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렴
김주선
찬 바람이 불어 그런가, 전화기 너머에서 남편은 난데없이 국밥 타령이다. 밖에서 한 그릇 사 먹고 들어오면 좋겠는데 굳이 저녁에 해 먹자고 한다. 요즘처럼 먹을 게 흔한 시절이라면 따로 보양식을 챙겨 먹을 일은 없다. 남편은 우울하거나 속상하거나 아플 때 원기 회복에 이만한 것도 없다며 어머니표 탕반을 찾았다.
사골과 등뼈를 넣고 푹 고아 낸 육수에 조물조물 무쳐 놓은 토란대와 우거지를 넣어 솥에 안쳐 놓았다. 순대, 콩나물, 소고기.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국밥의 이름은 달라질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얼려 둔 양지머리가 있길래 삶아 두었다. 한소끔 끓으면 대파를 썰어 넣고 삶아 놓은 고기를 찢어서 넣을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육촌 언니가 주말농장에서 농사지은 것이라며 배추 두어 포기와 무 몇 개를 들고 점심나절에 찾아왔다. 음료와 과일을 내놓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육수를 우려내고 대파를 다듬는 날 보더니 대뜸 눈물 바람이었다. 영장산 봉국사에 들러서 기도하고 내려와 들른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재종질녀再從姪女가 되는 그녀의 딸내미 기일이 그렇지 않아도 이맘때지 싶었다.
전기 기사였던 그녀의 사위는 성남 모 지식산업센터 기전실에서 일하는 격일 근무자였다. 업무 특성상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기술직이었다. 한창 신혼인 딸이 격일제 생과부로 사는 게 탐탁잖았지만, 혼기가 넘친 데다 둘이 죽고 못 산다기에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 3년 만에 손주가 생겼지만, 산후 우울증이 왔는지 딸은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날도 사위는 근무하는 날이라 딸 혼자 손주와 함께 잠이 들었는데 사위가 퇴근한 아침이 되어서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이웃집 여자가 말하길 아기가 새벽녘에 그렇게 울더란다.
수면제 과다 복용이라던가. 심장 마비라던가.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문상을 마쳤는데 딸을 허망하게 잃은 언니는 사흘 내내 밥 한술 못 뜨고 혼절을 거듭했다. 가족들이 딸의 일을 경찰에 신고하고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즈음 미국에 사는 안사돈이 며느리 상을 치르러 한국에 왔다. 다행히 발인 전에 도착해 안사돈끼리 서로 끌어안고 통곡하며 비통함을 나누고 보듬었다. 문제는 국밥집에서 생겼다. 경기도 모처에 납골함을 안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롯가에 있는 오랜 전통의 국밥집에 들러 아마도 마음을 추스르는 추모 뒤풀이를 하였던 모양이다.
“며느리도 자식이란 말은 거짓말일까?” 긴 비행과 허기로 지친 사돈이 국밥집에서 허겁지겁 소머리국밥을 먹는데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없더란다. 아무리 장터에서 국밥집을 하는 집안의 딸로 자랐다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저렇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싶었단다. 순간 사나운 심통이 나서 이성을 잃고 사돈의 빈 뚝배기를 그만 식당 바닥에 내동댕이쳤나 보았다. 죽은 며느라기를 기리고 추모해도 모자랄 판에, 어릴 적에 먹던 국밥 이야기로 사돈 가족은 화기애애해 보였다니 언니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사돈네는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며느리가 떠났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듯했다. 뚝배기가 두 동강이 나면서 이들 사돈지간도 그만 쪼개지고 말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던가. 여러 번 재방송되는 언니네 사돈 이야기지만 들을 적마다 나는 골백번 이해하고 편을 들어 주었다. 나중에 사위를 통해 오해가 풀렸는데, 졸지에 홀아비가 된 아들과 딸을 잃은 사돈에게 밥 한술 먹이기 위해 국밥집에 들른 것이라고 들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밥 먹고 기운 내 열심히 살라고 마련한 자리였다니 그쪽 부모 마음도 오죽할까 싶었다. 패악을 부린 일로 사람들이 뒤통수에 대고 수군거리는 것 같다며 한동안 언니는 마음을 닫아걸었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침묵의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돌배기였던 손주는 쑥쑥 커서 지금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언니가 격일로 손주를 돌봐 주었지만, 아이는 장래를 위해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미국 친할머니네로 떠나게 된 모양이다. 사위마저 떠나면 언니와 사위네 가족 간의 관계는 영영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언니는 딸의 외로움을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사위를 한동안 원망했지만, 딸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자책감 또한 컸다.
사돈이란 게 얼마나 멀고 어려운 사이던가. 오래오래 정을 나누고 산 사이도 아니고 자식 일만 아니면 남이나 다름없는데, 그깟 국밥이 뭐라고 산통을 깼을까. 파 뿌리처럼 푸석푸석하게 늙어 버린 언니는 늦은 회한이 드나 보다. 요즘 부쩍 그녀가 운다. 이제 손주까지 떠나보내야 하는 언니는 따로국밥처럼 섞이지 못한 사돈네와 화해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니. 사돈과의 인연은 이미 끊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손주만은 나누어 갖고 싶은 핏줄이기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 새삼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나는 딱히 무어라 도움이 되는 말을 찾지 못해 애꿎은 대파만 다듬었다.
물들인 빛깔을 도로 빨아서 빼는 과정을 퇴염退染이라 한다. 이 말이 변하여 순우리말인 토렴이 되었다. 국물을 부었다 따르며 밥을 덥히는 과정을 말할 때 주로 쓰인다. 어느 해 겨울에 김장을 마치고 언니가 말하던 그 국밥집에 갔었다. 도대체 어떤 맛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역사의 현장이기도 해 꼭 한 번은 들르고 싶었다. 토렴이란 게 가만 보니 조리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한 원조 할머니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국에 정성을 다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주방장의 손목에 덕지덕지 붙은 파스를 보니 장인임이 분명했다.
잔칫집 채반에 놓인 꾸덕꾸덕해진 국숫발도 여러 번 육수에 적셔 토렴하다 보면 면발이 살아나 탱글탱글해지기 마련이다. 찬밥처럼 마음이 식은 사돈지간인 그들을 위로와 공감을 담은 뜨끈한 국물로 토렴해 주고 싶었다. 서로 스며들어 물들인다면 인간관계에 있어 이해되지 않을 게 어디 있을까. 따스한 마음을 부었다 따랐다 하다 보면 아무리 식은 마음이라도 찰기가 돌아오고 점성과 당도가 생겨 꿀맛이 나지 않을까. 토렴식 국밥처럼 마음을 데우는 일이란 얼마나 따스한 사랑의 방식인가.
저녁 상차림을 하기 위해 보글보글 끓는 국솥 앞에 섰다. 남편의 입맛을 닮아 가는지, 국을 푸기도 전에 이미 배 속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다.
동인지8호 수필오믈렛 수록
2020.8 <한국산문> 신인상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미디어피아 전문기자
제15회 바다문학상 수상(2021)
세명일보 신춘문예 詩부문 대상(2022)
제6회 좋은수필 <베스트에세이10>수상(2024)
제12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수상(2024)
2022년, 2023년<'The 수필' 빛나는 수필가 60>선정
동인지<폴라리스를 찾아서> <목요일 오후> <산문로 7번가><수필 오믈렛>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