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옥몽(속 금병매) <127>
*장도감 처는 혼례를 포기하라고 유조를 설득하고, 절뚝이 유조는 예물를 가지고 여씨댁을 찾아가는데...
유조는 절에서 돌아온 후 친척들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지금 정혼자를 찾아냈는데, 예물을 어떻게라도 준비를 해서 아내로 맞아 들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눈치밥을 얻어 먹으며 동가숙 서가숙하는 처지이니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고 도와 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도감의 처가 보다 못해 이렇게라도 해 보자며 차선책을 제시했다.
"정혼녀를 찾긴 했지만, 네 자신이 냄비뚜껑하나 없는 가난뱅이니, 그 색시를 데리고 온다 하여도 그렇게 예쁜 색시보고 돈벌어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천상 네가 벌어와야 하는데, 네 주제에 두사람 입에 풀칠할 자신이 있느냐? 아닌 말로 그 색시가 구걸이라도 해서 병신 남편을 보살필것 같냐고?
내 생각에는 혼약을 물러주어 다른데로 시집 가도 좋다고 허락을 해주고 그 댓가로 돈을 좀 받아내 조그만 장사라도 하면서 살다가 나중에 재산이 좀 모인다면 그때가서 가난한 집 색시라도 얻어 장가라도 간다면 좋을것 같은데 한번 생각 해보렴, 여씨댁 딸처럼 예쁘고 깔끔한 처자가 네 짝을 할려고 하겠어, 공연히 데려왔다가 그 얼굴에 병신 신랑 모시고 살것 같아, 바깥으로 나돌면서 신랑 구박하고 그러면 사람꼴 되겠냐구, 일찌감치 혼약을 물렸다는 명분이라도 얻는 것이 더 실리적이 아닐까?"
하지만 유조는 이미 금계에게 눈이 멀어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장도감의 처를 빤히 처다보며 말하였다.
"고모님은 참견하지 마세요.
제가 생긴것은 이래도 마음은 독하답니다.
누가 뭐라해도 그녀를 꼭 데리고 올 겁니다.
가난하긴 하여도 저희 집안은 뼈대가 있는 집안에다가 다들 저보고 앞으로 훌륭하게 될 젊은이라고 말하잖아요?"
장도감의 처는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설득에 나선다.
"네가 그럴 마음이 있다 하여도 중매쟁이를 통해서 예물을 보내야 하는데 빈털털이 너한테 누가 딸을 줄것 같아? 아무리 적게 보낸다 해도 함 두개에다가 비녀 네다섯개 옷감 몇 필은 넣어 주어야 할 텐데 네가 어느세월에 그 돈을 준비 할 수 있겠어?"
"조상이 물러준 빈 집터를 헐값에라도 팔던지, 아니면 전당을 잡히든지 해서 돈을 만련해 봐야죠.
뭐 그걸로 예믈 한상자를 마련해서 일단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고 보는 거예요.
어쩌면 장모가 날짜를 정해 데릴사위로 들일는지 누가 알겠어요?
그럼 아무리 힘든 일이라두 다 하겠어요."
장도감의 마누라는 이 혼사가 우여곡절이 많으리라 싶자, 더이상 허무맹랑한 얘기만 지껄이는 유조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말없이 그냥 웃어주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어려서 정한 혼처이니 그 쪽도 할말이 없을거고, 너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네가 혼례를 치루게 되면, 나두 친척들 몇명과 같이 가서 축하해 주지."
유조는 이말에 신이나고 용기를 얻어 기분이 좋아 돌아갔다.
며칠 뒤 유조는 집터를 전당잡혀 돈을 마련하여 그럭저럭 예물 한상자를 마련했다.
그러고는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을 한벌 빌러 입은뒤 나귀를 타고 예물은 짐꾼 한명에게 지게하고 물어 물어 여씨댁의 집앞에 도착하였다.
나귀에서 내려 문을 두드리자, 이수비의 바보 아들이 나와 아래위를 훑어 보더니 말했다.
"무슨 일로 왔당가요?"
"여기가 여씨댁이 사는 집인가요?"
"그런디요."
그러자 유조가 급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저는 그분의 사위되는 유지휘 집의 유조입니다.
오늘 색시를 뵈러 왔습니다."
바보 아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입을 헤 벌리고 좋아하며 소식을 전하러 뛰어 들어갔다.
유조의 예물상자를 들고 따라온 일꾼도 따라 들어갔다.
"엄니, 누이! 좋은일 생겨 뿌렸네.
매형이란 사람이 찾아 왔구만, 근데 워찌 쩔뚝백이가 왔더라우?"
바보 아들이 달려 들어오며 큰 소리로 외쳐댔다.
마침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여씨 모녀는 그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사색이 된 금계는 들고 있던 밥 그릇을 떨어뜨린 채 허둥지둥 내실로 숨어버렸다.
예물을 들고 온 일꾼은 상자를 내려놓더니 얼른 뚜껑을 열어 보였다.
온갖 해괴망칙한 물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예물상자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 통이라고 하는 말이 더 나았다.
비늘도 다 떨어진 쾌쾌한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나는 조기새끼.
해가 묵어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난 이름도 모르는 볼품없는 생선.
소금 절인 돼지머리는 얼마나 오래된건지 껍대기가 벗겨져 흐물흐물 거리고.
속파먹은 하남(河南)대추 두 세되는 버러지 우글거리고.
배 마흔개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날 정도로 거무티티하게 상했다.
그 밖에도 기가 찰 두가지 물건이 더 들어 있는데, 무말랭이 한 됫박과 마늘쫑 두묶음이 나오는데 효성으로 준비한건지 어떤지눈 모르나, 여씨댁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그때서야 유조가 쩔뚝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각사에서 이미 한번 봤기에 금방 알아 보고 바닥에 엎드려 큰 절를 했다.
여씨댁은 이미 벌써부터 오리발을 내 밀기로 각오를 해 왔기에 바로 유조를 보며 시치미를 딱떼고 말했다.
"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 집을 잘못 찾은것 갔소, 내딸은 아직 정혼한 적도 없고 이곳에 이사온지 일년이 넘었지만 아무도 중신이 들어온데가 없는데 무슨 맑은 대 낮에 벼락치는 소리요?"
"아니, 며칠전 대각사에서 네 고모님과 함께 뵈었잖습니까?
어쩌서 오늘은 모르는 척 하시는지요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제가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그래도 유지휘의 맏아들 유조이며 유씨 집안 친척들도 아직 몇집 계신데, 누가 감히 이 혼사룰 없던 것으로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장모님!
다른 말씀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다 비웃음을 사게 될겁니다."
"네가 바로 유지휘의 아들이라고?
누가 중매를 섰는데?
누가 청혼을 했고, 또 누가 허락을 했는데?
정혼을 했다면 그 일을한 당사자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정혼시 누가 우리집에 예물를 보냈다는 말인가?
난 정혼 예물을 받은적이 없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정혼한 딸을 내 놓으라 하니 이게 무슨 난대없는 오밤중에 홍두께 소리인가?"
여씨댁이 벌떡 일어나 애꿎은 바보 아들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야 뭐하고 있어, 이 바보 천치야!
어서 이사람들을 쫒아 보내지 않고!"
하며 예물 상자를 들고 나가 문밖으로 내다 놓아 버렸다.
"에이, 재수없어!
양심도 염치도 없지, 그 꼬락서니에 천역덕스럽게 그 따위도 예물이라고 들고와 나참 가소로운 버렁뱅이 자슥!"
기가 질려 멍하니 서서 악다구니 소리를 듣고 있던 유조는 온갖 욕설만 들은채 문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여씨댁은 문을 쾅하고 닫은 후에도 분이 안 풀렸는지 뜰에 서서 연방 병신 머저리 같은 놈, 어디가서 뒈져버리라는 둥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공씨댁이 달려 보지만 계속 악다구니를 쓰고 소리를 질렀다.
유조는 유조되로 밖에서 집안을 향해서 욕을 해되면서 어디 한번 해보자고 소리를 질렀다.
~계속해서 12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