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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날
천 승 세
백산댁의 눈길은 그저 등마재 쪽에 굳었다. 여름이면 먹구름을 몰고 가을이면 오진 엽송더미를 내는 가마골 같은 등마재 위론 엊저녁부터 희뿌연 안개가 드세다.
쪽머리를 풀어서 목덜미를 감고 벌겋게 부어오른 콧마루에 절절한 울음이 사발은 고였지만, 오늘따라 백산댁의 낮색은 신기를 얻은 듯 생기를 띠었다. 토방 안은 밤새에 휑하다. 은심이년의 잦은 손때가 묻었음직한 갈퀴자루가 망태 곁에 비스듬히 누웠다.
아낙들은 백산댁의 흔연스러운 얼굴이 마냥 의아스럽다. 살큰살큰 눈꼬리를 세워 백산댁을 살펴보지만 백산댁은 그 자질맞고 꼼꼼한 성미는 어디다 다 쓸어버리고 늘축하게 주저앉아 한을 풀어버린 모습이다.
“기둥 같은 며느리에다 그 잘난 황소마저 잃구두 워티께 이리 태평혀.”
“모르는 소리들 말어, 원칸 얼척이 없어서 혼이 빠진 게벼.”
동네 아낙들이 힘이 빠져 흩어진다. 가슴속에는 화덕불 같은. 한들이 맺혀 어깻죽지 붙잡고 사흘밤을 울어도 못 다할 사정들이지만 백산댁이 정작 저리도 태평하게 늘어졌으니 아낙들이 신이 날 리가 없는 터였다.
엿 마지기 농사 부치면 나락 열 가마는 공출해야 하는 팍팍한 판이다. 마을에 널린 논뙈기라는 것들이 주재소 행보깨나 설쳐대는 부농들의 것이고 보면, 옆구리 가래가 틀리도록 일년 내내 논심을 떼어봐야 도조 제하고 보면 손금만 빤한 형편들이렷다.
백산댁의 넋두리에 성큼 곁들여서는 푸짐한 울음줄이라도 내쏟아보고 싶던 아낙은 실성했는지 혼이 빠져 저러는지 알 수 없는 백산댁을 달랑 남겨두고 슬슬 자리를 뜬다.
모를 일이었다. 그 용수란 놈 등쌀에 며느리고 황소고 다 잃어버린 백산댁이 어떻게 남의 일 보듯 멀거니 등마재만 우러르고 앉았는가 말이다. 옴지박 귀퉁이로 싸래기 한톨 흘렸어도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줍는 그 꼼꼼한 백산댁이 텅 빈 외양간 한번 훔쳐보지 않는다.
등마재는 숫제 안개 속에 갇혔다. 이런 날 밤에야 혼블이 뵐 리 없다.
봄이면 그저 진달래 꽃덤불이었다. 한 뼘만 벗나가도 잡풀들이 덩이지는데 등마재 옆설기의 동자바위 근방은 온통 진달래 꽃덤불이었다.
골이 오목 패이긴 했다. 그렇다 해도 하필이면 동자바위를 싸고 대여섯 평 널린 그 자리에만 진달래 덤불은 밀대보다 크게 자라 이울어지고 봄 들면 씨바닥이 나는 엽송도 유독 집채보다 크게 수북이 쌓였다. 그것도 해묵어 바랜 솔잎들이 쌓이고 쌓였으니 은심이년의 갈퀴자루가 오당 춤을 추게도 됐것다.
“또 동자바위로 갈려구그려?”
백산댁은 냉수에 사래가 들린 것처렴 가슴속에 걸리는 게 있다. 칠월 땡여름에 어디서 이런 엽송나무를 구경이라도 하랴 싶지만, 누구는 돈맛 몰라 등마재 엽송을 눈돌림하랴 하는 마음도 지레 내키는 거였다. 마을 사람들이 동자바위를 눈돌림한 것은 벌써 이 년 전이렷다. 동자 바위에 밤마다 혼불이 산다는 거였다.
턱부리네 상머슴 용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후질후질 비가 내리던 초여름 밤녘이었다.
“현붕이 어머니유, 거 요상허지유 지가 꼴을 베는데유, 이 집 지붕 위에서 혼불이 날아 오르지 않겄슈? 동자바위에 가 앉나봐유. 그쪽으로 떨어져서는 다시 기척이 없어유.”
백산댁은 용수의 전갈이 새삼스러워져 대답이 없는 은심이년에게 쏘아붙인다.
“동자바위는 그만 가지그려. 엽송나무 총은 맛에 젊으나 젊은 며느리년 부정탈까봐그려.”
“어저께도 장터 나무집에서 그러잖어. 웬 놈의 엽송이 땡여름에 이리 많냐구 말여. 그리고 묵은 엽송 구경허기두 처음이라고…….”
“그야 나무꾼 발이 벌써 어 년째나 끊겨 그렇지유. 혼불은 고사허구 땅개비 한 마리 안 놀데유.”
은심이는 고쟁이 가랑이를 둥둥 걷어을려 생선 알자리 같은 장단지에다 똬리를 튼다.
백산댁은 며느리의 손에 들린 망태가 개울을 넘어 사라지자 목젖에 걸려 차일질을 치던 끈끈한 한숨을 포오 내쉰다.
현붕이놈이 그 북새통에 내뱉었던 말을 그여 잊지 못해 저러려니 싶다.
은심이는 동자바위 앞에 이르러 아직도 집채만하게 수북이 쌓인 엽송더미에다 푸옥 갈퀴를 꼽는다.
알자리를 트는지 뻐꾸기들이 하늘 속에서 불심지를 세워 투닥거리고 그 통에 동백기름을 먹인 듯한 반지르한 깃 몇 을이 엽송더미 위로 내려 앉는다. 까투리가 햇병아리를 모는가 싶다. 수복한 전대풀더미가 물살처럼 출렁대면서 뿌연 꽃솜을 편 가늘한 모가지들이 못 견딜 듯 간지럼을 탄다.
등마재가 바로 옆설기인데도 유목 사위는 죽었다. 외져서 그런지 아니면 항아리 속처럼 옴폭 갈라앉아 들어 그런지 엽송발은 언제나 상여 간 속처럼 시린 한기마저 몰고왔다.
등줄에 땀이 배기도 전에 망태 속으로 엽송들이 터지게 담겼다. 은심이는 전대풀더미를 깔아 뭉기며 한숨 나긋한 꽃잠을 청해본다. 눈꺼풀 속으로 왁자한 그날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마을이 통째 들먹대는 백중날이다. 사남이네 논 열 마지기에서 겨우 엿 마지기를 뜯어 소작 농사를 부쳐먹는 남편 현봉이가 그날따라 가마 자리까지 차오른 얼큰한 취기를 얹고 고래고래 악을 써대던 터다.
“을해도 또 뒈졌어, 뒈졌다니깐. 진장칠 놈에 농사는 지랄이 농사여? 자알 뽑아내면 열 섬에 스무 가마니는 털겠는데 말여. 주재소 쪽바리놈들은 벌써부터 꿀침이 돌아서는, 터억 열 가마니나 공출을 앵기구, 헛차암 一 이 미친년 가랭이 같은 내 농사 좀 보게여! 도조는 흙을 담아서 낼 껴? 금년 도조가 여섯 가마라네. 심으로 따져서야 네 가마니가 내 것인디, 아니, 가슬 농사 품앗이는 쌀 한 가마 안 작살 낸다여? 지기미 쌀 한 섬으로 겨울 내내 졸창을 적셔줘야 할 놈어 농사는 뭣 헌다구 지어? 그냥 확 뒈져야 한다니까는그려……짐승만도 못한 조선놈들은 그냥 화악 뒈져사 쓴다닝게그려! 아 뭣들 허능 겨? 줄래줄래 삼줄을 메구서 아주 논바닥에 꺼꾸로 처박히지 않구서…… 백중? 백중날? 지기미, 주재소 소장놈 붕알에다 용물 채우자는 백중이냐아? 아, 그거여?”
농사철에도 뒷짐 지고 소작농군 보기를 왜놈이 조선사람 보듯 싸악 목을 돌리고는, 기어코 꼴머슴 자리를 두엄 속에다 개똥 버리듯 팽개쳐버리고 주재소 농영사 잔심부름꾼으로 변해버린 인준이가 이 말을 들었것다.
주재소에 붙들려 간 현붕이가 온 옷에다 피칠을 하고 사립 앞 개울가에 기진해서 멈춰 섰는데, 백중날 달덩이치고 유독 소담스럽게 서글대는 불그뎅뎅한 만월이 마악 등마재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웬수! 너는 뒈져야 혀! 나 말여, 쪽바리놈들 상전으로 받들구 육갑 채울 맘은 씨도 없으닝게. 웬수! 이 웬수우!”
목소리가 남편의 소리라 멘발로 우루루 토방을 차고 나간 은심이는 그만 돌처럼 굳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흩어지고, 길게 사지를 뻗고 엎어진 인준이가 보이고, 그리고 현봉이는 금줄을 씌운 호미자루를 쥔 채 허억 은심이의 가슴팍으로 쓰러지는 거였다.
“냉수 좀 주어어, 아주 오가리채 다 주어어.”
엿믈 같은 게거품을 물고 소주불이 을라 인사불성인 현봉의 주둥이를 열고 물줄을 흘려 넣던 은심이는 토방 안으로 쳐들어오는 순사들에 떠밀려 절구공이마냥 터억 엉덩이를 찧고 만다.
혹혹 단내를 풍기는 현붕이의 귓속말이 꿈결인 듯했다.
“중의 허리춤에다 호미를 꽂아주어 어서! 다 다 쥑이구 살아을 터. 등마재 옆설기로 해서 빠져을 텨!”
순사놈들에게 첩첩이 에워싸여 가는 현붕이의 비틀걸음이 개울을 넘었다. 은심이의 눈엔 남편의 중의 허리춤에 매달려 달랑대는 시꺼먼 호미 모가지와 자루에 두른 샛노란 삼줄뿐이다.
억척스레 내두르는 현봉이의 호미날에 얼마나 뼈대가 작살났으면 인준이는 기어코 껑충껑충 다리를 절어대는 잘숙이가 됐고, 그것보다 현붕의 호미날에 삭신을 버린 그는 드디어 왜놈이 다 돼버렸다.
절룩대며 앞장을 선 인준이가 순사패거리들을 몰고 구석리 마을을 이 잡듯 뒤졌으나 현붕이는 오간 곳 없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쌓아놓은 두엄더미에다는 불을 지르고 심지어는 헛간 거름통 속까지 장대로 휘저어댔었지만 그 길루 도망질을 놔버린 현붕이는 이 년째 감감하다.
낫날이 꽂힌 긴 장대로 똥통 속을 쿡쿡 찍어댈 때면 차라리 시신이라도 떠오르길 바랐고 검불더미에다 부리을 놓을 때면 오소리 튀듯 뛰쳐나와주길 바랐다.
개미로 변신한들 구석리를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싶다. 현붕이의 수소문은 이백 리가 넘는 파령 주재소까지 가 닿고 순사놈들은 신석리를 에워싸고 눈알들을 번뜩이는 거였다.
은심이는 등줄에 식은 땀을 얹고 번뜩 눈을 뜬다. 그새 꽃잠이 들었을 리 없었지만 사지마저 오들거리는 냉기 탓인지 아스라한 꿈 속에서 헤어나온 듯싶다.
등마재에 기척이 있었다. 별일도 다 있다 싶다. 해묵은 엽송더미들이 쌓이고부터 인기척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터다.
은심이는 솔잎더미가 쌓이지 않은 동자바위 뒤쪽에 찰싹 등을 기대고 숨어 살핀다.
전대풀더미가 우악스레 보채면서 머리통이 들쑥날쑥 다가온다. 은심이의 가슴이 차게 식는다. 머리통이 들쑥날쑥 하는 걸로 보아 등마재 옆설기로 파고드는 사람은 인준이일 것 같아서다.
전대풀더미 밖으로 명제를 나타낸 사람을 보다말고 은심이는 허억 목구멍까치 치솟는 가쁜 숨을 문다.
헐령대는 잠방이 속에 뼈골이 앙상한 다리를 그림자처럼 세우고 섰는 인준이다.
순사놈 일본도를 허리춤에서 빼어든 녀석은 그 칼끝으로 터지도록 엽송을 담고 늘어진 망태를 헤적여본다.
“나와…… 망태 임자 퍼뜩 나오란 말여…… 망태 임자 워딨는 게여?”
인준이의 목소리가 꺼렁꺼렁 골을 울린다.
은심이는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어본다. 마음보다 앞서 후들거리는 발길이 절로 떨어친다. 인준이의 유독 쪽빠른 인중이 거들거들 떨어댄다.
“너 여기는 뭣하러 왔능겨? 말해부아,”
“보먼 몰라 물어유? 염송 긁으러 왔잖유.”
“그려……그려어…….”
녀석은 사위를 휘휘 둘러보며 절룩절룩 은심이를 향해 다가든다. 칼끝이 은심이의 콧날에 와 닿는다.
“이 칼이 뵈지? 뵈여 안 뵈여? 엉?”
“뵈유…….”
“난 말여, 현봉이놈 때문에 삭신 버리구 좋던 풍채 이 꼴 된 놈여. 말을 들어사 헐껴…….”
“믄, 믄 말을유?…….”
“뻔뻔한 년! 이 꼴을 보구두 느년 임에서 그런 말이 나와여? 이년아, 느 남편놈 죄값을 허란 말여. 종아리 방정 떨었다가는 이 칼에 죽능겨.”
녀석은 와락 은심이를 싸안는다. 편편한 엽송더미 위로 은심이의 몸뚱이가 뜬다.
은심이의 사지가 경기처럼 떨다 굳는다. 조청을 삼킨 듯 목 안은 바직바직 타가고 몸뚱이는 불길에 훰싸인 듯 훈기를 쁨는다.
“이러지 말아유! 내가 믄 죄가 있다구 이류! 내 남편 잡어묵은 사람이 누군데 그류? 놔유 놔아!”
은심이는 치맛폭을 조여 안고 발버둥을 쳐본다. 이내 맥이 풀린다. 퍼런 칼날이 무섭다. 현봉이의 굽은 등이 얹구 가던 주황빛 백중날 달덩이가 떠온다. 그 달이 진다. 눈꺼풀 위로 츠르르 떨어져내린다.
은심이가 눈을 떴을 때 녀석은 오간 곳 없었다. 곧추세운 양 무릎에다 얼굴을 묻으며 허억 오장이 뒤틀리는 을음을 쏟아내다 말고 은섭이는 다시 고개를 세운다.
한쪽 귀퉁이가 허물린 엽송더미를 비집고 호미날이 내밀렸다. 은심이는 웬 놈의 호미가 엽송더미 속에 묻혔는가 싶다.
은심이는 호미를 주워 망태결에 걸고 아리고 시린 무릎을 세운다. 엽송더미들은 동자바위 앞쪽을 타고 세모꼴로 을랐다. 아직도 스무 날 나무거리는 되는엽송더미다.
인준이놈에게 이 꼴을 당하고 또 어찌 오랴 싶다. 녀석만 아니라면, 없는 살림에 금줄 같은 돈줄인 이 엽송더미를 갈퀴날이 닳도록 굵어내도 다 못 차는 마음이었다.
백산댁은 생각생각 끝에 망태를 메고 일어선다. 벌써 여러 날째 시름시름 앓아 누운 며느리다.
며느리가 ᅟᅳᆼ마재로 망태를 메고 나설 때면 입이 아프도록 말리고 나섰었지만 굳이 부정을 묻혀을 건덕지도 없던 터에다, 더구나 그 부정이 내 집 용마루에서 오른 혼불이고 보면, 딱 잘라 흉수라고 매듭짓고 나설 맘도 없는 거였다. 며느리 마음을 건드릴까 두려워 혼자만 꽁꽁 묻어온 생각이지만 용수가 봤다는 혼불이 필경은 현봉이놈의 것이요, 바로 그날 어디선가 숨 줄을 놓은 것이려니 믿어왔던 터다.
파령까지 깔린 현봉이놈의 친구들이 서른을 헤아리고도 남는데 자식놈 코뻬기라도 봤다는 귀띔은 여지껏 한번도 없다. 그렇다고 어디서 잡혔다는 소식도 이 년째 감감하다.
순사놈들 감시 때문에 장터 보행도 삼가야 했고, 남자 없는 살림에 붓논을 부쳐 먹을 수도 없었으며, 살림 밑천이라고는 일심 내줘서 푼돈이나 만져보는 황소 한 마리다.
백산댁은 며느리가 엽송밭에서 주워온 호미를 들고 요리 조리 훑어본다. 누가 길들인 호미인지 깐깐스럽고 야멸찬 손길에 닳은 호미다. 이만한 호미면 백중날 호미걸기에는 안성맞춤일 듯도 싶다 생각하는데 은심이년이 방문을 열고 기척이다.
“엄니, 시방 어딜 가실려구 그류.”
“등마재 엽송이나 긁어볼까 허구…….”
“아휴 거길 왜 가실려구 그류? 혼불이 시글댄다지 않유?”
“혼블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고…… 사람 사는 데서 귀신도 살지 않구.”
“엄니도 답답혀유 나도 막장에는 부정타서 이렇잖어유 가지 마세유.”
“내일이 백중날이잖어…… 용수가 소 타는 상머슴으로 뽑혔다는디 집안으로 들이닥치면 괴기 한점에다 술사발이라도 줘야 도리잖어. 집구석에는 땡전 한 닢 흘린 것 없는데 엽송이라도 긁어다가 돈푼이라도 만들려구 그렇지. 서둘러 긁어내면 두 행보나 할 껴.”
은심이는 내처 돌아눕고 만다. 인준이놈의 쪽빠른 인중골이 떠오르자 등줄에 한기가 일면서 몸뚱이는 대싸리 울타리에 샛바람 놀 듯하는 거였다.
백산댁은 며느리 몰래 꼼질스러운 눈물을 닦는다. 백중 때만 되면 새삼스레 설움이 치받치고 걸음 앞에마다 그지 현붕이놈 얼굴만 열리는 거였다.
백산댁은 망태를 메고 사립을 나선다. 웬일로 등마재는 며칠째 안개 속에 떠흐른다.
장군산 머리봉에서 흘러내리는 희뿌연 안개가 연기처럼 골을 타고 내리다가 사위가 만만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등마재로 먼 곳의 강줄기처럼 띠를 둘러 파고든다. 어찌 보면 등마재로부터 물줄이 장군산으로 거슬리는 듯도 싶고 또 어찌 보면 꿈틀대는 용이 등마재를 향해 허연 입김을 내뿜는 듯도 싶다.
백산댁은 망태에 결려 덜렁대는 호미를 집에다 던져둘세라 멈칫 서다말고 이내 발길을 옮기고 만다. 농사꾼 아낙이 어느 땅을 밟은들 호미 마다할 수 있는가 하는 마음에서다.
백산댁은 등마재 옆설기에 이르러 멈칫 서본다. 소달구지를 몰며 현붕이놈이 가랑이롤 뻗치고 치오르는 듯싶다. 백중날 씨름판이면 여섯골을 다 쓸고 다녔던 그 탄탄하고 우람한 장딴지가 소고삐를 쥐고 버텨섰는가도 싶다.
백산댁은 전대풀더미 속을 걸어나와 옴팍진 엽송발에 와 선다. 동자 바위 중턱쯤에서부터 헛간지봉 형상으로 쌍여내린 엽송들은 꺽지나물발을 먹어내리면서 대여섯 평은 실히 될 땅을 덮었다.
이상도 하다 싶다. 하필이면 동자바위 곁을 타고 솔잎들이 졌나도 싶다.
백산댁은 갈퀴를 들어 동자바위께로 다가선다. 흘러내린 엽송보다는 그쪽에 쌓인 솔잎들이 유독 해묵어보였기 때문이다.
갈퀴날이 꽂혔다. 스로로 스르르 엽송을 긁어내리던 백산댁은 함지박 등어리처럼 하얗게 드러나는 것을 본다.
“칠월 여름에 웬 박덩이랴…… 쪼박이랑가?”
백산댁의 갈퀴날이 박덩이 같은 것을 싸고 앉은 엽송들을 긁어 내리자 그것을 옷처럼 덮고 쌓인 엽송들이 무더기져서 주루루 흘러내린다. 엽송무더기들은 비스듬한 경사를 타고 또 덩이덩이진 솔잎다발을 밀고내렸다.
백산댁은 그만 두어 발치 물러서고 만다. 등줄에 찬 소름이 돋는다. 솔잎더미가 흘러내린 곳에 뼈가래만 남은 시신이 앉아 있는 거다. 시신은 동자바위에 둥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가슴패기로는 재처럼 푸석거리는 천을 걸치고 있었으며 앙상한 발가락 뼈가 검정 고무신 속에 던져진 윷쪽처럼 가지런히 펼쳐 있다.
백산댁이 엿물처럼 끈끈한 거품을 물고 풀석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전대풀더미가 술렁대며 불쑥 사람이 나타난다.
백산댁은 가물대는 눈길 속에다 휜걸한 용수를 담는다.
“어? 어어라?…… 웬녀러 송장 해골이 앉아 있지유…… 아니, 아니 대체루다 이게 웬 송장 해골이지유?”
백산댁의 눈꺼풀 속으로 호미날 한 개가 자라은다.
“현붕이 어무니? 정신 채리세유! 괜찮어유? 예에?……은심이가 나무짐이나 져 날라달라고 하길래 곧장 달려왔었는데 이게 웬 변고지유?”
백산댁은 용수의 말소리를 먼먼 꿈 속에서 들으며 하늘만큼 크게 자란 호미날에다 몸뚱이를 걸고 둥둥 날아오른다.
백중날이었다. 용수천 물줄이 흐려질 정도로 아낙들의 호미씻기가 한창이었다.
신석리가 통째 농악에 뜨고 여섯 대를 내려오는 비단 농기가 하늘을 채우고 펄력거렸다.
마을 사거리에 현봉이가 우뚝 서선 우람한 팔뚝을 높이 쳐들고 서 있었다. 그 손끝에 아스라한 호미날이 쥐어졌다. 풀기가 빳빳한 잠방이 소매를 펄럭이며 현봉이는 그 서굴거리는 눈안에다 함빡 웃음을 담고 있었다. 아낙들은 삼채 같은 머리칼을 나폴대며 현붕이를 향해 몰려들었고 큰애기들온 벌써부터 현붕이의 쳐든 팔뚝을 향해 펄쩍펄쩍 뜀질을 하고 있었다.
아낙들의 손에도 큰애기들의 손에도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호미들이 쥐어져 있었다.
“내 호미에다 호미들을 걸으세유우. 자아, 호미걸이 팔아유우. 싸게 팔아유우. 내 호미결이에다 호미를 결면 가을 신수 대통허구 농사 대풍허구 추수곡간이 터져나유우. 자아 호미들을 거세유우. 기중 먼저 걸으시는 양반은 내가 업어뫼시구서 동네 열 바퀴를 돌 테유.”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모를 한 현붕이는 백중날의 상전 농군으로 뽑혀 호미걸기 대주가 됐고 신석리 아녀자들은 껑층한 닭꽂대에 모여든 나비떼처럼 현붕이롤 싸고 뜀질이었다. 현붕이는 그 자리에서 팔뚝을 쳐든 채 뱅글뱅글 맴돌이를 하고 있었다. 아녀자들의 호미날이 겨우 걸릴 듯하면 현붕이는 몸을 휑 돌려 맴돌이를 하며 꺼렁꺼렁 웃고 있었다.
백산댁도 아녀자들 틈에 섞여 뜀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중 먼저 걸면 뭘해 줄꺼여? 문전옥답 장만혀서 부농마님 만들어줄 껴?”
“물론이지유. 여부 있남유?”
“동네 열 바퀴 업혀 돌면 못혀? 열 바퀴는 간에도 안 차여. 너 업어키우느라구 허리뼈가 휘었는디.”
“하여튼 간에 호미나 거세유.”
“못 걸 줄 알구? 못 걸 줄 알구?”
“아휴, 아휴 가당찮어유. 고까짓 뜀질루다 호미를 걸어유? 가당찮여유. 백 번 천 번 가당찮어유.”
백산댁은 있는 힘을 다해 뜀질을 해대다가 귀청이 멍멍할 정도로 수선스러운 함성을 듣고 있었다. 현붕이의 팔뚝 끝에 한 자루의 호미가 결을 걸고 대롱대고 있었다. 소를 탔을 리 만무였다. 가마를 탔을 리도 만무였다. 백산댁은 하늘을 둥둥 떠가며 여섯 골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탄탄하고 넓직한 현붕이의 등짝이었다. 현봉이의 등덜미에서 땀이 솟고 있었다.
“나 무지무지허게 오래 살 꺼유 엄니는 몇 살까지 살 꺼남유?”
“천 살이고 만 살이다.”
“아휴 그럼 몇십 감을 사시는 거유? 허허허.”
현붕이의 웃음소리가 산자락을 넘어 장군산 허리춤에다 쩌렁쩌렁 산울림을 박고 있었다.
벌써 칠십 리는 더 왔거니 싶었다. 은심이는 소의 등에 앉아 전에 없이 서립다.
고삐를 쥔 용수의 등짝이 땀에 절었다.
“백중날 아니면 한 발도 옴싹 못 혀. 용수 기별 잡구 내처 나도 뜰 것이니 아무 소리 말구 가여. 어서.”
은심이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내몰듯 자기를 쫓아보낸 백산댁만 원망스럽다. 그리고 등마재 엽송더미가 눈에 선하다. 해묵은 엽송더미가 세상천지 어느 곳에 그리 흔하랴 싶은 것이다.
―1976년
2016년 12월 2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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