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9,2-3.11-14
형제 여러분,
2 첫째 성막이 세워져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제사 빵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을 ‘성소’라고 합니다.
3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참된 성소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마르 3,20)
열두 사도를 뽑으신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십니다. 군중도 뒤를 따르고 소문을 들은 이들도 모여듭니다. 이제는 유형의 성전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는 곳이 곧 성전이고 지성소가 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그런데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는 제자들과 군중만이 아니라, 그분을 붙잡으러 온 친척들까지 모여듭니다. 친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에 놀라 달려왔을 겁니다. 이 대목 바로 뒤에 베엘제불 논쟁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마귀 두목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속단해 퍼뜨린 듯하지요.
친척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만큼 적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친척인 예수님의 안위에 대한 염려가 앞섰겠지요. 혹 가문에 수치가 될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예수님을 위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지금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이들의 의도와 지향을 관상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메시아와 함께 출세와 영광을 바라는 이가 없지 않았을 것이고, 군중은 치유건 구마건 위로건 무언가 얻어내고자 왔습니다. 친척들도 인간적인 걱정이 앞섰던 것이고요. 이 모든 동태를 살피러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마르 3,22)의 의도야 너무 뻔한 것이겠죠.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찬미와 영광을 바치며 마음을 다해 섬기는 이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형의 성전 안에 존재하는 성소, 지성소와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참된 성막을 비교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히브 9,11)
인간 대사제는 지파에 따라 성소와 지성소에 접근할 지위가 주어집니다. 그는 율법이 정한 짐승의 피를 뿌려 사람들을 정화하지요.
예수님은 당신 피로써 온 인류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사람이 만든 성소가 아니라, 모상이고 그림자에 불과한 성소의 원형, 곧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공동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짓고 집회와 친교의 장소로 삼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도와 지향을 가지고 성전에 모여 각자의 바람을 아뢰고 청원을 올립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염원부터 세상 모든 피조물을 위한 기도와 헌신, 그리고 순수히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까지 주님이 계신 곳에 모여드는 이들의 모습은 참 다양합니다.
당시 종교제도 밖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 아버지께 올리신 제사가 온 인류를 위한 완전한 희생제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장소도 이스라엘 백성이 자랑스러워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성문 밖 해골터라 불리는 골고타 언덕이었지요.
우리가 겪고 있는 인류재앙적 감염병 사태가 "진리와 영 안에서 예배하는"(요한 4,23참조) 때를 앞당겨 준 듯합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전에 갈 수 없어도,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우리 각자가 성전이고,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이 주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지성소임을 절절히 체험하고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과 거룩하고 아름다운 지성소 안에 들어가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분 품에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며, 세상의 긴급한 필요를 위해 그분께 아룁시다. 우리 지향의 시작이 무엇이었든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차츰 정화되고 성화되어,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영혼이 되어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