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실록』의 「훈민정음」으로 조선의 지리적 강역을 찾아본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 『훈민정음』을 한글학자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것이다. 다른 분야의 학자가 보면 또 어떻게 될까? 하나의 주제 『훈민정음』이므로 그 해석은 같아야 옳다.
『월인석보』 속의 「세종어제훈민정음」에서 거듭 밝혀 놓은 글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듣고 보았던 “國之語音 異乎中國”이요,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로 새겨진 말이다. 이 말을 좀 더 확실하게 입증하는 연결고리는 『훈민정음』「해례」에 새로 만든 언문諺文이라는 정음正音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無所往而不達] 들리는 대로 다 쓸 수 있다[皆可得而書矣]”라고 한 말이 있다. 이것은 지구의 어디에서든 무슨 소리이든 적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고등학교 때에 처음 듣고 배웠어도 흘려보냈다. 선생님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라고 했기에 ‘대륙 중국’과 ‘한반도 조선’으로 떨어져 있는 아주 ‘당연한 말을 왜 하지?’라고 속으로 길항하며 선생님을 의아스레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어떤 학생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질문하는 이는 없었다. 근래에 『훈민정음해례본』(간송본)의 의문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니, 대부분의 반응이 ‘좀 이상하다’라거나, ‘처음 본다’라는 사람들뿐이며,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큰일 났다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밀을 보고도 모르면 바보요, 알고도 묵인하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신판 친일이고 준-매국노가 아닐까?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하고 힐문할 테지만, 알았으면 미래를 위하여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대로 기표記標(시니피앙)를 살려 쓰고, 역사를 바로잡고, 본디 조선, 곧 세계를 통치할 능력을 조금씩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논어』를 원문과 번역의 글을 대조하면서 모르는 한자를 『옥편』에서 낱낱이 찾아 적으며 살펴보았다. 처음에 장마다 24~35자나 모르던 것이 차츰 줄어들더니 마지막 장 ‘요임금이 말씀하시기를(堯曰)’에 가서는 모르는 한자가 ‘賚’(줄 뢰) 하나뿐이었다. 특히 맨 첫 장 “열심히 배우고(學而)”에서 “끊거니 갈거니 쫓거니(sic) 닦거니”라는 말뜻을 알 수가 없어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한자의 뜻대로 “칼로 자른 듯하고, 줄로 쓴 듯하고, 옥을 쪼은 듯하고, 숫돌에 간 듯하다”라고 학문과 덕행을 닦는‘절차탁마’의 의미를 처음으로 새기며 내 나름의 해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겨울 방학 때에는 『대학』을 그렇게 하여 한문을 터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보는 눈이 무척 넓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3학년 담임 김병덕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대륙적 기질이 있고 자주성과 지도성이 있다.”라고 했나 보다.
또 해군사관학교 1학년 때 『충무공 리순신』을 처음 배웠고, 불패의 신화를 남긴 충무공의 싸움마다 승리한 비결을 알고 싶어 1977년 해군대학 지휘참모 과정 동안(3개월) 충무공의 해전사에 심취하여, 다른 과목은 아예 제쳐놓고, 전투결과보고서 형태로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한 것이 대학노트 7권에 이르렀다.
빈칸이 많은 그 노트를 채워가면서 이제까지 연구논문 43편과 전문서적 15종 그리고 『초서 난중일기』 등 번역 6편을 펴냈다. 이런 업적 가운데서도 한때 충무공 연구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지명이 한반도에 나오지 않고, 설사 그곳이라고 한들 주변 환경이 사료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1598년[무술] 10월 3일[양력 11월 1일] 광주양 해전의 경우에는 충무공 리순신이 함께한 조명연합수군의 진린이 지휘한 함대가 39척이나 좌초되어 유일하게 피해를 본 적이 있다. 원인은 그날 밤 12시쯤이었고, 좌초는 저조시[干潮]의 저수심 때문이며, 무수기[干滿差]가 무척 컸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그날 밤 미세기[潮汐]는 수심이 깊은, 수면이 높아진 고조시[滿潮]이다. 상식적으로도 고조시의 좌초는 있을 수 없다. 그 역사적 사건이 지리적 환경에서 정반대의 조석 현상이므로, 이곳의 해전으로 판단컨대 일단 한반도는 조선의 일부분은 될지라도, 조선이 아니라는 말로 귀착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오직 월령이 10월 3일의 한밤쯤에 저조시가 되는 지역이 세계 어느 해안에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만이 역사가 풀어진다.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연구방법과 역사관이 필요했다.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함에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천문天文‧지문地文‧인문人文의 세 분야로서 접근하여 하나의 정답을 도출해야 진짜 정사正史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처음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중심으로 풀이한 『대동여지도에서 낙타전쟁 – 그 숨은 비밀을 찾아서』를 비롯하여, 그 뒤로 역사관이 확대되어 강역이 천산산맥 파미르고원을 넘어 더 넓은 지구전반구가 조선이며, 그 중심이 조선의 중앙정부 중국이라는 낯선 연구서를 27종이나 더 펴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물을 중점적으로 하여 『토산물로 본 조선』과 『토산물의 언덕에 서면 비밀이 솔솔』을 펴내면서 토산물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전반구에 걸쳐 있음을 밝힘으로써 한반도가 조선을 대표하거나 대변될 수 없음을 알았고, 특히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을 넘어 지중해가 조선의 연안·연해라는 『1909년 해상충돌예방법 적용의 지명 고찰 – 지중해와 한국의 지리적 관계를 중심으로』를, 『고려사』「지리지」 첫 줄에 “동서쪽 길이 얼추 1만 리[幾於萬里]”라고 했지만, 『환단고기』에는 “남북 5만 리[南北五萬里], 동서 2만 리 남짓[東西二萬餘里]”의 나라의 진실을 위해 아예 ‘사방 5만 리의 나라’라며 『귀양지 3000리의 조선 강역 고찰』을, 신라·고구려·백제의 임금이 죽었을 때에 당나라 황제가, 측천무후도 거애擧哀했으니, 어버이가 돌아가시면 하는 관습 ‘거애’ 하나만으로도 ‘조선은 천자국’이고, 천자만이 지내는 7묘·9묘를 지냈으니 아예 ‘조선은 천자국’이라며 『상제례 문화에서 본 한국』을,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실려 있는 장독瘴毒이 열대 지방의 풍토병이고, 페르시아[波斯]가 남해南海이고 령남嶺南 사람들이 늘 씹는 빈랑檳榔을 통하여 『동의보감에 숨겨진 조선 흔적』을, ‘월령이 같고 위치가 같은 곳이면 조석은 같다’라는 원칙에 따라 하루에 7번 밀물[一日七潮]이 드는 중국/조선의 서북쪽[西北潮候]은 유럽의 북쪽 해안이고, 유럽이 조선의 서북면이고 관서이며 평안도로 비정한 『미세기로 본 한국 하루에 7번 밀물 드는 나라 조선』을, 여러 사서에 나오는 일식과 오로라 등 천문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아프리카 지역만을 지나는 일식을 부루 단군과 백제의 위덕왕, 조선의 세종대왕과 고종이 각각 보았으니, 바로 그 지역이 백제·전라도임을 밝혀냈고, 북극의 오로라 지대가 평안도 북부 및 함경도 북부라며 『천문으로 읽는 조선』을 펴냈으며, 학계에서 권위를 가진 중국정사中國正史의 부록[列傳]을 통틀어 『26사로 본 조선통사』를 더더욱 확신을 가지고 엮어냈고, 또 자신 있게 조선이 지구전반구를 아우름을 입증한 『위대한 한국사의 비밀 환단고기』를 새롭게 번역했으며, 이미 예상했던 바이지만, 어느 학술논문 공모에 참여했을 때, ‘자의적 해석과 억지 논리로 점철되었다’라는 졸고의 논문 심사서를 보면서 그들이 진정 『환단고기』의 실체와 본질을 알고나 있는지 되묻고 싶었지만, 그 원문이 잘못된 것이 20곳이 되고, 번역이 잘못된 것이 22곳이나 됨을 바로잡은 이 『세계의 중심 환단고기의 역사적 가치 고찰』로써 그들의 요구를 대신하며, 역사의 처음과 끝을 이어가는 대미를 장식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관의 배경에는 세계적 시각으로 넓혀서 봐야겠다는 생각에 10년을 하루 같이 보내면서 네덜란드어 원문을 구하여 번역하면서 하멜은 한반도에 발을 디딘 적이 없다며 『새롭게 고쳐 쓴 하멜 표류기』를 펴냈을 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영어로 적힌 프랑스 신부 뒤 알드Du Halde(1674~1743)가 쓴 『중국대륙의 조선왕국 조선통사』를 번역하고 출판사를 물색하는 동안에 조선의 강역이 지중해까지 미쳤음을 지도로써 제시했고, 한결같이 천산과 파미르고원 이동 쪽의 현재 중국대륙으로 해석된 『산해경』이 오히려 조선의 지리서이며, 은유법으로 점철된 비밀 통치술의 휫손[Leadership]이며, 그 강역은 천하의 산맥이 해 뜨는 부상국扶桑國에서 서쪽으로 1만 9196리(7256.09km)로서 오히려 저 지중해까지 뻗었으며, 이러하기에 1909년에 순종 임금이 ‘해상충돌예방법을 비준’하여 지중해가 조선의 연안·연해라고 했던 사실과 함께 통섭이 되며, 그 ‘천하의 중심에 조선’이 있음을 입증한 『산해경의 비밀 읽기』와 『새 번역 산해경』(전3책)을 펴냈고, 번역자의 이름을 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 알아내어 헝가리에 직접 주문하여 항공우송으로 구한, 헝가리에서도 아마 하나뿐일 거라는, 그 원문을 또 10년에 걸쳐 파고들어 『조선, 동틀 무렵 붉게 물든 나라』라고 번역하면서 가장 의문스러운 ‘한대·온대·열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조선이라는 말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 조선의 여성은 서로 다른 길이의 치마를 세 겹으로 입고 올림머리에 콜셋을 하여 밖으로 드러난 가슴선[dekoltázs/cleavage]을 보이는 패션은 헝가리보다 훨씬 앞선 최신유행을 만들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도 했다. 술탄의 아내, 자녀와 동거자들이 거주하는 궁전 생활 하렘hárem 문화까지 들먹였으니, 백제 삼천 궁녀의 실상을 밝힐 수 있는 낱말이요,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다양한 정보를 제대로 섭렵하고 통섭해야 역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왜 처음에 COREA라고 했으며, 이제는 왜 KOREA라고만 쓰는가? 헝가리 민속학자 버라토시는 포르투갈의 지명 Koria에서 따온 말이라고 함은 무엇이며, 또 왜 다들 ‘Morning Calm’[조용한 아침의 나라]이니, ‘hajnalpír országa’[동틀 무렵 붉게 물든 나라]라고 부르는가? 이것은 조선의 ‘무기력’함을 나타낸 말이며, 알고 보면 COREA=Core+Area=‘중국’이며, 본디 朝鮮됴션/조선은 管境관경, 곧 천하의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뜻이다.
천하 조선을 이어받은 한국이 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헌법에다 명시했는가?
과연 『훈민정음』의 원본은 있는가? 『훈민정음』「해례본」과 『세종실록』「훈민정음」과 『월인석보』「세종어제훈민정음」의 내용에서 서로 다른 글자를 대조해보니 무려 21군데나 다르거나 틀린 결함이 있음을 찾아내고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보았던, 누구든 알고 있는 상식의 『훈민정음』을 다시 보고 또 읽으면서 마지막 숙제를 풀어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지만, 더 어려운 숙제를 남기고 또 풀어내야 하니, 마음이 더 착잡하기만 하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보면서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자꾸 어른거린다. 그것도 매우 뚜렷이 간여한 흔적 하나 보인다. 거기에 무엇이 숨었을까? 종심의 중간역을 지나는 가시밭길의 인생이 몽땅 녹아 있는 글들을 되돌아보며 하염없이 하늘을 본다. 하늘의 뜻을 헤아려보며 …
이 『훈민정음』을 제대로 알아내기 위하여 『龍飛御天歌』『월인석보』와 방종현이 투고한 『조선일보』와 헐버트가 투고한 『The Korea Review』「훈민정음」과 『동국정운』『홍무정운』『홍무정운역훈』『고금운회거요』『사성통해』『강희자전』『어정규장전운』『전운옥편』 등 운서의 원문을 확인하여 살펴보았다. 『훈민정음』을 연구한 논문과 해석한 책은 세간에 많다. 그렇다고 『훈민정음』 첫마디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 달·아”를 너무 쉽게 보지 말라! 누구도 이 한마디의 올바른 해석은 없었다. 이 한마디에는 천하가 달려있고, 조선의 바탕이 깔려있기에 토씨 하나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훈민정음』의 이 첫마디가 『산해경』과 맥을 같이하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하며, 『환단고기』의 터전의 핵심을 명백하게 입증해주는 사북[vital point]이 되기 때문이다.
단추 하나 어긋나게 잘못 끼워놓고, 찢어진 청바지 입고서 그걸 ‘멋진 개성’이라느니, ‘유행’으로 만들려 하지 말라! 교묘한 식민사관의 덫에 걸려 언제까지 우물 안에서 우물물만 보면서 그 하늘만 쳐다볼 것인가? 넓디넓은 세상 다 잃어버렸잖은가? 이 우물 안에서 다투지도 싸우지도 말라! 촛불이 떼 지어 많이 켜진다 하여 어둠이 밝아지리라 생각지 말라! 세상은 드넓고 하늘은 드높다.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 『산해경』『환단고기』『훈민정음』, 이것이 한국의 뿌리 조선이다. 뿌리를 알아야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진정으로 값진 일을 하게 되어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것으로써 단호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 뿌리의 마지막 하나가 『훈민정음』이다.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의 체계를 확대하여 「해례본」의 전문에 『증보문헌비고』의 「훈민정음 서문」을 먼저 싣고, 숙종의 「훈민정음 후서」를 함께 부록에 실음으로써 『훈민정음』 체계를 드디어 완성하였으며, 호머 헐버트의 『The Korea Review』에 실린 『훈민정음』을 함께 실음으로써 『훈민정음』의 가치 평가를 드높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훈민정음』(간송본)의 발견 당시에 『조선일보』(1940.7.30.~8.4.)에 실렸고, 이를 누구나 보았을 방종현의 「원본 훈민정음의 발견」 전문을 띄어쓰기 고려하지 않고 그 원문 전체를 찾아서 실었다.
이제 『훈민정음』 창제의 뜻을 살려 세계화에 맞도록 옛 글자를 활용하여 “한글맞춤법”을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표기하면 이것만으로도 화양번신花樣飜新 되어 세상이 놀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580돐 2023년을 맞으며
동양사 문학박사 자은 최두환
첫댓글 <위대한 유산 ㅎㄴ민정음의 비밀>을 출간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ㅇㅆ는 <훈민정음>에서 역사의 진실의 한 장면을 찾아보았습니다.
너무도 쉽게 보았던 "한마디"에 대한 끝없는 추적입니다.
아직까지도 <훈민정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 궁금함이 큽니다. 그것을 풀어낸 것입니다.
한번 꼼꼼히 보시지 않겠습니까?
박사님 노고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