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동의보감]
1. 들어가며
의료사건을 꽤 오래 전담한 결과 우연히 얻은 통찰이 있습니다.
한의사 업무 범위가 서양에서 개발된 기구로 질병을 진단하는 것도 포함되느냐에 대한 양의사계의 고발이 꽤 잦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의료법(시행령, 시행규칙, 고시)령을 참고해 결정해야 하는데, 일단 한의대 개설 당시 교육 과목에 포함되어 있거나 배타적으로 양의학으로만 지정되어 있지않으면 한의사 업무범위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판단 기준입니다(2012헌마55 등).
결국, 한의대 개설 과목에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한의대 교재를 구입해서 해당 부분이 있는지를 직접 살펴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 본초강목, 황제경 등을 구입해 사건에서의 행위에 해당되는 부분에 대한 항목이 있는지 점검하게 됐는데, 자주 읽다 보니 어느 날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2. 동서양 의학의 특징
의학에 있어, 서양에서는 내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적'으로 규정하고 백신, 항암제, 방사선 등으로 그 적을 없애는 데 주력하는데(물론 노화방지,예방의학도 없지 않습니다.), 동양의학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질병의 원인이 침범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체질 개선에 주로 촛점을 맞춘다는 점, 즉,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고 다스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명상하는 절제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으나, 그러한 자기 수련과 절제가 없이는 군비 경쟁으로 진화하는 병원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일쑤입니다.
3. 우리 역사에 적용
주자학의 핵심이 '대학' 중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맞춰져 있고,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도 반복되듯이 인체나 사회적 기관이나 국가나 흥할 때에는 내부가 융성하고, 멸망할 때에는 내부의 부패가 갈등으로 이어져 외침은 단순한 수순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야만적 침략국이고, 이완용 등이 매국노였다고 적대시하면 당장의 울분이 풀리는 정신적 만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1921년에 일본은 항공모함 건설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그 무렵 한 번 장전에 한 번밖에 쏠 수 없는 무기로 청산리전투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사이에 우리의 주력 무기가 활과 대표에서 조총으로 변경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유재란으로부터 4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에서도 조총은 주력 무기가 아니었고, 조총에 익숙한 훈련병도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느냐는, 생계와 국방과 과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으로 약 20년을 허송세월한 뒤 안동김씨라는 외척 가문이 세도를 잡아 부국강병 대신 가문치부의 개인주의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약 150년 후인 1776년 정조가 취임한 직후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독립했습니다(1779). 그리고, 민주주의와 3권분립이라는,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문명을 정착시켰습니다.
우리는 안동김씨의 외척통치가 종결되었음에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라는 섭정과 명성왕후 민씨 가문이 충돌해 부국강병보다는 매관매석이라는 기회주의 문화가 조선 말기까지 약 100년간 더 지속됐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은 그 시기에 일어난 민중혁명이었는데, 마치 프랑스혁명 당시 부르봉 왕가가 합스부르크 왕가(오스트리아)에 군대를 요청해 자국민을 살상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과 유사하게, 우리 군주는 일본군을 동원해 농민 혁명을 진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져 청나라가 패배하고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는 기초가 됐고, 그 10년 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해 우리나라를 병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주제는 민중혁명이 아니라 외국의 침략에 의해 종결된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쑨원의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해서 군주제를 끝내고 민주정이 들어섰고, 중일전쟁에서도 결국 승리합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소련)도 결국 민중 혁명을 통해 군주제를 종결시키고 신식 군대를 모집해 2차 세계대전에서 극동아시아 전투에서 일본군을 패퇴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의 영웅들은 제대로 된 귀국조차 하지 못한 채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에게 열광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이 중국, 러시아와 패권 경쟁을 하는 최북단 병참 기지가 됐습니다.
영화 '바이스'에서도 언급되듯, 미국은 경제가 군산복합체로 운영되는 국가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고, 북한은 당나라와 수나라를 차례로 무찌른, 호전성이 특성인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이기 때문에 굶어죽을지언정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는 전투력을 가진 부족성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국가보안법(일제시대에는 조선치안령으로 독립운동가들을억압하던 법령인데, 내용만 약간 바꾼 것입니다.)을 통해 통일을 사상적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은 군사쿠데타라는 이기주의에 의해 짓밟혔는데, 전체주의를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차원에서는 전국민이 빈곤선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자생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사라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것으로도 부족해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우면서 정치를 우리 대 그들 로 나뉘어야 승리하는 분열의 정치공학이 통용되는 나라고 남게 됐습니다.
박정희 암살 후 잠시 돌아왔던 서울의 봄은 제2의 박정희를 꿈꾸는 전두환의 군부쿠데타에 의해 장악됐으나, 남북 대치상태를 영속화하는 정책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사실상 독자적 통치능력보다 미국의 병참 기지로의 역할을 선택한 시기이기도 했고, 그 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4. 마무리
개인적으로, 부국강병이라는 비전 대신 국민들이 서로를 고소, 고발하지 못해 안달하게 하는 민중고발제도와 반대편 대통령은 무조건 탄핵되어야 한다는 구호를 허용하는 선동은 조선시대 후기 우리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끈 신호인 예송논쟁과 세도정치를 그대로 닮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영국을 이긴 뒤로 급성장하여 현재는 식민지 시대의 영국을 증오하는 대신 영국 문화를 자기들의 원조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체질을 바꾸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할 수 있는 시기가 오려면, 자기책임원칙,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한 너그러움(일론 머스크도 로켓 발사 3번 실패 후 4번째만에 성공했지만 투자자들이 돈을 빼거나 사기죄로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트집 대신 자제가 우선되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일본을 실력으로 능가하고, 일본이 우리 문화를 수입해 오히려 우리 문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듯이 일본을 통해 우리의 자존감을 더 높여 나고, 통일까지 이루어 내는 것이 3.1.운동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https://www.facebook.com/share/p/ttZRGU3sKmekF8zS/?mibextid=oFDk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