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손
이영란
푸른 정맥으로 감싼
몇 개의 봉우리를 보아왔다
정점에 선 여자는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렸다
아이 셋을 바깥에 남겨두고
소실로 건너간 여자
불온한 소문들이 팝콘 터지듯 요란했다
한복 입은 선이 맵시 나던 그녀는
힘겹게 양쪽을 오갔다
살짝 추켜올린 추녀 끝 같은
단아한 비례가 유난히 돋보였던 여자
부정不淨과 부정否定으로 맞서면서
금박의 스란치마에 찍은 화인火因은 화사했다
주인 없는 너른 마당엔
목단꽃이 해마다 속절없이 다녀갔다
나무는 한층 더부룩이 자라있었고
시간은 뒷걸음 칠 줄 몰랐다
공 굴리듯 앞으로 앞으로만
막연한 기다림을 알아차릴 무렵
저들끼리 어두운 궁륭에서 아이들은 단풍같이 철들어갔다
여며놓은 체면도 해악질도 엷은
하루는 또 다른 하루와 맞닿아 있어서
우리의 고정된 시선도 별빛도 시야에서 흐릿해져 갔다
잎새에 늘어붙은 자줏빛 꽃잎 하나
바라진 꽃술에선 자르르한 분내가 여전하다
꽃은 며칠간의 개화를 넘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출생 전북 김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수료.
201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경북일보 시니어 문학상 外
시집: 『망와의 귀면을 쓰고 오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