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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축복에 동참하는 성도가 됩시다!
누가복음 13: 10-17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여자가 주님을 만나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무려 18년 동안이나 귀신들려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곱추처럼 등이 꼬부라져 한 번도 펴지 못하였던 이 여인의 삶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사람은 모름지기 허리의 힘으로 산다고 하는데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 여자가 불편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앓으며’ 즉 앓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앓았다는 말은 끊임없이 그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냥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좋지 않은 병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편과 아픔을 그것도 18년 동안이나 당했으니 얼마나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인지 모릅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님을 통하여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누가복음 4장에서 주님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이 글이 오늘 나를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시라는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사역 속에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수많은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만 보아도 주님은 안식일 날 하루 동안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중풍병으로 누워있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있는 것을 고치셨고 저물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오자 주님은 밤이 늦도록 모든 병든 자를 다 고쳐주셨습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도 귀신을 쫓아내시므로 그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병을 고치시고 자연도 다스리시고 영적인 세계도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런 역사가 오늘날에도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항상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과거에만 이런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정상이고,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병 고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육신이 연약하여 고통당하시는 여러분들을 주님께서 치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도 복 받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누리는 축복을 우리도 받아야 하고 우리도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으며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의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여인이 축복을 받은 것은 먼저, 안식일에 회당에 왔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불편하고 힘들었을 이 여인이 어떻게 회당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데리고 왔든지, 아니면 스스로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그 여인이 회당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여인이 회당에 온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고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얼마든지 정당한 핑계를 대면서 회당에 가지 않고 그냥 집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컸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회당에 있었습니다!
이번 안식일에만 온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은 매 안식일마다 빠짐없이 회당에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은혜를 받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500여명의 사람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는 몰라도 그 중 120명만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고 나머지 380명은 다락방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120명의 기도하는 성도들만이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던 사람들만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였던 가이샤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이 고넬료는 이방 사람들 가운데 최초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와 그의 가까운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은 베드로의 초청을 기다리며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유대 땅으로 왔습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내가 못 자국을 보지 않는 한 부활의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때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은 은혜 받는 날’ 인줄로 믿습니다.
교회당은 은혜 받는 은혜의 보좌인 줄로 믿습니다.
주일을 기억하지 않고 교회당에 나오지 않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있을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날 엉뚱한 데 가지 마시고, 엉뚱한 데 가서 은혜를 팔아먹는 자가 되지 마시고 은혜의 보좌인 교회당에 나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힘입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몸이 불편하고 회당에 오기가 힘든 것은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여인이 착하고 믿음이 깊은 여성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이상근 주석)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많은 환자들에게 사용했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회당예배에 참여한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이런 축복을 받고 병 고침을 받은 것은 두 번째로, 회당예배에 참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분명 몸이 불편함에도 꾸준하게 회당예배에 참석하였을 것입니다.
꾸준하게 회당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문제는 주일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 문제는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놀러 가지는 않고, 돈 벌러 가지도 않고,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도 않습니다만 그런데 예배드리러 오지도 않습니다.
‘너무 힘들다. 너무 귀찮다. 교회가 맘에 안 든다. 말씀이 은혜가 안 된다. 예배 형태가 맘에 안 든다. 재미가 없다. 사람이 얼마 없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드리면 되지.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예배드릴 수 있다.’
예배드리지 않는 이유도 가지각색, 다양합니다.
다 잘못된 생각인 줄 믿습니다.
예배는 우리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며, 사명이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이불속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드리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냥 텔레비전을 보는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예배(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는 수요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병 고침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거의 다 예배를 통하여서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핍박이 점점 심해지면서 모이기를 피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렵다고 안 모이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러면 이런 핍박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어려운 때일수록 모이기를 더 힘써야 하고 그래서 더 큰 은혜를 받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 여인이 병 고침의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은 ,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이런 축복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18년 동안 고생했던 병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병에서 고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든지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그 약함을 아뢰어야 하고, 불치의 병을 가진 자도 그 병을 아뢰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해도 그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하시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은혜를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먼저, 선수적인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이 여인이 먼저 예수님께 손 내밀지 않았습니다.
먼저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먼저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수적인 사랑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롬5:8)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믿음이 없어서, 어느 때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될지 몰라서 기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구하지 못할 때에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이 정말 꼭 필요하고 꼭 믿어야 하겠기에 주님 앞에 나오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많은 성도들의 경우 뭣 모르고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허락하셔서 이렇게 구원받고 축복받은 성도들도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이러한 선수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임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이나 어떤 경우에도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고쳐주시자 회당장이 분을 내면서 “엿새 동안 일할 날이 있으니 그 때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리를 보고 한 이야기같이 표현되었습니다만 사실 예수님 들으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회당장의 말은 정말 율법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보고 질투심 때문에 이런 엉뚱한 말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주님이 “너희가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언 듯 들으면 회당장이 올바른 말을 한 것 같고, 예수님이 율법을 어긴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속에는 사람을 소나 나귀 정도로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에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여인처럼 병들고 몸이 불편한 사람은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짐승만도 귀하게 여기기 않고 무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아브라함이 딸이 얼마나 귀하냐? 하시면서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제약이나 어떤 규정이 필요 없었습니다.
안식일이라도 상관없었고, 회당 안이라도 상관없었고, 예배를 드리는 중이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오직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고 구해주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 근거는 사랑이었습니다.
이적의 근거도 병 고침의 근거도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랑 때문에 기적을 행하셨고 사랑 때문에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만났기에 이 여인은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사랑의 주님, 능력의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해주시는 치료자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시며 축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만날 때 이런 놀라운 축복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여인과 같은 축복과 은혜의 주인공이 되시기 위하여, 은혜 받는 자리에는 여러분들이 꼭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꼭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능력과 사랑을 가지시고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는 주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도 일어날 것입니다.
적게 믿으면 적게 일어날 것이고 크게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시간 우리 성도들 가운데 육신의 병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이런 축복과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치료와 은혜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신원 에벤에셀을 창업하신 박성철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내셨던 분입니다.
박 회장은 CT폰을 개발하여 돈을 많이 벌자, 자기 고향인 신안지역에 있는 미자립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부도가 나고, 워크아웃을 당해 극심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도움을 받을까 생각하다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로 하고, 신길교회에 가서, 부인과 함께 자기가 늘 앉는 자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추운 겨울이라, 너무 추운 중에 기도하는 박회장부부가 너무 안쓰러워 온풍기를 틀어주었더니, 그것을 거절하고, 끝내 이불만 뒤집어쓰고, 70일 동안 철야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생각하지도 안 했던 북한의 개성공단에 입주하게 되어 거기서 만든 의류를 전 세계로 수출하게 된 것입니다.
박 회장은 다시 고향교회의 목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함을 자기의 기도자리를 믿음으로 지켰더니,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최우식 목사 설교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