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찾아 삼만리(4)
괴로운 소달구지 여행
새벽 4시, 짐을 실은 소달구지의 긴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짐수레를 6마리의 소가 끌었습니다. 짐수레 뒤로는 말을 탄 많은 일꾼들이 따라갑니다.
하늘에는 아직도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짐수레의 곡식 자루 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수레위에서 기분 좋게 흔들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마르코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야! 일어나라."
갑작스런 소리에 마르코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어서 와서 아침 먹어라."
감독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행렬은 삭막한 황야 한복판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났습니다.
일꾼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둥글게 앉아 송아지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도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배고팠을 게다. 천천히 많이 먹어라."
"예."
일꾼들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곧 여기저기 드러누워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일꾼들은 다시 부스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하루 일정은 대체로 이렇다. 매일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오전 9시가 되면 휴식을 한다. 그리고 다시 오후 5시에 출발하여 밤 10시에 수레를 멈춘다."
수레가 움직일 무렵, 감독이 마르코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꾼들은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소를 몰았습니다.
가도가도 거친 들판뿐입니다. 키 작은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습니다.
가끔씩 들판에 사는 토끼나 노루 따위가 짐수레 행렬에 놀라 바람처럼 도망가곤 했습니다.
마르코는 날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불을 지피고 소나 말에게 꼴을 먹이고 등잔을 청소하고 마실 물을 구해 왔습니다.
일꾼들은 마르코를 매우 거칠게 대했습니다.
"임마! 빨리 빨리 해야 할 거 아냐. 도대체 어디까지 물을 길러 갔다온 거야."
심지어는 마르코를 발로 걷어차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일꾼은,
"야! 불을 어떻게 피우는 거야, 그을음 좀 안나게 할 수 없어!"
하고는 채찍으로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마르코는 몹시 지쳤습니다.
마르코는 나날이 여위어 갔지만, 일꾼들은 아랑곳없었습니다.
마르코는 마침내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열이 높이 오르고 헛소리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일꾼들은 모르는 체했습니다. 얼굴 한번 들여다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감독만은 가끔씩 마실 것을 가지고 와 걱정스러이 열을 재 보기도 하고 머리를 만져 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나는 죽나 보다.'
마르코는 무서워졌습니다.
"엄마, 엄마. 살려 주셔요. 난 죽을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죽어 가고 있어요."
마르코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 같았습니다.
"마르코! 마르코!"
마르코의 병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감독은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마르코를 간호했습니다.
감독의 정성에 마르코는 차츰 회복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을 무렵, 친절한 감독과 헤여져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드디어 투쿠만과 산디아고로 가는 갈림길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부터 마르코는 다시 혼자서 길고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자, 마르코. 여기서 이별이다."
감독은 마르코를 안아 짐마차에서 내려 주고는 투쿠만으로 가는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걷기에 편하도록 마르코의 옷보따리를 어깨에 단단히 메어 주었습니다.
지금껏 다정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일꾼들도 막상 헤어지게 되자, 서운해했습니다.
"행운을 빈다."
"곧 엄마를 만나게 되길 빈다."
"안녕, 마르코!"
일꾼들은 한 마디씩 하며 행운을 빌어 주었습니다.
"아저씨들도 안녕히 가셔요."
마르코는 붉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마차 행렬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서 있었습니다.
외로운 도보 여행
투쿠만으로! 투쿠만으로!
마르코는 어머니를 만날 생각만으로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러나 들판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고, 마를코는 너무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마르코는 설움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 멀리 지평선 끝 하늘과 맞닿은 곳에 눈 덮인 높은 산들이 나타났습니다.
"야, 산이다."
마르코는 기운이 솟았습니다.
그것은 남아메리카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지는 안데스 산맥이었습니다.
산들은 푸른 유릿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을 보는 것 같아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향 생각을 하며 힘차게 걸어가려니까 여기저기 흙으로 지은 집들이 나타났습니다.
마르코는 가게를 발견하고 먹을 것을 샀습니다. 음식을 조금 먹으니까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피곤이 가셨습니다.
가끔씩 말을 탄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길가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르코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생김새였습니다. 얼굴은 흙빛이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습니다.
마르코가 지나가자, 그들은 장난감 자동 인형처럼 일제히 머리를 돌려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인디언들이었습니다.
마르코의 첫날 여행은 그래도 쉬운 편이었습니다. 이튿날은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어제 먹은 음식 때문인지 배도 아팠습니다. 들판을 걸어가는 여행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젠가 제노바에서, '남아메리카에는 독사가 많다.' 하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바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독사가 풀숲을 헤치며 나올 것만 같아 소름이 끼쳤습니다.
'내가 이렇게 덜덜 더는 것을 엄마가 만약 봤다면 나를 겁쟁이라고 할 거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르코는 스스로를 격려 했습니다.
"마르코, 힘을 내라. 용기를 내야 한다."
4일, 5일, 6일, 어느 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발이 부르터 물집이 생겼고, 그 물집이 터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쓰리고 아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코가 힘겹게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투쿠만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마르코는 겨우겨우 물었습니다.
"투쿠만이라면 여기서 가깝지. 아마 8킬로미터 정도 가면 될 거야."
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주고는 지나가버렸습니다.
"8킬로미터, 좋다, 문제없다."
마르코는 기운을 차렸으나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못 가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제는 일어날 힘도 없었습니다.
마르코는 그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내일이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 아! 엄마도 지금 내 생각을 하고 계실까?'
마르코는 어머니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대 마르코의 어머니는 마를코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만약 마르코가 어머니 일을 알았다면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어머니에게 갔을 것입니다.
죽음 속을 헤매는 어머니
마르코가 안타까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마르코의 어머니는 몹시 심한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메키네즈 씨의 훌륭한 저택, 그 집의 한 방 안에 마르코의 어머니는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메키네즈 씨도 메키네즈 부인도 진심으로 마르코의 어머니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침대 곁에서 떠나지 않고 정성껏 간호했습니다.
메키네즈 집안이 코르도바로 이사할 때, 마르코의 어머니는 건강이 아주 나빠져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는 계속 되돌아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편지 한 장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걱정을 한 나머지 어머니의 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메키네즈 씨는 이사를 가서도 계속 의사를 불러 마르코 어머니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투쿠만에 와서는 훌륭한 의사를 모셔왔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해야겠습니다."
의사가 진찰을 한 뒤 말했습니다.
"고향 이탈리아를 생각하셔요. 자, 기운을 내요. 귀여운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도 수술을 받읍시다."
메키네즈 부인도 권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 어머니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니어요. 저는 죽고 싶어요. 이탈리아에서도 편지가 오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생겼나 봐요.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슬픈 소식을 듣기 전에.......... ."
마르코의 어머니는 푹꺼진 눈으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몸은 점점 더 야위어만 갔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습니다.
"환자가 저렇게 수술을 거절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어요. 강제로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의사가 말했습니다. 메키네즈 부인도 한숨만 쉬었습니다.
"가엾게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이 먼 곳에 까지 와서 고생을 했는데... ,저렇게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
잠든 마르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메키네즈 부부는 안타깝게 말했습니다.
메키네즈 부부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 침대 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아! 또 이 곳도
마르코는 물론 어머니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투쿠만을 조금 남겨 놓고 마르코는 시냇가의 풀숲에 누워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풀숲은 푹신한 침대가 되었고 높이 떠오른 태양과 산들바람은 마르코의 피로를 풀어 주었습니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마르코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한숨 잘 자고 난 마르코는 한결 피곤이 풀려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씩씩하게 걸어 드디어 투쿠만에 도착했습니다.
투쿠만은 아르헨티나에서 새로 생겨난 도시로 아주 번화했습니다. 끝도 없이 똑바로 뻗은 도로, 줄지어 늘어선 하얀 집들.
마르코는 도시는 어디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르도바, 로사리오,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러나 투쿠만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아주 신선했고, 전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신이 났습니다. 벌써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즐거운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은 다 낡은 옷을 입은 먼지투성이의 마르코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눈초리에 질린 마르코는 길을 물어 볼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동안 망설이고 있는데 눈에 익은 글씨가 보였습니다. 이탈리아 말로 된 간판이 달린 여관이었습니다. 안에는 안경을 낀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둘이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문 앞으로 다가가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아저씨, 메키네즈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실 수 있으셔요?"
"메키네즈 씨 댁?"
"예, 기사이신 메키네즈 씨 댁 말입니다."
마르코는 조심 조심 대답했습니다.
여관 주인은 마르코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메키네즈 가족은 투쿠만에 없다만........ ."
여관 주인은 말을 하다 말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마르코가 기절하고 만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이웃 사람들도 몰려들었습니다. 여관 주인은 재빨리 마르코를 안아 방으로 데리고 가 눕혔습니다.
한참 뒤에 마르코가 깨어났습니다.
"이제 좀 괜찮니? 메키네즈 씨가 여기에 없다고 그렇게 실망할 건 없어. 메키네즈 씨는 여기서 얼마 멀지 얺은 곳에 계시니까."
그러자 슬픔에 가득 차있던 마르코의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예? 그 곳이 어디죠? 가르쳐 주셔요."
"여기에서 2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야. 샐라딜로 강 기슭에 큰 사탕공장이 있다. 바로 그 곳이란다."
여관 주인이 말하자 어떤 젊은 사람이 끼여들었습니다.
"나도 한 달 전까지 그 곳에 있었어."
"혹시 메키네즈 댁 가정부를 못 보셨나요? 이탈리아 사람인데요."
"보고말고. 제노바에서 왔지?"
"예, 맞아요!"
마르코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몸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곧 가야 해요. 빨리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셔요."
"지금 가는 건 무리야! 벌써 해가 저물고 있잖니? 게다가 너는 너무 지쳤어.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게 좋겠다."
"그럴 수 없어요. 지금 가야 해요. 가다가 쓰러져도 좋아요. 길을 가르쳐 주셔요. 밤이라도 무섭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혼자 여행했는걸요."
마르코는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조심하거라."
사람들이 걱정하며 마르코를 전송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마르코를 데리고 숲 근처까지 와서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 고집쟁이 이탈리아 꼬마야. 안녕!"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셔요."
마르코는 상처투성이 다리를 질질 끌며 또다시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럼, 마르코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르코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상태가 더 나빠져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의사 선생님이 오시는데 이를 어쩌나?"
메키네즈 부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마르코 어머니가 아르헨티나에서 어떠한 아픔도 참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제노바에 두고 온 가족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지자, 마음의 병까지 겹쳐 병이 더욱 악화된 것입니다.
가엾은 마르코 어머니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아아, 하느님! 이렇게 죽어야 하나요? 꼭 한 번만이라도 가족들을 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린 마르코가 떠나는 저를 붙잡고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하느님, 제발 불쌍한 우리 마르코에게 돌아가게 해 주셔요. 마르코, 아, 마르코!"
마르코 어머니는 슬픔으로 온몸을 떨며 계속 헛소리를 했습니다.
메키네즈 부인과 간호원은 눈물을 흘리며 마르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마르코 어머니는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깨어나 울부짖었습니다.
"아아! 제노바의 푸른 바다, 마르코, 마르코!"
한편, 마르코는 어두운 숲길을 쉬지 않고 걷고 있었습니다.
숲 속에는 크고 굵은 나무들이 도깨비처럼 손을 벌리고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줄기나 가지들이 구불구불 구부러지고 서로 엉켜 마치 싸우는 듯이 보였습니다. 크고 높은 탑이 넘어져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진 나무도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창을 묶어 놓은 듯 하늘을 향하여 가지를 뻗치고 있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부엉이 소리, 으스스한 새 소리, 이름도 모를 짐승들의 기분 나쁜 울음 소리.
마르코는 온몸이 벌벌 떨렸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곧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이제나저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야.'
마르코는 입술을 꼭 깨물고 똑바로 앞만 보며 걸었습니다. 돌부리와 나무뿌리에 걸려 몇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그 때마다 무릎과 손이 벗겨졌습니다.
발에서는 피가 났습니다. 그래도 계속 걸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사람이다. 벌써 열세 살이야. 우리 어머니의 장한 아들이야.'
마르코는 의젓했습니다. 아무리 숲 속이 무서워도, 몸을 다쳐도, 꿋꿋하게 걸었습니다.
"마르코, 정말 마르코는 씩씩하구나. 엄마는 네가 무척 자랑스럽다."
마르코의 눈앞에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마르코를 안으려고 손을 뻗쳤습니다.
"엄마! 엄마!"
마르코는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르코는 그 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깜깜한 숲 속에 와스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마르코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습니다.
"엄마,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이제는 절대로 엄마와 헤어지지 않겠어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 돼요. 이제 제노바로 돌아가요.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저에게서 엄마를 떼어 놓지 못해요.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있겠어요......... ."
마르코는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쉴 줄을 모릅니다.
어느새 별이 사라지고 새벽녘 햇살을 받아 나뭇가지가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는 해가 떴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샐리딜로 강 기슭의 사탕 공장을 향하여 갈 뿐이었습니다. 마르코의 눈에는 오직 어머니 얼굴만이 아른거렸습니다.
빛나는 용기
날은 완전히 밝았습니다.
마차 한 대가 메키네즈 집 문 앞에 멈춰 섰습니다. 투쿠만의 의사가 또 한 사람과 함께 메키네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를코의 어머니에게 수술을 하도록 마지막으로 권해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의사는 마르코 어머니의 침대 곁에 섰습니다.
"자, 안심하고 수술을 받으십시오. 수술은 안전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곧 완쾌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영영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귀여운 자식들도 만나지 못합니다. 수술을 받겠다고 하십시오."
의사는 거듭 거듭 마르코 어머니에게 수술을 권했습니다. 메키네즈 부부도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 어머니는 힘없이 머리를 저었습니다.
"이젠 다 소용없는 일이어요."
마르코의 어머니는 끝내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저를 편안히 죽게 해주셔요. 너무나 숨가쁜 인생을 살아 왔어요. 이제는 더 이상......... ."
마르코 어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습니다.
"할 수 없군요."
의사는 수술을 단념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르코의 어머니가 메키네즈 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마님, 친절하신 마님. 제게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마를코의 어머니는 흐느껴 울다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노바에 있는 제 가족들을 좀 찾아 주셔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약간의 돈과 짐을 전해주셔요. 편지도 한 장 써넣어 주셔요. 제가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것을 몹시 슬퍼했다고요. 남편에게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전해 주셔요. 특히 어린 마르코를 ... ."
마르코 어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두손을 모으고 소리쳤습니다.
"나의 마르코! 네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들 마르코!"
그러나 메키네즈 부인은 자리를 뜨고 없었습니다. 메키네즈 씨도 의사도 방을 나갔고, 두 명의 간호원과 조수가 마르코 어머니 곁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옆방에서는 어쩐지 조급한 듯한 발소리와 낮은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마르코 어머니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희미한 눈길로 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메키네즈 부부와 의사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멜키네즈 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르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놀리지 마셔요. 저, 만나게 해 드릴 사람이 있어요."
"그게 누구인가요?"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뜻밖에도 지금 막 도착했어요.:
"아아, 누구일까요?"
그러면서 어머니는 문쪽을 힘없이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마르코의 어머니는 용수철이 튀기듯 일어났습니다.
문 앞에는 너덜너덜한 옷에 머리는 자랄 대로 자란, 먼지투성이의 새까만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아아, 너, 너, 너는 마르코가 아니냐? 마르코! 네가 정말 마르코냐?"
"엄마!"
마르코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을 뻗어 마르코를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마르코의 얼굴에, 머리에 마구 입을 맞추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기뻐하며 마르코의 몸을 쓰다듬으며 외쳤습니다.
"마르코! 네가 어떻게 여기에! 이게 꿈은 아닐까?"
"꿈이 아니어요, 엄마. 마르코가 이렇게 왔어요."
"오오, 내 마르코! 너혼자 왔니? 세상에! 어디 아프진 않았니? 아아, 마르코 얘기 좀 해봐라, 마르코! 나의 마르코!"
그리고 어머니는 깜짝 깨달은 듯 의사 선생님쪽을 향해 들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부탁합니다. 지금 곧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살아야 해요/1"
"잘 생각하셨습니다."
메키네즈 씨와 부인은 떨어지기 싫어하는 마르코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우리 엄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나요, 예?"
메키네즈 씨는 마르코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르코는 심하게 떨기 시작했습니다.
"우, 우리 엄마는 죽게 되나요?"
그 때 갑자기 어머니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습니다. 마르코는 새파랗게 질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메키네즈 부인은 그런 마르코의 어깨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괜찮을 거다. 마르코. 다 잘 될 거야."
한참 뒤, 문이 열리며 의사 선생님이 나왔습니다.
"이제 걱정 없다. 너의 어머니는 살아나셨다."
마르코는 의사 선생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마르코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울지 말거라, 용감한 소년. 어머니의 목숨을 살린 것은 마르코, 바로 너란다."ㅡㅡㅡㅡㅡㅡㅡㅡ 끝 --
- (주)예림당 : 아미치스 지음 : 신상철 옮김 : 저학년 세계명작 '엄마 찾아 삼만리'- 새삼스럽게 감동되어 올려봤나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