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복음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2023.1.1.; 이기우 신부
1. 말씀의 흐름
민수기가 전하는 대로,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가부장으로서 자손들을 축복해 주었는데, 이 축복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을 전해주는 전달 행위였습니다(민수 6,23-2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실 수 있는 주님으로서 온 세상 만물을 지어내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내리신 가장 큰 축복은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일입니다. 이미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을 이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일이 그렇게도 큰 축복입니다(갈라 4,4-5). 이 아드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천사들은 목동들을 통하여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리실 축복의 내용을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그러므로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말씀의 흐름은 이렇게 간추릴 수 있습니다. 축복은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가부장들의 말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던 그 축복이 드디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으니, 이것이 강생의 신비요 또한 신성이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이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열매가 세상과 인류의 평화입니다.
2. 전쟁과 평화
평화는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문명이 발달하여 무기가 발달할수록 전쟁의 피해도 엄청나게 커져갔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에 직간접으로 끌려 들어가는 바람에 인명 피해도 수천 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 20세기 전쟁을 ‘세계 대전’이라 합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결과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국제연합을 창설하는 노력으로 나타났지만, 또 다시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에, 교황 요한 23세는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즈음하여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하여 가까스로 평화를 지켜냈습니다. 이를 기념하고 또 지속적으로 평화를 촉구하기 위하여 그 후임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에 직접 국제연합을 방문하여 “무기 없는 평화를 이룩하자!”는 취지로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향하여 연설하였고, 이에 대한 뜨거운 호응을 바탕으로 1968년부터 세계 평화의 날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기리는 새 해 첫 날을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선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평화에 관한 이러한 교회의 염원을 이어나갔습니다.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의 뒤를 이어 공의회를 속개한 바오로 6세와 공의회 교부들은 평화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3.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열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고, 전제적 지배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사 32,17)이다. 평화는 결코 한 번에 영구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의 요구에 따라서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이므로, 사랑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실천하며(에페 4,15) 참으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평화를 간구하고 건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목헌장 78항>
4. 평화가 사라진 한반도
2023년인 올해는 6·25 전쟁이 휴전협정으로 일시 중단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워낙 전투 행위가 남북 간에 잠잠해진지 오래라서 평화가 찾아온 듯한 분위기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이라서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불안한 휴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온전한 평화를 회복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우리 민족은 놓여 있습니다.
이 6·25 전쟁은 민족이 국권을 강탈당하고 근 반세기 가까이 일제의 노예살이를 한 데 이은 민족의 커다란 고난이었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합방하려는 야욕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두고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벌였는데 그 전쟁터도 역시 한반도였습니다. 십년에 걸쳐 연이은 전쟁에서 일제는 한민족에 대한 지배권을 거머쥐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여 이 땅에서 물러나가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 대신에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한이 강제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은 남북으로 갈라진 겨레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거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초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말부터 전쟁으로 시작되어 식민지 노예생활을 하다가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어야 했던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 들어서서도 휴전 중인 이제까지도 한민족은 평화를 빼앗겨 왔던 것이며 이 백년 간의 고난 동안에 우리 민족은 자결권을 갖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결정에 따라 휘둘려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민족의 백년 고난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것도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종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 겨레에게는 지상최대의 과제입니다. 평화가 온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이 고난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5.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
이렇듯 안타까운 현실을 잘 알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1989년에 서울에서 열도록 제안하고 직접 참석하는 한편, 전 세계 모든 교구의 대표 주교들을 한데 모이게 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14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장 먼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열매’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는 19세기말부터 최근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지난 백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사라진 평화는 일본과 미국과 소련에 의한 강제 분단 그리고 북한의 남침과 중국의 방해로 인한 것이지만, 이러한 주변 나라들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더 정의롭게 나아감으로써 평화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보편교회의 여망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망에 담긴 역사적 진실을 엄밀히 따지자면, 이렇듯 주변 나라들이 국권을 침탈하도록 국력이 약화된 데에는 천주교를 박해하느라 국력을 소진시킨 조선의 조정과 유림들의 책임도 큽니다. 하느님을 믿겠다는 신앙을 박해한 죄의 벌이 지난 백여 년 간 이어진 민족의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박해의 피해자인 한국 천주교회와 천주교인들이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앞장섬으로써 대한민국이 주변 강대국들이나 북한보다 더 정의로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남북한 한겨레 전체를 위한 사랑을 실현하는 데에도 앞장서라는 것이 보편교회의 여망을 대변하는 역대 교황들의 훈수이고 이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는 역설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6. 평화는 진리의 빛으로부터
이러한 노력은 한민족이 당면한 평화 부재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일 뿐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한민족 안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고자 천주교회와 천주교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는 일이야말로 본시 한민족을 이끄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가 예로부터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리며 흰 옷을 즐겨 입었던 까닭은 흰 색이 밝음과 빛을 상징하는 색이었고, 제천의식을 행할 때마다 제관들이 입었던 옷이 바로 흰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빛을 찾아서 동방으로 향하다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한민족은 진리를 숭상해 왔고 이 진리는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제천의식에서 받은 계시 또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 이념과 세상을 진리로 다스리라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통치 철학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외적이 침입하면 방어를 했을지언정 먼저 이웃 나라를 침략하거나 이웃 민족을 노예로 삼는 정복 행위를 역사상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평화의 전통을 우리 민족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7. 정의와 사랑의 뿌리는 하느님 신앙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이 위대하고 고귀한 전통을 세울 수 있었던 뿌리는 하느님 신앙이었습니다. 진리를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가치관 역시 여기서 연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외래 종교와 학문이 들어와 지배한 결과, 한민족은 이웃 민족에게 휘둘리기도 하고 노예살이를 하기도 했으며 강제로 갈라졌다가 급기야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는 역사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온 민족이 단결하여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그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만이 아니라 문화의 힘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총체적으로 보아 평화를 향한 민족사의 흐름은 죗값을 치루고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을 읽고 하느님의 섭리를 내다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 정체성에 바탕한 자주성까지 발휘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머지않아 실현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에 입각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자 앞장설 때,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 겨레와 교회에 큰 축복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해 첫 날에 들려드리는 평화의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