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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환경과 지역 가치
문화가 중시되고 있다. 탈산업주의로 21세기를 시작한 지금, 세계는 문화를 중시하고 있다. 산업주의에 대신해 문화·정보주의가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외부로 확장하던 도시 또한 복원과 재생, 미관화하는 새로운 성장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미 낙후된 공장지대나 도심을 문화지대로 조성한 1970년대 유럽과 북미의 모델은 오히려 낡은 예다. 지금은 대부분의 도시가 어떻게 하면 도시를 미관화하고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불어넣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다. 과거 예술가 복지를 고민한 ‘복지형 지원정책’은 예술교육과 공공예술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단순히 돈을 주는 건 더 이상 정책이 아니다. 예술가로 하여금 시민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공의 영역에 더 많은 예술가가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설립이나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문화관광부 내 ‘공간문화과’의 신설, 문화중심도시의 추진 등은 아직은 영글지 않았지만, 분명 미래의 방향을 보여주는 새로운 실험지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중시되는 것일까?
도시에서 문화가 중시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관광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연 1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McKeinsey, 2002)고 한다. 스페인 빌바오 또한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한달 평균 11만 3,000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고 한다. 이는 미술관이 없었을 당시보다 무려 34.6% 늘어난 수치다. 미술관 하나를 개관함으로써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도시로 악명 높았던 빌바오는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가 되었다.
다른 이유는 예술이 갖는 ‘지역 개발 효과’에 있다. 템스 강 하류에 있는 낡은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영국 런던은 이 미술관으로 인해 ‘테이트 모던 효과(Tate Effect)’가 나타날 정도로 주변 지역 지가를 상승시켰다. 인근 지역에 ‘셰익스피어 극장’이 들어서고, 주변에 작은 미술관과 식당, 고급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테이트 세인트 이브스를 중심으로 놓고 살펴볼 경우 반경 32km 이내에서는 8%의 성장률을, 반경 112km 이내에서는 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이 영국 런던의 보도(The Guardian, 2005.5.2)다. 이러한 예는 이미 뉴욕의 소호에서 경험한 바 있다. 낙후된 창고 밀집 건물이 있던 소호는 1990년대 초반 미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점차 새로운 예술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곧 치솟는 땅값 때문에 그들은 챌시 지역으로 쫓겨났다. 예술에 의해 발전된 지역이 숙주로 변해 예술을 쫓아낸 전형적인 지역개발 사례라 할 수 있다.
도시가 문화를 중시한 세 번째 이유는 창의적 인구와 자본의 유치 등과 관계가 있다. 사실 창의성은 최근 도시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등장하고 있는데, 예술, 다시 말해 문화적인 도시 만들기야말로 이런 창의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 다산쯔(大山子)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인공위성을 만들던 낙후된 공장지역은 로버트 버넬이라는 미술가에 의해 아틀리에가 되고 갤러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작가가 모여들며, 베이징을 상하이나 동북아 여러 도시에 밀리지 않는 가장 창의적인 창작기반을 가진 도시로 만들었다. 동서로 1,000m, 남북으로 700m에 형성된 이곳에는 현재 180여 곳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100여 곳의 화랑, 50여 곳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몰려 있다. 더구나 그 갤러리 중 50%는 외국계다.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20여 국가들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
요코하마 또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도시를 개조하는 한편, 창의적 인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도시 중 하나다. ‘붉은 벽돌 창고’를 개조해 많은 주목을 끌은 요코하마는 2004년 1월 “Creative City Yokohama”를 외치고, 도심에 있던 낡은 두 은행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BankArt 1929’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BankArt 1929’란 은행 건물이 세워진 연도를 얘기하는 동시에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이 세워진 연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낡은 두 건물을 문화적으로 바꾼 요코하마는 이 건물을 활용해 ‘BankArt School’을 유치하며,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예술가 및 아마추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가 문화를 중시하는 네 번째 이유는 세계적인 기업과 인력, 자본을 유치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과 인력,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실상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시장(market)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지(image)다. 즉, 그 도시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의 상징물(cultural icon)이나 예술적인 공간미학 등은 바로 그런 이유를 제공한다. 에스플라네이드를 만들고 친환경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공간을 가진 싱가포르가 그 사례다. 세계 최고의 삶의 질을 자랑하는 밴쿠버를 비롯한 캐나다의 도시들 역시 그런 사례를 제공한다. 삶의 질을 위한 문화서비스의 제공, 그것을 통한 세계 도시로의 접근이 바로 최근 문화도시, 문화환경이 강조되고 있는 예다.
현대도시에서 예술이 중시되고 활용되는 예는 매우 다양하다. 그 대표적 방식은 도시의 상징과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일 것이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코페하겐의 오페라극장, 그리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 도시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 시설 건립 바람은 모두 이러한 움직임을 대변하고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도시의 낡고 낙후된 공간을 활용하는 재활용의 수단으로서 예술이 활용되고 채택되는 경우다. 프랑스 파리의 동부 지역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나 독일 티센 제철소의 문화공간화 사례, 테이트 모던의 개발, 요코하마 뱅크아트 프로젝트, 다산쯔 예술특구 조성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현대의 도시들은 낙후된 지역을 예술을 통해 재생, 복원, 재활성화함으로써 예술과 지역, 예술과 도시가 공존하는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도시의 미관과 다양성, 재미, 즐거움 등을 위해 문화예술을 사용한다. 스트리트 퍼니처 차원에서 도시 시설물을 예술물로 바꾸는 것은 이제 모든 도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또한 각 도시는 다양한 거리예술을 통해 거리의 재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한다. 과거의 도시에서 ‘속도’가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면, 현재의 도시는 어떻게 하면 과연 더 느린 속도로 가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속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더 느리고, 더 여유 있게 도시를 관조하며, 도시 속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 스스로 즐기도록 ‘판’을 벌이는 것! 무대로서 도시를 만드는 것이 현대 도시의 새로운 흐름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중시하고 활용하는 전략은 시민들의 삶 속에 예술을 개입하는 것이다. 바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통해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 문화와 여가는 자기개발과 가족을 연결하는 수단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는 시간 동안 더 많은 문화예술을 배우기 원하며, 문화예술을 통해 자기를 개발하고 가족과 함께 되길 원한다. 때문에 시민들의 삶 속에 어떻게 문화예술을 개입시킬 것인가는 새로운 아이템이 되었고, 그 결과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삶의 질 차원에서 문화예술 서비스의 고도화를 새로운 정책적 아이템으로 꺼내들고 있다. 일본의 가나자와가 시민예술촌을 만들고, 시민 스스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한 일, 교토가 아트센터를 만들고 전 세계 작가들을 불러들여 시민들 대상 교육사업을 추진한 일, 각국이 수많은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그 의무 규정으로 주민과의 교육 프로젝트를 추진한 일 등은 바로 예술과 시민의 결합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문화예술이 실질적인 시민의 삶과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여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경제적 효과를 강조한 측면도 있고, 공동체의 안정화를 이끈다는 논의도 있다. 예컨대 영국의 예술위원회가 발간한 자료(〈예술을 위한 1%〉, 1991)에 따르면, 예술은 △장소를 더욱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일반 대중이 현대미술과 공예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건물이나 공동체의 서로 다른 부분을 통합하고 아이덴티티를 강화한다 △도시, 국가, 회사의 미술투자를 증대시킨다 △시각환경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경제적 재건의 여건을 개선한다 △미술가, 공예가, 조직자, 재료공급자 및 제작자, 운송업자 등의 취업영역을 넓힌다 △건축, 조경,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등 환경을 조성하는 전문가와 미술가들의 유대를 강화한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 ‘공공예술위원회’ 또한 공공미술이 갖는 효과를 △정신적 측면 △사회·정치적 측면 △문화적 측면 △경제적 측면 등으로 나누고, 공공미술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정신적 빈곤의 해소 △지역개발 효과 △주민 간 사회적 융합의 강화 △지역정체성 강화 △문화민주주의 실현에 기여 △삶의 질 향상 등으로 정리한 바 있다.
캐나다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이를 정리하여, 문화예술의 가치를 <표 1>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표 1>에 따르면, 문화예술은 경제적 가치, 도시재생과 활성화, 공동체 가치, 삶의 질과 장소의 질 가치, 사회적 개발 가치 등의 효과를 갖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과 가치를 갖도록 했느냐는 문제는 다른 문제다. 다시 말해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과 실제 그런 가치를 발휘하도록 노력했느냐는 문제는 다른 문제로, 대부분 창작 중심의 ‘예술가 복지형’ 지원정책을 사업으로 추진해온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 예술이 이런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 지역과 공동체의 가치, 재생과 복원, 공존의 가치 등을 다 이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는 어찌 보면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정책적인 방향,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라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간 문화예술환경 조성정책이 이루어진 사업대상지를 놓고 여러 가지 조사를 하였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조사는 과연 어떻게 하면 지역가치가 가장 높아질 것인가 하는 것(〈문화환경이 지역가치에 미치는 영향 연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6)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문화환경이 지역에 가져다주는 변화를 △경제적 효과 △재생과 정비효과 △삶의 질 효과 △공동체 효과 등으로 나누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지역의 변화를 △지가 △정주성 △지역 이미지 변화 등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환경이 조성되면 지역에 경제적·도시환경적, 삶의 질적·공동체적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지역의 가치(지가, 정주성, 지역 이미지) 등이 변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실제 문화예술환경 조성 사업이 실시된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조사 대상은 광진나루아트센터, 월드컵경기장, 명륜동아트프로젝트 대상지역, 북촌, 대학로, 서울숲 등이다. 각각 문화시설과 전통문화의 보전, 생활 속 예술 프로그램 등을 대표하는 사례다. 조사 결과 지역 가치가 가장 높게 변한 지역은 ‘서울숲’이었다. 이어 월드컵경기장, 대학로 순으로 나타났으며, 지가가 가장 오른 곳은 월드컵경기장과 서울 숲, 정주성이 강화된 곳은 서울 숲과 대학로, 지역 이미지가 개선된 곳은 서울숲과 월드컵경기장 순이었다.
재밌는 것은 불과 1,000만 원이 투입된 명륜동아트프로젝트의 경우, 광진나루아트센터보다 지역의 가치를 더 높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며, 특히 정주성을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곧, 대규모 예산 투입보다는 주민들과 마을의 삶의 질을 바꾸는 데 예술이 기여해야만 더 많은 사회적·지역적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조성비와 도심으로부터의 거리, 교통여건 등 객관적 지표와 ‘지역에 대한 만족도’, ‘지역에 대한 자부심’, ‘문화환경 조성에 대한 만족도’, ‘문화환경 중시정도’라는 주관적 지표를 적용한 결과, 객관적 지표보다는 주관적 지표가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 즉, 조성비나 이런 것보다는 ‘지역에 대한 만족도’, ‘문화환경 조성에 대한 만족도’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미친 효과와 지역가치 사이의 관계를 알아본 결과, 지가 상승은 경제적 효과에, 정주성 강화는 ‘지역재생 및 정비효과’와 ‘공동체효과’에, 이미지 제고는 ‘재생 및 정비효과’에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지역민의 정주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을 지역환경의 정비 및 공동체 강화요소로 사용해야 하며, 그래야만 문화환경은 지역의 가치를 더 많이 상승시킨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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