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무슨 명분을 바로 세우고 싶었을까
자로가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서 정치를 해 주시기를 바란다면, 선생님께선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 세우겠다.”
자로가 물었다. “그렇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사정에 어두우십니다! 어째서 그걸 바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박하구나, 너는! 군자는 그가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는 말을 않고 버려 두는 법이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게 되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게 되고,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이 적절하지 않게 되며,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제대로 둘 곳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말로 설명할 수 있고, 말로 설명하면 반드시 실행될 수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의 말에 있어서 구차한 일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다!”
子路曰: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必也正名乎。子路曰:
자로왈 위군대자이위정자장해선자왈 필야정명호 자로왈
有是哉? 子之迂也。奚其正? 子曰:野哉! 由也。君子於其所不知, 蓋
유시재 자지우야 해기정 자왈 야재 유야 군자어기소부지 개
闕如也。名不正, 則言不順;言不順, 則事不成;事不成, 則禮樂不興;
궐여야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 사불성 즉례악불흥
禮樂不興, 則刑罰不中;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故君子名之必可言
예악불흥 즉형벌부중 형벌부중 즉민무소조수족 고군자명지필가언
也, 言之必可行也。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야 언지필가행야 군자어기언 무소구이이의
여기서는 자로와 공자가 위정의 문제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많은 실망을 하였습니다. 비교적 좋았던 시절은 위衛나라에 있었을 때였는데, 위령공衛靈公도 분명히 공자를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전기를 보면, 사람들이 여러 면에서 공자를 의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자가 위나라 재상이 되려 한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사람은 공자가 위나라 정권을 송두리째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단락의 토론 배경은 그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자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위령공의 태도를 보면 선생님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가 선생님께서 정치를 해 주시기 바라면서 선생님께 정권을 넘겨주겠다고 하면, 선생님께선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子將奚先―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이 ‘將’자인데, 사실 그렇게 될 리는 없다는 가설의 말투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위정의 첫걸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만일 그렇다면,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명분을 바로 세우는 것(正名)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로는 “그렇습니까?”(有是哉)라고 했는데, 이는 대단히 의문스럽다는 말투로서, 명분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뜻입니다. 명분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로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사람들이 선생님을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라고 하는데, 선생님은 정말 현실에 어두우십니다(迂). 명분을 바로 세우든 바로 세우지 않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이 ‘명’名자에 대해 알아봅시다. 우리 문화에서 말하는 ‘명’名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옛날에는 논리와 사상을 연구하는 ‘명학’名學이라는 학문이 있었습니다. 엄격히 말해서 ‘정명’正名이란 바로 사상적 개념을 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말로 한다면, 문화 사상의 중심이 바로 ‘정명’正名의 요점입니다. 또, 논리학에서 개념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을 ‘정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명’正名의 뜻을 이해하였으니,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공자는 정치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사상을 분명히 영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화 사상의 노선을 올바르게 영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의 말을 듣고, 문화 사상은 빈 껍데기 같은 것인데 구태여 상관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자로를 꾸짖으면서 말합니다. “이놈아, 너는 정말 천박하구나. 허튼소리 하지 마라. 진정으로 학문이 있는 군자라면 어떤 일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제멋대로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한다.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이해하면 이해한다고 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군자의 품위와 수양이다.”라고 했습니다. “개궐여야(蓋闕如也)”, 차라리 그런 결점을 유보하고는, 그 분야에 대해서 자신이 알지 못하며 연구해보지 못했다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자로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가르친 다음 계속해서, “반드시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하는”(必也正名) 이치를 설명하여 중심 사상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공자는 “명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名不正, 則言不順)는 것을 정치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말’言은 문자 및 이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일은 비합리적인 일이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읽어 보면, 정치의 변화 발전은 모두 “명분이 정당하면 말도 이치에 맞는다.”(名正言順)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또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는다.”(事不成, 則禮樂不興)고 했습니다. 이것은 문화적인 정권이 없으면 문화적인 사회가 있을 수 없고 입법 제도도 제대로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법치의 튼튼한 기초를 마련할 수 없게 되어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핵심은 사상적․문화적 영도로서, 겉으로 볼 때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사실 그 영향은 심각하고 거대합니다.
우리가 사상 문제로 역사를 살펴본다면 인류의 전 역사는 사상 전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전 세계의 문화 사상은 거의 마비 상태에 빠져 있어 공허하고 빈약합니다. 좋게 말하면 물질 문명의 발전이고, 나쁘게 말하면 물질적 욕망이 날로 커지면서 인류의 지혜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문화 부흥을 위해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시도 늦춰서는 안 될 중대한 사명입니다.
문화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신성하고도 고달픈 책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맡긴 책임일까요?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것입니다. 지난날의 것을 이어받아 앞날을 개척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비로소 사상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삶에서 이들은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묵묵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 변화는 모두 이런 쓸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습니다. 본인이 죽고 나서야 그의 사상이 인류를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현실적 생활로 볼 때는 평생 가난과 외로움이 따를 뿐인데, 사상을 연구하고 문화를 추구하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정신적 삶의 가치는 참으로 위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각자의 인식에 맡길 수밖에 없으니, 자신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의 문제와 사상 문화의 중요성을 확대시켜 봅시다. 만일 “백성들이 손발을 제대로 둘 곳이 없는”(民無所措手足)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일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게 되니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예컨대 20세기의 시대 현상을 살펴볼 때,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계 각국에서 극단적인 사상에 기울어진 사람들은 지식인들, 그것도 최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상한 현상은 많은 외국 자본가들의 행위인데, 그들은 극단적인 사상을 동정하는 노선을 간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난뱅이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맹종하고 진정한 사상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으며, 이 시대의 사상문화를 연구하고 진정한 학문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겉보기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영향은 매우 큰 것이 바로 문화사상입니다. 문화사상은 당장은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시대 조류를 형성하고 국가 운명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줍니다. 심지어 문화 사상이 역사를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으므로, 정치 철학적 관점에서 유의해야 합니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듯한 수많은 일들, 예를 들면 길거리에 담배 꽁초를 버리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하나 버리고 저 사람이 하나 버려 사람마다 하나씩 버리면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 도시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듯이,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일이 큰 문제를 초래합니다. 바로 공자가 한 말처럼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사상도 바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손발조차 둘 곳이 없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는 백성들이 어떤 사상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공자는 결론적으로 “군자가 명분을 정하면 반드시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君子名之必可言也)고 했습니다. 이 ‘명’名자에는 사상 문화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정치 철학에서 차지하는 사상 문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전통 사상은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이치에 맞아, 허황된 이론이 아니며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상 풍조는 모두 지엽적인 응용 사상이지 기본적인 철학 사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인심은 갈수록 혼란해지고 세상 풍조는 날마다 나빠지고 있습니다.
공자는 위정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사상 문화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문화에서 사상 문화와 언어 행위의 원칙은 바로 실천을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일단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고, 그것도 평이하고 실질적으로 해야 합니다. 허황된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니라 평이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우리 정치 철학의 최고 원칙입니다. 요컨대 공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사상이 가장 중요하다. 이 사상은 결국 ‘정명’正名으로 함축된다. 범위를 축소시켜 말한다면 명칭과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보를 맡은 사람은 한마디 표어나 한마디 소제목을 사용할 때도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잘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명’正名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논어별재에서
첫댓글 목표가 명확히 세웠다면 그것을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