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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교수 강연록
여러분 이렇게 비도 올락 말락 하는데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제가 “나를 마케팅하라” 라는 주제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제가 예전에 책을 쓴 적이 있었어요. 이 책 이름이 ‘자기표현의 힘’입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Self presentation”이라고 하거든요. 이 소제에 대해서 책을 쓴 적 있는데, 이건 남들에게 내가 보인느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 설명한 책이에요.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를 어떻게 마케팅해야 하느냐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오늘은 그래서 마케팅의 본질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려고 해요.
마케팅에서 하려는 건 무엇입니까? 마케팅은 내 제품의 품질과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잖아요. 그럼 제가 여쭤볼게요. 품질이 안 좋은데 이미지를 좋게 만들 수 있습니까? 품질이 안 좋은데도 포장을 잘하고, 과장광고를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벤트도 하고… 그리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 되죠. 그래서 단기적으로 억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두 글자로 ‘사기’라고 합니다. (웃음). 학력을 위조한다든지 (웃음).
예전에 시계 중에 빈센트 시계라는 게 있었어요. 한 3, 4년 전에 꽤 유행했었는데.빈센트 시계는 영국 다이애나비가 쓰던 거라든지, 세계 1%의 사람만 쓰는 명품이라고 광고를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배우라든지 스타들이 큰 백화점에서 몇천만 원 주고 산 것이에요. 근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 만든 엉터리 원가 10만 원짜리 시계였어요. 그때 신문기사를 보게 되면 “연예인도 부자도 가짜에 속았다. 세계 1% 명품”이라 광고하고, 보디 페인팅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벤트도 했지만, 여기 기사 제목에 화려한 사기 마케팅이라고 쓰여있어요. 이처럼 이런 건 어디까지나 사기행각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품질이 좋으면 제품의 이미지는 자연 좋아질까요? 이건 사람에게도 대입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나 자신의 품질을 만든단 말이에요. 나 자신의 품질을 어떻게 만들까요.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따면 언젠가는 이미지가 좋아질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요즘에는 음료수가 별것이 다 있지만, 예전에는 콜라하고 사이다밖에 없는 시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게토레이가 나왔어요. 게토레이 처음 마셨을 때 기억을 보면 달착지근한 것도 아니고 톡 쏘는 것도 아니고 시큼털털하고 이상하잖아요. 사실은 이온음료고 흡수도 잘 되고 굉장히 좋은 음료인데, 그냥 시장에 놔뒀더라면 맛이 없어서 안 팔렸을 것이에요.
그런데 그때 굉장히 잘 된 광고가 있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달지 않아야 한다, 흡수가 빨라야 한다.” 하면서 흡수가 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광고가 있어요. “달지 않아야 된다” 라는 말을 계속 들은 다음에 마셔보면, 달지 않아서 좋고. 또 술 마시고 게토레이 한 모금 마시면 애니메이션처럼 정말 몸에 쫙 흡수되는 느낌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품질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가꾸고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제가 방금 제품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 삶도 다 똑같을 것 같아요. 내가 나 자신의 품질을 잘 만들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더라.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 드리려 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제품의 품질만 지향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걸 어떻게 인식시키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죠. 다시 말해 나로 대입시켜 이야기해 보면, 나의 품질을 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어느 수준에 오르면 어떻게 나에 대한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갈 지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 중에 아디다스의 역사가 더 오래됐지만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이 더 많은 것은 나이키입니다. 여러분 컴퓨터 쓰시는데, 애플 맥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 중 뭐가 더 우수한 OS(operating sysem)일까요. 디자인이나 책 편집하는 분들은 맥밖에 못 씁니다. 훨씬 더 우수한 게 맥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PC에 깔린 건 대부분 윈도를 갖고 있죠.
또 요새는 DVD가 많이 나왔지만, 예전에 VTR이 있었을 때, 베타막스와 VHS하고 어떤 게 더 우수한 기종일까요? 베타막스가 훨씬 더 우수한 기종이에요. 방송국에서는 베타막스 이외에는 쓸 수가 없어요. VHS는 필름이 흐려서 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댁에 있는 대부분 VTR은 VHS 시스템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베타막스가 방송국에서 쓰는 더 좋은 기종인데 여러분 댁 대부분은 VHS를 쓰고 있고, 맥이 훨씬 더 좋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윈도를 쓰고 있습니다. 마케팅의 개념의 본질은 ‘품질은 우수해야 하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굉장히 좋은 나를 만들어 가도, 그것이 바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불고기를 프라이팬에 굽는 게 더 맛있어요? 숯불에 굽는 게 맛있어요? 숯불에 굽는 게 더 맛있죠. 버거킹은 숯불에 구워요. 맥도날드는 프라이팬에 굽고요. 어떤 게 더 맛있어요? 버거킹이죠. 그런데 맥도널드가 전 세계 시장을 꽉 잡고 있어요. 세상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몇 명이에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햄버건데 이게 뭐 특별한 기술이라고 맥도날드의 아성을 못 깨는 걸까요? 여기서 맥도널드의 역사를 잠시 살펴 볼까요?
맥도날드는 1940년대 맥도날드 형제가 만든 햄버거집이었어요. 그리고 이것과 상관없이 레이 크록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밀크셰이크 기계가 그 당시 처음 나와서, 그걸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었어요. 미국 중부에 살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물건을 팔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흘러갔던 곳이 캘리포니아의 맥도날드였어요. 여러분이 요새 호텔에 가서 햄버거 시키면 몇 분이나 걸려 갖다 줄까요? 고기 굽고 양파 다듬고 등등 적어도 15분은 걸리는데, 맥도날드는 이 사람이 서류를 보려고 서류를 꺼내는데 벌써 갖다 주더라는 거죠. 패스트푸드의 효시입니다.
이때 이 사람 나이가 쉰셋인데 이제 돌아다니며 외판원 할게 아니라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하자고 해서 1호점을 냈어요. 그 후 18년을 근무하면서 이 사람이 전국 방방곡곡에 매장을 6,000개나 만들었습니다. 대략 20년 잡아서 1년에 한 300개 만든 거잖아요. 하루에 하나 만든 셈이에요. 자기가 만든 매장들을 평생 다 가보질 못했어요. 이 사람이 72세에 은퇴했는데, 은퇴 뒤 취미가 자기가 평생 못 가본 매장을 가보는 거에요. 전국에 못 가본 대가 오죽 많겠어요. 미주리, 미네소타 전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매장들을 찾아 다녔대요. 매장에 가면, 회장님 오셨다고 직원들이 매우 반가워하는 거에요. 덕담 주고받으면서 끝에 가면 이 얘기를 잊지 않았다고 해요. “Remember, We are not hamburger business.” 우리가 햄버거 판매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햄버거 맛의 경쟁은 끝도 없는 거야. “We are in show business.” 우리는 쇼를 해야 해. 무슨 쇼냐? QSCV에요.
여러분이 맥도날드에 가서 인턴만 하더라도, QSCV가 무엇인지 배웁니다. Q는 Quick입니다. 빨리 갖다 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빨리 갖다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겁니다. S는 서비스인데, 서비스 받는 느낌이 나게 하는 게 중요한 거에요. 손님이 들어오면 “어서 오세요.” 소리치는 것처럼요. C는 Clean입니다. 식탁위는 어디든 깨끗하죠. 다리를 편하게 꼬는데 식탁 밑에서 바지에 뭐 묻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식탁 밑이 깨끗해야 하는 거죠. 햄버거를 먹으려하면 위를 보니까. 그럼 전등, 이런 곳이 깨끗해야 하고요. 또 사람들이 주방은 못 들어가잖아. 그럼 어디가 깨끗해야 할까요. 화장실이 깨끗해야 주방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들에게 깨끗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겁니다. V는 Value입니다. 맥도널드는 국민의 햄버거니까 비싸게 팔면 안 된다. 항상 경쟁자보다 10~20% 저렴하게 팔아라. 그렇다고 해서 신문지 같은 것에 싸 주어선 안 돼. 싸 주는 종이는 그래도 예쁜 종이에 포장해서 Value 있는 것처럼 보여라. 경쟁을 햄버거 자체로 생각하면 끝도 없어. 우리가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거야. 그래서 “쇼”가 실천 없는데 쇼만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햄버거가 맛의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나를 보이느냐의 게임입니다. 나 자신을 보이는 것도 어떻게 나를 프레젠테이션하느냐의 게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프레젠테이션 게임을 이야기하려니까, 먼저 이야기 해야 할 게 브랜드관리입니다.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브랜드관리가 됩니다. 여러분은 혹시 브랜드 갖고 있는 게 있으세요?
사실은 우리 이름 석 자가 모두 브랜드 이잖아요. 내 이름 석 자를 어떻게 브랜드화하느냐가 중요한 일이고, 모든 일이 브랜드 관리의 과정이 됩니다. 내가 남한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적절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쓴 책 제목이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입니다. 브랜드 하는 관리의 과정을 브랜딩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에 사실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어요. 브랜드를 내 이름 석 자가 의미하는 ‘개념’이 뭔지를 밝히는 것과 이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체험’하게 해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브랜딩에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개념 만들기를 보면, 첫 번째는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이 나를 보는데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만들어 가라는 것이죠. 또 나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 하면, 나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잖아요. 이걸 응축해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이걸 ‘스틱 메시지’이라고도 이야기해요. 그런 방법에 대해서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죠. 그외에도 일곱가지 체크리스트가 7C라는 용어로 정리되어 있어요.
두번째는 체험입니다. ‘네가 필요해’ 하는 것은 20세기 용어고 ‘나는 너를 원해’ 이것이 21세기 개념이거든요. 사실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이제는 needs의 개념이 아니라 want의 세계로 가는 겁니다. 마케팅 쪽으로만 이야기해 보면 수요와 가격의 제한이 없어지거든요. 인간도 마찬가지가 되어요. 무엇인가를 entertain 한다는 것은 단순한 fun이 아니라 그 사람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것이에요. 이외에도 체험과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은 7E라는 체크리스트가 책에 제시되어 있어요.
제가 오늘 이 리스트들을 주마간산으로 훑고 지나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 중 하나만 골라서 뭘 말씀드릴까 하다가, 요즘 사회에서 화제가 되는 공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알파 레이디이다 보니까, 여성들이 실제 가진 강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어요. 바로 공감이거든요.
여러분 이 영화 많이 보셨죠. ‘What women want’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 영화에 보면 이 남자가 광고업계에서 굉장히 잘나가는 남자에요. 잘나가는 남자가 승진할 줄 알았더니 자기 위에 상사로 누가 스카우트되어 온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여자가 스카우트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의기소침해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사장에게 따지니까 “야 이 바보야 백화점에서 의사결정은 80~90%는 여자가 하잖아. 여자가 여자 악세사리 뿐만 아니라 남편 옷, 아기 기저귀도 여자가 다 결정해서 사는데 네가 여자 마음을 잘 알 수 있어?” 라고 사장이 대답하죠. 뭐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그 후로 열을 받아서 여자들 마음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거죠.
여기서 보여주는 게 어떤 거에요. 기업의 많은 사람이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남자가 열심히 노력해봤자 여자가 될 수 없다. 여자들은 공감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공감력이 남성보다 우수해요.
공감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책의 부제는‘Why it can matter more than IQ’입니다. 즉‘왜 이것이 IQ보다 더 중요한가’란 말이죠. 여기서‘이것(it)’이란, 나중에 사람들이EQ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EQ가 높으면 어떻다는 겁니까? EQ가 높으면 노래를 잘 부르나요, 아니면 그림을 잘 그리나요. 도대체 EQ가 왜 그리 중요할까요? EQ는 다른 사람과 정서를 공유하는 능력입니다. 즉 남의 마음을 읽고 이를 그에게 표현해주는 능력이지요. 이와 관련해 여러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입니다. 물론 이미 읽어 보신 분도 많겠지만, 대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요?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남자들은‘문제해결’에 주안점을 두지만 여자들이 정말 원하는 건‘이해와 공감’이라는 겁니다. 하루는 친구가 부부싸움 끝에 제게 하소연을 하러 왔습니다. 얘기인 즉슨 집에 들어갔더니 부인이 입이 부어 있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니, (시)어머니는 내가 시집온 지가 2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그 말씀을 하셔.”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 친구가“거~ 어른이 그러시면, 그런가 보다 하지, 뭘 어머니 흉을 보나?”했답니다. 그랬더니 부인이 열받아서“어머니만 그러시면 몰라. 시누이는 더 얄미워. 나한테 뭐 맡긴 거 있어? 왜 나한테 이거 달라, 저걸 달라 야단이야?” 그러기에 제 친구가 무심코“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라고 답했다가 부인이“아니,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한다는 거유?”라며 싸움이 커진 모양입니다.
제 친구는 참다못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자초지종을 물으려고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일이 더 복잡하게 되어버린 거죠. 그러고는 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제게 온 겁니다. 그래서 제가“부인한테 공감 좀 해주지 그랬어?”라고 했더니“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공감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보라그래.”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이 책이 권하는 공감의 방식은 어떤‘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생각’에 공감해주라는 겁니다. 속으로는 어머니 행동이 옳다고 생각돼도,‘사실’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아내의‘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라는 거죠. “당신이 어머니 때문에 속상했구려.”하면서“얼마나 섭섭했어? 당신이 잘 참았네.”이렇게 공감해주라는 겁니다. 어머니가 더 훌륭하다는 것은 여전히‘사실’일지라도 말이죠.
일단 상대방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것이므로, 윤리적 또는 사회적인 옳고 그름을 따질 일도 아닙니다. 동생이 옳다고 생각돼도“걔가 그걸 가져갔어? 잘 줬어. 내가 당신한테 새 걸로 두 개 사줄게.”라고 부인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것이 중요하지, 실제로 사주고 안 사주고는 나중 문제라는 거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주는 교훈처럼 기업도 남성적 문제해결(manly solving)의 관점에서 여성적 이해(feminine understanding)의 관점으로 시각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때 남성적 문제해결이란 반품, 환불 등과 같은 기계적, 시스템적 해결을 뜻합니다. 하지만 여성적 이해와 공감이 수반되지 않는 문제해결은 고객과의 장기적인 연결고리(connect)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공감’의 의의와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감이란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세계를 지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의사소통 상태’를 말합니다. 아들녀석이 유치원에 다닐 때였을 겁니다. 애기인 줄만 알았는데, 아빠 생일이라고 선물을 예쁘게 포장까지 해와서 뜯어보랍니다. 기특한 마음에 녀석을 제 무릎에 앉히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포장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선물인지 울퉁불퉁한 물건을 포장지로 둘둘 말아 테이프를 잔뜩 둘렀더군요. 한참을 풀고 풀어서 나온 선물은 물총이었습니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습니다만, 짐짓 좋은 체하며 물었죠.“와, 물총이 구나. 선기야, 아빠가 물총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그랬더니 싱긋 웃으며“내가 아빠 맘을 다 알지?? 나도 제일 좋아하는 게 물총이거든.” 그러더군요.
자기가 좋으면 아빠도 좋아하리라는 순진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기업들 중에도 자신들이 베푸는 친절이나 서비스면 고객도 좋아할 거라고 착각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말만 역지사지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느니 하지,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순수하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훈련되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지, 실제 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동정과 공감은 크게 다릅니다. 혹시 동정과 공감이 구별되십니까?
동정은 영어로 sympathy, 즉 다른 사람과 마음을 같이한다는 뜻이고, 공감은 empathy,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애매모호하지요?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답을 드리기 전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동정과 공감이 어떻게 다른지 말입니다.
지난 가을학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말고사 채점을 마치고 성적을 교학과에 제출했는데 어떤 남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은 어머니가 2년 반 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둘이서 사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막일을 다니는데, 공교롭게 10월 중순에 공사장 2층에서 떨어지셨답니다. 도무지 입원할 형편이 안 돼서 이 학생이 손수 병간호도 하고 식사 준비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고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중간고사 이후로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해서 기말고사를 보긴 했지만, 성적이 D가 나왔다는 겁니다. 저보다도 키가 큰 녀석이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면서 이야기하기를 하루 빨리 졸업해서 취업을 하려면 봄학기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비면제 장학금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학비면제를 받으려면 적어도 평균 B학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면서, 과제든 재시험이든 뭐라도 할 테니 성적을 B로 수정해주면 안 되냐고 묻더군요. 제가 보기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수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냉정’한 교수입니다. 냉정한 교수라면아마도 이렇게 얘기하겠죠. “자네 같은 학생이 학기마다 한두 명이 아닐세. 또 자네에게만 과제를 내준다면 공평한 일도 아니고. 그러니 그만 돌아가줬으면 좋겠네.”라고 차갑게 말하겠죠. 그 정반대는‘동정’이 넘치는 교수입니다. 그런 교수 같으면 측은지심으로 그 학생과 하나가 되어 같이 울먹이며“너같이 착한 학생에게는 B가 아니라 A를 줘야지.”그러고는“다른 과목은 무얼 들었니?”하며 다른 교수들에게까지 대신 전화해 성적을 조정해주도록 부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공감’하는 교수는 어떨까요? 우선 그 학생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겠죠. “이 녀석아, 얼마나 힘들었어? 진작 좀 내게 와서 사정 얘기를 하지 그랬니. 네가 아버지 대소변도 가려내고 병간호를 혼자서 다 했단 말이냐?”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 주고는, 상황과 대면시킵니다. “그런데 내가 너만 성적을 올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만 리포트 쓸 기회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니? 가만 있자…. 방학 동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함께 알아볼까.”혹은“성적을 따지지 않는 외부장학금이 있으니 같이 알아보자.”라며 해결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공감과 동정이 조금 구별이 되십니까?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의사도 세 가지 유형이 있겠죠. 다친 환자가 왔다고 칩시다.‘냉정’한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고 해도 마구 상처를 닦아내면서“뭐가 아파요? 좀 참아요. 어른이….”라고 말하며 인정사정 없이 치료할 겁니다. 반면‘동정’하는 의사는 환자가 아파하면 차마 손을 못 대고 간호사를 불러서“이 환자의 환부를 좀 처치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자기는 방에 피해 있을지도 모릅니다.‘공감’하는 의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많이 아프시죠. 여기 부은 데를 약으로 닦을 건데, 좀 쓰라릴 겁니다. 그래도 참 잘 참으시는 편이에요.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라고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면서 할 일은 다 하는 것이 공감하는 의사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공감의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공감은 사람간의 매력(social attractiveness)을 높여줍니다. 공감이란 상대방과 교감을 나누거나 호흡, 혹은 코드를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감을 잘하면 상대방과 친밀해지고 서로 호감을 갖게 되지요.
어느 유명한 류머티즘 내과의사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예약환자가 3년이나 밀려 있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의사만 특별한 비방을 갖고 있을 것도 아닌데, 왜 3년이나 기다려야 되는지 늘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의사 선생님을 뵐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희 학교 선배교수의 모친께서 80세가 훨씬 넘은 연세에 지방에 혼자 사시며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십니다. 선배가 그 유명한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려고 알아봤더니 3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병원 원무과에 저희 경영학과 졸업생이 재직 중이어서 어느 날 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답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예약을 취소했다는 겁니다. 4개월 후라 하니 선배가 얼른 예약한 모양입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수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선배교수가 류머티즘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4개월 후에 받게 되었다고 자랑을 하는 겁니다. 다른 교수들은‘4개월 후에 병원 예약한 것이 뭐 그렇게 자랑이냐’는 눈치였지만, 저는 워낙 그 의사분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궁금했던 터라 선배교수에게 부탁해 그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4개월 후에 드디어 선배교수의 모친이 올라오셨는데, 평생 농사만 지으셔서 새까만 얼굴에 보잘것없는 시골노파였습니다. 더구나 몸이 불편하시니 고개를 옆으로 힘없이 늘어뜨린 채 쪼그리고 앉아 계셨습니다. 저희 선배교수가 모친을 업고, 저는 그분의 보따리를 들고 뒤를 쫓아갔습니다. 대기실에서 얼마간 기다리고 있다가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로 들어갔지요.
그런데 그다음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점잖고 온화하게 생긴 의사 선생님이 무언가를 쓰고 계시다가 이쪽을 흘낏 보더니 마치 이렇게 심한 환자는 처음 본다는 듯이 저희 쪽으로 황급히 오시는 겁니다. 그동안 중증환자를 수없이 봤을 텐데 말입니다.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이렇게 유명한 의사가 처음 본 새까만 시골 촌사람에게‘어머니’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얼른 더운 물과 물수건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손수 무릎을 마사지해주시며“아침저녁으로 주무르기만 해도 이렇게 심하게는 안되셨을 텐데요….”이러시는 겁니다. 그랬더니 여태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던 그 할머니께서 울먹이는 목소리로“내가… 어떤 때는… 아침도 못해 먹어요.”라고 처음 입을 떼시더군요. 아마 언젠가 너무 편찮으셔서 아침식사를 거르신 것이 그렇게 마음에 남으셨던 모양입니다. 의사선생님이“그러시죠, 아들 잘 둬서 뭐한답니까?”하시니 선배교수가 머쓱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주사기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중증환자에게 일상적인 치료인지 간호사가 이미 주사기를 두 대나 들고 서 있었습니다. 류머티즘 내과의 주사기는 바늘도 굵고 큽디다. 의사 선생님은 이 주사를 한 번에 놓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찔러가며 여러번에 나누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어머니, 많이 아프시죠? 그래도 참 잘 참으시는 거예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라고 달래자 환자는 어린애처럼 꾹 참는 표정이었습니다.
주사를 다 놓고는“어머니, 이쪽으로 좀 걸어와보시죠.”하시더군요. 그 할머니는 마사지도 받고 주사도 맞은 터인지라 절룩거리며 의사에게 걸어갔습니다. 의사가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어머니, 이번에는 허리 좀 펴고 걸어보세요.”하니까 제법 허리를 펴고 의사 선생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환자를 의자에 앉히고는 한 손으로 다시 무릎을 주물러주시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어머니, 진료서에 보니까 지방 멀리 사시는데 3주 후에 시간 지켜서 또 오셔야 합니다. 약속하시죠? 어머니. 그리고 약 잘 챙겨 드셔야 하는데, 이 약은 빈속에 드시면 안 됩니다.”라며 귓속말인 양 귀에 대고 큰 소리로“며느리더러 반찬 좀 챙겨달라고 하세요.”하시더군요. 마지막 말은 옆에 서 있던 아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겠죠.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대기실에 앉아 지루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동그래졌습니다. 분명 10여 분 전에 업혀 들어가는 걸 두 눈으로 보았는데, 아들 손을 잡고 두 발로 걸어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거기 앉아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저 의사 선생님을 뵈면 자기들도 반드시 낫게 되리라는 자신감과 확신을 품었을 겁니다. 3년이나 기다릴 정도로 그 의사에게 환자가 몰리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의술도 의술이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교감해주니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겠죠. 진정한 명의가 되려면‘질병’만이 아니라‘환자’를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사들 실력이야 요즘은 웬만하면 다 괜찮잖아요. 그런데 어떤 병원에는 손님이 많고 어떤 병원에는 손님이 없는 것은, 의사의 공감능력에 크게 좌우된다고 봅니다. 가끔“그 의사는 사람 좋게 생겼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의사가 실력만 중요하다면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신동아〉2007년 2월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더군요. 첫 여성 교정직 서기관, 말하자면 여성 감방에서 처음으로 간수장이 된 최효숙이란 분의 인터뷰였습니다. “요즘은 나이 많고 못생긴 꽃뱀이 많아요. 언젠가는 60대 여성이 잡혀 들어왔어요. 50대쯤으로 젊어 보이긴 하는데 미모는 별로였어요. 통 꽃뱀이라고 믿기지 않았는데 조금 겪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을 어찌나 잘 읽는지…. 꽃뱀은 외모가 출중하기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더라고요. 조심해야 해요.” 사람을 끄는 매력의 원천은 미모나 학식이 아니라 공감능력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공감의 두 번째 역할은 사람들끼리 정서적으로 조율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음악회에 가면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서로 다른 악기를 갖고 있는 연주자들끼리 음을 조율하게 합니다. 그래야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를 때 화음을 잘 맞출 수 있잖아요.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즉 어떻게 해야 서로 마음이 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 경험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조율하려 합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면 아기는 자연스레 엄마한테 눈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엄마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엄마도 눈웃음으로 화답하고 아기는 엄마가 얼마나 자기를 예뻐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조율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환경이 나쁜 보육원에서 자란 애들은 어떻습니까. 보모가 아기에게 우유를 주면 아기는 멋도 모르고 보모에게 눈웃음을 보냅니다. 하지만 보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유병을 입에 콱 물리며“빨리 먹어!” 라고 냉랭하게 말하겠죠. 조율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새뮤얼 라이보비치라는 유명한 유대인 변호사가 있습니다. 사형수들을 무료로 변호해 평생 78명을 무기징역 등으로 감형시켜준 변호사입니다. 미국에서는 극악무도한 살인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습니다. 이런 1급 사형수들을 무료로 변호해서 그들의 죄를 감형시켜주는 과정 하나하나가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언젠가 이 분의 강연을 녹음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형수들이 얼마나 공감받지 못하고 자랐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강연 마지막에 하는 말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저는 평생 동안 무료 변호를 통해 78명의 사형수를 죽음으로부터 건져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다음 두 단어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 두 단어는 ‘Thank you’입니다.”
즉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도와줬다고 고맙게 여기지도 않을뿐더러, 행여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도 고맙다고 말하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만든 것은 바로 공감 받지도 못하고, 남과 마음의 교류를 통해 조율하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불우한 환경이 아닐까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남성들의 경우 바쁘다는 이유로 중고등학생 시절 한창 성장기에 있는 자녀와 조율의 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대견스러운 마음에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조율이 부족해 정작 집에서 왕따가 되어버린 아버지들도 드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황혼이혼 또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이 은퇴 후 부인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평소 조율에 신경 쓰지 않았던 터라, 부인과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생기는 문제입니다. 공감능력이 있으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그 능력을 갈고닦지 않으면 소외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고객을 단골로 만드는 것도 바로 같은 원리입니다. 멀리 이사를 가고서도 계속 단골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 가게 주인과 공감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파수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의 조율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공감의 세 번째 역할은 ‘라포르(rapport, 신뢰감)’를 조성하는 일입니다. 간혹 학기 초에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서툰 교수는“이번 2학년들은 왜 이 모양이냐?”하고 다른 학생들까지 싸잡아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말썽을 부리는 학생과 금세 한편이 되어버립니다. 반면 경험이 많은 교수는“다른 학생들은 다 잘하는데, 너 혼자 왜 그래? 수업 후에 얘기 좀 할까?”하며 그 학생을 심리적으로 떼어놓습니다. 다시 말해 라포르를 누구와 형성하느냐가 중요한데, 이때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감을 잘해주면 라포르가 형성되어 분위기가 좋아지죠.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고 내 기분도 좋아지면, 일이 즐거워지는 효과를 낳지 않겠습니까.
공감은 이처럼 비즈니스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감을 잘할 수 있을까요? 공감을 잘하려면 감지(sensing)와 소통(communication),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감지는 상대방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공감의 원리를 쉽게 설명한 책으로 박성희 교수의《동화로 열어가는 상담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공주와 달’이라는 동화로 시작됩니다.
옛날옛적 어느 나라에 공주가 있었는데, 어린 공주가 달을 따달라고 떼를 씁니다. 임금님은 신하들에게 달을 따오라고 시키지만, 정작 달을 따올 방법은 없었겠죠. 임금님의 닦달에 신하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습니다. 이때 어떤 광대가 나타나서 임금님에게 말합니다. “임금님, 제가 그 달을 따오겠습니다.”,“ 그래?”, “ 임금님,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공주와 대화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아마 예전에는 공주와 함부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급한 왕이“그래, 가서 얘기를 나눠보거라.”하니까 광대가 공주를 찾아갔습니다.
“공주님, 공주님. 만약 달을 따왔는데 달이 너무 커서 우리 궁이 찌그러지면 어쩌죠?”하고 광대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주가“이 바보야, 내가 손을 들고 대보면 달이 내 엄지손톱만 한데 뭐가 그리 크단 말이야?”라고 답합니다. 광대는 이에“맞았어요, 공주님. 그런데 저 달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공주는 다시 대답합니다. “바보로군, 밤하늘에 저렇게 빛나는 것이 황금이 아니면 뭐겠어?”, “ 맞았어요, 공주님. 오늘 저녁에 공주님이 주무실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들이 저 달을 따올 테니 푹 주무세요.” 그리고 광대는 다음날 아침, 공주의 엄지손톱만 한 동그란 달 모양의 황금덩어리를 목걸이로 만들어 공주의 목에 걸어줍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우화는 우리에게 제법 많은 교훈을 줍니다. 문제해결의 중심을 나에게 두지 말고 상대방에게 두라는 말이죠. 먼저 상대가 문제를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청이 중요한 거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이 생각하는‘달’을 으레 자신이 생각하는‘달’과 동일하다고 여기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주와 달 얘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다음날 모든 신하들은 공주의 달문제가 해결된 것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가 오후가 되면서 다시 걱정을 시작했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어 달이 떠오르면 공주의 목에 걸린 달이 가짜라는 게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신하들은 걱정 끝에 하는 수 없이 광대를 다시 부릅니다. 그랬더니 광대가“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문제해결의 중심을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두라니까요. 상대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우선 물어야죠.”하면서 공주에게 다시 가서 묻습니다.
“공주님. 어젯밤에 공주님이 주무실 때 저희들이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저 달을 따다가 공주님 목에 걸어드렸는데, 하늘에 걸린 저건 뭐죠?”, “ 이 바보야, 이가 빠지고 나면새 이가 나듯이 달이 빠졌으니 새달이 떴나 보지.”, “ 그렇군요, 공주님. 공주님은 역시 현명하세요.” 이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이 이야기는 공감을 잘하려면, 우선 상대를 잘 관찰하거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상대방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감지하는 능력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느낀 것만으로 공감이 끝나는게 아닙니다. 이쪽에서 알았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게끔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감에 필요한 두 번째 능력은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과연 우리 고객의 눈높이는 도대체 어디쯤 있을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고객의 평균 정신연령은 몇 살 정도일까요? 언젠가 외국의 한 백화점 교육자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고객은 절대 도를 닦은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인成人이기를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그 다음을 영어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Customers are badly-spoiled children.”즉 고객은 더럽게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과 같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잘 아시다시피 인간에게는 좌뇌와 우뇌가 있습니다. 좌뇌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이어서 논리적 사고를 하는 반면, 우뇌는 감정적이고 직관적이어서 때로는 비논리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좌뇌를 많이 쓸 때는 우뇌의 기능이 줄어들고, 우뇌를 많이 쓸 때는 좌뇌의 기능이 줄어듭니다. 판매원을 칭찬하러 일부러 오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불평을 하러 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열받은 고객이 판매원에게 올 때 좌뇌를 가지고 올까요, 우뇌를 가지고 올까요? 우뇌입니다. 우뇌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고객의 이성적 수준은 어린애와 같은 겁니다. 감정적인 우뇌가 작동하는 사람에게 좌뇌에 대고 해야 할 논리적인 얘기를 늘어놓으며 반품규정이 어떻고 회사내규가 어떻고 얘기해봐야 먹혀들 리가 없죠. 우뇌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일단 노여움을 진정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감정이 격해지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못합니다. 그런데 공감을 잘해주면 우뇌가 가라앉고 이야기의 가닥이 잡혀가므로, 말하면서 머릿속도 정리되고 스스로 비논리를 깨닫게 됩니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하게끔 하는 것이 공감을 잘하는 겁니다.
반대로 공감을 못 해주면, 상대는 화를 내고도 기분이 풀리지 않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을 하는 게 효과적인지, 그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공감은 ① 비언어적 주의 기울이기, ② 일차공감, ③ 고도공감, ④ 직면의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직 말을 시작하기 전에 표정과 제스처만을 통해서도 공감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비언어적 주의 기울이기(non-verbal attending)의 형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우선 눈을 마주치는(eye contact)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인이 뭔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남편은 신문을 넘기며 성의 없이 듣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분명 눈으로 신문을 보면서 부인 말을 듣고 있겠지만, 눈길 한 번 안 주고 신문만 보며 대화한다면 부인은 기분이 나쁘겠지요.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알려주는 게 바로 눈입니다. 눈은 대화의 매우 중요한 도구죠.
OB맥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지낸 분이 계십니다. ‘OB호프’라는 이름과 개념을 만든 분인데, IMF 직전에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소일거리 삼아 호프집을 하나 차리려는데, 짝퉁 호프집도 많아지고 화재사고 등도 몇 번 일어나서‘호프집’이라는 말의 느낌이 안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름을 새로 지었죠. 그 이름이 비어할레(Bier Halle), 비어홀의 독일말이랍니다.
제법 큰돈을 들여 영업점을 하나 열었는데, 그만 한 달 만에 IMF가 터졌습니다. 멀쩡하던 호프집 열 곳 중에 일곱 곳이 문을 닫는 상황인겁니다. 이 상점은 새로 생겨 이름도 안 알려졌으니, 망하기 딱 좋죠. 그런데 제가 1년 만에 그 사장님을 우연히 만나뵙게 되었는데 남들은 망해가는 IMF 기간 동안 비어할레는 놀랍게도 10개로 늘어났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직원교육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여쭤보았습니다. “직원들을 인사시킬 때 30도로 굽히게 합니까, 60도로 굽히게 합니까?”하는 시시콜콜한 것까지요. 우문이란 걸 알지만, 현답을 기대하며 여쭤봤죠.
그랬더니 사장님이“실제로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던데요. 진짜 중요한건 고객과 눈을마주치는 거예요.” 이러는 겁니다.“ 눈을 어떻게 마주쳐요?”라고 여쭤보니“손님이 들어오면 눈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소주방도 많고 호프집도 많은데 어떻게 저희 가게로 오셨어요?’라는 인사를 눈으로 전하는 거죠. 그러면 고객은 그 눈빛만으로도 환영받는 느낌을 받습니다.”그러시는 겁니다.
이 사장님이 워낙 학구적이라 자기 나름대로 실험도 했더군요. 매장 열 곳을 셋으로 나누어, 세 곳에서는 손님이 계산하고 나갈 때 계산할 금액만 “네, 4만 3,500원입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하도록 한 겁니다. 다른 세 곳에서는“맛있게 드셨어요?”를 덧붙이고“네, 4만 3,500원입니다.”라고 말하게 했답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곳은 고객과 눈을 마주치며“맛있게 드셨어요?”하고는“네, 4만 3,500원입니다.”라고 하게 시켰답니다. 그랬더니 맛있게 드셨냐는 말을 덧붙인 매장과 금액만 이야기한 매장은 별 차이가 없더랍니다. 그런데 눈을 쳐다보며 얘기한 매장은 한 달 만에 손님의 수가 3배나 차이가 나더래요. 눈을 마주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명함을 주고받을 때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 대부분 받은 명함을 들여다보며 악수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고, 받은 명함을 얼른 보고서는 상대방과 악수하면서 눈으로 인사를 건네보십시오. 그러면 상대방도 눈을 쳐다보거든요. 그렇게 눈을 마주하며 인사를 하게 되면 두 번째 만날 때 훨씬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연습을 안 하면 잘 안 되니 꼭 해보세요. 와인잔을 부딪치면서도 잔을 보지 마시고, 서로 눈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면 훨씬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상대방과 마음의 조율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는 순간입니다.
그 밖에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성의껏 듣고 있음을 보여주거나 말하는 사람과의 신체적 거리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 애쓰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가 되겠지요. 상대방의 팔을 가볍게 잡는 행동이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고요, 심지어 상대방과 유사한 표정을 지어가며 듣는 것도 정서적 조율을 하고 있다는 표현방법이 됩니다. 비언어적 주의 기울이기는 대화 중에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는 요령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일차공감과 고도공감이 그 방법인데요. 그에 앞서 공감의 마지막 단계인 직면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공감을 통해 고객의 마음이 열리고 신뢰가 쌓이면, 문제해결을 위해 현실이나 사실과 직면을 시켜야 합니다. 공감이 공감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궁극적으로 고객이 해결하려는 문제와 직면시켜야 하는 것이죠. 공감은 직면을 위한 사전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차공감은 상대의 말을 유추하지 않고 듣는 대로 자연스레 따라가주는 것인데, 심리학 용어로는 tracking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나올 이야기에 관심을 표현하는 것, “왜?”,“ 그래서?”라며 관심을 표현한다든지 목소리나 성량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그러한 예입니다.적절한 질문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확인하거나 따지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충분히 공감하는 분위기에서 물어봐야겠죠. 질문을 잘하려면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야합니다. 삶의 에너지는 호기심에서 나옵니다. 새로운 이슈와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없으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기분 좋게 대화하는 데 필요한 최대의 무기는‘맞장구’입니다. 인기있는 토크쇼 진행자 등 대화의 전문가들일수록, 맞장구를 치는 횟수도 많고 표현방식도 다양합니다. 창을 할 때 고수가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적절히 운을 맞춰주는 것은 대화의 양념이요, 소금입니다. 마치 죽이 맞는 친한 친구끼리 주거니 받거니 말하듯 운을 맞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트래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유사구절로 바꾸기(paraphrasiing)입니다. para는 유사하다는 뜻이니, 비슷한 말로 바꾸어 반응하라는 말입니다. 한양은행이란 곳의 PB 센터에서 돈 많은 고객에게 새로운 금융상품을 소개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고객에게 열심히 새로운 상품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때 고객이 “한양은행 상품만 수익성이 높을 수 있나, 도토리 키재기지.”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 고객을 설득하겠습니까?
한양은행의 수익성이 0.1%라도 더 높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감의 원리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는 거니까요. 이때는 “그렇습니다. 요새 수익성 올리기가 쉽지는 않아요.”라고 상대방의 생각에 일단 동조합니다. 그러고는“그런데 이렇게는 생각해보셨어요?”라고 말을 이어가며 사실과 직면시키는 게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상대방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일단은“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말해 화제가 된적이 있습니다. 논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공감해주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갖게 되었죠. 여러분이 상대방의 말에 대해 일단 마음속으로‘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한다면 아마도 공감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고객이“글쎄, 한양은행에서도 잘해주겠지만 지금도 A은행 B과장이 잘해주고 있어.”라고 말하면, 이럴 때도 마음속으로 일단‘맞습니다, 맞고요’해놓고“B과장이 정말 잘하는가 보네요.”라고 패러프레이징합니다. 그리고“요새는 다들 잘하긴 해요. 하지만 저희는 단순히 친절을 베풀기보다 각 고객의 요구에 맞는 관리를 해드리려고 합니다.”라며 설득해볼 수 있겠죠.
“말만 금융컨설팅이지 낫긴 뭐가 나아, 그놈이 그놈이지….”고객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럴 경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속으로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해놓고“요즘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것도 당연하죠. 상품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그게 그거 같고….”라고 그대로 말을 받아줍니다. 그러고는“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시작하는 서비스는요….”라고 말을 이어가는 것이죠.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병원에 온 환자가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진찰해본 결과, 큰 탈은 아니지만 당분간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환자가“제가 직장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매일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라며 약간의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 환자에게 어떻게 공감하며 지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할지 생각해보세요. 경청이 말하기보다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해줄 때 머리를 적극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말에는‘주체’와‘내용’ 그리고‘감정’이 있습니다. 물론 주체가 생략되기도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모든 말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사실만 보려 하면 따라오는 감정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앞의 환자의 말도 분석해보면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령“제가”라는‘주체’를 공감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 바쁜 사람으로 보이든 아니든 사실을 따지지 말고 (속으로, 맞습니다, 맞고요.)“꽤 바쁘신가 보군요.”라고 말을 받아주며, 일단 그 사람의 생각에 동조해주어야겠죠. 그러고는“그래도 나으려는 의지가 있으니까, 해내실 것 같아요.” 라며 직면과 설득을 시도합니다. ‘내용’을 공감해줘야겠다고 생각되면, 들은 말을 복창하듯 패러프레이징을 해서“(맞습니다, 맞고요.) 그래요, 매일 치료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네요.”하며 고객의 마음을 알고 있음을 전달해줍니다. 그리고 “하지만 이 치료는 받다 안 받다 하면 효과가 없어요.”라고 사실을 직면시킵니다.
‘감정’을 공감해줄 때는 패러프레이징을 해서“(맞습니다, 맞고요.) 아무래도 걱정이 되시죠.”그러고는“그런데 이 치료를 받으시다 보면 또 금세 적응이 되실 겁니다.”라고 행동을 유도합니다. 앞에서 EQ는 남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는 능력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공감을 잘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인 셈이죠. IQ와 EQ를 간단히 비교하자면, IQ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고 EQ는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다루는 능력입니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처럼 말하더군요, 취직을 시켜주는 것은 IQ이고, 승진을 시켜주는 것은 EQ라나요.
흔히들 DHA가 들어간 우유를 마시거나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IQ가 더 좋아진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사실무근이고 IQ는 타고난 것이라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EQ는 노력에 따라 회복되고 개선될 여지가 많은 생활습관입니다. 즉 공감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얼마든지 배우고 계발할 수 있다는 점이 IQ와 다릅니다. 그렇다면 EQ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공부하면서 생각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필독서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의《감성지능》과《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권하고 싶습니다. 마케팅 종사자라면 더더욱 읽어야겠죠.
둘째, 심리상담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MBTI’교육을 권합니다. 판매원은 흔히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객이 어떤 사람이냐에 관계없이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대로만 밀고 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고객층이 자기 스타일에 맞는 사람들로만 한정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MBTI에 익숙해지면 서로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성격유형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간혹‘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일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MBTI 교육을 받게 되면‘아, 저 사람이 이러이러한 유형이라 그렇게 반응하는구나’라고 느끼면서 훨씬 마음이 편해지고, 그 사람을 수용하게 됩니다. 타인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고객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고객의 주파수에 맞추어 보다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거죠.
셋째, 공감능력을 키우는 데 사랑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죠. 특히 이성간의 건전한 교제가 EQ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인정’받으려는 욕구라고 합니다. 상대를 한명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관심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겠죠. 그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인정’의 반대는 무엇일까요?‘무시’입니다. 반응이 없거나 눈길도 주지 않고 대꾸가 없다면, 상대방은‘내 말이 씹혔다’는 생각에 불쾌해하거나 섭섭하겠죠. 공감을 받지 못한 느낌입니다.
넷째, 예술적 취미도 EQ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음악이나 미술, 공예 같은 취미가 좋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 힘들잖아요. 이럴 때 좋은 게 뭔지 아세요?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그것도 기왕이면 적절한 촬영효과를 낼 수 있는 DSLR을 들고 다니면서, 틈 날 때마다 작품사진 찍듯 해보세요.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무심코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답니다. 그러면서 감수성을 키워가는 거죠.
다섯째, 삶의 경험이 많을수록 공감을 잘합니다. 그런데 모든 걸 직접 경험하고 살 수 없으니 좋은 영화들을 보면서 많은 간접경험을 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여섯째, 이웃돕기도 좋습니다. 그냥 성금 내는 거 말고, 그들을 찾아가서 실제 병간호도 해보고 손수 발도 닦아주고 아픔을 같이해보면 보람도 느끼고 좋다고 하네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직접 해보진 못했습니다.
일곱째, 운동하기, 산보하기, 아로마 테라피, 목욕하기 등을 통해 긴장을 푸는 방법은 여러분도 잘 아실 테고요. 선禪, 요가, 단전호흡 등도 도움이 되겠죠. 끝으로 무슨 종교가 됐든 찬양과 감사와 말씀이 있으니 종교생활을 잘하는 것도 EQ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유럽에는 여러 항공사가 있지만, 거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항공SAS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지방 항공사 사장이던 39세의 얀 칼슨이 전격적으로 사장자리에 발탁됩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그가 사장이 된 지 단 1년 만에 8,000만 달러의 흑자를 남기는 회사로 변모했지요. 사람들이 그 비결을 자꾸 물어오자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을‘진실의 순간, MOT, Moment of Truth란 말 한마디로 던져줍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홍보나 광고, 입소문 등을 통해 항공사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된답니다. 그러다 언젠가 처음 항공사를 이용할 때 만나는 사람은 항공사의 사장도, 임원도, 간부도 아닌, 창구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이 광고나 홍보 등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가면을 벗는 진실의 순간이며, 그때 제일 필요한 것이 공감능력이라고 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이미 공감능력이 뛰어나실 거라 생각됩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공감능력을 기업의 특성에 맞게 잘 정리해 최전방에 나가 있는 직원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겠죠.
칼슨 사장의 말을 더 들어보죠. “조심을 한다고는 하지만, 저희도 인간이다 보니 하루에도 수없이 승객의 짐을 분실했다 찾곤 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승객의 짐을 찾아주는 데 그치지 않고, 염려하고 짜증났을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거나 위로해드리도록 하지요. 결과적으로 저희 항공사를 이용했다가 짐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 고객의 대부분이 다른 항공사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희의 충성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고객의 불평을 반품이나 환불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잘 갖춘 백화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객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되찾은 다음에 다시는 그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최전선에서 공감을 잘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문제해결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고객은 하나둘씩 떠나가게 됩니다.
끝으로 이제 공감에 대한 내용을 사진 한장 보여드리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가 사진전에 갔다가 공감을 잘 설명한 것 같아서 꽤 많은 돈을 주고 산 게 이 사진입니다. 튤립이 참으로 예쁘죠?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뭐가 눈에 띄십니까. 흰 꽃들 가운데 빨간 꽃 한 송이가 도드라져 보이죠. 많은 꽃 중에서도 그 한 송이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고객은 하얀 꽃처럼 많지만, 각각의 고객이 빨간 꽃처럼 자신이 각별한 관심과 눈길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면, 공감을 잘하시는 겁니다.
제가 앞에서 류머티즘 내과의사 선생님 말씀드렸죠? 그분은 하루에도 이 하얀 튤립들처럼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지만, 각 환자가 마치 빨간 튤립처럼 선생님의 각별한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그분을 3년은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명의로 만든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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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