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산, 그 우뚝 솟은 모습으로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다
봄 산은 그윽하고 봄 구름은 짙은 가운데 春山幽幽春雲濃
붉고 푸른빛은 천백 겹이나 아스라한데 紫翠氤氳千百重
고목나무 굽은 절벽엔 새만 다닐 수 있고 老樹回岩有鳥道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엔 사람 종적 없으리 落花流水無人蹤
두견새는 대낮에 울어 대를 쪼갠 듯하고 哀鵑晝叫裂蒼竹
학은 저녁에 깃들어 소나무서 번득이겠지 閑鶴晩栖翻靑松
계곡 풀과 산나물엔 제때의 비 만족해라 澗草岩蔬足時雨
도인이 어젯밤에 잠든 용을 채찍질했군 道人昨夜鞭潭龍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설잠상인에게 부치다(寄雪岑上人」 2수 중 제1수
주) 설잠(雪岑)은 매월당 김시습의 법호다.
▶ 산행일시 : 2018년 5월 26일(토), 맑음, 미세먼지로 원경은 흐림
▶ 산행인원 : 10명(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인치성, 향상, 신가이버,
오모육모, 무불)
▶ 산행거리 : GPS 도상 13.1km
▶ 산행시간 : 8시간 45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9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8 : 45 - 방내천 엄수교 부근, 산행시작
09 : 25 - 756.1m봉, 첫 휴식
09 : 58 - △786.9m봉
10 : 28 - 886m봉
11 : 00 - 943.6m봉
11 : 14 - 930m봉
11 : 25 ~ 11 : 58 - 880m 고지, 점심
12 : 18 - 977.5m봉
12 : 35 - 1,079.2m봉
13 : 40 - △1,073.0m봉
14 : 45 - 952.8m봉
15 : 30 - 920.2m봉
16 : 14 - 874.2m봉
16 : 30 - 880m봉, ┫자 능선 분기, 왼쪽(남쪽)으로 감
17 : 30 - 생곡휴게소 부근
18 : 15 ~ 20 : 04 - 홍천, 목욕, 저녁
21 : 2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
▶ △786.9m봉
이른 아침부터 춘천양양고속도로가 많은 차량들로 붐빈다. 상춘객들이리라. 가평휴게소까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답답하게 진행한다. 이러면 졸음도 달아난다. 홍천휴게소를 들르는 게
습관이다. 자판기 커피 사 마시고 화장실 들르고, 그간 수없이 이곳 전망데크에 섰었지만 오
늘 처음 공작산을 명료하게 본다. 내촌IC에서 지방도로로 빠져나가 들판을 달린다.
차창 밖 들녘에는 모내기가 막 끝났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입하 소만이 지났다. 금년에는 모
처럼 봄 가뭄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고 모내기철을 소리소문 없이 보냈다. 오늘날에는 어디
에서고 다시 볼 수 없는 내 모쟁이 시절을 얘기하며 간다. 많은 문학평론가들이 ‘일본어로 쓰
인 최고의 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의 하이
쿠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모 심는 여자
자식 우는 쪽으로
모가 굽는다
(早乙女や子の泣く方へ植ゑていく)
굳이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모를 심고 있는데 논둑에 눕혀 놓은 아이가 운다. 여자는 일을
멈출 수는 없지만 모 심은 줄이 자신도 모르게 우는 아이 쪽으로 굽는다. 엄마의 심정과 모
심는 정경이 잘 그려져 있다.(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
를 읽다』)
산행 들머리인 엄수교 부근의 산자락에는 여러 주민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 보란 듯이 그 옆
밭두렁을 무리지어 오르기는 민망하다. 보이지 않게 산모퉁이 돌아가서 오른다. 농로 따라
망초밭으로 변한 묵밭을 지나고, 벌목하여 잣나무 묘목을 식재한 사면을 치고 오른다. 뒷덜
미에 내리쬐는 봄볕이 제법 따갑다. 금세 등줄기에 땀이 괸다. 혹 놓친 경치 있을까 뒤돌아보
니 방내천 건너 산릉이 영락없는 한반도 지형이다. 그 너머 너머는 맹현봉이다.
한 피치 오르면 능선마루다. 인적이 뜸하고 잡목숲이 우거진 우리의 길이다. 이따금 살랑살
랑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소만(小滿)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
무렵 부는 바람은 약간 쌀쌀하다. 더구나 산정이다. 벌목지대를 지나면 하늘 가린 키 큰 나무
숲속이다. 3시간 30분 남짓은 이런 볕조차 들지 않는 숲속을 간다.
오늘 넘게 되는 산은 이름 붙은 명산은 한 좌도 없지만 삼각점 또는 표고점인 봉우리가 12좌
나 된다. 그 첫 좌인 756.1m봉에서 휴식한다. 무불 님이 홍어를 준비했다. 홍탁으로 입산주
분음한다. 입산주는 산을 어렵게 만들어 가는 수단이다. 사면 풀숲 쓸어 보이는 것이 없고,
조망 또한 막혔으니 줄달음하여 간다. 낙엽에 묻힌 △786.9m봉의 삼각점은 ‘현리 451,
1985 복구’이다.
3. 산행 들머리인 엄수교 주변
4. 건너편의 산세가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
5. 한반도 지형의 백두산에 해당하는 최고봉(852.2m)
6. 멀리 가운데는 맹현봉
7. 756.1m봉 벌목지대를 내려가는 중
8. 가야한 산릉, 봄빛이 눈부시다
9. 멀리 가운데가 문암산
10. 뒤쪽 가운데가 문암산
11. 운무산
▶ △1,073.0m봉
길게 올랐다가 짧게 내리고 다시 길게 오르기를 반복하며 고도를 점점 높인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검은등뻐꾸기의 카카카코 장단에 산비둘기 구구구 박자 맞추는 소리는 봄날 산길
걷는 발걸음을 더욱 나른하게 한다. 삼년 전 이맘때 이곳을 왔었다. 그때 대간거사 님이 검은
등뻐꾸기의 지저귀는 소리를 나름대로 해석했다. 다른 사람들은 흔히 ‘홀딱벗고 놀아보세’로
듣는 데 반해 대단히 건설적인 청력을 가졌다.
죽기살기 등산가세
집에놀면 허무하네
오지팀은 나의직장
개근상장 받아보세
휴식할 때마다 안주발에 탁주 마신다. 이번에는 스틸영 님이 데친 갑오징어를 내놓는다.
요즘 장항과 서천에는 ‘꼴갑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꼴갑은 꼴뚜기와 갑오징어의 약칭이
다. 930m봉 넘고 약간 내린 평평한 880m 고지에서 이른 점심밥 먹는다. 봄바람에 은은히 실
려 오는 싱그러운 풀향이 한 반찬한다. 식후 커피 끓여 입가심하고 일어난다.
977.5m봉이 의외로 첨봉이다. 오른쪽 사면의 풀숲이 하도 고와 보여 그 곧추선 사면을 누비
며 오르다 서릉까지 길게 트래버스 한다. 그렇지만 빈눈 빈손이다. 단풍취 일색인 푸른 사막
다름 아니다. 977.5m봉 넘고 1,079.2m봉 가는 길은 좌우사면이 수직이고 바위도 섞여 있어
릿지를 닮았다. 조심스레 나뭇가지 사이로 맹현봉, 문암산 연릉을 기웃거린다.
1,079.2m봉 정상 약간 못 미친 Y자 능선 분기봉이다. 1,079.2m봉 정상은 아무도 다녀오지
않는다. 삼년 전에 메아리 대장님이 대표로 다녀왔었다. 조망이 캄캄 가렸고 ‘대명봉’이라는
표지판이 있더란다. 산 이름은 아마 이 산 아래에 있는 대명동 마을에서 따왔을 성싶다. 오른
쪽 능선은 영춘기맥 응봉산 쪽으로 간다. 물론 영춘기맥은 왼쪽 능선의 △1,073.0m봉을 넘
어 동진하여 하뱃재 쪽으로도 간다.
영춘기맥 종주는 한때 유행이었다. 지금은 풀숲이 우거지고 길은 흐릿하다. 가파른 내리막길
이다. 마치 골로 떨어질 듯이 낙엽과 한참 쓸려 내려가다 보면 저절로 통통하게 살 붙은 능선
에 올라타게 된다. 사면을 내려 관중 무리를 헤치는 것이 괜한 발품이다. 참나물은 등로 주변
에도 흔하다. 줄기 매듭이 보라색을 띠는지, 잎 뒷면이 매끄러운지, 꺾은 부분에서 향긋한 냄
새가 묻어나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자니 귀찮아서 그냥 간다.
△1,073.0m봉은 실한 네 피치로 오른다. 976.2m봉은 암릉 암봉이다. 조망이 트일까 살그머
니 들러 절벽 위에 올라서니 첩첩산 너머로 불끈 솟은 한강기맥 운무산이 반갑다. 그리고 왼
쪽의 완만한 사면으로 비켜 오른다. △1,073.0m봉. 삼각점은 낡아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1,073.0m봉 오른쪽 절벽 위는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다. 아미산, 작은노루목재, 영춘기
맥 큰노루목재, 각근봉, 응봉산 등이 가깝게 보인다. 교대로 들러 감탄을 인수인계한다.
12. 운무산, 우리는 그 앞쪽 능선을 간다
13. 운무산
14. 앞쪽 능선의 우뚝한 봉우리는 △1,073.0m봉이다
15. △1,073.0m봉에서
16. 왼쪽으로 아미산이 보인다. 앞 능선은 응봉산으로 가는 영춘기맥이다
17. 가운데 오른쪽이 아미산
18. 민백미꽃
19. 민백미꽃
20. 감자난초
▶ 920.2m봉, 880m봉
영춘기맥은 하뱃재를 향하여 왼쪽(동쪽) 능선으로 가고 우리는 남진한다. 산행지도를 대강
훑어보고 판관대까지 그저 내리막길이라며 즐거워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일렀다. 길게 쭈
욱 내렸다가 952.8m봉에서 잠깐 멈칫하고 다시 한 차례 내려가던 중 Y자 능선 분기점에서
떼알바한다. 왼쪽 능선의 등로가 우선 잘났기에 신가이버 님을 선두로 보이지 않게 멀리 가
버렸다. 대간거사 님이 본능적으로 지도를 확인하더니 방향착오를 지적한다.
858.4m봉(암봉이더라고 한다)을 오르는 중인 다수를 목청껏 소리 질러 뒤돌아오게 한다.
내가 잠시 선두가 된다. 애써 표정 관리하고 등로 주변에 흔한 민백미꽃이나 들여다보며
내린다. 이때 비로소 저마다 스마트 폰의 GPS 산행거리가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스마트
폰 기종의 차이라기보다는 이처럼 길을 잘못 가서 뒤돌아오거나 가외로 사면을 들락날락하
기 때문이다. 산행 후 잰 모닥불 님의 산행거리는 13.49km이고, 나의 산행거리는 13.14km
이다.
이 다음 920.2m봉은 지도에서보다 더 솟구친 첨봉이다. 막판 70m 정도는 수직의 거벽이다.
한일(一)자를 닮도록 찌부러진 갈지(之)자를 무수히 그리며 잡목을 붙들고 오른다. 여기서
녹아난다. 그 내리막도 만만하지 않다. 재작년보다 더 험해졌다. 잡목은 드세고 바위는 울쑥
불쑥 모진 등로다. 손과 발이 바쁘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 또한 심하다.
하산시간 17시 30분을 예상할 때 판관대는 턱없이 멀다. 874.2m봉을 지나고 880m봉에서
생곡휴게소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적당하다. 874.2m봉 바위에 올라 발돋움하여 한강기맥 봉
복산, 화채봉과 운무산을 다시 본다. 팔심이 부치도록 잡목숲을 헤치며 880m봉을 오르고 왼
쪽(남쪽)으로 직각방향 튼다. 이제는 줄곧 내리막이다.
암릉이 나온다. 그다지 험하지 않아 가파른 사면으로 돌아내리기보다 암릉을 타는 편이 낫
다. 암릉이 끝나고 낙엽이 수북한 등로라고 수월하지 않다. 내리막길 낙엽은 눈보다 더 미끄
럽고 가파름이 수그러들어도 깊은 낙엽을 헤쳐가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낙엽 노천야적장
을 가고 또 간다. 712.4m봉을 넘어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적송숲을 지난다. 보기 좋다.
막바지 내리막길은 그 급박함이 지지난주 험난했던 한석산 내리막길을 떠올리기에 충분하
다. 낙석! 소리와 함께 방향 없이 비산하는 돌덩이를 피하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운이 좋다.
잡목숲에 벗어나니 생곡휴게소 돌아든 산모퉁이 도로 옹벽이다. 지쳤지만 무사산행을 자축
하는 하이파이브는 짐짓 힘차게 나눈다.
21. 감자난초
22. 멀리 왼쪽이 아미산
23. 노린재나무
가을에 단풍이 든 잎을 태우면 노란색 재를 남긴다 하여 ‘노린재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4. 노린재나무
25. 은대난초
26. 운무산
27. 맨 오른쪽에 아미산이 살짝 보인다. 우리는 이 앞 봉우리(△886.5m봉) 전에서 왼쪽으로
하산했다
28. 운무산
29. 둥굴레
첫댓글 봄날은 갔슈. 환타가 땡기는 걸 보니 여름이 왔나봐유.
그렇지요 ~ 이른 새벽, 이불을 박차고 일단 집 밖을 나서면 - 매번 '멋진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더군요.
덤으로 따르는 몸고생은 기꺼이 감수할만 하니 ...
오지팀에 여러분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마음든든함을 느낍니다.
그러게유 봄은 갔습니다..이젠 따끈한 여름만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이럴때 소나기라도 한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