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은 반쪽 얼굴만 보여주었어 외 1편
박설하
언니와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어
의자를 젖히며
소다수로 입술을 적셨어
톡 쏘는 토요일 너머로
옆얼굴들이 줄지어 지나갔어
스크린을 따라
오래전 죽은 초상화들이
동전의 반쪽 표정으로 굳어 있었어
조곤조곤 뒷면을 들춰내는
특별상연
고개를 조아리는 화가와
오똑한 콧대의 중세 귀족들
낯빛을 바꾸는 슬라이드들
부풀부풀 근대로 건너간다
흰 벽을 배경으로
현세적 옆얼굴로
자막이 휘어지는 대각선 앞자리의 내게
언니가 손짓을 한다
비어 있는 뒷자리로 오라고
우린 생각보다 가까웠나 봐
방금 딴 소다수 기포가
목구멍에 막 도달한 기분, 알 것 같지?
큐레이터 목소리가
한 컷 두 컷 이십일 세기를 넘기며
나긋나긋 흐르기 시작했어
백허그
박설하
잠들지 못했겠다
라디오 볼륨을 너무 높여서
집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마실이 잦은 할머니 등에
업혀 다닌 심심한 밤은 두런두런
사립문을 흔들곤 했다
닳아빠진 숟가락으로 생무를 긁어먹는 게 고작인
몇 집 건너 숙이네 사랑방은
메주가 줄지어 매달려 있기도 했고
아랫목 발가락들이 쿰쿰 익어가기도 했다
베갯잇 봉황 깃털을 세다가
물러터진 홍시를 숟가락으로 찍어먹기도 했다
업힌 어깨 너머로
손톱달을 몰고 오던 밤들
당당한 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를 들였고
할머니는 밤마실을 들였다
나는 초저녁잠이 깊어서
한숨으로 굽은 등에 기대지 못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볼륨을 줄인다
물무늬 쉐타 속에서 할머니가 줄줄 흐르고 있다
긴 밤의 실타래를 올올 머금고
--애지 사화집 김선옥 외 {꽃밥}에서
약력 : 2022년 『애지』 등단, 시집 『화요일의 목록』
카페 게시글
애지회원발표시
박설하의 코인은 반쪽 얼굴만 보여주었어 외 1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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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9 04:3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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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가 살짝 그친 6월입니다
저의 졸시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