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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51회>
씬 숲길(밤)
유장자 집 근처 길이다. 궁예들이 바다가 보이는 숲길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함께 오던 금대와 염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은부와 그의 군사들, 그리고 아지태가 궁예를 모셔오고 있다.
궁예 허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정주를 그 동안 한번도 와보지 못했어. 유장자는 좋은 바다를 가지고 있구먼 그래.
아지태 송악의 왕장군과 더불어서 정주의 유장자도 상당한 거상이라고 들었사옵니다.
궁예 (끄떡이며) 송악이나 개성사람들은 대부분 장사에 밝고 담이 크다더니만 헛말이 아닌 모양이야. 그러니까 무려 백 척이 다 되는 배를 모으고 또 만들고 있지. 보통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 아닌가 말이야.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그러니까 폐하께오서 다 알아보시고 이 나라의 재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기신 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건 그렇소이다. 허허허... 유장자는 이 나라 대룡부의 부령이지. 내가 참으로 높이 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불평 한마디 없이 받아들이고 뜻을 모으는 그 합의 정신이야.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재산들이 없어질 것인데 말이야.
은부 신이 알기로는 유장자가 패서 일대의 호족들 상당수에게 이번 공역에 소용되는 자금을 은밀히 모으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허허....그런가...? 허긴 워낙 방대한 일이니 그럴 만도 하네.
은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일을 빌미로 하여 잘못하면 붕당이 생기고 저들의 특별한 집단세력이 형성되는 것이옵니다.
궁예 왕건 아우가 이번 계획을 맡고 있고 유장자가 그것을 돕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일세. 그리고 누구보다도 짐이 허락한 일이고.... 지나친 경계는 저들의 의욕을 꺾을 수도 있어.
은부 ................
궁예 유장자집은 아직도 멀었는가?
은부 이제 거의 다 왔사옵니다. 폐하께서 갑자기 납시면 놀랄 것 같아 금대와 염상부장을 먼저 보냈사옵니다.
씬 유장자 집 외경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유장자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유장자 (E) 무엇이라고 폐하께서 납신다고?
씬 동 집안 마당
집사장이 서 있고, 금대와 염상의 모습들이 보인다. 유장자가 방 앞에 서서 놀란 표정으로 묻고 있다.
유장자 폐하께서 어디쯤 오고 계시오?
염상 이미 근처에 다 오셨사옵니다.
유장자 허허...이런 ... 어떻게 기별도 미리 아니주시고..... 이보게 집사장, 별채 왕장군에게는 알렸는가?
집사장 예, 어르신
유장자 허어....이렇게 황망할 때가....
금대 폐하께서 남들이 모르게 은밀히 거둥하시는 일이옵니다. 어서 준비를 갖추시오소서.
유장자 알았소이다....... 알았소이다. 이보게 어서 안사람들에게도 이르고 폐하를 영접할 차비를 차리게.
집사장 예, 어르신.
집사장이 달려가고 때마침 저 쪽에서 왕건이 세 가신들과 함께 급히 이들에게로 온다.
왕건 폐하께오서 납신다 하셨사옵니까?
유장자 그렇다 하시네. (세 형제보고) 아니 그대들도 아직 여기 있었는가?
왕건 아, 예. 숙부님만 먼저 가시고 이 사람들은 군사훈련관계를 의논하느라......
유장자 허어....그랬구먼..어서 나가세.
그 데 소리들이 들려 온다.
내관 (E)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 폐하 납시오.
이들 급히 대문께로들 나간다.
씬 유장자의 집 외경
유장자들과 왕건, 세 의형제들이 급히 대문께로 나온다. 궁예와 아지태 은부들이 말에서 내려 대문 앞에 서있다. 은부가 들어온다.
내관 대왕폐하 납시오. 대왕폐하 납시오.
궁예 (반갑게) 오, 저기 아우들이 나오고 있구먼...
은부 ........?
왕건과 유장자들이 급히 대문으로 나와 궁예에게 예를 올린다
유장자 어서오시오소서, 폐하... 야심한 시각에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왕건 어서오시오소서, 폐하...
궁예 왕건아우와 대룡부령이 보고 싶어서 왔소이다. 허허허..
유장자 이리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그저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궁예 그럽시다. (세 형제보고) 오, 그대들도 이곳에 있었구먼... 반갑네.
그들 예, 폐하...
궁예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유장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다.
씬 동 집 부엌
하녀들이 분주하게 음식장만을 하고 있다. 부영과 부영 모가 그네들을 독려하며 음식상을 본다.
부용 모 폐하께서 오셨네. 다들 정신들 바짝 차리게.
시녀들 예, 마님.
부용 모 부용아.. 곧 음식상을 들여야 할 것이니 어서 준비를 하거라.
부용 소녀가 말이옵니까?
부용 모 황제폐하께서 오셨느니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어서.......
부용 예.
씬 그 곳 사랑
궁예가 상석에 가 앉고, 유장자와 왕건도 자리에 앉는다.
유장자 폐하께서 오시니 소신의 집안에 이만한 광영이 없겠사옵니다.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허허허.. 무슨 말씀을... 아무튼 고생들이 많소이다. 그래, 아우도 잘 지냈는가? 계속 이곳에 있었는가..?
왕건 예, 폐하.. 폐하께오서 이처럼 신의 뜻을 가납하여 주시었고 또한 이토록 관심을 보여주시니 황공하기 그지없사옵니다.
궁예 무엇을... 다 자네의 생각이 지극히 옳고 이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 아닌가..? 아무튼 고생이 많으이..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용 모 (E) 나으리... 주안상을 들이겠사옵니다.
유장자 오.. 그렇게 하시구려. 폐하.. 상을 들이겠사옵니다.
궁예 그러시구려. 아무래도 술 한잔은 있어야겠지. 허허허...
부용이 시녀들과 함께 상을 들여와 선다.
유장자 소신의 여식이옵니다.
도영 도영이라 하옵니다.
궁예 허허허. 일전에 말하였던 그 처자구려. 이토록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다니...... 대룡부령께서는 복도 많으시오.
유장자 황공하옵니다, 폐하.
도영 소녀는 이만.... (밖으로 나간다)
궁예 이보시오, 대룡부령... 그대의 여식에게 정해놓은 혼처가 있소?
유장자 아직은 없사옵니다만......
궁예 그래요? 허허허.. (의미심장하게 왕건을 바라본다) 그래 아우... 금성에 깃발을 꼽는 일은 어찌되어가고 있는가..?
왕건 금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사옵니다. 얼마 전에 그곳에 밀사를 보냈사옵니다.
궁예 밀사...? 밀사라 했는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신의 사촌 아우를 생전에 도선대사께서 머무르시던 백계산 옥룡사로 보내놓았사옵니다.
궁예 ..............
왕건 금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곳의 유력한 호족들을 먼저 포섭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사옵니다.
은부 위험천만한 모험이 아니오이까? 저들의 호족들은 모두가 백제에 머리를 두고 있소이다. 그것이 가능하겠소이까..?
왕건 안전을 보장할 만한 준비를 했사옵니다.
은부 그게 무엇이오?
왕건 소장은 소시 적에 도선대사님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분께서 제게 선물을 하나 남기셨지요.
아지태 선물이라 함은... 무엇이오, 왕장군...?
왕건 흔히들 도선비기라 부르는 것이옵니다.
궁예 (놀라며) 도선비기?
모두들 놀라며 왕건을 본다. 아지태가 마른침을 삼키고 은부는 안면근육마저 떨고 있다. 그러나 궁예는 태연하다.
왕건 예, 폐하.. 도선비기는 글자 그대로 도선대사께서 남기신 책이시옵니다. 그분의 것을 가지고 그분이 창건하신 그 절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협상을 하는 것이옵니다.
아지태 도선비기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말씀이시오?
왕건 그렇습니다.
은부 도선대사께서 사실로 그 비기를 왕장군에게 주었소이까..?
왕건 그렇습니다.
궁예 ..... (관심이 있다)
은부 도선비기란 수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보고싶어 하는 책이올시다.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있소이까..?
왕건 허허허, 그렇게 궁금하시오이까..?
아지태 ...........?
은부 비기에는.... 천하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적혀 있다 들었소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왕장군이 송악의 주인이며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라 적혀 있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오?
모두들 ...........?
은부 그것이 사실이냐 물었소이다.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궁예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왕건 어인 참람한 말씀이시옵니까? 도선비기 어디에도 그런 대목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비기에는 사람의 성품과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되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 하였습니다
아지태 ....... (뚫어져라 왕건을 본다)
왕건 도선비기의 내용은 군사를 쓰고, 진을 설치할 때 필요한 지리와 천시를 읽는 법, 산천에 제사지내는 법과 감통하는 법 등 혼란한 세상을 사는 이치에 대해 적혀 있사옵니다. 원하시면 그 도선비기가 돌아오는 대로 보여드릴 수 있사옵니다.
아지태 (갑자기 박장대소) 하하하하.... 본래 비기란 거짓이외다.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적어도 학문을 한 사람들은 그런 비기나 미신 따위는 믿지 않소이다.
모두들 ..............?
아지태 소신은 왕장군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사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폐하..? 도선은 일대의 고승이옵니다. 그런 분이 요설이나 다름없는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은 낭설이라고 보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왕장군이 그 내용은 이야기하고 폐하께 보여드리겠다 하지 않사옵니까..?
궁예 하하하. 그렇겠지.. 그럴 것이야. 사실 운명이란 만들어 가는 것이야은장군, 이제야 의심이 풀렸는가?
은부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신은 그 도선비기를 보고 싶사옵니다. 왕장군, 돌아오는 대로 보여줄 수가 있겠소이까..?
왕건 그리 하겠습니다.
궁예 (손을 내저으며) 아니야, 아니야... 나는 보고 싶지 않네. 허튼 예언서 따위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단 말이야. 허약하고 못난 사람들일 수록 그런 것에 미혹되고 정신을 빼앗기는 법이지. 할일 많은 세상일세.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런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운명을 맡긴단 말인가..? 왕장군?
왕건 예, 폐하...
궁예 그것이 다시 돌아오거든 불에 태워 없애 버리게.
모두들 ......... ?
궁예 다시는 그러한 것들로 하여 오해나 불편한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게나, 태워버리란 말일세.. 알겠는가..?
왕건 예, 폐하....
궁예 은장군은 이 사실을 내원에게도 전해 주게나. 알겠는가..? 내원의 일에 참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
은부 예, 폐하...
궁예 자, 자... 이제는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거 괜한 이야기에 시간을 다 보냈구먼...
씬 그 밖
세 가신들이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사랑 쪽을 바라보고 있다.
박술희 갑작스레 어인 왕림이실까요?
능산 그러게 말일세..
유금필 폐하께서 주군께 힘을 실어주시려 하시는 것 같네.. 참으로 대단한 우애와 신뢰가 아닌가?
박술희 (끄덕인다).......
씬 다시 그 사랑
궁예와 왕건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궁예 자네 나이가 올해 몇이던가?
왕건 ...... 올해로 스물 일곱이옵니다.
궁예 스물 일곱이라.. 이제 곧 삼십을 바라보게 생겼구먼.. (고개를 흔들며 뭔가 생각한다)
왕건 ....?
궁예 그 나이가 되도록 혼자를 고집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왕건 아직은 때가...
궁예 그렇지가 않아. 벌써 스물 일곱이라 하지 않았어? 이보시오, 유장자..?
유장자 예, 폐하.
궁예 조금 전에 보니 경의 여식은 참으로 참해 보이더이다. 어떻소이까? 송악과 여기 정주가 사돈이 되는 것이..?
유장자 허허허.... 성혼이란 인륜지 대사이옵니다. 어디 쉽게 되겠사옵니까..?
궁예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시구려... 누군가 자리를 깔아 주어야 광대도 춤을 추는 법이야. 서로가 노력해 보시구려. 아우도 잘 생각해보고.....음...?
왕건 ..............
궁예 불가에서는 인연의 소중함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오. 인연이란 결코 거저 생기는 법이 없어. (술 마시며) 왕장군이 정주의 유장자 집에 와 있는 것도 인연이고.. 이 집안에 저토록 참한 처자가 있다는 것도 또한 인연이란 말이오.
모두들 .........
아지태 하하하...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아니옵니까..? 나이 스물 일곱에 총각인 천하의 명장 왕장군이시고 또, 정주 명문가의 외동따님이신 귀한 처녀가 한 지붕아래 있으니 말이옵니다.
궁예 하하하.. 그렇소이다. 아학사의 말이 옳소이다. 한번들 잘 생각해 보시구려..... 자, 그 얘기는 뭐 그쯤하고... 내 왕장군과 대룡부령에게 기왕에 이곳에 왔으니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마는.....
유장자 말씀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나라이름을 바꾸는 것과 황도를 옮기는 일 말인데..... 아무래도 여기 아지태 학사의 말이 옳은 듯 싶어서...
은부 ..............
왕건 ..........
궁예 한편으로는 왕장군의 그 금성을 공취하는 일을 추진하면서 또 한쪽으로는 황도를 옮기는 일을 추진해야 할 것 같아.
왕건 폐하. 그 일은 신이 금성공략을 끝내고 하신다 하시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마음이 급하단 말일세.
모두들 ..............?
은부 폐하.... ?
궁예 (무시하고) 송악은 대대로 아우가 살아온 곳일세. 형님이 되어서 아우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나라의 주인이 계시온데 어찌 신하의 땅을 운운하시옵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폐하...
아지태 물론 그렇습니다. 감히 신하로서 폐하의 땅을 운운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지요. 그러나 왕장군은 폐하의 충신이시오. 폐하의 신하로서 폐하의 이름으로 송악을 다스리고 그 명예를 지켜왔다는 것은 결코 죄라 할 수 없을 것이오.
은부 ............. (노려보듯 아지태를 본다)
아지태 폐하께서 송악을 왕장군의 땅이라 하는 것은 황제의 도성으로서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하는 그런 뜻이옵니다. 좀더 큰 도성과 황궁을 만들어 천하에 새로운 국가의 위용을 나타내고 싶으신 것이 폐하의 뜻이올시다. 철원은 폐하께서 기업을 이르키신 성스러운 발원지이올습니다. 산천의 지세 또한 으뜸 중에 으뜸이고...
왕건 하오나 폐하... 신은 말씀드렸사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굽어 살피시오소서.
궁예 아니야. 아니야... 지금 옮기자는 것은 아니고... 한번 살펴보겠다는 것이야. 지금부터 잘 살펴봐야지...
아지태 물론, 물론이올시다, 왕장군. 폐하께서는 다만 이 일을 확정시키려는 것이올시다. 확실하게 해 두시려는 것이지요.
궁예 그렇지, 바로 그걸세. 아학사의 말 그대로야. 이제 결정은 되었다, 이 일은 더 번복할 수 없다,
왕건 ...........?
궁예 누구보다도 아우가 이 일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우와 더불어 내원도 그러하고 경들 둘만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이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갈 것이네. 그래서 겸사겸사 왔어. 아우의 땅 송악도 찾아가고 또, 나는 내 땅 철원으로 돌아가고, 허허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말이야.
모두들 ..............
궁예 자들 듭시다... 오늘은 늦게까지 아우와 술 좀 마시고 모처럼 나왔으니 내일은 이 주변구경을 좀 하십시다. 허허허....
그러한 궁예의 얼굴에서..
씬 황궁 외경(낮)
씬 동 내원 마당
종간이 마당에 서서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고심하고 있다.
종간 (E) 폐하께서 아지태를 데리고 정주로 가셨다? 정주로...? 물론 왕건과 유장자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아지태와 나눈 이야기를 꺼내시겠지. 어찌할꼬.....? 아지태 그 자를 어찌할꼬.. 그 설익은 학자가 도대체 언제까지 폐하를 충동질 할 것인가..? 저 미련한 자는 섣부른 유학이 이 나라에서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위험천만하고 가소로운 일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야..
씬 동 조정 회의실
신료들이 모여 있다. 홍유, 배현경, 복지겸, 환선길, 김언, 김락, 종희, 이흔암, 박지윤, 장자 1, 2 등도 다 와 있다. 장내는 조금 어수선하다.
박지윤 오늘 여러 신료분들을 오시라 한 것은 황도를 옮기는 것에 관하여 허심탄회하게 의논해 보자는 뜻이오이다.
환선길 황도를 옮긴다.. 허 그참... 왜 요즘 따라 이렇게 어려운 얘기들이 계속해 나오는지 모르겠소이다.
박지윤 아무래도 우리 신료들이 의견을 한데 모아 폐하께 주청을 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라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나 황도를 옮기는 일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복지겸 대체 그 일은 언제 어디서 나온 이야기이옵니까..?
박지윤 이미 소문에 소문을 달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생각을 굳히신 듯 하다 이 말씀이외다. 그러니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신료들의 뜻을 모아 폐하께 간청을 드릴 것은 드리고.... 뭐 그래야 하지 않겠소이까..?
장자1 그렇습니다. 신료들로서 해야할 일은 해야지요.
장자2 옳은 말씀이십니다. 철원에서 이곳 송악으로 천도를 한 지 이제 겨우 수삼 년에 불과하오이다. 헌데 다시 천도를 감행함은 무모한 것이 아니오?
이흔암 허허허. 거 아지태라는 자가 굉장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려...
홍유 그런데 황도를 어디로 옮긴다 하시는 것이오이까..?
배현경 소문을 이 사람도 들었습니다마는 뭐 철원인가..? 어디라 하지요..?
김락 철원이라면 한편 일리도 있는 곳입니다 그려. 폐하께서 나라를 일으키신 곳이 아니오이까..?
김언 그것도 그렇지만 기왕에 이곳 송악에 황도를 세우셨사옵니다.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종희 그렇구 말구요. 그곳에 성을 짖고 관청을 세우고 백성을 모으자면 어마어마한 공역이 될 것이옵니다.
박지윤 그래서 하는 말이올시다. 결국은 대부분의 의견이 이 일만은 불가하다 이런 것인데...
복지겸 그러나 아직 폐하께서 황도를 옮기는 일은 말씀을 아니 하셨습니다. 과연 누가 이 이야기를 꺼내고 불가함을 아뢸 것이오이까..?
모두들 .......... (대답이 없다)
박지윤 헌데, 오늘따라 어떻게 신천의 강장자께서 아니보이십니다마는....?
환선길 그러게 말입니다.
씬 신천 강장자집 안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문중사람들이 강장자 주변에 앉아있고 한 젊은이가 강장자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다.
강장자 오냐, 오냐.... 허허허... 참으로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게 생겼다. 네가 내 아들이야. 아들이 되는 것이란 말이야.
양자 예, 아버님.
강장자 황후마마를 있게 하신 집안이니라. 우리 집안은 이 나라 최고의 명문가니라. 마땅히 대가 없었는데 오늘같은 자리를 만들게 되어 조상님들에게 면이 서게 되었구나. 아 기쁘구나. 참으로 기쁘다.
장황한 강장자의 웃는 얼굴에서...
씬 황후전
연화가 초췌한 얼굴로 동경을 보며 화장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 백씨가 아기를 어르고 있다. 슬이가 보고 있다.
백씨 볼수록 건강한 태자님들이시옵니다. 삼칠일이 지나고 백일이 다 되었는데 도리질하는 것부터 더 커 보이시지 않사옵니까..?
연화 ............ (미소만)
백씨 어떻사옵니까, 마마..? 두분 아기씨가 참으로 이쁘시지요...?
연화 제 자식 미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백씨 호호호... 이 할미는 그저 요즘 같아서는 하늘을 날 것 같사옵니다. 아이구, 참으로 잘두 생기셨지. 보시오소서, 마마. 태자님들이 이리도 잘생기셨습니다. 호호호호.....
연화 .........
슬이 그러하옵니다, 마마. 태자 아기씨들이 황제폐하를 꼭 뺴닮았사옵니다.
연화 .........
백씨 그렇구 말구, 닮구 말구.... 마마.... 지금 집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연화 잔치라니요..? 무슨 잔치를 말입니까..?
백씨 호호호... 그래도 한 집안을 이어가는데는 딸보다는 아들이 있어야 하는가 보옵니다. 지금 신천에서는 양자를 들이는 일로 시끌벅적 하옵니다.
연화 .........예? 양자를요..?
백씨 마마는 황궁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늙었고 누군가가 집안을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화 집안을 이어간다구요..? 단순히 그래서입니까..?
백씨 그래서라니요..?
연화 어머니께서는 이 영화가 얼마나 갈 것이라 생각하시옵니까?
백씨 마마.....
연화 (태자들을 가리키며) 남의 자식을 들여 대를 이어 무엇을 할 것이옵니까..?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이옵니까..? 아버님은 무언가를 오해하시는가 보옵니다.
백씨 오해라니요..?
연화 제가 황후이고 내 자식이 태자들이라 하여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아버님께 조심하라 하시어요.
백씨 ......... 마마..?
연화 폐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아직도 아버님은 모르십니다. 영화나 권력따위... 일직부터 미련을 갖지 말라고 하세요, 어머니...
씬 정주 바닷가
궁예, 왕건, 유장자, 아지태, 은부, 세 가신들이 멀리 서서 저만큼 벌어지고 있는 공역장을 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역장은 바쁘다.
궁예 정주 또한 송악에 버금갈 만큼 정말 커다란 포구이구려.
유장자 그러하옵니다. 송악과 정주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형제지간 같사옵니다.
궁예 유장자... 그대 또한 이 넓은 바다만큼이나 도량이 큰 사람이오.
유장자 ............
궁예 그대는 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소. 그대의 재물로 수군과 함선을 만들고 있지 않소이까?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암 그렇구 말구....
유장자 황공하옵니다. 많은 신료들이 음으로 양으로 실은 함께 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바다 보며) 대단해. 저 엄청난 배들이 백제로 들어가 짐의 깃발을 꼽는단 말이지..? 대단해, 참으로 대단해... 왕장군, 참으로 기발한 생각을 해 주었어.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자, 우리는 이쯤해서 돌아가야겠네.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니 짐이 저 공역장에 나타나면 아니 될 것이고...
왕건 허허허... 그렇사옵니다, 폐하. 아무리 미복을 하고 납시었어도 적의 첩자들이 알아챌 것이옵니다.
궁예 그럴 수도 있을 게야. 멀리서나마 보았으니 돌아가도록 해야겠네. 그대들도 고생이 많네 그려.
세가신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하하하, 이보게, 유부장?
유금필 예, 페하.
궁예 갑자기 경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먼... 철원에서였든가..? 우리 환장군하고 아주 볼만한 검무를 보여주었었지.
유금필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끄덕이다가 박술희에게) 아참, 박부장 자네는 요즘 견훤의 누이와 잘 되어 가는가..?
박술희 소식이 끊겨 이후의 사정을 모르고 있사옵니다.
궁예 하하하하.... 적과의 사랑이라? 이 얼마나 애틋한 이야기인가..? 어서 통일이 되어야겠네 그려. 그 옆이 이름이 능산이라고 했든가..?
능산 예, 폐하.
궁예 참으로 사나이답게 생겼도다. 훗날 큰 일을 할 것 같구먼...
왕건 그렇사옵니다. 무예가 출중하고 인품이 중후하옵니다.
궁예 왕장군은, 아우는 참으로 좋은 수하들을 두었어. 자, 은장군, 가세..?
은부 예, 폐하..
왕건 조심히 살펴가시오소서.
아지태 왕장군, 조정에서 또 보십시다. 허허허.....
유장자 살펴가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다. 궁예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아지태들과 함께 그곳을 벗어나고 있다.
씬 그 길
궁예 이보시오, 아학사..?
아지태 예, 폐하
궁예 나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저토록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아우와 신료들을 두었어. 목숨과 재산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를 위해 일하고 있는 저들을 보시오. 나는 행복한 사람이오.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암, 행복하고 말구... 이번에는 백제의 짐의 영토를 세우는 일이야. 틀림없이 성공을 할 것이야. 저들이라면 꼭 해낼 게야
그러한 궁예의 표정에서...
씬 오다린의 집 부근 어느 길
옥룡사의 주지가 왕식렴들을 이끌고 오다린의 집 근처로 들어서고 있다. 모두들 변복을 하고 되도록 얼굴들을 감추고 있다.
주지 이제 다 왔소이다. 바로 저곳이 오장자 댁이요.
세사람 ....... (본다)
주지 그대들 주인이라는 왕건장군은 참으로 영명한 사람인 것 같소이다. 허허허... 그대들을 믿게 하기 위해 우리 큰 스님께서 쓰신 도선비기를 가지고 왔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보검이라..?
변사부 우리 주군 왕장군님과 옥룡사의 인연은 불문의 가족관계가 되겠지만 오장자와는 바닷사람의 의리가 먼저일 것이옵니다.
주지 그렇겠지요. 바닷사람들의 끈끈한 의리는 예로부터 잘 알고 있소이다. 자, 사람을 불러 보십시다.
이들은 오다린의 집 앞에 이르러 사람을 부른다.
주지 계시오이까..? 안에 계시오이까..?
그러자 집사가 나와 주지에게 합장을 해온다.
집사 아니, 옥룡사의 주지스님이 아니시옵니까..?
주지 허허허, 그렇소이다. 오장자께서는 안에 계십니까?
집사 예, 오시기 전에 기별을 주시어서 지금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자, 들어가시오소서.
그들 집사를 따라간다.
씬 동 집 마당
이들이 들어서자 마침 안에서 나오던 도영이 주지에게 합장을 한다. 그리고 왕식렴들을 본다.
오다린 어서오시오소서, 스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사옵니다.
주지 별고 없으셨소이까, 장자어른?
오다린 예. 헌데 이 분들은.....?
세사람 ............... (합장으로 인사한다)
주지 들어가서 말씀하시지요. 차한잔 주십시요? 허허허....
오다린 예, 일단 안으로들 드시지요.
오다린과 왕식렴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도영과 시녀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도영 이상하구나.
시녀 뭐가 말이옵니까?
도영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지 않느냐..? 바로 어제 사람을 보내 서찰을 보내왔는데 오늘은 옥룡사 스님께서 이상한 손님들을 데리고 왔어. 장사치 같지는 않고...?
그렇게 보는 도영의 시선에서....
씬 동 집 사랑
주지와 왕식렴, 변사부, 이치, 오다린 등이 둘러앉았다.
오다린 어제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귀한 손님들이란 이 분들을 말씀하셨습니까..?
주지 허허허... 그렇소이다, 장자어른. 우리 옥룡사에도 귀한 손님이올시다마는 따지고 보니 용무를 볼 일은 내가 아니라 오장자였더구려.
오다린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스님..?
주지 사연을 잠시 들어보니 이 사람들은 오장자 어른과 동무가 될만한 사람들입디다.
오다린 아니 스님..? 동무라니요..? 이들이 누구이길래..? (보다가) 댁들은 어디서 오시었소..?
변사부 고려국 송악에서 왔습니다.
오다린 송악....?
오다린이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잠시 긴장이 흐른다.
오다린 송악이라니..? 소금이 필요해서 오셨소이까..? 장사들을 하시오..?
주지 ..........(웃기만 하고)
왕식렴 소금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다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요..? 소금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라..? 무얼 말씀하시는 게요..?
이치 장자어른, 저희는 송악 왕건장군의 영을 받아 왔습니다.
오다린 ........ 왕건..? 고려국의 왕건..? 궁예대왕의 장수 왕건말이요...?
이치 그렇소이다.
변사부 소생은 왕장군의 무예사부이올시다.
오다린 ...........?
변사부 그리고 여기 이 공자께서는 왕건장군의 아우가 되시는 왕식렴 공자이올시다. 여기 이 분은 저희를 수행해 오신 것이지요.
오다린 (바짝 경계한다) 나를 보고자 온 목적이 무엇이오? 스님, 어찌하여 이런 사람들을 내게 데려오셨습니까.? 이들은 적국의 사람들이 아니옵니까..?
주지 어차피 삼한이 하나이고 백성도 나라도 실은 하나이올시다. 적국과 아국을 굳이 따질게 무엇이 있겠소이까..?
오다린 아니, 스님...?
그러자, 왕식렴이 품속에서 보검을 꺼내 앞에 놓는다.
왕식렴 이 보검을 알아 보시겠습니까..?
오다린 ..........?
왕식렴 알아 보시겠습니까...?
오다린은 떨고 있다. 얼굴에 경련이 일며 보검을 본다. 그리고 다시 이들을 본다. 그는 이미 보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씬 그 방 밖
도영이 긴장하여 방안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오다린 (E) 이것을 어디서 구했소이까..?
씬 다시 방 안
오다린 (놀라며 본다) ....이것을 어디서 구했냐 물었소이다.
왕식렴 이 보검은 옛 장보고 장군의 막하 후예들만이 가지고 있는 보검이옵니다.
오다린 어떻게 구했는가 묻고 있는 것이오.... 그대들이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있는가?
왕식렴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모두 그분의 한 가족이었사옵니다. 오장자님의 조상 또한 그러하셨사옵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오리까..?
오다린 .....(오랜 침묵)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왕식렴 금성이올습니다.
오다린 금성...?
순간 숨이 막힌다. 오랜 침묵과 긴장이 이어진다.
오다린 (신음처럼) 금성을 내어달라....? 금성을.....? 이자들이 실성을 하지 않았는가...?
왕식렴 (밀서를 내어민다) 왕장군께서 보내신 서찰이시옵니다.
오다린, 한참 이들을 노려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들어본다. 한동안 읽고 나서 다시 그것을 조용히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오다린 참으로 통이 큰 자들이로구먼... 금성을 내어달라..? 감히 이곳 금성과 더불어 목포 일대의 장자인 나에게 와서 금성을 달라..?
주지 ...........
세사람 ........
오다린 (한참 생각하다가 조용히 밖에 이른다) 밖에 배집사 있는가?
집사 (E) 예, 어르신....
세사람 ...............
문이 탁 열린다. 밖에는 이미 도영과 더불어 집사와 장정들이 서 있다.
오다린 이자들을 모두 후원에 갖다 가두어라.
이치 아니, 이보시오. 장자어른..? 우리는 고려국의 신료들입니다. 밀사도 사자이올시다. 우리를 가두다니요..?
오다린 어서 가두어라.
순간, 변사부가 검을 뽑으려 한다. 그러나 왕식렴이 말린다.
왕식렴 장자어른... 지금부터의 모든 결론은 어른께서 가지고 계시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집사 어서 끌고 가라...
이들이 끌려간다. 스님은 그 자리에 앉아있다. 오다린도 그렇게 앉아있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고 있다.
씬 그 밖
도영이 왕식렴들이 끌려가는 것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왕식렴이 도영의 시선과 마주친다. 장정들이 그들을 끌고 사라진다. 도영, 계속 왕식렴들을 쳐다보다가 방 쪽을 본다.
씬 다시 동 방안
주지와 오다린이 여전히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다. 보검은 그대로 놓여있다.
오다린 스님께서 어찌하여 이런 황망한 경우를 주선하셨사옵니까..?
주지 이 보검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오이까..? 이야말로 그대들은 모두가 한 형제이고, 한 조상이고 같은 뜻을 가지고 있던 이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소이다.
오다린 나를 보고 고려를 도우라는 것이옵니까..?
주지 돕고 아니 돕고는 장자어른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요. 다만, 덕이 있는 자가 천하를 통일하여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 생각되기에 저들을 안내한 것이외다.
오다린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사옵니까..?
주지 나는 도선대사님의 제자이올시다. 왕건 장군도 우리 도선대사님의 제자였소이다. 이제 소승이 할 일은 끝이난 것 같구려. 일어나도 되겠소이까..?
오다린 ............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숨만)
씬 숲
몰이꾼들이 짐승들을 몰고 오고 있다. 준비하고 있던 견훤이 활을 쏘면 노루 한 마리가 그 자리에 쓰러진다. 견훤의 뒤로 신료들과 내관들, 아들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능환 명중이옵니다, 폐하. 참으로 대단하시옵니다.
견훤 하하하. 실력이 녹슬지 않았구먼. 오랜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네. 아니 그렇소이까, 부인?
고비 예, 폐하. 신첩도 즐겁사옵니다.
견훤 우리의 군대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소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 사냥 또한 훈련과 같은 것이오.
고비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능환 폐하... 사냥으로 잡은 것들이 상당하옵니다. 오늘밤은 이것들로 연회를 벌이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견훤 허허허. 그래... 내친김에 그간 쌓인 피로를 훌훌 털어보세나. 헌데 태자들은 좀 성과가 있었는가? 이제까지 번번히 사냥감을 놓치기만 하지 않았는가?
능환 ..... 운이 따르지 않으셨사옵니다.
견훤 오늘도인가? 오늘도 토끼 몇 마리만 잡은 게야?
두 태자 ................
견훤 이런 변변치 못한....... 그래가지고 무슨 훈련이 된다 하겠는가..? 에잉.... 그만 가세나.
능환 예.
그들 그곳을 떠나기 시작한다. 주눅이 든 두 태자의 얼굴에서......
씬 황궁 외경
박씨 (E) 승평부인만 데리고 사냥을 나가셨단 말이지..?
씬 동 황후전
박씨가 한숨을 쉬며 옥이에게 말한다.
박씨 이제는 아주 이 황후전은 잊으신게구먼...어떻게 변해도 그렇게 변하신단 말인가..? 그러니 부자분이 성격이 똑같을 수밖에... 갈수록 산일세, 갈수록 산이야....
씬 그곳 군막 (밤)
여흥이 무르익고 있다. 신료들 사이에는 잔이 오가고 견훤도 이미 많이 취해있다.
견훤 자.. 모두들 다시 잔을 드시오.
신료들 예, 페하.
그러나 신검은 잔을 들다가 만다.
견훤 신검이는 뭘 하고 있는 게냐? 어찌 잔을 들었다 놓는 게야.
신검 많이 마셨사옵니다.
견훤 쯧쯧 저래서야.. 사내 대장부가 목숨을 걸고 술도 한 번 마셔봐야지.. 못난 놈 같으니..........
신검 ...........
견훤 그 동안 무엇을 공부한 게야? 언제까지 이 아비에게 실망만 안겨 줄 것이냔 말이다.
양검 .............
능환 폐하... 많은 신료들이 보고 있사옵니다......
견훤 꾸중을 들을 것은 들어야지. 그 동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결과가 나왔겠는가 말이야.
능환 그저 사냥이옵니다. 그것에 불과하옵니다.
견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 법일세. 매사가 저 모양이니......
고비 페하, 그만하시오소서. 태자님들께서도 충분히 알아들으셨을 것이옵니다.
견훤 에잉....... 술이나 한 잔 더 따르게..
고비 예.
신검, 양검은 얼굴마저 붉어졌다. 그런 모습들을 보는 능환의 한숨에서............
씬 금성 관아 외경
종례 (E) 세상에 이럴 수가.....?
씬 동 관사 방 안
종례가 놀라서 서신을 읽고 있다.
오다린 (은밀히) 송악에서 온 것이외다. 왕건장군 말이오. 그 사람들도 뱃사람이지요. .
종례 (숨을 멈추며) ......... 서찰을 보니 우리를 보고 내응을 해 달라 이런 말인데...
오다린 그렇소이다. 저 사람들은 우리들이 다급하고 답답한 사정을 오래전부터 보아오고 있었소이다.
종례 백계산 옥룡사에서도 주선을 했다구요..?
오다린 그렇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어쨌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들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태수께서 수달장군에게 넘겨 우리의 충성심을 더 보여 주시던가..?
종례 ...............?
오다린 우리는 오래도록 모든 것을 함께 해 왔소이다. 말씀해 주시구려. 저들을 어찌하면 좋겠소. 저들을 도와줄까요...?
종례 말도 안됩니다. 멸문지화를 당할 일이에요.
오다린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호랑이굴에서 벗어날 묘책일 수도 있소이다. 이래저래 죽을 판이니...
종레 .................?
씬 오다린의 집 외경
씬 동 집 마당
도영이 어둠 속을 더듬으며 불빛이 새어 나오는 별채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장정들과 집사가 그녀를 알아보고 허리를 숙인다.
도영 손님들은 잘 계시는가?
집사 예, 아씨...
도영 문을 열게.
집사 아씨...?
도영 어서....?
집사 예, 아씨.....
집사가 방문을 연다.
씬 동 방 안
문 소리에 놀라 왕식렴들이 모두 출입구를 본다. 도영이 웃으며 들어선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왕식렴 낭자는 뉘시오..?
도영 소녀는 도영이라 하옵니다. 공자께서 왕식렴공자시지요..?
왕식렴 그렇소이다. 대체 언제까지 우리를 여기에 가두어 두실 겁니까..?
도영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쉬고 계시는 것이지요. 공자께서는 왕건장군님의 아우라 하셨습니까..?
왕식렴 그렇습니다. 왕장군께서는 저의 사촌형님이 되십니다.
도영 그분에 관한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라 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엄청난 거래를 청해오고 계십니다....? 과연 그분 생각대로 되리라 보십니까..?
왕식렴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낭자의 아버님께서는 후회를 하게 되실 겁니다. 물론 낭자께서도....
도영 호호호.... 후회라...? 그대들의 목숨은 이미 우리 아버님의 손에 있습니다. 무얼 믿고 큰 소리를 치시는지요..?
모두들 .........?
도영 그렇게 상대를 가볍고 호락호락하게 보고 오셨습니까..? 이 금성이 그리도 만만해 보입니까..? 왕장군, 그 사람은 똑똑하고 대장부라 들었는데 그만한 사려도 없이 사람들을 보냈단 말입니까..? 왕장군이 그 정도입니까..?
< 5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