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과를 증득하기 위한 파악-배의 비유
수행자는 온갖 병 일으키는
독의 성난 파도에도 견뎌야
왕이 물었다. “존자 나가세나여! 수행자는 ‘배’의 습성에서 세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에 관해 말씀해 주시지요!”, 존자가 답했다. “대왕이시여! 배가 여러 종류의 목재를 모으고 결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태워 건네는 것처럼, 수행자는 올바른 행위, 계행, 덕, 온갖 의무라고 하는 여러 종류의
지켜야 할 사항을 모으고 결합함으로써 여러 신들과 인간들을 열반의 피안(彼岸)으로 건네야 합니다.
또 배는 온갖 파도가 태산처럼 일어나 성난 듯이 흘러가며 널리 퍼지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마구 솟아올라도
그것을 견디는 것처럼, 수행자는 온갖 종류의 번뇌라는 성난 파도, 이익, 숭배, 명성, 공양, 비난받거나
찬양받는 일, 괴로움과 즐거움, 존경, 경멸이라고 하는 온갖 병을 일으키는 독의 성난 파도에도 견뎌야 합니다.
나아가 배가 끝이 보이지 않으며, 바닥이 깊으며 엄청난 소음이 있는 광대한 바다를 운항하는 것처럼 수행자는
네 가지 진리를 관찰하고 통달하는 일에 뜻을 두고 수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배’의 습성에서 배워야 할 수행자의 지분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중생의 세계를 차안(此岸)이라 하고 깨달음의 세계를 피안(彼岸)이라 한다.
중생은 이쪽 언덕인 현상세계에서 분별적 사고에 의한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저 건너 언덕은 모든 번뇌를 벗어난 적멸의 안락한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 언덕(此岸)에서 저 언덕(彼岸)으로 고해(苦海)를 건널 수 있는 도구가 뗏목, 또는 배로 표현되고 있는데
두 가지 예를 살펴본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설법하시던 도중, 무거운 돌을 물에 던지시며 물으신다.
“저 돌은 물에 가라앉겠는가?”, 제자들은 답한다. “당연히 물에 가라앉습니다.”,
“만약 무거운 돌을 배에 싣는다면 그래도 가라앉겠는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업(業)이 아무리 무겁다 할지라도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과 수행이라는 배에
오른다면 범부중생도 저 언덕(彼岸)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음을 설하신다.
또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피안(彼岸)으로 향하는 배가 있다.
반야(般若)는 중생의 세계가 번뇌로 인한 고(苦)의 세상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불법을 수호하는 용(龍)이 이끄는 배이다.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야용선은 인로왕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스님들을 태우고 노를 젓고 뒤에는
중생들을 태운 나룻배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조각으로 표현된 반야용선에는 배에서 내려진 밧줄에 ‘악착보살’이 신발 한 짝도 신지 못한 채 매달려 있다.
피안(彼岸)으로 향하는 길에 뒤늦게 동참한 보살은 악착같이 밧줄을 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해(苦海)를 건넌다. 용선에 미처 타지 못한 중생을 위해 나룻배를 연결하고, 밧줄을 드리워 함께 피안(彼岸)으로 가려는 것이다.
피안(彼岸)의 세계를 펼쳐 보이신 부처님께서 법(法)과 율(律), 믿음과 수행이라는 배를 띄우고 밧줄을 드리우셨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악착같이 타고 매달려 함께 고해(苦海)를 건너시길! 바랄것이다.
첫댓글 승려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