]
하루가 급한 전시인지라 따로 새로운 설계의 전투기를 개발하기 보다는 우선 기존의 와일드캣 전면 재설계하여 개량하는데 중점을 두게 되는데, 우선 동체를 작게 만들고 오히려 주익의 크기를 늘려 비행성능을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기들에 비해 뛰어난 점은) 여기에 새롭게 개발된 2,000마력급의 힘을 내는 플랫휘트니사의 R-2800-10W 공냉식 엔진을 탑재했다는 점입니다.
[플랫휘트니사의 R-2800-10W 공냉식 엔진은 더블와스프로 불리는 엔진으로 당시 롤스로이스 머린엔진과 더불어 고출력을 내는 항공기용 피스톤엔진중 하나였다.이 엔진은 P-47 썬더볼트를 비롯 F-4U 콜세어등 당시 명기체로 불리던 기체들을 탄생시킨 강력한 엔진으로 소형전투기에 탑재가능한 강력한 엔진으로 정평이 난 제품이였다. 사진은 미육근 항공대의 P-47D 썬더볼트의 모습]
이 엔진은 P-47 썬더볼트를 비롯 F-4U 콜세어등 당시 명기체로 불리던 기체들을 탄생시킨 강력한 엔진으로 소형전투기에 탑재가능한 강력한 엔진으로 정평이 난 제품이였습니다.
[플랫휘트니사가 개발한 이 공냉식 엔진은 흔히, 더블와스프(Pratt & Whitney R-2800 Double Wasp) 로 알려진 엔진으로 와일드캣의 엔진이 1,200마력급이었던데에 비하면 헬캣의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을듯.. 이는 당대 최고의 항공기용 피스톤엔진으로 알려진 롤스로이스 머린엔진에 비견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가진 항공기용 공냉식엔진 이였다]
플랫휘트니사가 개발한 이 공냉식 엔진은 흔히, 더블와스프(Pratt & Whitney R-2800 Double Wasp) 로 알려진 엔진으로 와일드캣의 엔진이 1,200마력급이었던데에 비하면 헬캣의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Pratt & Whitney R-2800 Double Wasp) 엔진은 와일드캣에게도 장착이 고려되었지만 엔진의 크기가 워낙 커서 동체가 작은 와일드캣에게는 도저히 무리였다. 결국 이를 위해 동체는 전면적으로 재설계되어 대형화되었으며 이로인해 다소 뚱뚱해진 형태로 동체가 다듬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 엔진은 와일드캣에게도 장착이 고려되었지만 엔진의 크기가 워낙 커서 동체가 작은 와일드캣에게는 도저히 무리였습니다.
이를 위해 동체는 전면적으로 재설계되어 대형화되었으며 이로인해 다소 뚱뚱해진 형태로 동체가 다듬어지게 됩니다.
[F6F 헬켓은 Pratt & Whitney사의 R-2800 Double Wasp 엔진을 장착하기 위헤 동체를 전면적으로 재설계
하여 동체가 대형화되었으며 이로인해 다소 뚱뚱해진 형태로 동체가 다듬어지게 된다]
이 강력한 엔진은 F6F에게 넘치는 힘을 주어 중장갑과 중무장이 가능하도록 해주게 됩니다.
함재기를 많이 제작해본 경험이 있던 그라만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개발속도를 보여 이전의 원형기들과는 크게 달라진
성능을 가진 시제기 XF6F-3의 비행을 1942년 6월말에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F6F 헬켓의 시제기인 XF6F-3의 모습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 그라만사는 XF6F-3의 비행을 1942년 6월말에 실시할 수 있었다]
[F6F 헬켓의 시제기인 XF6F-3의 모습으로 F4F 와일드캣을 대형화시킨듯한 외형으로 더 커진 주익에는 약간의 상반각을 주어 급강하시 높은 속도를 보장받게 되었다]
특히 이무렵에 미해군이 큰 기대를 걸고 있던 헬캣의 경쟁기인 F4U 콜세어의 양산기가 첫 비행을 실시하면서 헬캣에 앞
서 배치될뻔 했으나 콜세어는 몇 번의 시험비행에서 항모에서 운용할 때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기수 부분이 길어 이착륙
시 앞 부분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착함시에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 때
문에 미해군은 이점이 수정될 때까지 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초기발주된 200여대는 모두 지
상기지에서 운용하는 미해병대로 넘겨지게 된다.)
[미해군은 1930년대 후반 이미 새로운 적전투기를 예상하고 당시 전투기 해군용 생산에 많은 경험이 있던 보우트사에 세 전투기를 의뢰하게 되는데 그것이 훗날 미해군 최고의 함상전투기로 알려진 F4U 콜르세어였다. 이 전투기 역시 2000마력급의 더블와스프엔진을 장착하고 세련된 형태의 W자형 주익을 장착하는등 당시 최신 항공기술이 도입된 전투기였지만 기수 부분이 너무 길어 좁은 함상에서 이착륙시 시야를 가리는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미해군은 이사실을 알고 처음 주문한 200여기 인수를 거부했고 보우트사는 가까으로 해결책을 내놓치만 그 시간이 1944년 6월 결국 이 전투기를 2차대전 종반에 등장하여 잠깐 빛을 본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본체 사라져야했다]
각설하고 당시 신형전투기에 있어 플랫휘트니사의 R-2800-10W 공냉식 엔진은 신이주신 기회와같았으며 성능적 열세
에 있던 미해군의 기체의 성능들을 일시에 역전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해전에서 믿을 수 없는 대승리를 거둔후 미해군은 일본이 다시 전력을 보강하기전에 공
세적인 작전을 펴기로 했다. 그리하여 태평양에서 일본해군이 장악하고 있던 섬들에 대한 항공공세를 강화했
는데 여전히 문제점은 강력한 제공전투기의 부재였다. 그렇다고 F4U 콜세어가 배치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도 없었다. 결국 미해군이 내린 해결책은 역시 해군기의 명가 그라만사의 신형기 F6F를 대량으로 생산해달라
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라만사 역시 미해군의 기대에 부응하여 F6F 헬캣은 와일드캣의 후예답게 미해
군이 제시한 모든 항모 착함 능력 테스트를 일사천리로 통과해 버렸다.더구나 공중전 테스트에서 속도가 제로
전투기의 시속 533km에 비해서 무려 시속 80km 이상이 빠른 수치를 나타냈으며 상승률이 매우 좋았으며 최대
상승고도에서도 제로를 능가했다. 물론 하강성능도 뛰어났으며 캘리버 50 기관총 6정에 무려 2400발을 장탄
할 수 있었던 강력한 무장은 제로를 단시간만에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
국 미해군은 이 전투기가 A6M2 제로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즉시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급박하게 생산을 시작한 그라만사는 시제기가 비행한지 5주만에 양산체재로 돌입할 수 있었다. 드디어 미해군
조종사들에게 강력한 함재 전투기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는 훗날 대전말기 일본기체들이 힘이 약한엔진으로 고전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F6F헬켓이나
F4U 콜세어등 미해군의 최신 전투기들이 가진 큰 장점중 하나였습니다.
이 강력한 엔진으로 말미암아 헬켓은 양주익에 각 3기씩 12.7mm M2 브로우닝 중기관총을 장착하고 총2천발 이상의 탄을 탑재, 무자비한 탄막을 펼칠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비를 2초이상 견디는 일본군 전투기는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2000마력급의 더블와스프 엔진을 장착하게 되면서 헬켓에는 12.7mm M2 브로우닝 중기관총을 양주익에 각3정씩 총6정을 장착할수 있었으며 이등 기관총에 장착가능한 탄수는 2천발이 넘었다. 이로인해 일본기에게 탄약비를 쏟아부울수 있었으며 장갑이 약한 일본기 (특히 주력이였던 제로센) 는 이를 막아낼수 있는 전투기는 없었다]
또한 추력이 충분한 기체인지라 남는 엔진힘은 조종사 및 기체 보호를 위한 장갑을 강화하는데할애했는데 대부분의 일본기체들이 속도와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조종사나 엔진보호에 소홀했었데 반해, 헬켓의 장갑은 매우 튼튼하여 근거리가 아니라면 일본기의 탄알은 간단히 튕겨버릴 정도 였습니다. (심지어 아군의 오발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장갑을 가졌다)
[헬켓은 특히 추력이 충분한 기체인지라 남는 엔진힘은 조종사 및 기체 보호를 위한 장갑을 강화하는데할애했는데 대부분의 일본기체들이 속도와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조종사나 엔진보호에 소홀했었데 반해, 헬켓의 장갑은 매우 튼튼하여 근거리가 아니라면 일본기의 탄알은 간단히 튕겨버릴 정도 였다. (심지어 아군의 오발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장갑을 가졌다) 특히 뛰어난 기계적 완성도와 튼튼함을 가져 수많은 미해군 전투기 조종사를 살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큰 부상을 입은 기체들도 무사히 항모로 돌아오는 기체가 많았다]
1942년 1월26일 첫비행에 성공한 이 기체는 F6F Hellcat이라는 이름을 얻고 추가적인 시험비행을 마치고 약간의 개량을 가한뒤 1943년부터 미해군의 항모에 정식 배치되게됩니다.(1942년 10월 4일, 헬캣 1호가 미항모 essex호에 배치된 미해군 VF-9에 제공 되었다. 1943년 8월 중순에는 미항모 요크타운, 인디펜던스, 엑세스호에 탑제되어 공중전 임무에 실전 투입된다.)
[항모에서 발진중인 F6F헬캣의 모습... 충분한 엔진추력덕에 풀무장과 연료를 만재하고도 이처럼 항모에서 이륙이 가능했다]
핼캣기의 첫 공중전은 1943년 8월 31일에 벌어졌는데, VF-5와 VF-9 비행대가 마르쿠스 섬을 공격함으로서 이루어졌다. 거기서 약 90기의 핼캣기들이 약 50기의 제로기들과 공중전을 벌였는데, 28기의 제로기가 격추되었고 핼캣의 피해는 단 2기 뿐이었다.
바로 2차대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에이스를 배출한 기체인 헬켓의 등장이였습니다.
[핼캣의 첫 공중전은 1943년 8월 31일에 벌어졌는데, VF-5와 VF-9 비행대가 마르쿠스 섬을 공격함으로서 이루어졌다. 거기서 약 90기의 핼캣기들이 약 50기의 제로기들과 공중전을 벌였는데, 28기의 제로기가 격추되었고 핼캣의 피해는 단 2기 뿐이었다. 이로서 제로기에 겁먹었었던 미해군의 조종사는 비로서 자신감을 회복할수 있었으며 이후 320여명의 미해군 에이스들이 탄생하는데 헬켓이 큰 일조를 하게 된다]
기체는 더 작아졌으며 반대로 엔진은 강력해졌으며 이에 맞추어 주익과 무장탑재력은 더 커졌으니 당연 성능도 우수할수밖에..
말괄량이들의 활약상~
F6F 헬켓은1943년 8월31일, 첫 전투에 투입 됩니다.
[이륙을 위해 주익을 펴고 있는 F6F헬켓의 모습 헬켓은 거대한 주익을 가진 전투기였지만 앞서 개발된 형님뻘기체인 F4F 와일드캣과 같이 완벽하게 주익을 접을수 있었으며 이는 좁은 항모에서 운용을 염두해둔 그루만사의 배려였다]
항모 엑센스로 부터 출격한 VF-9 전투비행단 기체와 요크타운 으로부터 출격한 VF-5 전투 비행단은 일본에서 남쪽으로 700마일(1,127Km) 떨어진 마르쿠스 섬 (일본명으로는 '미나미 토리 섬') 을 향한 일본의 공격을 저지하는 전투에 첫 참가합니다. (여기서는 별전적을 올리지는 못하고 일본해군 조종사들에게 신형전투기가 등장했다는 충격을 전해주는데 만족합니다.)
[착륙후 이동을 위해 주익을 접는 모습 늘어난 기수덕에 좁은 항모에서 제대로 된 시야확보가 어려웠던 F4U 콜세어와는 달리 길이가 짧은 헬켓은 좁안항모에서 운용이 용이한 기체였다]
이 전투로부터 몇달후, 드디어 첫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약 100여기의 일본기들이 미 항모를 목표로 하여 공격해 왔고, 미 항모들은 비슷한 수인 약 100여기의 헬캣을 날려 보냈습니다.
일본항모가 출격시킨 편대안에는 호위기로서 제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반대로 미해군의 항모에서는 신형전투기 헬켓을 출격시켰죠..
[대전 초반 일본해군기체에 비해 성능적인 우위에 서지 못했던 미해군은 헬켓의 도입으로 비로서 성능적으로 완벽하게 제로센을 압도하면서 평균 22;1 의 성능적 우세를 보여주었다]
마침내 헬캣과 제로가 맞부딪쳤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본기 50여기가 격추되었고, 이 중 28기는 제로였습니다. 반면, 헬캣의 손실은 단지 3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과 그루만사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F6F 헬켓은 성능적 열세에 있었던 미해군 조종사들에 있어 이제 성능적으로 우세에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해준 기체였으며 실제로 전투에서 일본군의 전투기를 압도하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후 헬켓은 눈부신 활약을 벌이면서 미해군에서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세를 일시에 역전시키게 됩니다.
[헬켓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이 동영상으로!!]
그리고 해군 에이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체로 영원히 남는 명기체로 인식되어 전후까지 태평양의 바다위에서 수천대의 일본기를 잠재우는데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헬켓은 보우트사의 F4U 콜세어의 대체기로 개발된 전투기였지만 뛰어난 성능으로 미해군의 주력기로 사용된 기체였다. 2차대전 일본군을 상대로한 공중전에서 평균 22:1 이라는 압도적인 성능차를 보여준 기체가 바로 헬켓인것이다]
헬켓은 원래 보우트사가 미해군의 의뢰를 받아 개발중이였던 신형 전투기 F4U 콜세어의 백업용으로 제작되어진 전투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군은 항상 중요한 무기개발에는 백업용으로 두기를 동시 진행하는 방법을 쓴다)
하지만 생각외로 뛰어난 성능으로 오히려 활약은 보우트사의 F4U 콜세어를 능가하게 되죠..
여기에는 무리한 신형기체의 개발보다는 이미 개발되어 활약하고 있었던 전작인 F4F 와일드캣의 기본설계를 응용 문제점을 개량하는 방법을 취했기 때문인데 이로인해 태생적인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헬켓은 소형의 동체에 강력한 엔진괒 장갑 그리고 무장을 갖춘 기체로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체였다 ]
헬켓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느린속도였습니다.
최고속도가 시속610km 에 불과했던 헬켓은 대전중반에 등장한 다른 전투기들이 시속 700km 를 넘어 800km 까지도 내는데 반해 느려도 너무 느린편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점도 없지는 않았는데.. 일단 동시대의 다른 전투기들보다 느린속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최대속도가 시속 610km 에 불과한 헬켓은 뒤이어 시속 700~800킬로가 넘는 속도를 가진 다른 전투기보다 확실히 느린 문제가 있었다. 초반에 우수하다고 평가받던 기동성 역시 이어 등장하게 되는 다른 신형기체에 비해 우수하지도 않았으며 특히 성능적으로 더 우수한 F4U 콜세어가 등장하면서 빠르게 퇴역이 진행되게 된다]
더구나 기동성 역시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타도목표였던 제로센에 비하면 우수했지만..후에 나오는 콜세어에 비하면 한창 늦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켓이 인기가 많았던 것은 역시 플랫휘트니사의 R-2800-10W 공냉식 엔진을 장착한 미해군 최초의 기체라는 점과 강력한 엔진으로 인해 충분한 장갑과 무장을 장착할수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헬켓은 다양한 임무의 멀티롤 파이터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진처럼 로켓과 폭장을 한 버젼도 개발되었지만 이보다 더 우수한 폭장력을 가진 F4U 콜세어가 1944에 도입되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개중에는 이처럼 주익에 레이다를 장착하여 야간전투기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태평양의 바다에서 높은 전적을 내기도 하였다]
1944년 4월 드디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고(원래 XF4U-1은 1940년 5월 29일 첫 비행에 성공하고 1941년 6월 미 해군이 F4U-1 584대를 발주하면서 양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후술하는 문제 때문에 F4U는 결국 1944년 4월에야 미 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배치될 수 있었다. F4U-1을 개량한 F4U-1A, F4U-1C, F4U-1D, F4U-2, F4U-4 등이 등장하였다. )보우트사의 F4U 콜세어기가 배치되기 시작하자 헬켓은 그 가치를 급격하게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헬켓의 숙적으로 등장한 보우트사의 F4U 콜세어기는 앞서 배치되어 활약한 F6F 헬켓에 비해 대형기체이고 성능도 더 뛰어났다.특히 콜세어는 더 대형의 기체라 무장탑재력과 항속거리등이 헬켓에 비해 우수했으며 비행성능 역시 더 뛰어나 이들 기체가 배치되기 시작한 1944년 4월이후에는 헬켓을 대신하는 미해군의 주력기체로 널이 이용되게 된다]
막배치되기 시작한 보우트사의 F4U 콜세어기는 앞서 배치되어 활약한 F6F 헬켓에 비해 대형기체이고 성능도 더 뛰어났습니다.
헬캣은 짧은기간동안 등장하여 (1943~1945) 최고의 일본군기체의 킬러로 활약해 혁혁한 전과를 세웠지만, 콜세어를 정규 항모에서도 쓸 수 있게 개량하자 해군은 서둘러 헬켓을 강판시키기 시작하여 이미 발주된 헬켓의 생산도 취소되고 코르세어 생산에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후일 헬캣이 코르세어의 땜빵용이라는 뿌리깊은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하게 기체가 바뀌는 1945년까지까지도 호위항모의 주력기는 여전히 헬캣이었으며 트기 레이더를 단 N형은 TBF(M) 어벤저와 함께 잠수함 사냥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헬켓은 콜세어가 도입되기 시작한 1944년 4월이후 부터 빠르게 퇴역이 진행되게 된다. 사진은 헬다이버와 돈트래스를 대신해 새로운 공격기로 도입이 시작된 AD-1 스카이레이더와 찍힌 헬켓의 모습]
전쟁이 끝난 후 헬켓은 빠른 속도로 현역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헐값으로 해군 항공대가 있는 외국(프랑스, 우루과이)에 팔렸으나 그마저도 보기좋고 먹기좋은 코르세어에 밀렸고 결국은 대부분 스크랩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종전과 더불어 헬켓은 거의 모든 기체가 퇴역이 진행되는데 이후에도 대부분의 기체는 콜세어에 밀려 빠르게 사라져갔다]
매각과 해체의 폭풍에서 겨우 살아남은 기체들도 거의 무선조종기로 개조되어 실탄사격용 표적기로 소모되거나 일부는 한국전쟁에서 폭탄을 싣고 지상공격용 무선조종폭탄, 이른바 다리깨기(bridge-busting)로 소비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헬켓들은 일부가 무장탑재 테스트기로 사용되거나 반대로 새로운 공대공 미사일용 무인타켓(아래)으로 생을 마감했다]
[일부는 산불감시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실 헬켓의 후계기가 준비되지 않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바로 F8F 베어켓 (BEARCAT) 이 바로 그것이였죠..
1944년 시점에서, 당시 해군 항모에서 운용하던 F6F 헬캣은 일본군 전투기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지만 같은 R-2800 엔진을 사용하던 F4U 콜세어나 P-47 썬더볼트 같은 물건들에 비해서는 비행성능이 좋지 않았고, 또한 일본이 신형 전투기를 뽑아낸다면 F6F의 성능 우위는 쉽게 위협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해군은 새로운 전투기를 원했고, 노스롭이 Fw-190의 영향을 받아 강력한 R-2800 엔진에 딱 맞춘 경량 전투기로 개발된 것이 F8F였다.[1] 경량화를 위해 2차대전 미군 전투기의 표준 무장인 50구경 6정을 2문 덜어냈고[2],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기존의 육덕진 미군 전투기와는 전혀 다른 기체가 되었고, 때맞춰 A7M 렛푸도 그리 큰 향상을 보이지 못해 F8F는 태평양에서 가장 빠르고 날렵한 전투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발이 너무 늦어, F8F로 구성된 비행대를 실은 미 항모는 태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종전을 맞게 된다.[3] 그 후 제트 전투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F4U는 지상 공격에도 적합하여 맹활약했던 반면, F8F는 아예 투입되지도 못하였다.
그리하여 남아돌던 기체들은 처음에는 인도차이나 방면의 프랑스군에게 공여되어 디엔비엔푸 전투 이전까지 프랑스군에게 여러 모로 적절히 쓰였고[4] 이후 남베트남이나 태국 등에 공여되어 운용된다. 미국에도 꽤 많은 기체가 남아 있어, 에어쇼에 출연하거나 몇몇 기체는 속도기록용 기체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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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데 정작 베어캣 개발진들이 '오...우리도 경전투기를 만들어야해'라는 생각을 갖게한 Fw190은 독일군 내에선 대형인 편이었다... [2] 때문에 나중에는 20mm로 갈아탄다. [3] 육군의 P-80 슈팅스타나 형 F7F 타이거캣처럼 배치는 끝나 있었으나 일본군에게 기총 한 발 쏴 보지 못한 것이다. [4] 당시 프랑스군은 F8F가 탑재량이 높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전쟁 당시 미 해군은 탑재량이 적다는 이유로 F8F를 쓰지 않았다!
베어켓은 헬켓의 후속기체로 개발된 기체였지만 이미 이 기체가 등장한 시절에는 제트엔진을 단 제트전투기들이 날아다니던 시절이였습니다. 결국 프랑스군에 공여되면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헬켓의 후속기로 원래 F-8F 베어켓이 개발되었으나 이 기체가 등장한 시절에는 제트엔진을 단 제트전투기들이 날아다니던 시절이였다. 결국 프랑스군에 공여되면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베어켓은 출력이 강화된 2100마력급의 엔진과 무장을 20밀리 기관포 4정으로 강화하고 이에 따라 동체의 강도로 새롭게 개량한 기체로 보다 많은 무장탑재력과 등든한 멧집이 있었지만 이미 전세는 제트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의 시대로 넘어와버린후였다]
헬켓은 고작 2년동안 (1942~1945)만 미해군의 주력기로 활약했지만 총 12,275기라는 막대한 수량(미해군기체중에서는 최고생산) 이 제작되었고 이를 통해 총 320여명 이상의 에이스가 등장했다는 점(특히 맥캠벨(David McCampbell (January 16, 1910 – June 30, 1996.. 34기 격추로 미해군 제 1위 에이스)같은 조종사는 핼캣이 일본 전투기와 공중전에서 한 수 위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에서 비록 활약기간은 짧지만 2차대전 미해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기체임에는 틀림이 없을 듯 합니다.
[미해군 최고의 에이스 맥캠벨 (David McCampbell (January 16, 1910 – June 30, 1996 총 34기 격추)는 특히 헬켓을 최고의 전투기로 쳤으며 그의 격추기록 역시 대부분 헬켓을 탑승했을때 세운 격추기록이다]
[맥캠벨의 칼러 미해군 최고의 에이스 치고는 칼러링이 비교적 수수한 편이다]
Data from Quest for Performance,[66]Jane’s Fighting Aircraft of World War II[67]Standard Aircraft Characteristics[68]
에듀어드 제품은 예전에 미라지III CJ 제품을 구입해본뒤로는 처음인데 동구권 메이커제품 인식이라는 점과 달리 (대부분의 동구권 제품은 아이템은 다양하지만 품질은 그다지..) 일단 박스아트나 박스스타일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특히 박스아트는 누가 그렸는지 진짜 뛰어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 77X23X7센티 정도의 상당히 단단한 재질의 박스 입니다. 박스아트가 상당히 예술적인데.. 회색과 주황색의 에듀어드사를 나타내는 박스 디자인도 인상적입니다.]
[제품 측면에는 재현되어 있는 데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려 6가지 마킹을 넣어주고 있는가 보군요~~]
[반대쪽에는 상면 일러스트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주황색은 에듀어드사를 상징하는 색인데 박스전면에 교묘하게 잘 배치하고 있어 멀리서도 잘 보입니다.]
[박스 재질은 상당히 튼튼합니다. 다만 타미야나 국산 제품처럼 유광라미네이팅 처리를 하지 않아 방수기능은 없다는게 아쉽네요.. 그래서 동구권 제품은 비닐팩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습기등을 막기위해서죠..]
[제품 측면 정보를 보니 123개의 부품구성으로 되어 있군요.. 1/48 레시프로 전투기 제품치고는 꽤 많은 부품수 입니다.]
[2008년도에 제작된 제품 입니다. ]
[박스아트에 박스아트를 그린 작가 싸인이 있는데 너무 휘갈겨 쓴데다가 선명하지 않아 누군지는 불분명.. 대단한 박스아트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제품 박스는 1밀리 골판지를 단단히 접어 매우 튼튼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동구권 제품들이 대부분 박스상태가 불량스러운데 일단 박스로 봐서는 오호 하고 탄성이 나올만 합니다.]
2. 내용 및 특징
단단한 박스만큼이나 놀라움을 주는것이 바로 내용물 입니다.
박스를 열어보고 깨끗한 비닐에 차곡차곡 포장되어 있는 부품들을 보고 감탄이 나오는데.. 그 사출상태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왜냐고요~~ 마치 아카데미 제품을 보는듯 샤프한 사출이 일품이거든요!!
[탄탄한 박스만큼이나 내용물을 보면 감탄을 금할길이 없는데 사출상태가 너무 좋습니다.!! 마치 아카데미나 타미야 제품을 보는듯한 느낌 입니다.]
[다른 동구권 제품과는 달리 포장이 매우 고급스럽게 잘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부품은 역시 유럽수출을 위한 원팩 포장이라는거~~(유럽에서는 쓰레기 배출을 줄이지 않는 포장은 수입이 안된다고 합니다.)]
[6벌의 부품 약 123개의 부품구성입니다. 1/48 프롭기 치고는 꽤 많은 부품수인데.. 이는 에칭부품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1) 콕핏
[콕핏을 구성하는 바스터브는 분할해두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2차대전 기체의 구성입니다.]
[통사출되어 있는 좌석.. 밋밋합니다. 실기체도 그래요~~]
[조종 계기판.. 1/48 제품치고는 이외로 심플..]
[또 다른 부품으로는 민짜인것도 있는데 이건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컬러에칭을 적용할때 쓰는 부품 입니다.]
[조종스틱~~]
[조종페달까지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측면의 사이드콘솔까지 빠짐없이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실제 헬켓의 조종 메뉴얼을 보면 이 제품이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는지 잘 알수 있을듯..]
[콕핏은 정교하기도 하지만 투명도가 아주 좋습니다.]
[에듀어드사가 원래 칼러 에칭으로 유명한 회사인데 역시 자사의 에칭제품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도색이 되어 있어 떼어다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정밀도도 물론 수준급이지만 에칭 부품 도색이 어려운데.. 딱이죠~~ 다만 붙일때 도색되어 있는 부분에 접착제가 흐르지 않게 최소한의 접착제만 사용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조종석의 벨트등도 에칭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2) 동체
[길이 약 21센티의 동체는 좌우 분할하고 있습니다. 카울링 부분 역시 분리하고 있는 구성에 주의.. 전형적인 헬켓 제품 구성 입니다.]
[우려와는 달리 샤프한 마이너스 패널라인과 정교한 리벳팅이 일품 입니다. 다만 사출상태중 생긴것으로 보이는 자잘한 흠집들이.. 좀 거슬리네요..]
[헬켓은 단순한듯 보이는 수직형태의 패널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이로 빼곡하게 찍혀있는 리벳팅이 일품 입니다.]
[꼬리 부분까지 라인이 예술입니다. 에듀어드 헬켓이 결정판으로 불리는 이유중 하나가 기수의 라인을 가장 헬켓답게 잘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페터나 다른 제품들이 흉내내기 힘든 부분 이죠..]
[리벳의 재현은 아무리봐도 예술입니다. 마치 손으로 일일히 찍은듯한 정교함이 일품 입니다.!!]
[반면 사출과정중에 생긴 흠집은 걸리는 부분인데..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네요.. 전체적으로 1000번 정도의 서페이서를 뿌려서 다듬어줄 필요가 보입니다.]
[꼬리부분의 라인도 정확하게 실기체의 그 느낌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짧고 통통한 헬켓의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카울링은 따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통사출하지 않은것은 타원형의 단면을 가진 카울링을 재댜로 재현하기 위한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다른 회사 제품들은 원형으로 재현하고 있지만은..]
[역시 정확한 리벳팅과 마이너스 패널라인 재현이 일품 입니다.]
[에듀어드사의 헬켓은 현재 가장 결정판으로 불리는 제품으로 왜 결정판으로 불리는지는 제품을 만들어보면 안다~~]
[디테일도 디테일이지만.. 쉬운듯 하면서도 오묘하게 떨어지는 기수의 라인이나 동체 라인을 가장 잘 재현한 제품이 바로 에듀어드사 헬켓의 특징이다.]
[자사의 컬러에칭과 에칭부품을 이용한 시트의 재현과 조종석의 재현은 역시 에듀어드사가 왜 최고로 불리는지 잘 알게 해준다]
첫댓글거기다가 프로피팩만 아니라면 동스케일의 하세가와 헬켓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죠... 심지어는 칼라에칭에 다수의 마킹까지 옵션으로 붙은 프로피팩으로 산다고 쳐도 하세가와보다 몇천원 더 비싼 정도? 예전에는 간이인젝션이나 간간히 내놓던 메이커인데 에듀아드 요즘 용된듯...
첫댓글 거기다가 프로피팩만 아니라면 동스케일의 하세가와 헬켓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죠... 심지어는 칼라에칭에 다수의 마킹까지 옵션으로 붙은 프로피팩으로 산다고 쳐도 하세가와보다 몇천원 더 비싼 정도? 예전에는 간이인젝션이나 간간히 내놓던 메이커인데 에듀아드 요즘 용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