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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글이니 실제와 혼동 없으시기 바랍니다.
- 어느 노숙자 친구의 편지 -
김형. 그간 잘 지내고 있소?
가끔 이렇게 김형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가 잠시나마 함께 보냈던 그 절망의 지하통로 안에도 미리 안배된 인연이 있었던가 보오. 그 절망의 지하통로가 나나 김형에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도록 준비된 곳인 줄 어떻게 알았겠소.
새로 시작한 일이 잘 풀려나간다는 김형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오늘 나는 내가 돌보는 어린 미혼모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들이 얼마나 선한 사람들인 줄 당신들 자신은 잘 모를 거요. 비록 한 때 잠깐의 실수로 삶이 약간 틀어지긴 했지만, 그렇게 생겨난 새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신들은 참으로 선하고 복 받을 사람들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그녀들에게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김형에게도 간간이 안부만 전했을 뿐, 결국 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오늘 들려드리고 싶어요.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산골의 어느 오지 마을이었습니다. 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배가 날마다 불룩해지는 게 신기해서 어머니의 부른 배를 만지며 '엄마 배 아파?' 물어보았지요. 그때 엄마가 웃으시며 대답해주던 말씀이 얼마나 어린 저에게 충격이던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네 동생이 엄마 뱃속에 살고 있단다."
그리고 몇 달 후, 이웃 할머니가 급히 어머니 방으로 뛰어들어간 날,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고통을 참아내던 그 방에서 앵앵~ 아기 우는소리가 났습니다. 눈도 못 뜨고 빨간 얼굴로 어머니 곁에 누워있던 내 동생. 얼마나 신기하던지, 꼼틀대는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동생아~ 내 동생아~" 불러보던 기억도 납니다.
아마도 어머니 건강은 좋은 편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셋째를 낳던 어머니가 아기와 함께 이승을 하직하던 날, 아버지는 꺼이꺼이 밤새도록 우셨던 것 같소. 그 소리가 서러워 나 또한 어머니를 여윈 슬픔도 잊은 채, 아버지 따라 울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나오. 그때가 국민학교에 갓 입학했던 무렵인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꿈이 하나 있었소. 아이를 잘 낳게 해주는 의사가 되는 꿈 말이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공부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아주 특출나게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하게 소원하던 대학의 의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무난하다고는 했지만, 공부하는 동안에 다섯 시간 이상은 자본 적이 없었던 것 같소. 좀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어김없이 셋째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어요.
의대 교정 앞에 세워진 히포크라테스의 동상을 보며 매일 나는 우리 나라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가 되는 꿈을 다졌어요. 모든 수강 과목에 열심이었고, 맨 앞자리는 내 자리라고 친구들이 아예 비워둘 정도였어요. 고된 인턴 생활도 보람으로 마쳤고, 레지던트 시절에는 하나의 임상 경험이라도 놓칠까봐 모든 임상 사례를 다 뒤져보았고, 회진을 도는 과장 선생님 곁에서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물론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위험하거나 희귀한 산부인과적 병을 앓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런 환자들을 잘 보살펴, 그 환자들이 무사히 아이를 낳아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보는 날은 내 어깨가 얼마나 으쓱거려지던지...보람이 가득 찬 나날들이었습니다.
어느새 결혼할 나이가 되었더군요. 삼십대 중반, 공부에 일에 변변히 여자 한번 사귀어보질 못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한 여자와 선을 보았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는 그녀는 가끔 내가 모르는 프랑스 말을 대화 속에 끼워 넣곤 했어요. 지적인 용모와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그런 멋진 여성이었습니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좀 더 대학병원에 남아 임상경험을 더 쌓고 싶었지만, 장인어른 될 분이 이제 그 실력을 개인병원에서 마음껏 펼쳐보라며 완강하게 병원을 지어주겠다고 우겼어요. 몇 번 거절했지만 워낙 섭섭해하시는데다가, 나 또한 내 실력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 슬그머니 물러나며 승낙을 하고 말았지요.
첫날밤은 내 삶이 꼬이기 시작한 첫 단추였습니다. 한사코 피임을 요구하던 아내가 자기는 자기 삶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제 충격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자기 아이를 자기가 받아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불행한 사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차 시간을 두고 잘 설득하면 되겠지 하며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채 일주일도 안되어 아내는 불임시술을 받고 왔노라고 퇴근해서 현관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꾀이니 그 다음 단추도 잘못 꾀일 수밖에 없었지요.
병원이 완공되고 내가 처음으로 내 병원에 진료를 시작한 날, 첫 환자는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뱃속의 아이를 지워달라는 임산부였습니다. 말이 지우는 것이지 그것이 살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개월이면 이미 머리와 손과 발, 다리, 몸통 다 갖춘 사람인 걸요. 초음파로 뱃속 아이의 손과 발과 머리를 보여주며, 정말 지우고 싶냐고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지워달라면 지워주면 되지, 그건 왜 보여줘요~"
그 임산부가 나에게 화를 내며 한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돌려보냈습니다. 진료실을 나서던 그녀가 별 이상한 의사 다 보겠다며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보더군요.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상에는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보다 죽이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개업하고서야 알았습니다. 가끔 먼저 개업한 친구들이 산부인과 의사 짓 못해먹겠다며 울분을 토할 때도 실상이 그런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죽이지만 차마 못할 짓이라고 그들이 괴로워했는데, 막상 저에게 그런 일이 닥치니 저 또한 도저히 의사로서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새 생명을 안전하게 받아내기 위해서 그간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해왔던 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아마 김형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려는 임산부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알려주었지요. 딸이라고 했을 때 시무룩해지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알았어야 했는데, 나중에 간호사를 통해 그들이 다른 병원에 가서 그 아이들을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던지...그 아이들을 내가 죽였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몸살을 앓고 난 후부터는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차츰 병원의 환자들이 줄기 시작했고, 병원도 적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장모와 장인이, 그리고 아내가 왜 다른 병원들처럼 환자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느냐고 저를 닥달했지만, 내 양심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출산을 위해 준비해둔 입원실에는 환자가 없는 날이 더 많았지요. 가끔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도 내 임상 경험으로 충분히 잘 받아낼 수 있다고 누누이 설명을 해도, 진찰만 받다가 출산할 때가 되면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하루는 어떤 임산부가 아이의 성별을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 태아는 여아였습니다. 여아라고 하면 분명히 다른 병원에 가서 지울 사람으로 보여 생명 하나 살려내자는 마음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들이라고...축하한다고...
드디어 출산일, 그 아이를 내가 직접 받아내었습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아이의 첫 울음소리였는지...내 손에 거꾸로 매달린 채 열심히 울며 호흡하던 그 여아는 참 건강했습니다.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을 지도 모를 그 아이. 그 날, 저는 그 아이의 아빠에게 멱살이 잡힌 채, 한참동안 갖은 욕을 다 먹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갓 출산한 산모가 그렇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경험도 처음 겪었습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병원은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환자가 찾아오지 않는 병원이니 당연한 결과였지요. 물론 아내와도 이혼을 했습니다. 법원을 나서니 막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고 싶지도 않았구요. 순환 전철을 타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얼마나 다행한 사람들인지 당신들은 모를 거야...뱃속에서 사라지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날이 김형을 처음 만난 날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삶의 의욕도 가지지 못한 채, 밤이 이슥한 시간에 그 지하 통로를 건너다가 스티로폼을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자는 노숙자들을 보았지요.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저도 깊은 잠이 자고 싶어졌습니다. 그 무리에 끼여서...
마침 빈곳이 보여 들어가 누워 잠이 들었는데, 참 오래간만에 깊은 잠을 잤었던 것 같습니다. 김형이 아침 먹으로 가자고 깨우지 않았다면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잤을지도 몰라요.
김형에게 노숙자 생활의 요령들을 배우며 함께 보낸 6개월은 내가 그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그 생활이 물론 힘들고 쉽게 지치고, 그 와중에도 어떤 공허함과 무료함, 무력감, 불안감들이 번갈아 가며 덮쳐 오는 자기상실의 생활이긴 했지만, 애쓰지 않아도 내가 산부인과 의사였고 내 나름의 아픔 속에 살았었다는 사실들이 까맣게 잊혀질 만큼 나에겐 오히려 복된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그때 자살이라도 했을지 모르니까요. 세상을 살아갈 아무런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그 어린 미성년 노숙자 부부가 출산을 하던 그 겨울날의 지하 통로. 새파랗게 질린 채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울부짖던 그들. 어린 나이에 사랑한 그들이 실수로 아이를 가졌고, 그 일이 들통나 집을 도망 나왔는데, 그 도망 나온 여자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고 같이 도망 나왔다고 말하며 천진하게 웃던 그 미성년 부부의 해말간 웃음을 김형은 기억하는지요? 아이를 낳아서 돌아가면 부모님들도 어찌하겠냐고 짐짓 걱정을 감추고 너스레를 떨며 우리를 웃겨주던 그 어린 부부. 그들은 그 아이를 낳겠다고 했었어요. 어떻게 생명 가진 아이를 죽일 수 있느냐고, 또 어린 우리들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증거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말하는 그들이 얼마나 내 눈에 대견하게 보였는지 모를 겁니다.
그들의 아이를 김형도 아시다시피 그 어둡고 추운 지하통로 안에서 내가 받아냈지요. 왜 그렇게 손을 자주 씻느냐고 김형이 물어보았지요. 혹시 내가 그들의 아기를 받아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었었던가 봅니다. 아기를 받으면서 그렇게 설레고 그렇게 기뻤던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난 아기를 받아든 그 어린 부부의 얼굴. 그 어린 얼굴들에게서 어떻게 그런 깊은 사랑의 표정이 솟아날 수 있는지...
그 아이의 탄생은 그 아이의 탄생으로만 끝나지 않았지요. 그 다음날 그 어린 부부가 아이를 안고 부모님들 곁으로 돌아가고, 내가 그 지하통로를 나와 미혼모들을 돕는 곳에서 일하게 되고, 김형도 그날로 김형을 기다리던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 모두 다 새로운 탄생이었지요.
축복 받은 탄생...
김형.
나는 요즘 아주 복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한 때의 실수로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긴 했지만, 세상이 그들을 버릴지라도 누구보다 아이를 낳고 싶어 열망하는 그들에게 내가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들이 뱃속에 잉태한 아이들이 각각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몰라도 괜찮아요. 새 생명의 태동을 느끼고 그 태동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마음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내 지식과 내 두 손이 그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김형에게 그간 미루어 오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홀가분하네요. 막상 하고 보면 이렇게 홀가분한 것을 왜 그렇게 감추려고만 했던지...
김형이 새로 시작하신 일이 가족의 사랑 속에서 더욱 번성하길 빌며...이만.
노숙자 친구 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창작 글이 아니라 해도
우리 사회에서 있을 법한 것을
너무 완벽하도록 잘 쓰셨습니다.
마음자리님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에도
노숙자가 된 사연을 너무 잘 표현 하십니다.
어디서 보았다고
마음자리님의 글이라고 기억은 해 냈습니다.
역시나, 아름문학 방이었군요.
두 번 읽어도 너무 생생하고 좋은 글입니다.^^
늘 좋은 덕담으로 저를 격려해주시는
콩꽃님, 감사합니다. ^^
이거 실화성 창작글 같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당
충성
긴 글인데 다 읽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ㅎ
실화같은 창작 글 잘읽었습니다.
너무 길지요? ㅎ
천상 이야기꾼입니다.
요즈음 늦게 등단하는 사람들 더물지 않던대 도전해 보심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 진짜로 ~~ㅎ
이야기꾼으로 이렇게 사랑 받고 있는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ㅎ
덕담 감사합니다~
실화같은 글 단숨에
읽었습니다.
단풍 님 말씀처럼
등단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실력도 부족하지만 저는 이렇게 알콩달콩 정 주고 받는 글마당이 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작글이었어요?
요즘 밀린 독서를 하느라 웬만하면 긴 글은 안 읽고있었는데. 지금 읽는 책보다 더 감동적이어서 천천히 화자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는 맘으로 읽었습니다.
저렇게 따뜻한 맘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꿈꾸는건 지나친 기대일까요?
맘 따뜻해지는 글 이었습니다.
늘~~ 행복한 일상되시길 ..
저는 그런 세상이 꼭 올 거라고 믿고 살지요. 분명 올 겁니다. ㅎㅎ
실화 내지는 마음자리님 경험담 같습니다 .
따스한 마음을 갖은 사람은 글도
흐믓한 글을 쓰시네요 ㅎㅎ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본 겁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