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카페에는 젊은 여성들이나 커플들이 많이 오는게 보편적이지만, 우리 카페는 조금 다르다. 젊은층보다는 아주머니들도 자주 오시고,때론 외국인도 (여행객들 같았는데 이런 서울외곽 동네에는 뭘 보려고 온 건지 미스테리다.) 왔었다. 사실 그 중, 우리카페의 최고 단골인 아저씨들이 두 명 있다.
처음 알바 시작했을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흡연실에 앉아있던 아저씨들이라 처음엔
ㅡ저사람들 혹시 사장님 가족?
이라고 으레 짐작했었는데,
알고보니 일수꾼 하시는 사람들이랬다.
일수가 뭔가하면, 매일매일 이자를 떼 가는 사채업자들 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카페에서 대기하다가
돈을 떼러 갈 시간이 되면 일수를 거두러 갔다가 오는 거다.
저사람들한테 우리 카페는 그들의 `전진기지` 쯤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사장님 블랙리스트 1호를 독차지.
매번
ㅡ저 아저씨들은 저렇게 흡연실에서 죽치고 있는다니 참,그 저렴한 아메리카노 둘이 하나 시켜놓고 하루죙일 저기 박혀서말야 ㅡ 여기가사무실인줄아는거같은데 임대료를 받던지 해야지 원, 잘생긴 꽃미남이었으면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하지, 뚱뚱하고험악한데 저렇게 무섭게 있으니까 손님이 안 오지ㅡㅡㅡ
잉 사장님, 뜬금없이 꽃미남 타령?
이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왠지 저사람들땜에 가게손님이 없는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패스.
사실 사장님 마음도 이해는 간다.
가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티슈 한 장 더 쓰는것도 눈길이 가기
마련이라니까
나는 알바라서 솔직히
둘이서 한잔 시키면 좋다.
두개인줄 알았던 숙제를 한 개로 줄여준 느낌이랄까.
암튼 그렇게, 매일 오는 일수 아저씨들을 벼루고 벼루던 사장님이
어느날 그들과 담판을 지었다.
알바시간되서 가게로 갔더니 사장님이 의기양양하게 무용담을 들려주시는거다.
ㅡ일인당 음료 하나 꼭 시키기 ㅡ 카페직원한테 반말 안 하기 ㅡ나갔다 다시 올 꺼면 말 하고 가기.
다음의 규칙을 어길 시에는 카페 출입 금지.
라는 조항을 성사시켰다고 했다.
사장님은 나한테도,
ㅡ너 혼자 있을때라고 반말하고 함부로 대하면 바로 나한테 전화 해!
라고 말하시더니 가게를 맡기셨다.
....그래도 남자가 가오가 있지! 아저씨들이 겁준다고 사장님한테 전화하고 싶지는 않다~! 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그렇게
혼자 가게를 보고 있는데
일수아저씨가 카운터로 온다.
얼음물 따라달라는 부탁을 하겟거니 생각했다.
우리가게에는 셀프로 물을 따라마실 수 있게 해 놓고 물 안에 레몬을 띄운다. 이 섬세하신 일수 아저씨께서는 레몬수가 입에 안 맞으셔서 매번 나한테 따로 따라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카운터 앞에서 날 보던 일수아저씨는, 빈 물컵을 내밀며 말했다.
ㅡ동생~ 물한잔만 따라줘요~ 얼음 넣고 시원하게♥
ㅡ?!
진짜 아저씨가 변했다.
평소라면
ㅡ물좀 따라줘봐. 얼음 넣고.
이런 식이었을텐데
근데 무섭게생긴 대머리 아저씨가
저런 귀여운 멘트를 날리니 이건 왠지
더 무섭다.
최대한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얼음물을 따라드렸다.
물을 받은 아저씨
ㅡ고마워용~
하며 감히 상상도할수없는 콧소리 작렬.
아아아?? 원래 저사람들 엄청 무서운 아저씨들이다. 전번에 돈받아내려는 전화통화를 들었는데 지금당장 돈을 주지않으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위압감을 주던 그런 왠지 영화에서 나오는 악역같은 아저씨들이었다.
혼자 카운터에 앉아서 외모와 말투가 사람의이미지를형성하는데 어떠한 심리적 영향력을행사하는가에대한 고찰을 하고 있으려니
조금있다가, 아저씨들이 다 먹은 음료잔들을가져다 주고 떠났다.
ㅡ잘있어용 동샹~♥
ㅡ 아?안녕히 가세요
아저씨들이 남기고 간 트레이에는
평소에는 아메리카노 한잔이었을텐데
요거트스무디 잔이 (길어서 무척 설겆이하기 번거롭다.) 세 개나 놓여있다.
왠지 무척이나 착해져버린 일수아저씨들 덕에
나는 매우 피곤해지게 되었다.
마지막.
알바를 그만 둔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커피 타는 법도 조금 가물가물해져서, 카라멜마끼아또에 카라멜 시럽이 두 펌프 들어갔는지 두 펌프 반이 들어갔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고, 템퍼링 할 때의 그 무게 정도라던지, 티모르산 원두의 고소하고 쌉살한 맛이라던지. 손님 없을 때 지겹게 틀어져 카페 안을 울리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라던지
인사성이 무척이나 좋던 손님들의 반가운 얼굴이라던지
다 희미해져간다.
지금 나는 요리학원과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고, 한 달쯤 후에 영국을 가려고 준비중이다.
반 년 정도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밤이었나, 사장님한테서 카톡이 왔다.
내가 생각보다 일찍 알바를 그만둔 게 서운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장님한테 미안했다.
사실 요즈음 길게 일한다고 말해놓고 한두달 하고 그만두는 알바가 한둘이겠느냐만은
그래도 내가 애정을 가지고 일하던 곳이니깐. 사장님한테도 최대한 진실되게 말하고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고 싶었다.
-그래도,나 쿨하니까, 신경쓰지 말고 찾아와!니가 내리던 커피가 먹고싶다!
사장님의 마지막 카톡이다.
이 뒤로 난 아직도 카페에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바보같은건 알지만 죄송해서인 거 같다.
실은 무척이나 궁금하다 내 뒤로 찾아온 알바는 어떤 아이인지, 내가 만든 솔로 포스터는 아직도 붙어 있는건지,
청소때마다 날 빡돌게했던 반쯤 고장난 마대수건는 이제 새걸로 바꾼 건지.
사실 그렇다. 어디나 쉽기만 한 일은 없어서, 특히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일은 미묘한 것들 하나하나가 스트레스가 된다면 스트레스이고 카페 알바라는게 조금 허세처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사실 커피만드는 시간보다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테이블 닦고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도
좋은 면을 볼 수 있다면.
내가 열심히 만들엇던 첫 카푸치노를
손님이 깨끗히 비웠던 순간과
안녕히가세요. 짧은 인사에 -네- 안녕히 계세요! 라고 밝게 대답하며 손님이 나가는 순간과
-여기는 스무디가 맛있어요.
내가 만든 맛을 기억해주는 순간.
하루 6시간일하면서 이런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은. 고작 다 합해봐야 2~3분의 순간.
그래도 좋았다. 아마, 군대 전역하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세상 만사가 그저 기쁘고 감사했던 것 같다.
첫댓글 와 카페알바생으로서 넘나 공감되고요ㅋㅋㅋㅋㅋ
와 필력 개쩐다 진짜 존나 재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슬프
ㅠㅠㅠㅠㅜㅠ마음이따뜻해졌어
소설읽는거같았어 크으
뭔가 마음이 따땃해졌어... 소중한추억을 같이본기분이야...
와 따뜻해..
너무 슬퍼ㅠㅠㅠㅠㅠ 글 진짜 잘쓴다 나 카페알바핳때 생각도나고 근데 포스터 폰트는 좀 바꿨음 좋겠어 ...ㅠㅠㅠㅠ
ㅋㅋㅋㅋㅋ재밌다 저런사람은 어디가서나 열심히 할듯
바리스타 여시인데, 아... 나를 돌아보게된다 예전엔 진짜 내가 만든 음료 드시는 고객님들 한분 한분이 소중하고 그랬는데,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어 오늘 일하면서 고객님들께 눈 한번이라도 더 마주치고 그래야지
눈물난다ㅠㅠㅠㅠ
눈물나따..
아 존잼.. 맘이 따뜻해졌어
일수 아저씨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이 너무 따뜻하다 기분좋아졌어 퍼와준 여시도 고마워!
좋다진짜 나도 카페쪽에서 일하는데 먼가 배울점도많넹 진짜 애정을가지고 일하시는거같다 ..!!! 교훈 얻음 ㅠㅠ
정독했어 ㅋㅋㅋㅋㅋ 하..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글이야
나도 저런 카페 알바하고 싶었다고 ㅠㅜ
솔직하게 담담하게 그냥 써내려가서 좋았던것같아ㅎㅎㅎ 잼따
이글연재초반에 네이트판에서 재밌게읽었던거같은뎈ㅋㅋㅋㅋㅋㅋ필력이좋아서 술술읽혘ㅋㅋㅋㅋㅋ
아 글 진짜 잘읽히고 가슴이 뭉글뭉글해ㅠㅠㅠ 기분좋아지는느낌이야
정주행했어ㅋㅋㅋ 재밌당 더보고싶은데ㅜㅜ아쉽
ㅜㅜㅜㅜㅜ눈물나ㅜㅜㅜ
나왜눈물나 ㅠㅠㅠㅠㅠ
우왕....이분 책쓰셨으면 좋겠다 ㅠㅠ느낌이너무좋아
나는 글쓰는남자가 왜이렇게 섹시하지ㅜ
헐 블로그가니까
내가좋아하던 만화 작가였어 대박
@너트크래커 블로그에 단편만화? 그림 이런거 있는데
작가가 저사람이야 ㅋㅋㅋ 그림도 몽글몽글해
@우헤히히히 난 저 네이트판주소로 읽고왔는데
마지막글에 블로그써져있어!
오 좋다 ㅠㅠㅠ
가슴이 막 몽글몽글해...
아 따뜻해..
글되게 예쁘게 쓴당ㅋ내스타일bb 잘읽혀!!!
아이거 왜이렇게 눈물나ㅜㅜㅜㅠㅠㅠ
처음부터 다읽었눈데 ㅜㅜㅜ왜 눈물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