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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을 조화시킨 곡선의 예술품들
어제 저녁 <모누멘탈 투우장>과 <총알 빌딩>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조명 불빛을 바라보면서 바르셀로나 도심을 벗어나 몬세라토 산 북쪽 에 위치한 한적한 신도시의 숙소(바르베라 호텔)에서 첫 밤을 보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첫 새벽에 일어난 나의 머릿속엔 가우디가 있었다. 오늘은 바르셀로나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걸작들을 둘러보는 날이다. 그동안 내가 에스파냐에 와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 바르셀로나 기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가우디>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사진 속에 담겨진 가우디의 걸작품들을 보고서 꼭 한번 직접 찾아보리라 다짐했던 소망이 오늘에야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길벗! 만약 당신이 남다른 예술적 감수성을 가졌다면 바르셀로나는 환상의 도시였을 것이다. 바로 가우디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길벗! 바르셀로나를 찾는 당신이 만일 정직한 발을 가졌다면 카탈루냐를 찾기 전에 먼저 가우디의 집을 찾았을 것이고, 바르셀로나에 닿기 전에 가우디의 뜰에 먼저 닿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열적인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작품들이 널려 있으니까? 아니 그 보다 바르셀로나의 고향이 <가우디>이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고향이 바르셀로나인지 바르셀로나의 고향이 <가우디> 인지 아직 생각 중이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살았는지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마을에 살았는지 자꾸 헷갈린다.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o Gaudi I Cornet) 1852-1926년>는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구리세공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바르셀로나에서 고학으로 건축학을 공부한 가우디가 세계적인 건축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쇼케이스 디자인]을 출품하면서 부터였다. 그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축 양식에서 탈피해 곡선으로 가득한 건물을 추구하였다. 이것을 관심 있게 보아온 것은 실업가 <에우세비 구엘(Eusebi Guell)>이었다. 구엘 백작은 가우디의 후원자로서 그의 저택과 <구엘 공원> 등의 건축을 의뢰하였다.
가우디가 활동하던 19세기 말,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에서는 부유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세기말 예술 사조인‘아르누보’와 같은 독자적인 문화운동으로‘모데르니스모(근대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가우디는 모데르니스모를 대표하는 건축가였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곳곳에 10여 개의 독창적인 건물들을 남겨놓았다.
가우디는 만년에 그의 대표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을 건설하는데 전념하다가 1926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생활은 검소하고 소박하여 눈을 감을 때의 모습이 초라한 행색이어서 마치 부랑자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의 장례행렬에는 그를 사랑한 시민들은 물론 생전에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거리의 부랑자들까지도 함께 하였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서 독창적인 예술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그 도시 의 중심에는 반드시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존재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어디를 가나 가우디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고, 가우디의 건축물을 통해 바르셀로나를 돌아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안내자는 덧붙였다.
오늘 여정에서는 <구엘 공원>,<사그라다 가족성당>을 비롯하여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 가우디의 뛰어나고 독특한 작품들을 둘러보게 된다.
지중해의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면서 첫 번째 탐방지 <구엘 공원>으로 향하였다. 바르셀로나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이카르카(Vallcarca) 고지대에 <구엘공원(Parc Guell)>이 있었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자연주의적 예술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우디>의 또 다른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는 이곳은 <성 가족성당>의 웅장함과는 달리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이 재현된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곳에서는 자연친화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곳에 호텔을 지으려고 했는데 이 지역에 돌이 많아 호텔 건립이 어렵게 되자 자연 환경을 최대한 살린 공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이 조성되게 된 것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15헥트아르의 부지에 영국풍의 조용한 주택가를 조성하고자 설계를 의뢰함으로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가지 북쪽 고지대에 자연여건에 알맞도록 60여 채의 주택지를 조성하고 중앙광장, 도로, 관리 사무실 등을 배치하는 전원도시를 설계하였다. 그러나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 자금사정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져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세계 각처의 건축가 지망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탈바꿈하였다.
공원 정문을 들어서니 언덕 절개지 마다에 야자수를 닮은 기둥, 사람의 탯줄 모양의 나선형 기둥,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모양의 동굴 아치 등 자연이 만들어 내는 조형들을 다양하게 도입하여 아름답고 신비하게 꾸며 놓았다. 공원 중앙의 계단을 오르면 도마뱀 모자이크 분수대가 눈길을 끌고, 도리아 식 돌기둥이 늘어서 있는 그리스를 모티브로 한 신전 같은 건물 공간에는 주민을 위한 시장을 만들었으며, 그 위 슬라브 지붕에는‘그리스 광장’이라 이름 붙여진 공간에 인체 모양의 광장을 만들고 물결모양의 곡선 으로 된 난간 벤치에 형형색색의 부서진 타일조각들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구엘 공원>은 예술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환경을 추구 하려는 미래 도시의 모습을 세심하게 꾸며보려 한 것이 흥미로웠다. 주택은 2채가 완성되었는데 그중 <가우디>가 살았던 집은 그가 디자인한 가구와 유품들을 전시하여 <가우디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환상적인 <구엘 공원>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끝내고 언덕을 내려와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성 가족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을 찾았다.‘사그라다 파밀리아’란 요셉, 성모 마리아, 예수로 이루어진 ‘성 가족’을 뜻하며, 이 성당 자체가 ‘돌에 새긴 성서’라고 할 만큼 성서의 스토리를 건물 곳곳에 묘사하였다. <가우디>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이 성당은 그 웅장하고 절묘한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첨탑들은 마치 옥수수 타래와 같고, 정면 파사드의 모습은 마치 밀랍 초들이 녹아 흘러내려 굳어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꽃, 나무, 뱀, 그리고 전설의 세계로부터 얻은 영감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로 묘사한 모습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기존의 성당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성당을 바라보는 순간 가우디의 무한한 상상력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성당 건물은 가난한 종교단체인 <산호세>의 성당으로 1882년에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델 비야르>에 의해 처음 짖기 시작하였으나 중도에 사임하고, 31세의 젊은 <가우디>가 그 뒤를 이어 건설하였다. <가우디>는 성서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켜 나가면서 독창적인 설계를 하여 평생을 두고 건설하였다. <가우디>의 계획에 의하면 성당은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주제의 건물이 서로 교차되도록 세우되 각 건물에는 ‘탄생의 문’‘수난의 문’‘영광의 문’등 3개의 파사드를 만들고, 각 파사드에는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조각을 장식하도록 하였다. 건물마다에는 4개씩 12개의 종탑을 세워 12사도를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건물들이 교차하는 중앙에는 예수, 성모 마리아, 복음 가 들을 상징하는 중앙 탑 18기가 더 세워지게 되어있다.
성당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 125년이 지났으나 현재는 지하 성당과 동쪽의 ‘탄생의 문’과 서쪽의 ‘수난의 문’과 8개의 탑이 완성되었을 뿐 성당 전체가 제 모습을 갖추려면 100년 또는 2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성전의 주인인 하나님이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가우디의 말처럼 성당 건설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완성은 언제 될지 하나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가우디>가 평생에 세웠다는 ‘탄생의 문’은 자연주의 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한 조각들로서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돌로 만들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성당의 건설은 <가우디>의 사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40년대에 다시 시작한‘수난의 문’은 후대에 현대적인 예술 감각으로 조각되어 건물의 역사와 조각술의 변천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성당 건축 조각품들 중에 ‘수난의 문’파사드에 조각된‘최후의 만찬 장면’과 중랑의 숲 이미지를 살린 원주기둥과 벽,‘탄생의 문’파사드에 조각된‘수태고지 장면’과 종탑으로 오르는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계단은 매우 인상 깊고 환상적이었다.
지하 전시실에는 성당 건축의 역사와 생생한 과정을 상세하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으며 건축공학적인 원리도 알기 쉽게 안내해 놓았다. <가우디>는 마치 「이봐! 건물은 이렇게도 지을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건축공학을 공부하려는 건축학도는 반드시 이곳에 둘러 <가우디>의 천재성을 이해하고 그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공부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 가족 성당의 오묘한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생의 문’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직접 오르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전망대에 올라야 하겠으나 긴 여정에 다소 지친 일부 길벗들의 의견 갈등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가우디>의 작품에 대한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 <카사 밀라>, <카사 바틀요>가 있는 <그라시아 거리>를 찾았다. 람브라스 거리 북쪽 카탈루냐 광장에서 디아고날 지하철 역 사이에 넓게 뚫린 <그라시아 거리(Pg de Gracia)>는 ‘바르셀로나의 샹젤리제’라고 불리는 쇼핑의 명소다. 도로 양편을 따라 늘어선 세계 멋쟁이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 가죽제품 브랜드 상점과 화려한 부티크 점의 안내판들이 시선을 유혹하고 있어 이곳을 찾게 된 가우디의 존재를 잠시 잊어 버렸다. 걸어서 <그라시아 거리> 중간지점에 이르러 좌측에 갈비뼈를 닮은 형상의 기둥과 푸른 타일 조각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건물 <카사 바트요> 앞에서 발을 멈췄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는 바르셀로나에서 섬유업을 경영하는 바트요 가문의 집을 증개축한 개인저택으로 <가우디>의 원숙기의 걸작이라고 한다. 이 건물의 테마는‘바다’로 외벽을 장식하는 유리 모자이크는 마치 바다에 햇빛이 반사하는 것처럼 반짝 거린다. 건물 정면을 해면이라고 한다면 내면은 해저와 해저동굴을 형상화하였으며, 옥상의 굴뚝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수면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카사 바트요>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건물정면은 물고기 비늘과 비슷한 기와가 인상적이며, 각 층은 물고기 아가미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깔리면서 조명이 하나둘 건물에 비춰지니 모자이크로 장식된 환상적인 색채와 형태는 생명력을 갖는다. <카사 바트요>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시간과 빛의 양의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매혹되어 넋을 잃어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사 바트요 옆에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건축가 <카타파르크>의 작품인 <카사 아마트예르(Casa Amatller)>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두 건물은 다 같이 모데르니시모 건축이지만 서로 비교가 되었다. 두 건물을 바라보면서 수 없는 자문자답을 해 보았다.
「과연 가우디는 미쳤다! 왜 가우디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설명이 필요 없지! 두 건물을 비교해보면 알잖아?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안 미쳤다고 할 수 있어? 저런 사람이 정상이란 말인가? 」
두 건물 모두는 귀중한 문화재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사용 중이라 유감스럽게도 그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으며 외관만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카사 바트요>에서 북쪽으로 그라시아 거리를 3블록 정도 더 걸어가니 교차로 코너에 <카사 밀라(Casa Mila)> 건물이 서 있었다. 마치 패션 쇼 장에서 멋진 의상을 걸치고 서있는 모델 모양 같은 아름다운 이 건물은 건축주인 <펠레 밀라>와 <로사리오 세시몬>의 살림집과 각층마다 약 400평방미터 크기의 방이 4개씩 들어간 고품격 맨션아파트이다.
<카사 밀라> 저택은 <가우디>가 자신의 설계 이미지를 석고로 만든 뒤 그대로 조각을 하게 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아 지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벽면의 소재가 석회암이라서 완성 당시에는 지붕의 흰 타일과 함께 저택 전체가 백색이었으나 지금은 변색되어 누런빛을 띄고 있다.
하얀 벽면은 물보라가 이는 바다를, 베란다의 손잡이는 파도 속에 떠 있는 해초를 연상케 한 것이라고 한다. 벽면 석재를 연마하지 않고 거칠게 보이는 상태로 쌓아올려 지금은 마치 거대한 바위 덩어리 같기도 하다. 돌을 쌓아 올린 듯한 독특한 형상 때문에‘라 페드레라’(채석장)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주제로 하는 이 건물은 ‘산’을 테마로 하고 있어, 옥상의 굴뚝은 산등성이에서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저택의 원형 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둥글게 깎인 빛이 쏟아져 내린다. 원형 뜰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오르노라니 난간의 모양이나 천장의 모양이 모두 곡선이고 천장 채색은 매우 아름다웠다. 꼭대기 층의 회랑은 <에스파이 가우디> 박물관으로서 가우디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파도 모양의 옥상에는 흡사 전사처럼 보이는 기묘한 굴뚝이나 배기통들이 총총하게 들어서 있었다.
순수한 상상력을 건축으로 실현한 <가우디>! 그의 건축물을 하나하나 만나는 동안 바르셀로나에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가우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번에 이베리아 기행을 바르셀로나에서 첫 출발을 하였더라면 아마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확실히 충격이었을 것이다. 다행이 그동안 안달루시아 지방과 마드리드를 거쳐 오는 과정에서 에스파냐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바르셀로나에서 받아야 했던 문화적 충격에서 오는 감성을 어느 정도 순화 시킬 수 있었고, <가우디>의 예술적 작품들에서 받아야 했던 감성적 충격을 어느 정도 진정 시킬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는 <가우디>의 위대함이 있었다. 이 위대한 문화적 유산들을 단 몇 시간 동안에 본다는 것은 <가우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가우디>의 천재적 예술세계와 예술적 감성을 이해하는데 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오늘 하루 돌아본 <가우디>의 시대를 초월한 영광의 성전에 敬畏를 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가우디>와 함께 하였던 바르셀로나에서의 하루가 아쉽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