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국현대사 / 돌베개 / 유시민 / 18,000원 / 2014. 7
나는 대한민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慾望. desire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慾求라는 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힘은 국민이 개별적·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욕망이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안고 산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p 52)
이승만 정부 시절 어떤 외국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미군 장성은 한국 국민이 강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쥐떼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쓰레기통이 아니었으며, 국민은 쥐떼가 아니었다. 세계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란 듯이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세워냈다. 평화적 권력 교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에 맞는 시민의식과 행동양식을 발전시켰다. 우리의 민주화 역사는 자유에 대한 욕망과 꿈, 정의를 향한 열정과 헌신, 존엄을 지키기 위한 분투와 희생으로 점철된 고난과 영광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길을 다 걷지 않았다. 어지러운 오늘의 현실은 민주화의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p 190)
나는 난민촌에서 태어나 병영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으며, 지금 광장에서 살고 있다. 병영시대 정부가 한 일의 목적과 방식, 결과가 다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괜찮은 방법으로 훌륭한 목적을 제대로 이룬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쁜 방법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기도 했다. 목적과 방법, 결과가 모두 추악한 것도 많았다.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병영사회의 양지에서 살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자유을 얻기 위해 병영의 담벼락을 허무는 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박해받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맨손으로 정부와 싸우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대통령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자유롭게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담벼락은 결국 무너졌고 병영은 서서히 광장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그 광장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 대통령의 부하도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유주의적 각성’이라고 부른다. (p 279)
나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세대 간의 투표 성향 차이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정치적 대립을 넘어서는 철학적·문화적 분립이자 역사의식의 대립이라고 주장했다. 기성세대를 사로잡은 것은 욕망, 그것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과 분단상황이 강요한 대북 증오와 공포감이었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들보다 더 강하게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망,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에 끌린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앞날에 무엇인가 진보적인 변화가 찾아들려면 그 동력은 이들 젊은 세대가 지닌 ‘고차원적 욕망’과 공감의 능력일 것이다. (p 416)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우리가 만든 대한민국현대사의 갈피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 야망과 좌절, 희망과 성공, 번민과 헌신, 어리석은 악행과 억울한 죽음이 묻어 있다. 그 55년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공명하고 싶어하는 동시대의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벗이여, 미래는 우리 안에 이미 와 있습니다! (p 417) |
출처: 정가네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정가네
첫댓글 현 시대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 일컬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분의 명철함에 종종 놀라곤 합니다.
이 책은 출간 되자 마자 구입했는데, 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단순히, 유시민 작가는 어떠한
시선으로 우리 현대사를 통찰할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사 놓고선 오랫동안 읽지 않은 책이었는데 엊그제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늘 유 작가의 생각에 감탄하곤 한답니다.
참으로 박식하고 똑똑한 사람이지요. 우리 시대의 현인이라 할 만하지요.
유 작가의 책은 대부분 읽었는데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지 않아 어제 주문해 놓았습니다.
저도 사서 읽어야겠습니다.
또 좋은 책 종종소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