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exas_Fotos, 출처 Pixabay
공존의 이유 · 12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
詩想노트
이 시는 실로 많은 수난을 겪은 시입니다. 나에게 많은 피해를 준 시입니다. 나를 많이도 유명하게 해준 시입니다만, 그 반비례로 나를 많이도 괴롭힌 시입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기회로 어떤 인쇄물에 나의 이름 대신에 성 오규스틴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고, 또 어느 인쇄물에 유행가처럼 변절이 되어 엉뚱한 작품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책받침에 인쇄되어 널리 판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변질이 되어 팔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이러한 열등 국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저질적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이 된다고 해서 뻔히 살아 있는 사람의 작품을 이름을 바꾸어서 팔아먹기도 하고, 유행가처럼 변질시켜서 팔아먹기도 하니, 이러한 열등하며 저질적인 나쁜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제작을 해서 돈을 벌려는 제작자도 나쁘지만, 이러한 조작된 작품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는 겁니다.
하여튼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나의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대표적 작품은 아닙니다.
나는 어느 해 믿고 있던 친구에게서 큰 배반을 받았었습니다. 물론 믿고 오랜 세월을 사귀어 온 사람이지요. 참으로 인생의 동반자처럼 믿고 온 친구였지요.
그 동반자처럼, 친한 친구처럼 믿고 오던 친구에게 크게 배반을 당했을 때 얼마나 나는 당황했겠습니까.
나는 혼자서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 술집 다이에 앉아서 싸구려 안주로 술을 몇 컵 들이켰습니다.
술이 온몸에 올라오자, 이 시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 시 그대로 즉흥적으로 나의 시들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들이 많습니다. 거의가 그렇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오래 걸려서 나온 시들보다도 이렇게 즉흥적으로 나온 시들이 정답고, 오래 그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 한 편의 시를 작성하는데 20년이 걸렸다든지, 10년이 걸렸다든지, 몇 년이 걸렸다든지,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이상스럽게 들리곤 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말해서 안 되었지만, 죽은 송욱 시인이 같이 술을 마시다가 “조형, 나는 ‘백자 항아리’ 한 편을 쓰는데 3년 걸렸소" 하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이도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순간 나는 그럼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를 왜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번도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즐거워서 썼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시는 어렵고, 고통스럽다고들 합니다.
그 말이 나에겐 우습게만 들리곤 했었습니다. 시다운 시도 못 쓰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말을 하기 때문에.
요즘,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첫째로는 정신의 건강이겠지요. 다음으로는 육체적인 건강입니다. 정신이 시원하면 내 몸도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통틀어 나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를 쓸 땐 참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기뻐지는 겁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를 쓰고 있더라도. 산문을 주문받아서 쓸 땐 고통을 느끼면서 그 책임을(원고청탁 받은) 다하지만, 시는 나의 영혼의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실로 나에게 있어서는 즐거운 인생의 작업입니다.
---------------------------------------------------------------------------------------------------------
머리말
이 시는 나의 과거의 시집 속에서 손이 가는 대로 뽑은 100편의 시에다가 그 시에 얼킨 나의 인생 경험과 시적 경험을 적어서 써내린 일종의 나의 인생과 나의 시의 자전적 편모라고 하겠습니다.
100편의 시는 출판사측의 요청이었습니다.
나의 시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읽어서 아시다시피 해설이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만큼 나는 여러 독자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시 작업을 내 인생처럼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철학인 순수고독(純粹孤獨)과 순수허무(純粹虛無)에 있어서는 그 깊이에 있어서 다소 설명이 필요할지는 모릅니다.
요컨대 누구나 삶이 원천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 나의 순수고독의 개념이며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 나의 순수허무의 개념입니다. 나는 이 고독과 허무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입니다. 인생처럼.
1992년 5월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편운재片雲齋에서 조병화
© RosZie,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