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이, 거 신의주 한번 가 봐서? 나는 한번 가 봤디!"
신의주가 어디인가? 압록강을 사이두고 한반도와 중국, 단둥시가 경계를 짓는곳, 북한의 땅이다. 동편의 산간지대와는 다르게 평지여서 왕래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 중국과의 물류교역의 중심지가 바로 이 곳, 신의주이다.
한국 최초의 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의 성경이 방언으로 되어 있는데, 그 방언은 이곳 평안북도의 방언으로 쓰여져 있다. 의주청년들이 존 로스 선교사의 성경번역을 도왔기 때문이다. 이 곳은 신의주 남쪽에 위치한 용천과 함께 일제 치하 시절 기독교가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들어와 번성했듯,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이 곳은 또 다른 세력, 소련군이 들어와 갈등과 폭력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소련군과 공산당은 자신들의 이념대로 교육하려는 것에 맞서 싸운 교육지도자들을 탄압했고, 급기야 사상자들까지 발생했다. 이에 격분한 신의주의 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친 곳, 그곳이 바로 신의주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갈등은 토지개혁과 함께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되었다.
갈등의 시작, 신의주.. 사상이 무어라고 사람들을 서로 해친단 말인가? 어제 오늘 이웃되어 온 사람들이 서로 상처내고, 마을에서 내쫒겨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 한반도의 곳곳에는 각지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모여 각자의 삶에 정착하고 있다.
이 곳 도봉구에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바로 식당이 그것을 대변한다. 도봉구의 윗동네라 할 수 있는 도봉동에는 많은 지역색의 식당들이 위치해 있다. 양평해장국,나주곰탕, 남원추어탕, 전주콩나물국밥, 그리고 갈등의 시작 신의주식당, 우리가 마을활동을 시작할때 술잔을 나누며 도원결의를 한 곳이다.
모처럼 윗동네 신의주 식당에 다시 모였다. 그 동안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의 이름으로 마을활동을 하며 함께 수고한 운영자들이다. 성국이형, 원영이, 경선이, 그리고 나. 오랜만에 신의주 식당에 모여 연신 "찌웁시다"를 외쳐댄다. 윗동네 사람들과 아랫동네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랴! 이렇게 일끝나고 형제들이 만나 술 한잔에 서로 위로하며 오늘의 힘듦을 터는것, 여기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
"성국이형,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내가 한 거 뭐 있간디, 일 없디, 그 동안 동상들이 수고 많았디, 한심한 형이 도움도 안 되고, 미안하다." "형님, 요즘 새로 옮긴 직장은 어떠셔요?" 한동안 성국이형은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새로 들어간 직장의 일이 우리 모임 시간과 겹쳤기 때문이다. "나야 돈 조금 주는 것 빼고는 좋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잘해줘." 성국이형은 택배일을 하다 얼마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시설파트로 이직했다. 택배일 전에 했던 일이라 적응도 잘 하는가 보다. 전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들 욕부터 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보다.
"원영이는 매일 일이 이렇게 늦니?" "요즘, 사람들이 집에만 있기 답답한지, 어른들이 교습소를 많이 찾네요. 그리고 위드 코로나되면서, 학교들이 행사 요청이 있어서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요. 오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 없서, 이렇게 와 준건만도 고맙디", 오늘 원영이가 온건 순전히 성국이형 때문이다. "원영이도 오라그래, 모처럼 모여보자." 연신 수화기를 통해 들린 성국이형의 목소리에 원영이가 일찍 일을 끝내고 신의주 식당으로 와 줬다. 요즘 원영이는 많이 바쁘다. 2명의 아기 아빠, 늘어나는 교습소생들, 거기에 이사까지, 정말 정신없이 사는 40대 가장이다.
"경선아, 너가 여기서 막내인걸 아니?" "요즘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머리가 예전보다 더 빠지네요. 관리를 해야 하는데, 신경쓸 시간도 없고." 말끝을 흐리는 경선이가 안 쓰럽다. 최근 경선이는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같은 동기들 가운데 가장 빠른 승진이라 나름대로 회사내 입지가 탄탄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가시밭이다. 한동안 매스컴에 소개될 정도로 알려진 사건이 경선이의 회사에서 터졌고, 그 일을 수습하는 역할을 해야 했으니 머리카락들이 안 빠지고 버틸수 있으랴. 세 아이의 아빠지만, 집에서 요즘은 스트레스 받는 자신을 건들지 않는다고 한다.
40대 가장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 사업을 했다. 6개월 전 이곳 신의주에 모여 의기 투합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라니. 그 동안 우리 안에 변화가 많다. 성국이형의 이직, 원영이의 이사, 경선이의 승진, 그리고 나는.. 나는 비영리 임의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마을 활성화 사업,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를 통해 좀 더 본격적인 마을 활동가의 길을 걸으려 한다. 그 동안의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필요도 확인했다. 사람들의 관심도 끌었다. 이제 내가 사는 도봉구에서 북한에서 온 윗동네 사람들과 남한에서 온 아랫동네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하나되는 다음세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통일공동체가 뭐 그리 대수랴! 윗동네 사람들과 아랫동네 사람들이 서로 동네를 넘나들며 밥상을 나누고 하하호호 웃으며 하루의 일과를 털어내는 것, 우리 아이들을 더불어 함께 키우는 것, 그것이 통일공동체 아닌가! 나는 비록 마을에서 통일공동체를 살지만, 우리 다음세대는 한반도의 통일공동체에서 살게 되기를. 40대 가장들, 우리는 다시 신의주에 모여 평화와 통일을 꿈꾸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