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애착 끊기
바오로와 실라스는 필리피에서 박해를 받았다. 필리피 지방은 바오로 사도가 꿈에 환시를 통해서 그곳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지역이었고, 그도 그것은 주님이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거라고 확신하였다. 그 확신대로 리디아처럼 복음을 받아들여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오늘 독서 내용처럼 심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박해의 표면적인 이유는 유다인인 두 사람이 그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 사정은 사도들이 그 고발자의 하녀, 점 귀신이 붙어 돈벌이를 해주던 그녀에게서 그 귀신을 쫓아내서 더 이상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었다.(사도 16,16-21)
우리 순교자들도 극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표면적으로는 통치 이념인 유교적 가르침을 거스르는 평등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박해가 정치적으로 박해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사실 박해의 시초인 예수님도 표면적으로는 신성모독이지만, 그 속내는 예수님 때문에 로마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유다 사회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였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48-50)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예수님의 나라, 하늘나라는 이름 그대로 이 땅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셨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불의한 세상을 뒤집어엎어 새 세상을 만들러 오신 게 아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 땅에 붙잡혀 사는 우리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내러 오셨다. 지구의 중력에 이 몸은 이 땅에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내 영혼까지 이 흙 속에 파묻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영은 영원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내 영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은 바오로와 실라스는 가장 깊은 감방에 갇혔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정 무렵에 하느님께 찬미가를 불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주님과 똑같은 처지가 돼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아 기뻐서(사도 5,41) 그랬을까? 순교사를 보면 참수나 극형보다는 모진 매질과 굶주림으로 옥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중 공소회장님이 고문을 당하고 감방으로 던져지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아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교리를 물어보는 것이었단다. 그러면 회장님은 열정적으로 교리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웃기고 슬픈 이야기다. 이 이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하늘나라이다.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세상사에 대한 집착 그리고 내 안위와 육신 생명에 대한 본성적인 애착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저 높이 유유히 나는 독수리처럼 내 마음도 땅에서 떼어 하느님을 찾던 이들과 선하고 의롭게 사느라고 수고한 이들이 사는 그곳, 하느님 계신 곳에 둔다. 여기에서부터 벌써 하늘나라 시민으로 산다. 그렇게 살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해 힘들고 수고스러울 거다. 그런데 그건 하늘나라 삶에 비하면 정말 잠시다. 몸은 수고스럽고 마음도 고생스럽겠지만 내 영은 하느님 안에서 쉰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예수님, 주님이 아버지 하느님께 가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하늘나라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보호자를 보내주셔서 믿는 모든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수년간 주님과 함께 지냈던 베드로 요한처럼 주님을 알고 기억하게 해주셨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르면 지금 안고 계신 아드님과 더 가까워진다고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