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이탈리아 성 알퐁소(1696-1787년)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태어나 불과 16세의 나이로 교회법과 민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던 유능한 젊은이였으나,
어떤 중요한 사건에서 깨달은 바 있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731년 첼레스테 수녀의 환시가 계기가 되어 ’구속회’라는 수녀회를 그리고 2년 뒤에는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지만 많은 난관에 봉착하여 지내던 가운데 1734년에 두번째 창립을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인근 지역을 다니며 순회 설교 사도직을 수행하였지만, 글을 더 쓰고 싶어 했으며, 신자들 가운데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설교와 저술에 시간을 보냈다.
특히 윤리신학의 대가로 존경 받았다.
1762년에는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의 주교로 임명되나 곧 수도회로 돌아가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구속회의 양분을 기도하는 세력과 싸우다가 노체라에서 운명하였다.
성 알퐁소는 윤리신학과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과 반 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의 신심서적인 ’마리아의 영광’은 성모 신심이 돋보이는 저서로 꼽히며, 교황 비오 10세로부터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구속주회는 성 알폰수스가 선종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성 알폰수스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이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