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에 대한 추억
- 정성화
봄 햇살이 두터워질 즈음이면, 철길 건너편 공터 쪽에서 요란한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무얼 의미
하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 서커스가 들어온 것이다. 미루나무보다 더 높은 나무 기둥들이 공
터 주위에 빙 둘러 세워지고 나면 이내 알록달록한 대형 천막이 부풀어 올랐고, 그것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
도 조금씩 부풀어갔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지름길을 놔두고도 일부러 그 앞을 지나 돌아오곤 했다.
그 무렵 우리는 먹을 것뿐만 아니라, 볼 거리와 놀 거리에서도 늘 허기를 느꼈다. 저녁에만 방송되는 TV
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뒤 TV가 있는 집 대문을 기웃거리기 일쑤였으며, 장날마다 큰북 작은북
을 앞뒤로 메고 심벌즈까지 매단 채 나타나는 약장수 아저씨를 꽤나 기다렸다. 약장수 아저씨와 함께 다니
는 옷 입은 원숭이의 재롱을 보는 것도, 매혹적인 볼 거리의 공간이었던 만화방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가
장 기다려지는 것은 일 년에 한 차례 들어오는 서커스였다. 그래서 봄이 되면 공터 쪽을 더 자주 살펴보게
되었던 것이다.
서커스장을 짓는 일은 열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서커스장이 완성되기 전부터 그들은 하루에도 몇 시간
씩 빠른 템포의 폴카 리듬과 신나는 트로트 메들리를 틀어대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서커스 공연이 시작되
기 이틀 전부터는,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입은 모든 서커스단원이 트럭을 타고 천천히 동네를 몇 바퀴 돌았
다. 삐에로 분장을 한 단원이 확성기에 대고, “서커스가 왔습니다. 전국 방방곳곳을 돌고 돌아 여러분 곁으
로 왔습니다.…”라고 목청을 돋우면,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로 화답을 하거나 휘파람을 휙휙 불면서 환호해
주었는데, 더러는 “감질나게 그러지 말고 어서 서커스나 시작해라.”고 쏘아붙이는 이도 있었다. 우리 동네
의 봄은 매번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서커스 트럭을 타고 왔던 것 같다.
서커스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구경을 못 한 채 천막 주위만 배회했다, 혹시라도 허술한 틈
이 있는지 살피면서. 어머니에게 서커스 구경을 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어머니는 ‘철이 없
는 기집애’라며 더 이상 말을 못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당에 훽 뿌리셨다. 어머니의
속이 편치 않다는 표시였다.
그 날도 나는 저녁밥을 일찍 먹고 매표소 근처를 서성대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끊임없이 탄성과 환호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매표소 위에 총총히 매달린 만국기까지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가을 운동회처럼
쏜살같이 달려 그냥 매표소를 통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놀라서 돌아
보니 우리 집 아랫방에 세 들어 사는 순경집 아줌마였다. 그 당시 순경들은 학생 지도 단속을 한다는 이유
로 영화관이나 서커스장에 무료로 출입할 수 있었고, 나는 그 날 순경집 딸이 되어 마침내 서커스장에 들어
가게 되었다.
가마니를 깐 바닥에서 시큼털털한 냄새가 계속 올라왔지만 나는 꽤나 집중해서 보았다.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가 몸에 착 달라붙는 무대복을 입고 나와 한꺼번에 접시를 세 개나 돌렸고, 하얀 타이쓰를 입은 남자
가 바닥에 누운 채 두 발로 자신의 덩치 세 배쯤 되는 나무통을 자유자재로 굴리기도 했다. 어느 단원은 외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자전거 위에 한 발로 서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서커스의 클라이막스는 단연코
공중곡예였다. 내 또래의 소녀가 한 장의 꽃잎이 날아가듯 이쪽 그네에서 저쪽 그네로 날아갔다. 그 모습은
정말 가슴을 졸이게 하면서도 경이롭고 환상적이었다. 반대편 그네에서 한 발만 걸친 채 손을 뻗고 있는 남
자 단원이 혹시라도 날아오는 소녀의 손을 놓칠까봐, 모두들 목을 젖힌 채 위를 올려다보며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곡예라 할지라도 곡예사가 거뜬히 해내주길 바라고 또 믿는다. 그리고 곡예사는
그 믿음을 깨지 않는다. 소녀가 공중 곡예를 마치고 내려와 무대에서 인사를 했을 때 내 옆에 앉아있던 순
경집 아줌마는 얼른 무대 위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에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나는 그 날 이
후로 아줌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서커스가 오기를 기다렸을까. 환호할 그 무엇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곡예사들의 반짝이
는 의상과 진하고 화려한 분장, 아찔할 정도의 노출이 있는 무대복으로 인해 그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을 벗어나 환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보는 일탈의 시공간, 그것이 바
로 서커스의 매력이었다.
서커스를 보고 온 뒤로 그에 대한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밤새도록 서커스 천막을 들추는 꿈, 내가 서커스
단 소녀가 되어 그네 위에 서 있는 꿈, 어느 날은 서커스단장이 나를 붙잡으러 쫓아오는 꿈도 꾸었다. 아마
고아들을 잡아다 가둬놓고 식초를 먹여가며 서커스 훈련을 시킨다는 소문 때문이었을 게다.
나도 공중 그네 타기를 해야 했던 때가 있다. 어느 날 살고 있던 집이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연
락이 왔다. 집주인이 우리 몰래 담보대출을 잔뜩 받아 챙기고는 종적을 감춰 버린 것이다. 남편은 바다 위
에 있었고 그가 돌아오려면 반년도 더 기다려야 했다. 이제껏 모아놓은 돈을 거의 날릴 위기였다. 내가 무
사히 반대편 그네로 날아갈 수 있을까. 그 옛날 공중 그네를 타던 내 또래 여자 애를 생각했다. 그 아이가
곡예를 무사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겁 낼 것 없다고, 그동안 해온
‘인생살이 연습’이 네 손을 잡아줄 거라고 내 마음을 다독거렸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일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스스로 삶의 고리 하나를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그를 붙들어준다는 것을.
비오는 날, 서커스 천막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제 손바닥에 받으며 놀고 있던 서커스 소녀를 본
적이 있다. 공연이 없던 그 날, 소녀는 심심했을까, 즐거웠을까, 아니면 울적했을까. 떨어지는 빗방울을 제
손바닥에 무사히 받아내면서 소녀는 어쩌면 아슬아슬한 공연 뒤에 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
다.
사람들은 서커스를 두고 극한직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삶의 극한에 서지 않는 이가 과연 얼
마나 될까. 울고 싶어도 웃어야 하고, 쉬고 싶어도 다음 공연이 기다리고 있고, 지낼 만하면 다시 짐을 싸서
옮겨 가야 하는 우리네 삶 또한 서커스단의 행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누구나 제각
기 다른 역을 맡고 있을 뿐, 우리 모두 어릿광대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오늘 하루치의 연습이 기다리고 있
는.
첫댓글 초등시절에 서커스를 보고 늘
행복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