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땅이나 집값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말 그대로 삼천리 금수강산에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필자로서는 요즘의 부동산 ‘광풍’이 달갑게 보일 리 없다. 이런 쓰린 속을(?) 달래보고자, 조선시대의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찾게 되나 보다. 서설(序說)은 이 정도로 접고, 오늘의 주제를 이야기해야겠는데, 바로 조선시대의 ‘땅’ 매매에 관한 것이다.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청약을 넣고, 경매를 하고, 부동산 업자를 중간에 끼고 떴다방이 성행했을까? 조선시대의 땅 매매 현장으로 가보자.
“전하, 아무래도 토지공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라….”
“어쭈, 좌의정. 너 땅 좀 샀나 보지?”
“그…그런 게 아니옵고 말입니다.”
“시끄러! 조선 개국 이래로 조선은 토지공개념을 기본 컨셉트로 잡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거야. 그러니까 일단들 셧더 마우스 하시고들, 개념 탑재부터 잘들 하세요. 알았냐?”
“전하, 아무리 그래도 시대의 대세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너…소매치기로 업종 전환했냐? 이것들이 전부 강남에 몰려 산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전하! 하다못해 거래라도 하게 해 주십시오! 헌법에도 개인 재산에 대한 보호…아니 아직 헌법까지는 아니고, 여하튼 개인 땅을 사고파는 데 있어서 제약을 두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시장을 믿으십시오 전하!”
“그러하옵니다, 전하. 정히 불안하시면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걸 도입해서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면서 어느 정도 융통성을 더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랬다. 조선초기의 ‘땅’이란 개념은 개인의 사유물이기 이전에 국가의 공공재란 개념이 강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부 나라 땅이란 것인데, 이런 토지공개념도 세월이 점점 흘러갈수록 유명무실해졌으니, 다들 땅을 사고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따, 김진사. 자네 천수답 옆에 있는 논 있잖여. 그거 스무냥 쳐 줄테니까 나한테 넘기지?”
“뭔 소리여? 평당 스무냥이라니. 네가 지금 개념을 가출시켰나 본데, 농지란 게 말여, 형질변경에는 왔다인 땅이라니까…. 내가 아무리 투전판에서 전답 날려먹고 현금 유동성이 떨어진다 혀도 스무냥이라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알았어 알았어, 스물다섯냥 어때? 콜?”
“콜~.”
이렇게 해서 김진사와 허생원은 토지매매 계약서를 쓰기로 했는데, 그 내용이란 것이,
“이 명문을 작성하는 내가 투전판에서 돈을 날려먹어 살아갈 방도가 부족하여 파는 것이니, 경작해온 관산면 답십리 유진지원에 있는 답 13두락을 스물다섯냥으로 가격을 정하여 바꾸기로 하고 위 사람에게 영원히 방매하니 이후에 잡담이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답주(畓主)김현우, 증인 서진기, 필집(筆執 : 계약서 작성자) 최원택…이러믄 되겄지? 어여 사인…아니 수결(手決)해.”
얼핏 보아도 오늘날의 계약서와는 천지 차이다. ‘왜’ 땅을 파는지에 대해 판매자가 구구절절하게 계약서에 썰을 푸는 것이 이채로운데, 이는 조선 초기 토지공개념의 영향으로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파는 거라는 사실을 관청에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런 판매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줄어드는데,
“자, 이제 관아에 가서 입안(立案 : 토지매매에 대한 사실 관계를 관아에서 확인한 후 이를 인정하는 승인제도)을 받도록 하자고.”
이렇게 땅을 팔게 되는 것이 이 당시의 기본적인 토지 거래의 수순이었다. 문제는 이런 토지거래에는 허점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당장 계약서부터가 문제인데,
“와따, 계약서가 말 그대로 책 한권이구만.”
“그러니까 점련문기(粘連文記 : 문기, 즉 계약서를 다 묶어 놓은 책)지.”
요즘 같은 경우야 등기소에 가서 등기부등본을 떼 보면, 지금 사려고 하는 땅의 이력이 쫙 나오고, 이게 근저당이 잡혀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당시에 국가는 그저 땅을 팔았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수준이었기에, 한번 팔 때마다 계약서를 썼고, 그 계약서를 다시 팔 때 매매자에게 다시 넘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 팔 때마다 계약서를 모아서 매매자에게 양도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많이 팔렸던 땅은 그야말로 책 한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첨지가 이 땅을 먼저 샀다가, 흉년에 현금 유동성이 떨어져 팔았구나…. 이걸 박진사가 사서 서울로 이사한다고 팔았고, 이걸 다시 최부자가 사서는 어디 보자, 딸 시집보낸다고 팔았구만….”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땅을 판매하는 이유를 계약서에 썼던 나라 조선, 어찌보면 낭만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계약서를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 토지등기부 등본+계약서를 묶어놓은 형태가 되어 버린 이 어정쩡한 사태. 그나마 이런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한다면 모르겠지만, 사기꾼들에게는 더없이 손쉬운 표적이 되어 틈만 나면 가짜를 만들어 소유권 주장을 하는 통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토지소유권 분쟁이 늘어났다고 한다. 하긴, 국가가 공증을 안 해주니 이런 일이 생길밖에….
오늘날 대한민국을 휩쓸고 다니는 부동산 투기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만약 대한민국에서도 토지매매를 할 때 계약서에 파는 이유를 집어 넣어야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설마 ‘투기’란 명목으로 계약서를 채우진 않겠지? 상당부분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효과를 보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보게 된다(부동산 업자가 대행을 해주거나, 인터넷에 땅 매매 계약서 서식이 돌지도 모른다는 잡생각을 해본다).
자료출처 : 스포츠 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