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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에서 (생각대로 하면 되고!...) 언제 : 2009.01.22(목) 누구랑 : 목요산악회 따라 아내랑 며칠전 눈이 시릴만큼 아름다운 한라산 설경에 취해 아직도 눈이 멍먹한데 아내가 이번에는 태백산에 가잔다. 빵과버터 : 그래?...어디로 가서 어디로 내려온대? 아내 : 유일사 매표소애서 올라가 문수봉으로 내려 온대요. 빵과버터 : 그~랴?...그럼 나는 문수봉으로 갈 것도 없고 망경사에서 내려오면 되겠네... 아내 : 그건 알어서 하슈!... 안내 산악회에 따라다니다 보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취향은 대체로 주자(走者)파, 지자(遲者)파, 놀자파로 분류되는데 주자파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더 많이, 더 빨리 걸을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고 지자파는 반대로 어떻게든 널널하게 적게 걸을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고 놀자파는 문자 그대로 산행에는 관심없고 오고가는 차속에서 노래하고 춤주는 재미로 산행에 끼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자파라기보다는 차라리 설설 기는 기자파가 아닐까?....ㅋㅋㅋ 버스가 유일사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주자파들은 인정사정없이 산으로 달라붙고 총무님은 종종걸음으로 매표소로 달려간다. 빵과버터 : 여보야?...나는 화장실에 잠시 들렸다 갈께!... 아내 : 헤?.....혼자서 따로 입장료 내고 올라 올려면 댕겨오슈!... 빵과버터 : 머라꼬?..... 우리 산악회 총무님은 장난끼가 많은 분이다. 예를 들어 산행에 나선 40명의 회원들중 65세이상 경로자가 20명이라면 30명이라고 대충 후려치고 입장권은 10장만 사서 얼렁뚱땅 통과하는데 그 대열에서 쳐지면 검표원에게 나도 같은 일행이라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 어쩔수 없이 쌩돈을 내야하는 것을 아내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볼일을 참고 일행의 꽁무니에 따라 붙으니 얄상하게 생긴 여자 검표원이 한남자를 붙잡고 시비를 건다. 검표원 : 진짜 65세 경로우대자 맞아요?...주민등록증 내봐요? 한남자 : 오~잉?...진짜 민쯩을 까라고라?... 다른 남자들 : 허?...성님 오늘 술한잔 사야 되겠우!....ㅋㅋㅋ 얼굴이 벌개지다가 외꽃처럼 노래지는 검표원의 얼굴을 훔쳐보며 넓디 넓은 세멘트 임도를 오르다가 어디쯤에서 볼일을 볼까 싶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싶자 등로를 벗어난다. 그사이 아내는 물론이고 일행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나는 또 혼자다...ㅋㅋㅋ
2006.1.21. 다녀온 태백산
10:50(유일사 매표소) → 11:04(낙엽송 지역) → 11:24(사길령 삼거리) → 11:32(유일사 450m 이정표) → 11:51(유일사) → 12:48(주목 군락지) → 13:22(태백산 장군봉) → 13:32(단종 비각) → 13:35(망경사) → 14:55(반재 삼거리) → 14:55(단군성전) → 14:58(산행끝)
유일사 매표소에서 세멘트 포장도로를 10여분 오르면 널찍한 포장도로는 유일사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 좁은 산길은 화방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게된다. 화방재를 질러가는 산길이라 가파름이 만만치 않은데 이런데서 산행 초보와 고수의 행보가 갈리게 된다. 나도 아이젠을 차고 널찍한 길로 오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속을 뻔히 드려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최회장님이 어서 오라고 기다려 주니 이를 워째? 쩝...
가파른 오름길은 여러번 휘어지는데 휘어질때마다 숨을 돌리며 쉬니 최회장님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화방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기다려준 회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갈길이 정해져 있으니 바쁠 것도 없어 천천히 쉬어 간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유일사로 직접 둘러갈까 하다가 혹시나 길이 엄청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천제단으로 향한다.
삼층 석탑은 여전하네...
산꼭대기 석탑에 이렇게 실한 울타리가 꼭 필요할까?....
유일사는 등로에서 100여메타 내려 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유일사는 태백 지역에서 유일한 비구니(여승) 사찰로 작고 아담한 절이다.
유일사에서
유일사에서
유일사에서
유일사에 물품을 나르는 삭도
유일사 돌계단은 턱이 무척 높다
유일사에서 올라와 주목 군락지 지점에 이르니 낭랑한 독경소리가 태백산을 울린다. 내가 디카를 꺼내자마자 노련한 스님을 허리를 살짝 돌리는데 몸피를 보니 3년전 그 스님이 그 자리애서 시주를 한다.
나는 그저 주목의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이고..
태백산 주목은 그냥 나무가 아니라 신령스런 그 무엇을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경을 칠!...눈밭에 분혼색 고무 장화를 신고 나온 애기는 발이 시려 칭얼거린다. 젊은 엄마가 손으로 발을 녹여주지만 얼마나 따뜻해질지는 의문이다. 겨우 말귀나 알아먹는 애기한테 젊은 아빠는 "너 업어 달라고 않하기로 했지?" 라며 약속을 상기 시키니 무모한 부정에 짜증이 난다...철딱서니 없는 것들하고는!... 즈그들이 눈구경 하고 싶었으면 애기 단도리나 잘하고 나왔어야지!...
산허리를 가로지른 도로가 함백산 만항재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그리고 태백시 등 세 고장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 만항재라는 고개가 걸려 있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해발 1,573m) 줄기가 태백산(해발1,567m)으로 흘러내려 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이라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해발 1,313m로 지리산 정령치(해발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해발1,089m) 보다도 높다.
장군봉
천제단을 향하여
천제단은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원형제단이다. 천제단에서는 2000여 년 동안 천제가 올려졌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그러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구한말에는 우국지사들이 쓰러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구하고자 제를 올렸고,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린 곳이며, 일제시대에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다고 전한다. 지금도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천제가 올려진다
"위대하신 밝은 지혜를 가진 우리 하느님"이라는 뜻의 한배검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우람한 정상석이다.
태백산에서는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썰매금지"란 경고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천제단에서 단종비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고난이도 썰매코스..단종비각에서 망경사는 중코스...ㅋㅋㅋ
단종비각은 조선 5대 임금인 문종의 아들로 태어나 12세에 왕위에 즉위했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로 유배된 후 죽음을 맞은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이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라고 쓴 비석이 있다. 단종의 이름은 홍위(弘暐)이다. 문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 비(妃)는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 송현수(宋玹壽)의 딸인 정순왕후(定順王后)이다. 현덕왕후는 스물 다섯의 나이에 경혜공주에 이어 난산 끝에 홍위 왕자를 분만하였는데, 죽음을 앞두고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3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혜빈 양씨는 후덕한 여자였다. 태어난 지 불과 3일 만에 어머니를 여윈 세손 홍위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둘째 아들을 품에서 떼어 유모에게 맡기기까지 했다. 홍위는 할아버지인 세종의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명석했다. 세손 시절에는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의 지도를 받았고, 왕세자로 책봉된 후에는 이개와 유성원이 그의 교육을 맡았다. 홍위는 여덟 살이 되던 1448년(세종 30년)에 세손(世孫)에 책봉된다. 1450년,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하자 홍위는 세손에서 세자로 책봉된다. 그 때 홍위의 나이 열 살이었다. 1452년 문종이 죽자 홍위(단종)는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 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어린 것을 걱정하여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 보필할 것을 명하였고, 집현전(集賢殿)의 학사인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 등에게도 좌우에서 도와줄 것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그러나 1453년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인지·한명회·권람 등과 결탁하여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과 김종서를 암살하고 군국(軍國)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실권이 완전히 수양대군에 의해 장악된 가운데 1454년 정월에 단종은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다. 이듬해 윤6월에 수양대군이 자기 수하의 신하들과 의논하여 왕의 측근인 동생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 궁인 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시켰다. 또 단종을 보필하는 중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 등의 강요로,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壽康宮)으로 옮겨 살았다. 1455년(세조 1년)에는 성삼문·박팽년·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응부(兪應孚)·유성원(柳誠源) 등 소위 사육신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김질의 배반으로 발각되어 모두 참형을 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단종은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고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3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가, 한쪽 면은 벼랑에 가로막혀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천연의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또한 '동서 300척, 남북 490척'이라는 금표까지 세워 단종이 생활할 수 있는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수양대군의 동생이며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경상도의 순흥(順興)에서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자, 노산군도 다시 강등이 되어 서인(庶人, 평민을 뜻함)이 되었으며, 끈질기게 자살을 강요당하다가 1457년(세조 3년) 12월 24일에 영월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성삼문 등 6명을 사육신(死六臣)이라 하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분개하여 한평생을 죄인으로 자처한 김시습(金時習) 등 6명을 생육신(生六臣)이라 한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과 강봉(降封)은 200여 년 후인 1681년(숙종 7년) 신원(伸寃)되어서 대군(大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1698년(숙종 24년)에는 임금으로 복위되어 묘호(廟號)를 단종으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실록 역시『노산군일기』에서 숙종 때에야 『단종실록』으로 바뀌었다. 능은 단종이 목숨을 끊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이다.
월정사 탄허스님의 쓰신 현액
우리나라 3대 영산(靈山)인 지리산, 소백산(小白山)과 함께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알려진 태백산(太白山) 해발1,470미터에 자리한 망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652년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 자장이 함백산 정암사(淨岩寺)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 현재의 망경사 터에 문수보살 석상(石象)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암자를 지어 그 석상을 모셨다고 전해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물이자 가장 맛있는 물로 명성이 자자한 명수다. 땅속에서 쉬고 있던 용이 하늘로 오른 자리에 물이 쏫았다 하여 용정이라 하고 이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망경사는 시인 정호승의 표현을 빌리자면“새들이 걸어간 하늘가에 새똥처럼 버려진 절...”이다. 자장율사가 함백산 정암사(淨巖寺)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이곳 태백산 꼭대기에 문수보살 석상(石像)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그 석상을 모셨다고 한다.
웬 강아지 한 마리를 삼태기에 넣고 나타난 문수보살을 몰라보고 쫓아버린 자장율사는 뒤늦게 깨닫고 대성통곡하며 기다리기를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었기로, 문수보살의 넋이 육산인 태백산 봉우리에 유일 돌멩이가 되었다 해서 명명했다는 문수봉이다. 아내는 지금쯤 문수봉을 넘어 당골로 내려갈 것이다. 나는 아내가 싸준 미역국과 잡곡밥을 마다하고 망경사 매점에서 컵라면과 납짝소주 1병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니 문수봉을 바라보며 한모금씩 마시는 소주맛도 괜찮았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망경사부터는 트럭이 올라올 만큼 넓은 탄탄대로다.
썰매금지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비료포대 금지라고 쓰시지?....ㅋㅋㅋ
장군바위
당골
단군성전은 매년 개천절에 단군왕검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단군성전 안에는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이념이 새겨져 있다. 이 단어가 나오는 문헌은 <삼국유사>로,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오면서 천부인 세 개를 갖고 내려왔는데 환웅이 이때 3천 명의 부하를 데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고 웅녀와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는다 했다. 단군성전은 지난 93년에 신축된 기와목조 건물이다. 여기에는 국조통일기원단군상이 세워져 있는데, 울창한 나무들에 휩싸여 있어 단아하고 소박한 느낌이 든다
축제는 지금 준비중!....(산행기 끝) |
첫댓글 잘 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요...
세세한설명과 아름다운그림 감사합니다~~
천천히 쉬어 간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소주맛도 괜찮았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얼쑤! ^^ 기사파가 추구하는 산 철학입니까? 좋은데요. 수덩이도 따라해볼꺼나... 히~~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눈꽃축제 당일날 갔었는데 태백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오더군요. 하지만 유일사 입구부터는 함박눈이 펑펑내리더니 정상에 올라갈때는 몸을 못 가눌정도로 눈바람이 몰아쳤어요.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