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 회담에서 “작통권 문제가 정치이슈로 부각 되면 안 된다”는 부시의 말 한 마디에 갑자기 국내의 작통권 갈등이 수면 아래로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조중동을 위시한 각종 일간지에서도 이제 작통권 이슈는 ‘바다이야기’ 만큼이나 기사거리로서 흥미를 잃은 팩트가 돼버렸고 철지난 레파토리처럼 진부해 보이는 느낌이다.
어떤 새로운 모멘텀 없이는 작통권 이슈를 범국민적 반노정서로 점화시킬 추동력은 소멸되었다. 이 상태로 내년 대선까지 계속 끌려가면 ‘자주와 반자주’의 싸움으로 전선을 갈라 치고, 한나라당을 외세의존적인 사대매국노당, 수구보수당, 친미 딴나라당으로 덧칠하며 흑색선전을 일삼는 친노세력의 뻔히 보이는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의 기문둔갑술에 녹아 난 한나라당은 천라지망에 걸려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아무리 용 써도 빠져 나오기 힘든 덫에 빠진 들짐승 꼴이 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금의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진법(陣法)에 빠져 온갖 미몽과 환각에 시달리며 진로를 잃고 힘을 빼는 상황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노무현의 링’에서 한나라당은 빨리 내려 와야 한다. 결코 한나라당이 이길 수 없는 ‘노무현의 덫’을 재빨리 찢고 탈출하여 좌파들을 일망타진할 ‘한나라당의 덫’을 새로 놓아야 한다. 싸움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지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자존심이나 명분 때문에 지속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무런 전술전략도 없이 이슈를 선점당한 상태에서 끌려 다니다가 내년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이후 우리 앞에 놓이게 될 ‘3기 좌파정권의 출현’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전선을 어떻게 구축할 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명예로운 퇴진’이 불가능하니 ‘작전상 후퇴’라도 준비해야 한다.
설혹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이 정부가 미국과 작통권 문제를 합의하더라도, 우파의 관점으로 보면 김정일에 의한 전쟁의 위협이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지만,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때는 김정일이 당장 쳐내려 와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당장 미군이 철수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과 럼스펠드가 감정적으로 주고받은 핑퐁발언에서 작통권 단독행사 시기를 2009년으로 못 박기도 했지만, 그것이 부시나 미국무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현재 한국군의 전력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2009년 환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한국과 미국 공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차기정권이 바뀌면 어렵지만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한국 국방부의 입장도 2012년이나 되어야 한국군의 군사장비, 정보력, 전쟁수행능력 등 총체적 전력 면에서 현재 한미연합사 전력의 80% 정도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으니, 이를 아는 노무현이 아무리 급해도 2009년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의 전작권 이슈 제기는 사실 5·31 지방선거 참패로 지리멸렬한 친노진영을 한데 묶어 역량을 재결집하여 내년 대선을 준비하려는 의도가 강한 전략적 포석이었던 만큼, 현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노무현 입장에선 굳이 무리하여 2009년에 조기 환수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보수진영의 극한투쟁을 불러오는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향후 노무현의 스탠스는 슬쩍 SCM에서 윤광웅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실무회담을 결렬시키게 하거나, 환수시기를 정확히 못 박지 않은 어정쩡한 합의를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이 내년에 남북 정상회담을 들먹이며 ‘우리민족끼리’란 감성적인 구호를 남발하여 ‘자주대 외세’의 난장판을 벌려나갈 꼬투리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보수일각에서 주장하듯이 당장 전쟁이 날 듯 호들갑 떨거나 이념논쟁으로 몰고가봐야 안보불감증에 사로잡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다는 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싸움의 방식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보수 일각에서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어지는 작통권의 대회전을 앞두고 아군의 힘을 빼 적전분열을 노리는 스파이 짓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통권 이슈는 한나라당이 몸부림치면 칠수록 빠져드는 늪과 같다. 작통권 이슈는 80년대의 운동권 주류, 설익은 386들의 천박한 사상에 경도된 노무현이 선의(?)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고 자주와 주권을 들먹여 개혁에 이바지 한다는 생각으로 시도한 일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여 내년 대선까지 이용해먹으려는 얄팍한 술수에서 나온 정략이었다.
친노그룹이 정말 남한을 김정일에게 바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갖다 바치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들은 안다. 지나치게 저들을 타도할 대상이나 철천지 원수 쯤으로 간주하여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저들의 정치적인 노림수엔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유연하게 정세를 볼 필요가 있다. 전작권 이슈를 아예 묻어버리는 방법을 미국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처럼 노무현식으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작통권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야말로 조국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거칠게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의도대로 ‘자주와 외세’, ‘민족과 반민족’ 등으로 전선이 갈리면 항상 우파가 필패할 수밖에 없는 코드이다. 노무현이 작통권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강경하게 환수를 반대할 보수우파의 반응을 미리 읽었기 때문이며, 우파진영이 이를 국가안보의 중대 위협이나 이념의 문제로 확전을 시도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명운을 쥐고 흔들 중차대한 작통권 문제가 전직 외교관, 재향군인회, 대령연합회, 전직 장성모임인 성우회, 교수 및 지식인들, 변호사 단체 등 대한민국의 광범한 여론주도층의 ‘전작권 환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귀결되는 듯한 움직임을 보며 노무현의 노림수와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나라당과 우파의 전략부재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나라당 혼자 나라를 지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독선과 아집에 빠지면 안 된다. 나라는 국민들 모두가 지키는 것이고 나라를 지키지 못해 돌아갈 피해도 국민들 모두의 몫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와 수준에 맞춰 함께 나가야 한다. 너무 앞서거나, 너무 처지거나 하는 것이 문제이지 국민들 보다 조금 앞자리에서 국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적당한 스탠스이다.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불안해하는 한국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은 항상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보수우파의 손을 내리고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는 희한한 상황을 우리 국민들은 목도하고 있다. 부시 입장에서 작통권은 꽃놀이패다. 이혼직전의 한미동맹을 굳이 지킬 필요성 보다는 노 정권의 의도를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더 큰 실리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전 세계 미군 재배치전략으로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가 필요한 시점에, 미국이 먼저 작통권 문제를 꺼내면 동맹을 깬다는 비난을 받을 터였는데, 노 정권이 이를 해결해주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우방인가. 한국이 굳이 가져가려는 작통권을 미국이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덕분에 미국 군수산업의 활로를 열어주었으니 부시는 손 안 대고 코푼 격이다.
미국은 동상이몽을 꾸는 한미동맹을 지키려다가 내년 대선정국에서 반미의 열풍을 정면으로 맞받아내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수시기를 앞당겨 2009년 안을 제시하는 역공을 취함으로써 노무현의 정략적 의도를 분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따라서 이번 작통권 전투의 가장 큰 패자는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대패를 당했고, 노무현은 지지세력 결집을 도모하고 한나라당을 외세의존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인 점에선 성공했으나 미국의 역공에 당한 점을 고려하면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와중에 미국이 가장 많은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이득을 취했으니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친노그룹 일부에서는 미국이 보수우파와 한나라당 편을 들지 않고 노무현의 의도대로 끌려 왔다며, 정치 9단 노무현의 대대적인 정치적 승리라고 자화자찬한다. 한편 한나라당의 정치적 패배라고 분석하고 좋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노무현은 내년 대선 정국까지 작통권과 남북정상회담을 버무려 작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미국이 생각지도 않게 강수를 두는 바람에 그 의도가 좌절되었으니 앞으로 얻을 큰 이익을 버리고 작은 이익을 취한 현실이다. 즉 노무현 입장에서도 그다지 얻은 게 없다.
한나라당과 우파는 앞으로 전진하자니 사면초가이고 후퇴하자니 명분이 없고 머무르자니 패배할 전장에 서있다. 지난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시기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정치적 패배가 불 보듯 뻔한 데 한나라당은 자인하기 싫어 뻣뻣하게 버티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한나라당은 이제 당 차원에서 발을 뺄 수순을 밟아야 한다. 싸워 이기기 힘든 전장에서 신속하게 철군하는 것도 장수의 덕목 중 하나이다.
첫댓글 박근혜가 제사람 심은 머리가 제대로 된 머리일까.한나라당이 야당답지 못한것도 알고보면 제사람심기에 급급해, 제대로 제야구실하는 의원을 심지 않은 탓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