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113)
시간의 종착점을 앞두고 조금씩 호흡을 고르고 있습니다. 멀게만 보였던 한해의 끝자락이 어느덧 시야에 들어오며, 깊어지는 겨울만큼 외롭고 그리움은 깊어가지만,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음 내려놓고 그리움 묻혀가며 선생님들을 향하여 따스한 정이 담겨 있는 마음의 편지를 보냅니다. 이상기온을 걱정할 만큼 따뜻한 날이 계속되더니 모처럼 겨울답게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돌아 아침에는 하얀 무서리가 내려앉기도 하고,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뽀얀 입김은 오랜만에 하늘 여행을 떠나고, 교정의 세심지도 얼어 붙어버릴 만큼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파고듭니다.
따뜻한 날씨 때문에 겨울잠에 들지 못했던 지리산 반달곰도 이젠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유난히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이고, 나무는 나무이듯, 자연은 제 꼴을 지니며,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기의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한 아이가 마루 밑에서 잃은 볼펜을 마루 위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미련한 녀석아, 마루 밑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아들이 대꾸합니다. “아버지도 낮은 데에 있겠다는 예수님을 높은 데로만 찾아다니면서 뭘 그러세요.” 우리의 일그러진 신앙생활의 모습을 꼬집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랑의 봉사와 나눔이 이제는 뉴스에서조차도 미담으로 장식되지 못하고, 불교계의 인사가 나와 연말 연시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전 같지 않은 성탄절을 보내며, 마굿간에 오셔야만 했던 주님이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일부러 낮은 데로 오셔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고자 했지만, 저는 주님을 높은 곳에서 찾으려 높이 올려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루돌프 사슴 코'란 캐롤을 아십니까? 이 노래는 1939년 ‘로버트 메이’란 가난한 작가가 오랫동안 병석에만 누워 있는 아내를 어린 딸이 친구 엄마와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파하며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 설명하며, 자신이 어릴 때 몸이 아주 약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했던 기억을 떠올려 사랑하는 딸을 위해 '루돌프 사슴 코'란 동화를 만든 데서 유래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코가 빨간 루돌프는 생긴 게 달라 항상 외톨이였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밤늦게 나섰으나 뽀얀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자, 루돌프에게 썰매를 끌게 하였는데, 그 후로 다른 사슴들도 루돌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담긴 노래입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몸이 약하다고, 놀림 당하는 외롭고 쓸쓸한 친구들을 위해 마음을 열어 보게 한 '루돌프 사슴 코'의 노래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주 신나게 불러지는 것처럼, 어려움과 힘겨움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노래로 다가오듯이, 우리들의 노래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죠지 프레드락 왓슨이라는 화가가 그린 ‘희망’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둥근 지구 꼭대기에 슬픈 듯이 고개를 숙이고 하프를 연주하는 한 여인의 모습이 있고, 뒤에는 별 하나가 빛나고 있는데, 가만히 보면 하프의 줄이 다 끊어져 버리고 이 여인은 한 가닥 남은 하프 줄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이름을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47개의 하프의 줄이 살면서 하나 둘 끊겨져가더니 결국 마지막 남은 한 줄에 희망을 걸고 음악을 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지난 한해를 생각하면 부푼 꿈을 가지고 시작했건만 이젠 한 가닥의 줄을 켜는 여인의 심정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직 하나의 줄이 남아 있음이요, 하나의 꿈이 무너졌다면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잃었다면 몸으로 할 일이 있습니다. 건강을 잃었다면 또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 다른 문을 열어주십니다. 문제는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찾는 일입니다. 빌헬미라는 음악가가 바흐의 관현악 곡을 편곡하여 ‘G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을 부쳐, 이를 바이올린의 G선만으로 연주하도록 한 것처럼 얼마든지 한 가닥의 줄로도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헨델은 건강악화와 경제파탄으로 오페라 작곡가 겸 극장 경영자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고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그의 전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건강과 그의 운명은 최악의 경우에 이르렀다. 그의 오른편은 반신 불구가 되었고 돈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채권자들은 그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했다. 잠시 동안 그는 싸움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얻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바로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늘의 영감을 얻게 되고, 마침내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웅장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유명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는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바로 이렇게 작곡된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화려한 궁중에서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최악의 상태, 건강을 잃고, 돈을 잃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래서 모든 꿈이 다 깨어진 그런 자리에서, 땅의 모든 문이 다 닫혀버린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새롭게 일어설 때, 하늘의 영광이 열리고, 위대한 할렐루야 합창이 그의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희망에 물든 새 옷을 말끔히 차려 입고, 우리 모두 새해의 문으로 웃으며 들어서는 희망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