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자리는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탐합니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는 그 자리를 차지하려 무시무시한 전쟁을 비롯하여 아주 가까운 친족, 가족 안에서조차 피를 뿌리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인륜도 천륜도 무시하고 벌어지는 탐욕의 결과입니다. 동서양을 불구하고 어디에서나 있어 왔습니다. 그렇게 차지한 왕권을 가지고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한 왕도 있기는 합니다. 반면 그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서 폭정을 행하여 자신의 결과 또한 비참하게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백성도 어느 시대 어느 왕을 만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쟁 중에 왕비가 아기를 낳습니다. 왕은 출산하는 왕비 옆을 지켜야 합니까, 국가 운명을 가르는 전쟁에 따라 나가야 합니까? ‘아비 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속담이 그 나라 안에 전래되고 있습니다. 왕이 갈등합니다. 그 때 왕비가 말합니다. 아비 없이 태어나는 것보다 노예로 태어나는 것이 더 저주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왕은 출전을 합니다. 승리하고 돌아온 왕은 예쁜 딸과 죽은 왕비를 맞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왕은 슬픔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 때 왕의 동생이 제의합니다. 지금 슬픔에 잠겨있으면 적들이 다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왕자가 아니라 공주를 낳았으니 후계자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재침을 노릴 것입니다. 그러니 며칠 전 자기가 낳은 아들과 바꿔치기 하자고 말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동생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나의 조건은 딸이지만 자기 자식처럼 아껴 키워달라는 것입니다. 왕은 아들을 왕으로 양육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됨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천부적 재능과 성품 그리고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왕이 될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자로 키우지만 도무지 맞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왕으로 적합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반면에 ‘헬렌’ 공주는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성품도 강인하며 담력도 있습니다. 이 속 사정을 아는 부하 장수가 있습니다. 헬렌에게 무술을 가르친 ‘소니’ 경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왕의 동생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에게는 아들도 딸도 필요 없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헬렌의 용기를 시험하며 동굴로 유인합니다. 사촌동생인 왕의 후계자가 따라갑니다. 그들이 걱정스러운 왕이 뒤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자 둘이 살해되고 헬렌만 극적으로 피해 도주합니다. 물론 그 모든 살인의 누명을 헬렌이 뒤집어씁니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왕의 동생이 왕좌에 오릅니다. 소니 경에게 충성을 강요하지만 비밀을 알고 있는 소니 경은 몇 부하들을 이끌고 도망합니다. 그리고 헬렌을 찾아다닙니다. 헬렌은 피해 다니다 숲에서 집시 무리를 만나 함께 생활합니다. 마치 유목민처럼 식량을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평화로운 삶을 경험합니다.
무리 가운데 만난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약혼한 사이인 짝이 있었습니다. 짝사랑의 아픔을 경험합니다. 때마다 나타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주는 신이 속삭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영혼을 강하게 해주지.’ 드디어 소니 경을 만나 그의 충성을 다짐 받습니다. 함께 왕국을 되찾기로 합니다. 그러나 아직 너무 미약합니다. 그래도 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과업입니다. 삼촌이지만 아비를 살해하고 왕위를 도적질한 원수입니다. 곡물이 모여 빵을 만들고 벽돌이 모여 성을 짓는 것이고 병사들이 모여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함께 합니다. ‘진실은 한 가지 색이지만 거짓은 여러 가지 색을 띄지요.’ 그 말대로 악은 분열되는 것입니다.
왕과 군사들이 찾아옵니다. 후환을 없애려고 끝까지 쫓아다닌 것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총성을 맹세한 소니 경의 군사들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였던 유랑민 대가족이 동참합니다. 어차피 한 나라의 백성이지요. 모르고 함께 하였던 여인이 공주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힘을 합하여 적들을 물리칩니다. 그렇게 왕국을 되찾아 왕위에 오릅니다. 헬렌은 유랑민에게 이제 내가 너희에게 집을 주겠다고 합니다. 숲이 우리 집입니다. 숲은 집이 아닙니다. 노인과 달리 젊은 사람들은 떠돌이 삶이 아니라 안정된 집을 원한답니다. 평화가 안정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롭게 평안한 생활을 하려면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필요한 법이지요.
대단한 영화는 아닙니다. 규모도 크지 않습니다. 바이킹 족의 초기 전설을 영화로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대사들이 꽤 사색적입니다.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현명한 자가 묶은 매듭을 어리석은 자가 풀 수는 없다,’ ‘오래된 달이 완전히 사라지면 새로운 달이 떠오를 수 있지,’ ‘지도자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하루의 슬픔이 1년의 기쁨보다 길지,’ ‘굴이 아무리 어두워도 빠져나갈 길은 있다,’ 등등. 길지 않은 시간 편안히 즐길 수 있습니다. 생각하며. 영화 ‘바이킹 데스티니’(Viking Destiny)를 보았습니다. 2018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