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R의 회심의 역작이었으나 매우 저조한 퀄리티로 발매되어 과대광고 소송에 휘말렸을 정도로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은 <위쳐3>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래도 CDPR은 <사이버펑크 2077>을 계속 패치하고 있으며 엣지러너라고 이름붙인 1.6패치와 함께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와 협업하여 제작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를 공개했습니다.
엣지러너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때는 그저 또 하나의 프로모션 프로젝트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공개 직후에 생각이상의 호평이 나오고 있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된 일부 장면들에서 뿜어져나오는 트리거 특유의 박력과 폭력성에 구미가 당겼습니다.
그리고 이미 가이낙스 시절 팬스가와 트리거 최초의 아니메였던 킬라킬을 인상깊게 본 터라 구해서 1화를 봤는데... 대단합니다.
사실 엣지러너는 프로모션 프로젝트로써 CDPR과 트리거가 협업하여 제작한 물건입니다. CDPR은 원래부터 게임 본편뿐만 아니라 시네마틱 동영상을 통해서도 위쳐3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구현해왔기도 하구요. 하지만 엣지러너는 CDPR의 '프로모션'에 불과하진 않습니다.
엣지러너는 CDPR 세계관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트리거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트리거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제는 '지배와 저항'이라고 생각하는데 엣지러너도 그렇게 보입니다.
트리거가 그려내는 세상에는 지배하는 자들과 지배당하는 자들이 있고(사츠키와 "옷을 입은 돼지"), 지배당하는 자들 중에 추레하고 꼴사납게 기존질서에 저항하는 별종이 나타납니다(저항을 위해 헐벗는 류코와 아예 성부터가 '아나키'인 아나키 팬티와 아나키 스타킹. 팬스가 극중에서 이 두 명의 아나키들은 대놓고 아나키즘을 노래부르기도 합니다).
엣지러너 1화도 그러했습니다. 돈이 많은 자들은 더 강력하고 더 최신의 하드웨어를 유지하며 아라사카 최상층에 올라 지배계층이 되지만, 돈 없는 서민들은 덜떨어진 하드웨어를 가지고 어떻게든 발버둥치거나(남주인공의 엄마) 길가에 널부러져 마약이나 브레인 댄스에 심취하다 토사물이나 쏟아내며 하루하루를 넘길 뿐입니다.
아니면 좀 더 야망있는 자들은 자신과 남의 목숨을 버려가며 한탕만을 노립니다.
이 세 컷에서 저는 엣지러너도 '지배와 저항'에 대한 이야기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리고 트리거가 그려내는 저항은 인민영웅 레닌류의 멋있고 영웅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이미 썼듯이 그저 추레하고 꼴사납게 버둥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비극적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해피엔딩도 아닌 그 무엇으로 끝납니다. 마치 인생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삐풀린 액션과 폭력성이 뭔가 해방감을 주어서 무척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빨리 2화나 더 보러 가야겠네요.
첫댓글 개인적으로 기대작이였는데 심의가 늦어져서 아직 한국에서 못 보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