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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강의내용은 첫날 말씀의 전례 이강진형제님의 강의를 녹음한것이 ai의도움으로 녹취한것입니다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여 본인의 의도와 달리 전달된부분이 있으니
형제님은 교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부 봉사자를 맡은 지가 언 3년이 지나고 약 한 6개월 정도 재차 임기를 남긴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에 4년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참 시간이 빠릅니다.
근데 빠르다는 건 좋은 의미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한 것도 없이 지난 것 같아가지고 상당히 마음만 좀 무겁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국 조정이라고 하면서 참 하고 싶은 얘기들이 이렇게 가슴속에 몇 가지가 이렇게 좀 있었어요.
있었는데 특별히 제가 그런 어떤 훈계적인 그런 내용을 말씀드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저는 전국 조정이라고 하는 건 어떤 직책으로서의 봉사 역할이지 그게 어떤 감투는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직책을 이용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기에는 참 상당히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 TF팀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하여튼 간에 두 번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그동안 정말 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급하고 싶은 그런 내용들을 좀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드릴 말씀은 이렇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만은 정말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성서 형제의 창립자 설립자이신 최규업 바오르마리아 신부님의 어떤 삶, 그분의 정신 그분이 우리들에게 남겨 아직 남기고 갔다는 말은 아니죠.
지금 남겨주고 계신 그런 내용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만 갖고도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1박 2일도 다소 이렇게 부족한 듯하고 있지만 그 오래전에는 듣자면 3박 4일 4박 5일 후 정말 거짓말 좀 보태서 의문으로 서로 감동적인 얘기를 주고받고 했다고 해요.
거기에 산 증인이 바로 원로 우리 회원이신 팜필러 형제님이십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시죠? 저는 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시는 우리 판필로 형제님께 정말 감사드리면서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 정말 고맙다는 마음에 마음을 담아서 박수를 좀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 다 아시겠지만 이쪽 네 번째 줄에 앉아 계신 우리 흰 머리에 각 한필 선배님이십니다.
기억해 주시고요. 정말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와 존경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 설립자 형님이신 바오르 마리아 신부님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아까 우리 아플 회장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56년 전 바로 1970년도 5월 17일인가요?
5월 17일 그때 성령 강의 대축일에 살레이시오 고등학교 학생들 7명을 데리고 원선시오 신부님 여러분 잘 아실 거예요.
그 신부님 살려주신 신부님 이거 더불어서 그때 당시에 우리 바울로 체격 바울로 마리아 신부님은 수사 신분이었습니다.
그때 살레이시도 고등학교 7명을 데리고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었습니다.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라 성경 속에 있는 정신대로 삶을 살아보자라고 하는 큰 어떤 목표 의식을 갖고 성서 형제 그때 당시로는 bf입니다.
다이블 필러시이었습니다. 영어로 이제 그런 거죠.
그래서 bf라는 말을 여러분들이 어쩌다 보면 인터넷 찾아보거나 하다 보면은 bf라는 말을 아마 보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조금 앞으로 살짝 건너뛰어서 지금 현재 우리는 fb를 쓰고 있습니다.
fb 프렌다니다드 비블리커 이게 영어권이 아닌 뭐냐 라틴 쪽 계통에 지금 에콰도르에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영어권 b에도 쓰지 않고 여순이 바뀐 프레다니라르 비블리카라고 하는 성서 형제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영화간 그분께서 이 56년 전에 이렇게 성서 형제를 만들어서 한번 성경을 공부하고 그 공부한 내용을 삶으로 살아보자라고 하는 큰 틀을 갖고 성서 형제의 공동체를 운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부님께서 또 열차를 타해서 에카돔으로 선교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분이 선교를 떠난 지가 벌써 50년 가까이 됩니다.
그분의 삶은 선교로 정철돼 있어요.
그냥 말이 우리가 듣기 좋아 선교지 정말 그분의 삶을 우리가 이제 글로라도 우리가 좀 보면 중간중간에 어떤 사진으로라도 좀 보면 그게 단순한 선교가 아닌 거예요.
가끔 여러분들은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선교사들이 가가지고 나 죽었다 또 피난을 막 쫓겨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했다라는 이런 상당히 어려운 그런 지경에 있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우리는 가끔 듣고 합니다.
바로 신부님은 그러한 삶을 계속 50년 가까이 유지하면서 거기 사셨습니다.
거기서 성품을 받고 거기서 성서 형제를 본당 본당 성품 받았으니 본당 배정을 받았겠죠.
빨마 본당으로 이제 알고 있는데 그쪽 분당에 공소가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개수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거의 없었겠죠.
그런데 파마 본당 관할 지역이 엄청 넓어서 거기에 공소를 몇십 개 만들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신부님이 주일날 본당 이사를 이렇게 집전하시고 이어서 공소에 오지 정말 뭐 1kg 2kg 10kg가 아니라고 그래요.
저도 가보지 않은 사람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기에 가보신 분들이 있거든요.
우리 성서 형제 회원들 중에 그 선교지에 그때 정확히 인원수 기억이 안 나는데 한 10여 명 정도 그때 우리 지도 신부님이었던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님 포함해서 그래서 한 10여 명 정도가 거기 선교지에 가서 정말 그분들의 삶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체득하고 오셨겠습니다.
여하간 에콰도르의 엄청난 넓은 관할 지역을 공소로 이렇게 만들면서 거기에 성서 형제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운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우리 서울 같은 경우는 이렇게 대경대 이렇게 많지 않은 그 옛날은 엄청 많았었죠.
지방에 있는 대학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 포함해서 하여튼 연구원의 등등해서 서울에 엄청나게 많은 대학에 대학생들이 성서 형제에 가입을 해서 그 자체 대학에 성서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그 신부님이 한국 에카도로 선교 떠나기 전에 성서 형제를 만들어서 이렇게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차여차 해서 에카도로 떠나가지고 여기에 어떤 공동체를 돌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고 자세히 표현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리 하다 보니 아마 이 공동체 돌봄이 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타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그 많은 코이노니아가 점점 사라졌어요.
그러나 정말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셔서 수원과 원곡 광주 등등 그리고 이제 우리 전주 포함해서 지금의 서울 이렇게 코이노니아를 유지하게 했었습니다.
이 모든 모습들은 우리가 언뜻 볼 때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인간의 어떤 힘으로 유지된 것처럼 언뜻 보입니다.
교만처럼.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정말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공중분해 짐작되었을 겁니다.
중간중간에 많은 봉사자들을 보내주셔서 이 명맥을 계속 유지해 주셨고 또 원로 이 자리에 함께하신 분도 있고 함께하지 못한 분도 있고 또 중간중간에 우리를 찾아주셨던 원로 그런 선배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얻어서 지금 이렇게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따가 말씀드리겠지만 그런 성서 형제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예 카드로 가서 보면 신부님은 단순히 오지라고 하는 그런 표현만으로 우리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정 풍토병과 그리고 권력의 위협 말이 전부지 깡패들이잖아 신부님은 어떤 정의와 진리와 사랑을 신자들한테 그리고 신자가 아니 길거리에 많은 부랑자들 그 사람들에게 외치면서 그들을 교회로 불렀습니다.
정말 그걸 어떻게 제가 정확히 표현은 못하겠지만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서 지금의 선교지를 열고 있습니다.
정말 저기 수십 번의 죽음 앞에서도 구하지 않고 정말 생명을 주님께서 지켜주셔서 지금까지 살고 계시는데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분이 살아 있다는 게 기대입니다. 어떻게 살아계시지라는 그런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가끔 보내오는 소식 정말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경찰들도 그 지역의 이제 어떤 공권이잖아요.
공적인 힘이 있는 경찰들도 하룻밤 사이에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사살 당하는 그런 나라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안한 어떤 정치 세계 속에서 정말 신부님이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해요.
그래서 오직 그냥 우리는 그렇게 표현할 뿐이죠. 주님은 우리 체계 바로 신부님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면 그 나머지 살은 여러분들이 그동안 접했던 어떤 사진과 어떤 소식 가끔 보내드렸던 그런 것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여하간 신부님은 그런 속에서 정말 주님이 허락하는 생명을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사목 활동을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수많은 신자들과 또 사목자 지금 신부들 신학생들 포함해서 신부들을 양성하고 수녀님들을 양성하고 그렇게 해서 지금 그 선교지를 이는데 여러분들께서 정말 쓰고 싶은데 쓰지 않고 보내주신 선교지 후원금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는 거의 도움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분들이 정말 에콰도르에 있는 후원자들 일부의 도움과 또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후원금으로 아마 그곳에서 선교 활동하는 과정에 그분들 본질인 배를 일단 이렇게 채워주는 데 도움을 주면서 그들을 이렇게 주님께로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신부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수련인들과 그 현지 교부들의 모습을 저는 간접적으로 사진으로 이렇게 보았습니다.
사진만 봐도 정말 감동스럽고 정말 도움을 못 주는 게 정말 미안할 정도로 그렇습니다.
여러간에 그분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우리가 많이 듣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들에게 딱 한 가지만을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드리겠습니다.
이 성서 형제의 코에이노니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있는 악과 선한 싸움을 멈추지 마라 그거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가난 이 정신으로 살아나는 결국 그게 사랑이겠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 그대로 우리 교본의 내용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성경 말씀이잖아요. 그것을 엮어서 성경 말씀을 우리 신부님의 삶을 거기다 집어넣어서 부연 설명을 해 놓은 그런 것이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훈을 자주 접하고 해야 되는데 여하간 이 신부님이 하고자 하는 말씀은 딱 그거 하나야 선한 싸움을 멈추지 마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정말 우리가 겸손해야 되는 말씀이다.
살다 보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떨 때는 내려놓고 싶을 때가 참 많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게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결국 교만이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내가 신부님을 위해서 이렇게 성서 형제 하는 거 아니잖아요.
신부님은 우리가 이러한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도록 모티브를 제공해 주는 거 아닙니다.
그 놀이터 영적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놀이터 공동체죠. 공동체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어우러져 힘을 모아 그래서 힘이 약해지면 소변이 되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격려하는 거죠.
그렇게 다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발이 떨어지면 이러한 묵상회나 큰 모임이나 연주회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함께 서로 사랑하고 격려해서 에너지를 충전해서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공동체를 이 땅에 우리가 이룩을 해야 되는데 이 말이 너무 좀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아나임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즉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신 것처럼 나 가난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떨 때는 하느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내가 없는 게 한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진짜 내가 있으면 내가 가진 게 좀 이렇게 손에 잡은 게 있으면 없는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솔직히 좀 그래요.
나도 지금 숙제예요. 제가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지만 내가 잘 살고 있다가 아닙니다.
함께 고민해 보자는 거거든요.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그런 딜레마에 이렇게 빠져 있는 분도 있을 거고 그거를 해결하려고 몸부림 치는 분들 많을 거예요.
정말 해결해야 할 시대입니다. 분명히 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실천하라고 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사람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니까 즉 눈에 보이는 우리 신부님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잖아요.
최소한 우리 성서 형제라면 또 우리가 그분이 이 자리에 안 계시니까 교훈을 통해서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셔요.
어쨌든 간에 말씀하고 있는 걸 살아야 되는데 내 손에 가진 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힘이 빠져요.
맥이 빠지는 겁니다. 어떨 때는 그게 막 속이 상할 때가 있어요.
주님 주셔야 하지 않아요. 나중에 돈만 주면 조금 조금만 가지고 있으면 정말 나 이거 좀 떼어서 좀 내가 내가 하고 싶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좀 하고 싶은 거 쓰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정말 우리 형제들이 막 그냥 선교지에 후원금을 보냈는데 저는 정작 그걸 못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이게 뭘까 그런 갈등에 많이 쓰면서 내 어떤 처지를 스스로 상당히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에게 쭉 보면은 그 불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허락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그런다고 주님이 저를 버려두는 건 아니에요. 그때 당시는 몰라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가 정말 신부님 주님께서 예수님께서 저를 바로 옆 발치에서 저를 돌봐주셨고 이끌어지셨다는 것을 너무나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거 하나하나 여기서 얘기를 하자면 이제 많이 자꾸 엇나가니까 그런 말씀 못 드리고 어떤 기회가 되면 어떤 물이 코이느냐 말씀을 드릴 기회 있으면은 부분적으로 드리겠습니다만 죽을 고비도 참 많았어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보면은 이 처지에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 많았어.
그러나 주님은 저랑 함께해 주셨고 저를 도구로 쓰시겠다고 작정하신 걸로 저는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지금도 정말 내 손에 뭔가 좀 흔히 말하는 좀 뭔가 재물을 줘서 좀 이렇게 좀 흐뭇한 미소를 좀 짓고 싶은데 그런 미소는 아직 제가 맛보지를 못한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약간 색다른 교만이 아닌가 싶어요. 남들은 나보다 더 어려운 지경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도 어쩜 그렇게 밝고 건강하게 물론 나름 고민도 있겠죠.
그런데 정말 열심히 살아가라 우리 성당에 봉사자들 그런 분들 많이 그분들이 얘기 들으면 정말 존경스러운 또 많이 배우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부님께서 이 교본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자 하는 선한 싸움, 이 영적인 싸움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기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얘기는 못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은 지극히 약간 추상적 언어일 수도 있어요.
아나인 이 아나인 정신으로 살아가는 추상적이죠.
그러나 그거를 이 교본을 읽으면 그게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교복 공부를 해야 되는 거죠. 교본 공부를 하게 되면 성경을 우리가 공부하는 거예요.
성경 해석을 그러니까 부연 설명을 여기서 읽기 때문에 성경 공부도 우리가 해설서를 읽듯이 공부할 수 있게 되는 어떤 간에 우리가 이 상사 형제의 몸 담고 있는 것은 주변의 지인들에 의해 우연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몸 담게 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우리는 아마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은 성서 협회를 통해서 나를 좀 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도록 하신 것 같아요..
이번 성서 한개 연수의 주제 말씀은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서로 혼자 가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둘이 둘보다는 셋이 함께 손잡고 가면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사 현대회가 필요한 거고 코이노니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힘들 때 정말 탓하기보다는 또 뒷담화하기보다는 서로 좋은 말과 격려의 표현 또 사랑의 표현, 사랑의 언어 우리 이해인 신부님 말씀처럼 사랑의 언어를 정말 민들레 홀씨 퍼트리듯 이렇게 날려보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정말 복되게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여러분에게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