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하고 이것저것 문진 후에
이제 목 보호대를 벗어도 괜찮다는 말에 염치 불구하고 의사에게 악수를 청하는 손을 쑤욱 내밀었다.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엉겁결에 손을 덥석 잡았더니
네 남편이 매우 기쁜 것 같다며 담당의사가 웃어 주었다.
오랜 재활운동을 해야 하지만 수술 후의 경과가 괜찮다는 의견이니 기분 좋은 소식이다.
4주 후 검진 약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오며 아직 정상이 아니라 많이 불편하지만 모처럼 웃음 뛴 아내의 얼굴을 보니 운전길이 편안하다.
아직은 고개를 자유롭게 돌리지 못하는 아내가 어떻게 도로옆의 노숙자 촌을 보았는지
노숙자들을 가리키길래 사진 한 장을 잽싸게 담았다.
오랫동안 이 길을 다녔지만 병원 다니느라 여유가 없었으니 도로변에 노숙자 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철로가 지나가는 도심 속의 이 도로의 뒤쪽에는
1880년에 건립되었다는 Krug 가구회사의 4층 낡은 건물이 140년 동안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으니
주변의 환경은 열악해서 마약상들이 진을 치고 있을 듯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도로변 바로 옆으로 노숙자들이 벽돌로 간이 건물을 얼기설기 덧댄 주거지와
더러는 천막을 겹겹이 치고 노숙자 촌을 형성하고 있으니 더욱 을씨년스럽다.
'어머나, 아직도 저런 곳이 있나 보네
곧 추워질 텐데 저런 곳애서 겨울을 날 수 있을까 몰라
왜 노숙자 생활을 할까?' ( 대꾸했다가는 이야기가 길어지니 그냥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시에서 도심의 노숙자촌을 허용하는 쪽으로 규정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전에는 공원이나 시 외곽지역에 노숙자 촌이 형성되면 일정 기간 모른 체 하다가 단속하고
그러면 다른 곳으로 올기고, 또 단속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한 곳에 노숙자촌이 붙박이 형태로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노숙자들을 관리했었다.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에서는 지원을 하겠지만
이들이 거리에서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사정들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텐데 ~~~~
글이 길어지지만, 오래전의 노숙자 관련글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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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 일간지의 노숙자 기사를 보았다.
노숙자들의 연례 시위를 계기로 지역의 노숙자들을 심층 취재하는 얼마 전부터 시작한 연재 형식의 기사다.
몇 년 전에 나의 가게 뒷문에서 노숙자를 발견하고 의아했던 적이 있어도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이 있어 이 글을 쓴다.
이곳의 노숙자들은 매년 공원에 함께 모여 텐트(천막촌)를 치고 생활하며 며칠씩 시위를 한다.
이 연례 시위의 목적은 도시의 노숙자들과 적당한 가격의 주택 부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당연히 시에서는 텐트촌의 철수를 명하고 천막촌의 노숙자들은 또 다른 공터나 공원을 찾아다니며 계속 시위를 한다.
이들에 대한 일반 시민의 공통된 생각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어떤 곳에서는 휴가를 떠난 빈집의 정원 바로 옆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해서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걱정이나 널린 쓰레기와 마약을 사용한 뒤의 위험한 주사기 처리를 걱정하는
그래서 노숙자들이 공공장소나 개인 소유지에 대한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철저히 내 개인이나 재산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
(지역신문에서 따옴)
위의 여인은 임신한 노숙자로 도움을 청하는 사진이다.
기사 작성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여인이 눈길을 끌어 인터뷰했다고 기사의 첫 줄에 쓰고 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이 노숙자여서 관심이 갔다는 말은
완벽한 백인 (금발에 푸른 눈)이 우월하다는 뿌리 깊은 이들의 잠재의식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여성은 메노나이트 (문명을 거부하는 소수 기독교 집단)라는 특정 종교를 가졌으며
가족으로부터 학대와 따돌림을 받아 집을 나왔고
보호소에서 심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직업을 가지려 했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읽고 쓰지를 못하는 문맹이어서 사람들로부터 무시만 당했는데
아이를 출산하면 키울 수 없으니 입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너무나 자주 나와 같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시해서 직업을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예는 종교, 학대, 가족, 가출, 보호소, 구타, 성폭행, 교육, 직업, 미혼모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수의 문제점을 대부분 보여주고 있다.
3.
또 다른 여인은 5년 전에는 평범한 생활을 했던 여인이다.
자신의 집에서 주간에는 탁아소를 운영했고 야간에는 병원과 공공장소의 청소를 하는 직업을 가졌었는데
이혼 후 집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노숙자로 전락했다.
"이전에 나는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했지만
모든 사람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도왔지만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돌보았던)
내가 베푼 만큼 그들은 나를 돕지 않았습니다.
합법적으로 집을 빼앗아 갔어요"
하지만 만약 그녀가 보호소로 돌아가는 것과 숲 속의 텐트로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는 매번 텐트를 선택한다.
때때로 텐트가 차갑고 축축하고 불편하지만
"새로운 젊은 여자 노숙자가 노숙촌에 들어오면
많은 노숙자 남자들이 그녀를 성폭행하려고 합니다.
그 젊은 여자 노숙자를 지켜주어야 하므로 나 혼자 보호소로 갈 수가 없어요.
함께 지내면 마약을 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나도 마약을 같이 해야 하지만
그녀를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또한 나는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과 교감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너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지요.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요"
"야외에서 네발 달린 동물들과 지내는 것이 더 편해요.
그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지 않지요.
나는 두발 달린 동물 (사람) 보다 네발 달린 동물이 더 좋아요"
두 여인이 말했듯이 무시당하고 조롱받고 집을 잃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 고통을 추가할 권리가 없다.
오늘 연재된 신문 기사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4.
다다익선이라는 말은 물질의 풍족함은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니
풍성하고 가득 찬 것은 여유롭고 아늑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욕망과 연(緣)을 털고 정진하는 구도자들의 청빈한 삶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이 풍성하고 가득 찬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여러 곳에서 자주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과 글을 보게 된다.
비우면 충만해진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비우고 내려놓음이 그렇게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불편하게 들리는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과 글보다는
외면받고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약한 이들에게
작은 나눔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비우고 내려놓는 첫걸음일 것이다. (Aug.14.2018)
첫댓글 보호대 풀고 경과가 좋다니
한숨 놓아도 되겠어요
피차 애씁니다 위로드려요ㅎ
오래전 뉴욕 길거리에 누워
구걸하는 걸인을 보면서
우리끼리 농담했어요
구걸해도 영어 잘한다고ㅎㅎ
추석은 기분도 못내셨네요
울집에 추석음식 남아도는데
약이나 올려야지ㅋㅋㅋ
매사 조심을 하지만 조금씩 괜찮아지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
요즈음 모든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지냅니다 ~ 진짜~
ㅎ 그러게요 추석인줄도 모르고 지내지요. 명절 잊고 지낸건 오래 되었어요
추석 음식 남아 돌겠지요 ㅎㅎ 딸이 요즈음 생전 안했던 음식 준비에 고생 많이 합니다
이제 지나고 보니 뭐 한닥꼬 여기 와서 이런 모습으로 사는지 그런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지요
~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가 강마을님 흉도 보고 그랬습니다 ~ 우헤헤
몇년전 시애틀에 갔는데 젊은 노숙자가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서울역도 여자 노숙자가 많이 눈에 띕니다
노숙자가 없는 곳은 없겠지요.
이곳이 미국보다는 노숙자가 적을듯 한데
번잡한 도로변에서 노숙자 집단 거주지를 본게 처음이라 여러 생각이들더군요.
문맹이 줄어들고,
물질 문화가 극도로 상향하는 상태에서
종교에서나
교육에서나
혹은 책 속에서, 지식인들이
비우고 내려놓자는 것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지요.
좋은 말에서 그칠 뿐,
진정한 의미의 내용은
말씀처럼,
사회약자들에게 작은 나눔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이 되네요.
노숙자,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글로만 그렇게 적었지 실행하지 못하는 축에 듭니다.
손 내미는 행위라는게 습관같이 행해지는 사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많은것이 괜찮게 자리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구요 ~ 고맙습니다
모처럼 웃음 띈 아내의 얼굴을 보니
운전 길이 편안하다 하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대전에서 제가 살았던 집 뒤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어요.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공원에서 살다시피
하더라고요.
저마다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다 있겠지요.
비우고 내려놓고,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핸만에 펴진 얼굴을 대하니 제가 한결 편안합니다.
다행이라 매사 감사해야 한다며 둘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고맙습니다
아내 되시는분의 수술 경과가 좋다니
다행입니다 .
시간이 지나면 완쾌 되시겠지요.
캐나다의 노숙자는 이곳과는 차원이 틀리네요.
LA는 정말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
한달에 한번 노숙자 배식을 하러 나가는 저는
정말 심각한 문제임을 잘 알게 되는데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듯 싶습니다 .
좋은 계절을 놓치지 마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감사 할 줄도 아시고 ㅎㅎㅎ
ㅎㅎㅎㅎ
이제 감사할 줄 압니다 ~~~
여기 노숙자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더군요 ,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맞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9.22 00:20
아내분의 수술 후 경과가 좋아지고 있다니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노숙자... 동정적인 시선도, 경멸의 시선도, 외면도 아닌 사회 공동체안에서 뭔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몇년 전 아름문학상에 올렸던 노숙자 관련 제 글이 생각나 허락없이 답글로 붙여 봅니다.
아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색다른 시선으로 대하지 말아야겠지요
최근에는 아름방 잘 들리지 않아 몰랐습니다.
아래글 읽어러 갑니다 ㅎ~
제가 글로 짐작하는 단풍님이
사적인 감정의 교감을 자제하게 되는 병원의 의사에게
(엉겁결이긴 하지만)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셨다니
나아진 경과가 다행스럽고
윤활유 한 모금 마신 단풍님의 모습도 좋습니다.
ㅎ 엉겁결에 남의 손도 마구 붙잡고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누라 경과가 괜찮다는데 체면불구해야지요 ~~ 우헤헤
아내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단풍님의 마음이 보여 보기 좋습니다. 원주연대에서 치의예과 교수로 올여름 퇴직한 큰집조카의 아들이 노숙자들 실생활을 연구한 논문으로 재작년 올해의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대학원 2년을 서울역 쪽방촌인 동자동에 살면서 실제 체험담을 논문으로 만들었지요.. 지난달 SK재단의 장학금으로 시카고대학에 박사과정 공부하러 갔습니다. 노숙자는 참 정부도 해결하기 힘든 숙제입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 홈리스들이 더 많은것은 아이러니입니다.
2년을 직접 체험했다니 조카의 대단한 열정이 참 괜찮아 보입니다.
어느곳에서나 노숙자들은 있게 마련이지요
이곳에서도 짬짬히 보이더군요,
사는 것은 참 녹록치 않습니다. 임신한 백인여성 노숙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 이름도 기억나지 않군요. 신앙과 사상의 문제로 집을 나간 딸을 찾는 아버지를 담은 영화.
그 영화의 마을 축제때 딸은 아버지와 왈츠 춤을 춘 후 떠나갔죠.
지금도 맴도는 멜로디 . 테네시 왈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그 영화가 궁금하여 검색하였더니 2017년 출시된 프랑스 영화 나의 딸. 나의 누나 이군요. 가을 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