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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법과 사법의 권위
글쓴이 이종수 / 등록일 2025-03-11
지난 12·3 비상계엄이 있고나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껏 온 나라가 두 편으로 갈라서있다. 결코 이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사이에 폭도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점거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등 경찰과 사법 전반에 대한 흉포한 공격이 행해졌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격까지 예고되고 있다. 그리고서 이들의 행위가 ‘국민 저항권 행사’라는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포장된다.
황당하기로는 국가인권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강제전역당하고서 엄혹한 이 세상을 저버린 변희수 하사와 수색구조작업 중에 급류에 휩쓸려서 사망한 채 상병의 인권에는 아랑곳없던 인권위가 생뚱맞게도 대통령의 인권을 지키겠다며 나선다. 적반하장을 넘어서 니체가 말하는 ‘가치의 전도’에 버금가고, 이에 많은 시민들은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적반하장과 ‘가치 전도’에 많은 시민 혼란
법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서는 원래부터 늘 두 가지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각종의 분쟁이 소송으로 불거지고, 민·형사재판에서 원고의 승소 또는 패소 그리고 유죄 또는 무죄가 확정된다. 이런 까닭에 혹자는 “악마가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서를 인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안에서 양쪽 변호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항상 법을 인용할 수 있다”며 비판한다.
사법(司法)에게 주어진 과업이 과거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있다고들 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가 쓴 소설 〈라쇼몽〉(羅生門)이 이를 극적으로 다뤘다. 벌어진 살인사건을 두고서 여러 등장인물이 주장하는 진실이 제각각 다르다. 무엇이 ‘절대 진실’인지는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렇듯 법정에서는 소송절차를 통해서 단지 ‘실체적 진실’이 확인될 따름이다.
그런데 지극히 평온했던 한밤중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가 봉쇄되고 무장병력이 창문을 깨고서 국회 안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똑똑히 지켜봤다. 헌법이 예외적으로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마련해둔 비상계엄의 요건과 절차 모두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살인이나 채무 등 과거에 벌어진 사실들과 같이 실체적 진실의 여부가 논란되는 사안이 아니다. 즉 사실관계가 지극히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안이다. 그러니 벌어진 일에 대해서 합당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만 남아있다.
설령 죽여 마땅한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죽일만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거나 죽이려고 했다면, 살인이나 살인미수의 죄책을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 모두가 합의하고, 지속해온 우리의 법이고 사법이다. 그런데 벌어진 위헌/위법한 행위를 두고서 정당하고, 심지어 합법이라는 주장이 통용되면, 이로써 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어느 법학자는 “법이 없으면, 법학도 없고, 그리고 법률가도 없다”고 단언한다.
법의 설 자리? “법이 없으면 법률가도 없다”
일찍이 1957년에 펴낸 책에서 예일 대학의 로스쿨 교수인 프레드 로델(Fred Rodell)은 “부족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즉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다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덧붙여서,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국면에는 수천 년의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이들 세 집단 모두가 사태에 함께 가담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무척이나 공교롭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적에는 그것이 법이었고, 지금은 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어느 사회라도 합리적 권위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로써 사회가 질서를 갖추고서 나름 정돈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이 같은 권위를 주장하는 게 보수의 언어였고, 그리고 이 권위의 타파(打破)가 오히려 젊은이들과 진보의 슬로건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처럼 법과 사법의 권위가 훼손되고, 이를 그대로 두면 ‘무법천지’를 그 혹독한 대가로 치르게 된다. 이번 사태가 한편 지극히 유감스럽지만, 지난 5·18민주항쟁이 그랬듯이 이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성숙한 헌법국가로 나아가는 교훈과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글쓴이 : 이 종 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서]
《독일통일의 법적 조명》(공저)
《헌법주석(Ⅰ)》(공저)
《한국정치와 정부》(공저)
《독일 공법의 역사》(번역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