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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님께서 윗글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시크릿가든님의 글에 대한 마지막 저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1. "현대목사 = 목자+교사"란 님의 주장에 대하여
-->원래 "교사"로 번역된 원어인 " 디다스칼로스"는, 당시 헬라사회에서
지식이나 기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정식으로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교사에서 철학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 말이었으므로
초대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을 지칭함에 전혀 이론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전 글에서 충분히 말씀드렸던 <성서시대의 목자의 개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신 후에도
<현대목사 = 성서시대의 목자>라는 등식을 끝까지 주장하신다면..
그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께 맡길 수 밖에는 없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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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셨으니 제가 따로 답할 내용은 아닌 듯 합니다.
2.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도 있었고 선지자라 불리는 이들도 있었고 교사도 있었고
예루살렘교회 같은 경우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요즘의 교회 담임목사와 같은 이도 있었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간 매일 가르쳐서 파송한 감독이라는 직임을 부여받은 장로들도 있었고
순회전도자도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원래는 교회로부터 도움을 입는 이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로들도 초대교회에서는 유급지도자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딤전 5: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이번에 또다시 그럴싸한 성경구절을 찾아 오셨군요^^
역시 같은 얘기의 반복이 되겠습니다만..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에 과연 현대목사가 포함되는가의 여부는
역시 이 글을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한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님의 인용구절 5:17절에 "수고하는" 이라는 말에 "코피아오" 란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수고" 가 어떤 수고인지 혹 아시는지요?
잠깐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고전 4:12)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
자, 이제 어떤 <수고>인지 아시겠습니까?
자신의 사역을 위한 필생의 악전고투를 표현하기위해 바울이 사용한 유일한 단 한개의 단어가
바로 "코피아오" 이 한개의 동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목사에게 과연 이 "수고(코피아오)"란 동사가 어울리겠습니까?
백번을 물어도 저는 <No>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다음, (잠깐 다른 얘기지만) 인용구절 중 "다스리는(프로이스테미)" 이라는 말 참 거북하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도 큽니다.
목사는 성도을 "다스리는(통치하는)" 직임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이시니 성도들에게 이런 용어는 가급적 쓰지 않으시길 권면드립니다.
(영어성경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프로이스테미"라는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거의 '보호해 인도하다'와 '돌보며 도와주다'라는 일차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그래서 "다스리다"가 아니라 "보호하다", "도와주다"가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프로이스테미)가 되었음이니라(롬16:2)
(뵈뵈 집사가 사도 바울을 "다스릴" 리는 절대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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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목사들에게 성경 속의 수고란 말이 해당되느냐 안되느냐는
님께서 판단하실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님이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렇다고 하실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님께서 옳다 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실지는 두고보셔야합니다.
저라면 지도하는 이들에 대해서 다음 말씀을 가지고 저 자신을 추스립니다.
참고해보시지요.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행실의 처음부터 끝까지 잘 살피시고 옳은 일이라면 그 믿음을 본받으면 될 것이고
아니면 따라가지 않으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대해서
그럴싸한 성경구절을 찾아왔다는 이런 표현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씀이 옳은 경우다 아니다 라고 하셔야지
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것 때문에 반대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이는 성경말씀까지 무시되는 일이 생기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또 경우에 합당한 성경말씀을 인용하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는 3주밖에 머물지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서 말씀하셔야합니다.
바울은 어디 가서든지 개척할 때는 그곳 교회에 짐이 되지 않으려했고 어디서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셔야할 부분이지 그 표현을 자비량과 관련되어서 인용하시는 것이라면 본래 내용을 잘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님께서 인용하신 고린도전서 4장 12절과 15장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고린도에서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서 장막 짓는 일을 했다고 사도행전에서 말씀합니다.
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고 그런 경우에 비추어서 4장 12절은 인정됩니다.
그런데 인용하신 15장 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사도 바울보다 덜 수고한 다른 사도들은 잘못했다는 것입니까?
님의 기준에 의한다면 바울보다 못한(?) 사도들은 어떻게되는 것입니까?
저는 목회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교회에 짐이 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일하고있습니다.
수고라는 기준이 자비량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수고란 제가 보기에는 복음을 위해 고생한 모든 것입니다.
지금 누가 바울같이 합니까?
시크릿가든님이 그렇게 합니까?
고린도후서11장23절부터 27절까지처럼 시크릿가든님이 하십니까?
그정도 하신다면 바울처럼 수고한다고 하겠습니다.
주어진 사명과 처해진 환경 속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
모든 사람이 다 바울같아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 고린도전서 9장(사도의 권리부분) 문제
-->이 부분 역시 이미 언급한 내용의 반복일 거 같고, 또 충분히 제 견해를 전달했으므로 생략하겠구요
중요한 점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님과같은 목회자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시는 고전 9장 중 서두인 3절을 주의깊게 보아 주십시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고전9:3)
사도의 권리를 말하는 고전9장의 내용들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아니라
당시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폄하하고 비판하던 바울의 대적들, 즉
거짓사도(고후11:13)와 지극히 큰 사도들(고후11:5, 12:11)에게 한 말이라는 점입니다.
(혹 제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으신다면 그냥 패스~ 하셔도 좋습니다)
참고 구절로 고린도 후서의 구절들을 인용하겠습니다.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고후11:20)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11:13)
====>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바울이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와 성령의 이름으로 인정된 이방인의 복음을 전한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않고
다른 예수와 다른 영을 전하고 받게하는 자들의 말을 따른 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서는 도움을 안받고 이미 개척된 교회에서 도움을 받아서 그 다음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3차 선교여행 때에 에베소에 있으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로부터 선교비를 받고자했을 때
분란을 일으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11장에서 이에 대해서 감정을 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후11장7-9절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 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 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바울의 선교원칙 중 하나가
개척하는 교회에는 짐이 안되는 것이고
이미 개척된 교회에게는 그 다음 개척하는 교회를 위해서 선교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자비량개척사역은
이미 개척된 교회들의 선교비후원까지 포함해서 이루어진 사역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선교원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본받을만한 선교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울의 원칙은 초대교회 당시 보편적인 원칙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고린도전서9장의 내용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1년7개월 당시에 교회로부터 료를 받지 않았음에 대해서 오해하니까
바울이 자신이 왜 다른 사도들이나 복음 전하는 자들과는 다르게 그렇게하였는지를 설명한 것이
고린도전서9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4.<귀족용 이동용 별장 >과 <바울의 자비량사역>에 대하여..
바울이 배운 장막짓는 기술이 군용막사나 일반 천막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요즘의 경우로 <수제 자가용(?)>이나 <연예인용 이동차량(?)>같은 <고급 이동식 별장(?)>이라는 님의 주장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억측임을..님 스스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님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는 충분히 아시겠지요?
브리스길라는 성경에 수차례 언급되어 있지만, 정확한 신상명세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급이동식 별장>이라는 님의 희한한 주장은
신구약 성경은 물론이고, 고대 유대사, 예루살렘탈무드 등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말입니다.
(어디서 근거도 생각나지 않는, 초대교회의 유전을 들고 나오셔서야 되겠습니까?)
현직 목사라는 분이 취하실 논리가 결코 아님은 더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염소털을 이용한 천막제조기술이 아주 간단한 기술이었다구요?
님..성서시대 초기에는 천막제조는 모두 여성들이 담당했고..
당시에 천막 하나 만드는데 수년씩 걸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천막제조가 얼마나 고된 육체노동이었는지 바울의 고백에서 혹 짐작이 가시지 않습니까?
(귀족들의 자가용을 만드는 최고급기술을 가진 사람이 밤낮으로 일합니까?
님은 밤낮으로 수고하는 바울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으십니까?)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2:9)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3:8)
끝으로, <바울의 자비량 사역>에 대해선 말입니다.
현대 목사들은, 바울도 여기저기 교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공급받았으므로
바울도 사역도 완벽한 자비량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또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핵심은 현대목사의 사례비문제를 떠나, 바울의 자비량의 완전성 여부를 떠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현대목사의 기본적인 인식과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고후11:8)
님..자, 잘 보십시오.
사도는 지금 다른 교회에서 부족분을 도움받은 것을 군사에 대한 비유를 사용하여 "탈취"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사 "쉴라오"는 '강탈하다'나 '약탈하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참사도로서(거짓사도가 아니라) 교회들로부터 도움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자신이 다른 교회를 "강탈(rob, KJV, NIV)"했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자비량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고후11:8-9)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고후12:13-15)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5:11-12)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3:8-9)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1-12)
끝으로 사도행전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님과의 모든 논의를 마칩니다.
그동안 바쁘신 목회일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답변에 chambitchurch 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20: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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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린 바울의 장막 짓는 기술이 서민대상이 아닌 귀족 대상의 것임은 탈무드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유대인들의 상술에서 그 대상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를 보면
첫째 돈 많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라
두번째 여인들을 타겟으로 하라
세번째 그런 대상이 없다면 입을 타겟으로 하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바울의 장막 짓는 기술이 서민대상의 것이 아니라 귀족 대상의 것임에 대해서는
성경의 여러 정황과
제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초대교회 유전 속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 관련내용이 있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든지 아니시든지 제가 관계할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바울의 자비량이란 고급기술이었다고 보고있고
이왕 자비량사역을 하실 분이라면
목회자의 가정생활 문제가 걸림이 되지 않을 고급기술을 가지시면 더 바울에 가깝게 사역하는 분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고후11장8절 말씀은 바울의 감정이 실린 표현임을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내고난 다음에 들려진 소식에 의하면
고린도교회의 바울 비판자들에게
바울이 다른 교회의 료를 탈취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표현을 듣고 그대로 말해준 것이지
바울이 강탈했거나 탈취했거나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바울이 한 도시에 교회를 개척할 때에 먼저 개척한 다른 교회에게 후원을 요청했고
이를 바울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후원하는 교회들도 당연하다고 여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에베소사역을 3년간 하면서 고린도교회가 후원해줄 것을 바울이 요청한 듯 한데
이에 대해서 거짓 사도들의 농간에 놀아난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의 바울을 폄하하고 비방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말한 것이 바울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이 있는 말씀인데
저는 님께서 이 말씀을 바울의 자비량사역과 관련해서 저의 글에 반박하면서 인용하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해
개척하는 교회에 짐이 되지 않으려했습니다.
이는 님께서 끝으로 인용해주신 성경말씀 외에도 더 많은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정신은 제가 본받고싶어서
현재 섬기는 교회에서 할수만 있으면 저의 최선을 다해서 교회에 짐이 안되려 노력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자비량사역을 하고 수고하라는 것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 가깝게 사역하실 수 있는 분들이 그렇게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바울처럼 결혼도 않고 사역할 수 없고
한 곳에서 길면 3년 그렇게 사역할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하게하신 예수님의 양들을 잘 돌보고
그들에게 성경 66권을 제대로 진리 그대로 전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서 하나님과 동행하시도록 돕는 일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해야할 수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일을 하면서 할수만 있으면 함께하신 분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제가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고있고 그렇게 실천합니다.
이런 일이 저에게 바울의 경우처럼 상급은 되지 않겠지만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변질되지만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갈 수 있다면
적어도 일 잘못했다는 평가를 예수님 앞에서 듣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있습니다.
여기까지 토론해 주신 시크릿가든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이 그저 한국교회 목회자 편에 서서 변명하는 글이다 라고 여기신다고 해서 제가 무어라 할 말 없습니다.
다만 이글이
성경을 바르게 보고
그 성경말씀에 맞추어서 바르게 고치고 회복하는 것이 개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성경에 맞게 해보자는 분들께
생각을 좀 더 성경에 합당하게 할 작은 여유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가든님도 참빛님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