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적 주제의 현대적 변용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중심으로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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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적 주제의 현대적 변용 : 알베르 카뮈의

파스칼적 주제의 현대적 변용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중심으로

연구목표
다양한 정신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팡세”의 상호텍스트적 연구를 종합해 볼 때, 파스칼의 위상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로 이어지는 철학과 신학의 기나긴 전통의 상속자로,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효시로 거론되는 사상가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서구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데카르트와는 달리 자신의 학파나 새로운 철학적 이론의 체계를 세운 일이 없다는 사실은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근자에 들어 철학적 혹은 종교적 관점보다는 텍스트 차원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철학적・종교적 차원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구경향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와는 별도로, 다시 말해서 철학자나, 신학자, 비평가들이 연구한 파스칼이 아닌, 현대 작가들의 의식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파스칼 ― 혐오의 대상이든, 찬미의 대상이든 간에 ― 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작가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조명한 파스칼적 주제는 학문적인 근거나 체계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연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적 감수성에 입각하여 해석된 '파스칼적 주제들'이 다양한 작가의식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측되는가를 논하는 것은 종교・철학적 주제들의 문학적 변용과정을 탐구하는 것이니 만큼, 연구의 방향전환이라는 의미도 지닐 수 있다.
20세기 작가들에게 “팡세”는 선택적으로 읽혀졌다. 파스칼의 호교론적 의도가 퇴색된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심리탐구와 도덕적 성찰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정신적 저장고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본 연구에서 전후세대 작가들 가운데 카뮈를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데에는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한다. 첫째, 파스칼에게 ‘부채감’을 느끼는 기독교작가들에게서 파스칼적 주제가 보다 쉽게 포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과 인간에 대한 입장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되는 정신적 친화력은 ‘인간의 비참’이라는 파스칼의 근본주제를 계승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변용의 징후가 종교적 차원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둘째, 인간에 대한 동일한 전망을 공유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작가에게서 파스칼적 테마들의 독특한 변용과정과 상반된 결론이 예상되는 바, 다양한 연구가 모색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신, 인간, 세계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통하여 열정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그 어느 작품보다도 작가의 태도와 입장이 소상히 드러나는 만큼, 깊이 있는 분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바, 이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한다.

본 연구는 “시지프의 신화”를 중심으로 ‘파스칼의 인간’이 어떤 변용과정을 거쳐 ‘부조리한 인간’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데 할애될 것이다. 파스칼과 카뮈에게서 부조리를 발견하는 일은 인식의 출발점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비참’을 또렷하게 직시하는 의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기분전환(divertissement), 습관, 권태, 상상력과 같은 개념들의 폐해를 파스칼은 구체적으로 면밀히 분석해낸다. 이러한 개념들이 “시지프 신화”에 이르면 현대적 의미로 재생산되어, 습관은 무반성한 삶의 관성으로, 기분전환은 치명적인 회피, 혹은 철학적 자살로, 권태는 부조리가 피어나게 하는 여건으로 변용되는 것이다. 이상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친화적 요소들이며 적어도 그렇게 판단되는 것들로서 본 연구에서는 이 개념들이 구체화되는 지점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고전적 주제가 현대 작가 정신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변용되었는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기대효과

본 연구과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상호텍스트적 접근 방법이 모색될 수 있다. 단일 텍스트 위주의 문학 연구에서 벗어나 20세기 작가정신에 의해 수용된 “팡세”를 분석하는 것은 연구의 방향을 작가 중심에서 수용주체로 전환한 것이 된다. 문학 텍스트는 수용주체와 상호주관적인 관계 속에 놓임으로써 역동적 작용을 하는 문화적 산물인 바, 문학의 본질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각에서 고전문학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특히 문학교육에서 고전문학의 입지가 과거에 비하여 축소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고전문학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파스칼의 진가는 프랑스 문학사 보다 근대서구의 사상사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는 이환의 지적대로, 파스칼은 철학적 담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데카르트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서구사상의 두 흐름을 조망하는 일은 과거에 교육현장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교수요목이었으며, “팡세”는 하나의 고전으로서, 필독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작품에 대한 교육수요가 거의 없다. 17세기 고전문학작품에는 서구적인 것의 영원한 원형, 한 마디로 인간존재의 원형이 담겨있는 만큼, 텍스트의 구조가 열려있으며 다양한 해석이 공존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이 자리한다. 바로 이 지점이 “팡세”를 포함하여 고전문학 텍스트의 다의적이고 다양한 교수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유명한 “팡세”의 편집자인 브룬슈빅은 20세기에 파스칼의 영향력이 미미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이 작품은 기독교 작가들을 포함하여 전후세대 프랑스 작가들, 실존주의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거나 쟁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반향은 상호텍스트적 연구의 필요성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교과목으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시한 방법론의 교육적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작가정신에 따라 텍스트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어온 수용의 역사, 즉, 과거 지평과 현재 지평의 끝없는 변증법적 만남의 궤적을 통하여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교화적 측면이나 불변성이 강조된 고전문학텍스트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학습자의 관심 및 교육적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다음은 그 구체적인 방안이다.
1) 문학개론 수업에서
첫째, “팡세”의 근원적 주제를 다양한 프랑스 현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각도에서 작품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둘째, 문학을 의도적으로 종교적 영감의 실험장으로 삼고 있는 현대기독교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팡세”의 주제들을 살펴보고 서구문학의 커다란 전통인 기독교문화를 개관해볼 수 있다. 셋째, 무신론 작가들에게서 파스칼적 주제를 검토해 보고, 어떤 변용과정을 거쳐 “신 없는 인간의 위대”라는 상반된 가치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2) 문학강독 수업에서
첫째, 파스칼과 카뮈의 문학적 위상을 소개하고 “팡세”와 “시지프 신화”에 나타나는 근원적 물음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카뮈 작품에 나타난 파스칼적 주제를 검토하고 부조리의 개념을 도입하여 “팡세”를 조명해볼 수 있다. 셋째, 두 작품에 나타난 인간, 세계, 신의 관계가 두 작가 의식 가운데 어떻게 해명되는가를 분석해볼 수 있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팡세”의 수용 현황을 세기별로 개관하고자 한다. 파스칼이 뚜렷한 목적과 의도 하에 편지의 수신자처럼 독자를 상정하고 “팡세”를 집필한 이래, 이 작품은 수세기를 거쳐 많은 독자를 만나왔다. 본 연구에서는 시대에 따라, 사상의 흐름에 따라, 개인에 따라 새로운 의미와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수용의 역사를 일고해봄으로써, 쟁점이 되었던 주제와 부조리와의 관계를 타진해 보고자 한다.
둘째, 부조리에 대한 정의를 살펴볼 것이다.
“팡세”와 “시지프 신화”를 비끄러맬 수 있는 핵심 키워드가 ‘부조리’인 만큼, 이 개념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부조리의 어원을 조사하고 16-17세기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이 어휘의 의미장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비종교적 영역(수사학, 기하학)과 종교적 영역에서 쓰임새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 어휘의 의미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또한 파스칼이 차용한 몽테뉴의 부조리의 개념이 “팡세”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바, 작품에 인용된 “엣세”를 중심으로 부조리의 개념을 개관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팡세”에서 부조리의 원형을 보다 체계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팡세”에 나타난 부조리의 징후에 대하여 분석할 것이다.
부조리는 관계를 상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팡세”는 부조리의 여건을 담고 있는 책일 것이다. 인간, 세계, 신이 맺는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는 바, 부조리의 징후가 ‘신 없는 인간’에게서 포착된다. 본 연구에서는 부조리의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파스칼이 강구한 다양한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파스칼의 감수성을 통하여 환기된 인간의 비참한 국면이 사변적인 서술에서 벗어나 시적 기능을 하게 되는 지점에 주목할 것이며 또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파스칼의 인간이 초월적 존재 속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는 ‘설득의 기술’도 검토하고자 한다.
넷째, “시지프 신화”에 나타난 파스칼적 주제가 어떻게 변용되었는가를 분석해 볼 것이다.
팡세의 ‘신 없는 인간의 비참’에 대한 다양한 국면은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두 의식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모습은 동일한 메아리를 담고 있다. 카뮈가 묘사한 ‘시지프’는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와 닮아 있다. 비참함을 또렷하게 의식하는 파스칼의 갈대는 산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순간’에 반성적 사고를 하는 시지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스칼과 카뮈에게서 비참한 인간의 국면을 명징한 의식으로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갈대와 산 정상에서 돌이 굴러 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지프는 각기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명징한 의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우주’보다도 ‘제신’보다도 위대하다. 그러나 두 의식이 보여주는 부조리의 귀결은 너무나도 큰 입장 차이를 보인다. 부조리에 대한 동일한 인식에서 출발했으면서도 파스칼과 카뮈는 상당히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태도가 상반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두 작가 정신이 치열하게 밀고나간 논증의 과정에 주목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호교론적 의도에 따라 ‘인간의 의식에서 신으로 이행’해 나가기 위해 고안된 방법론을 검토할 것이며, 카뮈가 부조리의 해법으로 삼은 반항, 자유, 열정을 살펴보고, ‘부조리한 인간’과 ‘부조리한 창조’를 통하여 구체화되는 삶의 모습과 예술 창작의 과정을 부조리의 실천적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본 연구는 20세기 작가정신 속에서 <팡세>의 주제들이 심리탐구와 도덕적 성찰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정신적 저장고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 인간, 세계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통하여 열정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파스칼적 주제와 현대정신의 변용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카뮈의 관점은 파스칼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지만, 두 정신의 선택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카뮈에게 파스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그러나 극복해야할 존재였다. 그가 속한 문화권에서, 그의 상상력 속에서 파스칼은 어쩔 수 없이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는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라는 칼리굴라의 말은 인간조건에 대한 비참한 인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으며 파스칼과 동일한 전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카뮈는 <팡세>의 "예수의 비의" 가운데 유명한 구절("네가 이미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를 찾지도 않았을 터이다")을 거꾸로 뒤집어 "계속해서 찾으시오, 결코 만나지 못할 테니"로 바꾸어 버렸다. 신앙이 희생되고 ‘추구’의 태도자체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땅과 하늘, 인간과 신, 부조리와 기적 사이에서 카뮈는 파스칼의 호교론적 의도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다. 그는 인간을 짓눌러버리는 허무 위에서 지상의 삶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20세기 작가정신 속에서 <팡세>의 주제들이 심리탐구와 도덕적 성찰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정신적 저장고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파스칼의 호교론적 의도가 퇴색된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위대한 정신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이용한 경우를 포함한다면, 현대 작가들의 의식 속에서 <팡세>는 교육적 가치와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신, 인간, 세계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통하여 열정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작가의 태도와 입장이 소상히 드러나는 바, 파스칼적 주제와 현대정신의 변용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시지프 신화>에서 “세계의 낯섦”으로 규정되는 부조리의 본질은 ‘좌표를 상실한 인간’이 ‘침묵하는 우주’와 대면하게 될 때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시지프 신화>에는 <팡세>에서 비롯된 개념들이나 핵심 키워드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것은 파스칼의 인식론적 탐구의 결과보다는 인간에 대한 치열한 탐구의 과정만을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두 작품에 체현된 부조리의 양상을 짚어보되, <팡세>에서는 부조리가 도출되는 국면을, <시지프 신화>에서는 파스칼적 주제라 할 수 있는 핵심키워드에 주목하였다. 파스칼과 카뮈에게서 부조리를 발견하는 일은 인식의 출발점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비참’을 또렷하게 직시하는 의식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위희(divertissement), 습관, 권태, 상상력과 같은 개념들의 폐해를 파스칼은 구체적으로 면밀히 분석해낸다. 이러한 개념들이 “시지프 신화”에 이르면 현대적 의미로 재생산되어, 습관은 무반성한 삶의 관성으로, 기분전환은 치명적인 회피, 혹은 철학적 자살로, 권태는 부조리가 피어나게 하는 여건으로 변용되는 것이다. 이상이 두 작품에서 보이는 친화적 요소들이며 적어도 그렇게 판단되는 것들로서 본 연구에서는 이 개념들이 구체화되는 지점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고전적 주제가 현대 작가 정신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변용되었는가를 분석해보았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본 연구는 당초의 연구계획에 따라 2010년 9월 1일부터 2011년 8월 31일까지 "파스칼적 주제의 현대적 변용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연구 결과 및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다.

파스칼의 인간학은 치열한 해명의 열망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식의 영역에 빛을 던져주기보다는 새로운 무지를 확인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앎에의 요구에 대한 좌절은 파스칼에게 ‘비참’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조건이 될 것이다. "인간의 인식에서 신으로의 이행"이라는 호교론적 구도에서 볼 때, 초월자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상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파스칼은 처음부터 신의 존재를 논의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신을 배제한 채, 오로지 인간적인 차원에서 탐구를 시작하여, 데카르트가 말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위치할 수 있는지, 신 없이 인간이 이행할 수 있는 극단은 어디까지인지를 추적해나간다. 이는 카뮈식으로 표현한다면, "정신의 향수가 만들어내는 통일성" 속에 모든 것이 정돈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본 연구에서는 <시지프 신화>에 제시된 부조리의 잣대(세계, 인식, 자아)를 <팡세>에 적용해봄으로써 일종의 ‘부조리의 기원’을 역추적 해보았다.

부조리에 대한 동일한 인식에서 출발했으면서도 두 작자정신에게서 도출된 부조리의 귀결은 상당히 다른 만큼 본 연구에서는 두 작가 정신이 치열하게 밀고나간 논증의 과정에 주목하였다. 해명 불가능한 모순과 부조리 앞에서 파스칼은 그것을 딛고 "인간의 의식에서 신으로 이행"해 나갔으며, 카뮈는 그것을 견지한 채, 부조리의 벽 앞에서 멈추었다.

파스칼의 경우에는 부조리에 대한 해명의 과정에서 단계 별 인식을 거치게 되는 바, 첫 단계의 인식은 단순히 현상을 확인하는 차원이고, 두 번째 단계의 인식은 현상에서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차원이며, 세 번째 단계의 인식은 확인된 ‘현상의 이유’를 발견하고 첫 단계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단계 별 인식의 전환은 "정에서 반으로의 반전"에 의해 수립되며 마지막 차원의 인식은 "배후 생각(pensée de derrière)"에 의해 수립된다. "배후 생각"이란 외적 현상이 표상하는 바를 읽어내는 기술이다. 이 생각은 일차적인 현상이 지시하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를 읽어냄으로써 모순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부조리의 원인으로 규명되었던 기만적 능력―습관, 위희, 상상력―이 잃어버린 본성의 기호가 된다.

카뮈는 부조리의 추론으로부터 한 실존이 감당해야할 세 주역, ‘비합리’, ‘인간의 열망’, 그리고 양자의 대면에서 솟아난 ‘부조리’를 등장시킨다. 카뮈의 부조리는 팽팽한 두 힘이 만들어낸 정신의 매듭이다. 카뮈는 이를 거대한 바위를 온몸으로 버티고 지탱하고 있는 시지프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바위와 밀착한 시지프의 육체가 만들어내는 접점은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 두 힘의 화해나 한쪽의 포기는 부조리 자체의 말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카뮈는 부조리 자체로부터 역설적인 해법을 도출해낸다. 자신이 마주한 벽에 대한 자명하고 명증한 의식은 출구를 찾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확실하게 벽이라는 한계를 적극적으로 인식한다. 그 명증한 한계의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대결구도로부터 ‘반항’, ‘자유’, ‘열정’이라는 부조리한 인간의 행동강령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