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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참으로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알아야할 것도, 배워야할 것들도, 경험해 보아야 할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경험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것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하늘을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 이것이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며 인생을 누리는 모든 인간이 마땅히 경험해야할 최고의 특권이며, 의무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도 칼빈주의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던가!
다니엘서 4장의 사건은 느부갓네살 통치 43년이 마치는 기원전 562년의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생애를 마쳤습니다.
당시 세상의 패권을 차지한 제왕,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며 누리며 만끽할 수 있었던 세계 최고의 제왕, 그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며, 무엇이 더 가지고 싶었을까? 이미 모든 것을 차지한 왕, 그정도가 되면 인간은 누구나 쉽게 착각한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된 양, 내 삶의 주인은 나인양, 마치 자신이 잘 나서 모든 것들이 되어진 양 자신이 숨을 쉬어야 하는 존재임을, 하늘이 주시는 공기를 마셔야 살아가는 존재임을, 땅이 만들어 주시는 소중한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피조적 존재임을 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직도 세계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건설한 건축의 왕, 느브갓네살은 위대한 정복자(conqueror)요, 전제 군주(autocrat)요, 건축자(builder)였다. 43년 간의 재위 기간(605-562 BC)의 대부분을 이국의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본국에 돌아와서는 건축현장에서 살았다. 그는 왕이 되던 해 숙적 앗시리아를 영원히 끝장냈으며 그의 재위 19년에 말썽 많던 유다에 종지부를 찍었고 아라비아도 정복했으며 상업 왕국이며 바다의 왕자인 두로를 13년 간의 포위 끝에 기원전 573년 기어이 함락시키고 말았다(겔 29:18-22).
아마시스(Amasis)가 다스리던 이집트도 정복했음이 느브갓네살 재위 37년 즉 기원전 568년으로 연대가 적힌 점토문서에서 발견되어 이제 그는 참으로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만년(晩年)을 맞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대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현대의 발굴을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지도 참조), 바벨론의 내성가(內城街; Inner City)는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 싸였고, 성 외곽으로는 해자(垓字)를 파서 또 하나의 방어가 되게 했다. 유프라데스강 동쪽 편에는 이 내성가를 두른 또 하나의 외성각(Eastern New Quarter)을 쌓았는데 그것은 이중 성벽으로 안쪽 성은 24 피트(7.3 미터), 바깥 성은 7.9 미터나 되었다. 이렇게 견고한 네 다섯 겹의 성벽으로 둘러 싸인 궁전에서 세계 최강의 무적(無敵)의 대군으로 보호받는 그에게 무슨 두려움이나 불안이 있겠는가!
게다가 고대 세계의 칠대 경이(The Seven Wonders of the World) 가운데 하나인 공중정원을 비롯하여 53개의 신전, 955개의 성소(聖所), 384개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와 그의 나라의 태평을 빌었다. 바벨론은 명실공히 “무역과 산업과 상업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이제야 말로 그는 아무 아쉬울 것 없이 “내 궁에서 평강할 때”였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밭의 소출이 풍성했던 어리석은 부자처럼(눅 12:16-21) 느브갓네살은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자만심에 빠졌다.
아무도 공격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도성속에 왕으로 군림하여 있는 그에게, 수많은 병사들이 방어하고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그의 영혼에 다가오셨다. 그것은 꿈이었다. 그것은 생각이었다.
그것은 그의 모든 성공, 모든 영광, 모든 자랑을 한 순간에 흔들어 무너트리고도 남는 괴이하고 놀라운 꿈이었다. 그 꿈하나로 그의 모든 자랑과 교만, 기쁨, 즐거움이 다 사라져 버렸다.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단 4:4-6)
꿈을 알려주면 해석해 주겠노라고 하던 그들이 아무것도 해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있는 다니엘을 부르고 그의 꿈을 알려주며 해석을 요청한다.
그의 기쁨과 오만을 송두리채 빼앗아간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단 4:10-12)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단 4:13-18)
그 두려운 꿈은 꿈의 얘기를 들은 다니엘마저 번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그 꿈의 의미들을 알려준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단 4:22)
왕이여, 당신은 거대한 나무와 같습니다. 하늘까지 닿은 나무, 땅끝에서도 보이는 위대한 나무입니다. 그 나무에 온갖 새들과 들짐승이 의지하여 먹을 것을 얻습니다.
그런데 왕이여! 아무리 인간이 장대하고 대단할 지라도 하나님앞에서는 한그루 나무임을 기억하소서. 사람이 얼마든지 나무를 베고 자르고 뽑을 수 있는 것처럼, 온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도 능히 그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생이 그 절대자를 알지 못하면 말못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이 교만하여 하늘을 잊을 때, 하늘의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와 나무를 벨 것입니다. 다행히 뿌리와 거루터기는 남겨두어 7년을 지내게 할 것입니다.
그후에 참으로 왕이 인생은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주권자를 바르게 깨닫고, 겸손해지면 하늘이 바른 정신과 마음을 주셔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나라가 견고해 질 것입니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단 4:26-27)
왕은 그 내용을 마음에 담고 결코 하나님을 잊고 교만하지 않으리라 다짐에 또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결심은 연약한지라 1년이 지날즈음에 왕궁을 거닐다가 또 자기 자랑속에 빠지게 됩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0-31)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은 생각, 마음입니다. 그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순간에 인간의 이성을 가져가시니 짐승처럼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안에 짐승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짐승으로 생각하고 짐승처럼 행동하는 정신병은 세계 의학사에서도 일찌기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정신병을 의학에서는 “리칸드로피”(lycan- thropy)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두 마디의 헬라어 곧 “이리”를 뜻하는 “루코스”(lukos)와 “사람”을 뜻하는 “안드로포스”(anthropos)가 합성된 말로 “낭광”(狼狂)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유사한 정신병으로 자신을 새(鳥)라고 착각하는 “조광”(鳥狂; avianthropy)도 있고,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는 “우광”(牛狂; boanthropy)도 있습니다. 왕이 이렇게 미치는 예가 과거 역사에서도 드문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찰스 4세(Charles IV), 덴마크의 크리스챤 7세(Christian VII), 영국의 죠지 3세(George III)등 여러 예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느브갓네살로 그는 7년을 뜻하는 “일곱 때” 동안 이렇게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게 된 것입니다(4:33).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와 비슷하게 사람답지 않은 금수(禽獸)의 속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소처럼 미련하고 지각없는 마음, 여우나 이리처럼 교활하고 약삭빠른 마음, 맹수처럼 난폭하고 무자비한 마음, 돼지처럼 욕심 많고 이기적인 마음, 개처럼 염치 없고 부도덕한 마음, 염소처럼 시기심 많고 저열한 마음, 공작처럼 허영으로 가득찬 마음, 고양이 처럼 앙칼지고 몸을 사리는 마음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낮고 천한 죗된 속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되지 않는다면 비록 사람의 모습을 지녔다 해도 느브갓네살이 짐승 노릇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곧 로마서 1장에 지적된 타락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1-23).
성경에서 말하는 짐승이란 무엇입니까? 욕망에 지배되어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잘난줄 착각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다 망하는 것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잠 30:2-3)
하나님을 인간의 마음에서 저 버릴 때 사람은 짐승처럼되어 버립니다. 마지막 시대 무수한 사람들이 본능의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짐승처럼 사는 이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거절하면 짐승이 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외면하면 짐승이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짐승처럼 살던 왕이 드디어 깨닫습니다.
드디어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인생의 걸음이 내게 있지 않음을 시인합니다.
7년 간 짐승 노릇을 하던 느브갓네살이 다시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되는 과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우러러 보았을 때”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헬라어로 사람을 “안드로포스”(anthropos)라고 하는데 그 뜻을 “위를 쳐다 보는 자”(the one who looks up)입니다. 어떠한 동물도 사람처럼 머리를 직각으로 위로 하여(直立)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만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理性)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리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
하늘을 우러러 보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누릴 가장 위대한 특권과 자격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람을 예배하며, 교제하는 놀라운 특권을 위해 우리를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 만물을 지으시고, 생명을 유지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의 창조주, 구원자, 주관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