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54/‘완전체 여행’]아들네가 돌아왔다
호주에서 둘째아들 내외가 거의 4년만에 돌아왔다. 물론 일시귀국, 한 달 휴가를 냈다. ‘망할놈의 코로나’ 때문에 오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어찌 할 수 없는 고국과 가족이었으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겠는가. 얘들이 더욱 그랬겠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 않은 마음의 상채기들. 보기만 해도 아깝고, 보기만 해도 행복한 한 달이 지나, 내일이면 출국이다. 또 언제 만날 것인가? 아프다, 가슴이. 눈물 많은 나는.
전대미문前代未聞 ‘이태원 참사’를 왜 ‘이태원 사고’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되, 이 마당에 아들 얘기를 하는 게 민망하긴 하다. 아들과 아내 자랑은 팔불출八不出의 으뜸일 것이로되, 나로선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아들은 질색팔색하겠지만 말이다. 3학년 4반(34),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일단 다 이뤘다고 보면 된다. 벌써 결혼 7년차. 제 색시와 함께 유학생부부가 됐다. 원하던 직업 자격증도 따냈고, 짱짜란히 같은 직장에 취직했으니 ‘사내 부부’라 할 것인가. 게다가 어렵다는 영주권까지 받아 ‘재외국민’이 됐다. 6-7년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소위 전문용어인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의 조짐을 보이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 부모이기에 당장이라도 국내에 들어오라고 하고 싶다가도, GNP“만” 선진국인 내 나라에서 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가, 국민의 마인드가 선진국이 되지 않고 통일이 되지 않는한, GNP가 5만달러가 된다한들, 한국은 ‘헬조선hell CHOSUN’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번 핼로윈데이 이태원참사 소식을 맨처음 TV자막으로 접하곤 딴나라 사건인 줄 알았다. 1982년 6월 군대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뉴스를 보면서 ‘그게 차마 광주에서 군인들이 우리 국민들을 죽이는 줄’은 꿈에도 몰랐듯, 영국 등 유럽권 나라 축구장이나 사우디 등 아랍권 종교순례 중 일어난 것이겠거니 했다. 헐-! 소리가 절로 나오며 잠자던 아내를 부리나케 깨웠다. ‘핼’이나 ‘헐’이나 ‘헬조선’의 헬, 모두 ‘ㅎ’자가 아닌가. 럴수, 럴수, 이럴 수는 없는 일. 세월호 참사가 떠오를 것은 당연.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에도 역시 참사의 배경에 ‘국가國家’는 없었다. 이튿날에서야 속보를 접하며 식탁에서 한참을 울었다. 죽어간 20대, 생떼같은 청년들의 돌연한 죽음이 너무나 애석했다. 세상에나? 어째야 좋단 말인가? 이것은, 이것은, 명백히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라는 방증傍證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튼, 다시 아들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 사고를 봐도 역시 ‘가족家族’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가족에서 분화分化된 소가족 내지 핵가족, 많아야 대여섯 명. 우리 나이에도 자녀들이 거의 독립, 양주兩主만이 사는 집이 태반이리라. 그러한 데 주말이라고, 명절이라고 걔들도 하나나 둘인 아이를 데리고 온다. 아내의 수고로움이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얼마나 반갑고 기쁜 모임이던가. 우리집으로선 ‘절반의 만남’이 이번 둘째네의 귀국으로 ‘완전체 가족’이 되었다. ‘완전체’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지만 상당히 재밌는 조어가 아닌가.
하지만, 아직은 완전체가 아닌 게 둘째네가 아이가 없음으로 ‘미완전체 가족’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선 완전체이므로 가족여행을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서울 한복판 호텔에서 7명(7살 손자포함)이 종로일대 맛집 순례 등 하루를 꿈같이 즐겼다. 또한 왕할아버지를 모신 여수 자연산회집 4대간 회식, 출국을 앞두곤 우리 부부와 둘째내외, 넷이서 강릉 1박2일, 테라로사공장 커피 한잔, 가을비 우산속 솔향수목원 산책 등등등등, 우리는 그렇게 ‘가족추억의 탑’에 돌멩이 하나를 얹으며 '인생사진'들을 찍었다. 좋았다. 너무 좋았다. 수확이 왜 없었겠는가. 제법 성장한 일곱살 조카가 호주삼촌과 숙모에게 이번에 덥석덥석 안기는 등 제대로 '사귀게' 된 것이다. 암먼, 그래야지, 그래야 하구말구. 하지만, 또 오랫동안 헤어져 있을 생각을 하면 아쉽고 또 아쉽다. 아이고, 사는 게 도대체 뭔지…….
가족은 그렇게 애틋하고 가슴이 저릿저릿하는 것이거늘,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만부동(유분수)이지, 이번 참사로 참척을 당한 부모(대부분 50대일 터)들의 뻥 뚫린 가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신경정신과 상담이 마구마구 늘어나는 것일까? 아아-, 나라를 잘못 만나고, 대통령을 잘못 만난 우리 아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듣보잡인 서양풍속 핼로윈데이에 물들고 편승하게 한 것도 모두 어른들 잘못이다. 미안하다. 모두 다 잘 가거라. 2014년 충격의 대참사때 울면서 쓴 졸문을 부기하는 까닭이다. http://yrock22.egloos.com/2978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