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칠보산 산행기/ 천고의 자연의 비경 <2003년 4월 1일/충북 괴산 *서당말-정상-절말>
*1. 노송과 바위가 어울린 능선길 *2. 왜 혼자 산행을 하는거지 *3. 각연사의 까치 전설 *4. 시 한 수에 술 한 잔 * 5. 컬러 사진보다 아름다운 하산 길
여섯 개 산이 바다에 잠기고,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이 남아 있다는 두고온 산하, 함북금강이라는 894m의 북한의 명산 칠보산이 아니다. 정상에서 동해 푸른 바다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경북 영덕의 810m의 칠보산도 아니다.

내가 오르고 있는 산은 지금까지 깊은 산 속에서 수줍어 나서지 않고 숨어 살던 충북 괴산의 칠보산이다. 칠보(七寶)란 금, 은, 유리, 차거, 마노, 파리, 진주다. 파리, 유리, 대신에 호박, 산호를 더하기도 하지만 이 모두가 한 마디로 매우 화려하고 찬란한 것을 일컫는다. 칠보산(七寶山)은 옛날에는 그냥 칠봉산(七峰山)이라고 하다가,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가 단순한 봉우리를 넘어선 보석처럼 아름다운 일곱 개의 봉우리 산이라 하여 칠보산(七寶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집을 떠나올 때 나는 커다란 배낭에다 며칠을 보낼 수 있도록 취사도구, 식량, 침낭을 준비하여 가지고 왔다. 일산 동네 산악회 따라 평일에 가는 산행이라서, 전처럼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일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칠보산 산행을 마치고 괴산 읍내에서 일행과 따로 떨어져서 속리산 법주사에서 오늘은 자고, 내일은 문장대와 가능하다면, 천황봉 일원을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초입부터 흔드는 이 산의 모습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괴산 칠보산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괴산까지 와서 칠성행 시내 버스 길 따라 떡바위에서 올라 절말로 내려오거나, 태성리로 해서 각연사에서부터 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서당말 조금 지나 떡바위 못미쳐서 오르고 있다. 4월인데다가 칠보산은 남쪽 나라 괴산의 높지 않은 산이라서, 준비해 간 아이젠을 후회할 만큼 온화해서 잔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맑고 약간은 쌀쌀하나 오솔길에 시원한 바람이 노송(老松)이라서인가 솔[松], 솔바람이 불어온다. 오늘 제주도에 폭풍 주의보 영향인가. 더할 수 없이 등산에는 쾌적한 날씨였다. 바람이 땀을 흘릴 사이도 없이 식혀 주고 닦아주는 산행을, 발걸음도 가볍게 적당한 경사의 소나무 길로 정상을 향한다. 절 입구에 가서나 만나 볼 수 있는 노송이 무리 져 산을 향한 우리를 앞서고 뒤서는 듯, 오솔길에는 솔잎까지 쌓여 폭신 푹신한 것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소월은 진달레꽃에서 '영변 약산에 진달레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노래하였지만, 나는 '괴산 칠보산에 노송 솔잎, 아름 떨궈 오시는 길에 뿌리오리다.'로 고쳐 부르며 낙엽 솔잎에 고마워하였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결국은 자기의 본디 났거나 자랐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딘가? 낙엽은 모양으로 이렇게 남아있듯이 사람은 정신으로 남는 것이니, 나는 어느 때쯤 어떤 빛깔의 낙엽,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호피(虎皮)를 남기고, 네티안은 죽어서 홈피를 남긴다고 했던가. 그런데 나 죽으면 내 홈피는 어쩐다지? 그렇지 죽어서는 걱정할 이 없으니 무슨 근심인들 있으랴. 나의 카메라도 눈을 활짝 열고 다가오는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벼르며 산행 길에 나섰다.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이곳은 송이버섯으로도 유명하여, 최고급 송이버섯을 딸 수 있는 추석 무렵이면 이고장 사람들은 주머니를 부풀리는 꿈을 꾼다 한다.
칠보산은 다른 산처럼 한참이나 올라가야 열어주는 전망이 아니라, 뒤돌아 보면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치게 해 주는 전망이 있다. 쌍곡계곡 너머 우뚝 서있는 단정하고 수려한 군자산이 이름처럼 우아한 자태로 나의 등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측으로 펼쳐진 칠보산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하나, 둘- 봉우리를 세며 정상을 향하고 있다. 보통의 산은 봉우리까지 죽을 고생을 해서 봉우리를 오르다가 정상 가까이서 능선이 있고 거기서 조금 오른 곳에 정상이 있더니 이 산은 다르다. 1봉을 올라서면 멋진 암봉의 정상이 있고, 거기서 아깝게도 한참이나 내려가서 M자 속 같은 안부가 있고, 그렇게 또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따라서 제1봉에서 보이던 전망은 산 너머 산의 연봉인데, 제2, 제3봉에서 보는 전망은 거기에 산줄기 한 둘이 더 겹치었고, 거기에는 더 푸른 산의 연봉이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이 우리의 눈을 놀래게 한다.
칠보산은 섭섭하게도 이정표가 거의 없다. 얼마나 왔는지, 갈 길은 어느 정도 남았는지 몰라 답답하였다. 이정표뿐이 아니었다 솔 향을 맡으며 노송 길에서 벗어나는가 싶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소나무와 바위가 어울린 능선에 취하여 가다보면, 초심자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어려운 곳에 암벽이 있는데 점잖게도 아무런 표시도 구조물도 없다. 그러다가 만난 처음 이정표가 있어 떡바위까지 2.1km였다. 여기가 청석재인가 보다. 떡바위란 아까 올라온 길에서 조금 더 올라간 길가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시루떡 모양 같기도 하고 가래떡 같게도 생긴 커다란 바위가 길쭉하게 누워있다 하여 떡바위라고 하는 것이다.
 멧돼지가 귀를 세우고 눈을 홉뜨고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지난다. 바위산 칠보산에는 이런 갖가지 물형의 바위가 만다. 병풍바위, 거북바위, 안장바위 등,
*2. 왜 혼자 산행을 하는거지 요즈음 나는 혼자 거니는 기쁨으로 산을 간다. 정년한 몸에다가 산에 가는 것이 목적이니까 산에 와서 구태어 서둘 필요가 없다. 나의 하루를 오로지 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뒤따르는 사람을 앞세우고 가기 때문에 산행에는 언제나 새로운 기록을 갱신한다. 그것은 가장 늦게 가는 신기록이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찍고-. 주머니에 자신이 있을 때는 전국 어디서도 그러하였다. 먼 산행을 할 때는 일행이 있으면 '어디서 오셨습니까'로 끝나 버리고 말지만, 혼자이면 꼭 묻는다. "누구와 함께 오셨습니까'에서 시작하여 함께 하는 우리가 된다. 서로를 주고 받는 우리가 된다. 그것은 글을 쓰고자 나선 나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되살아 나고, 무궁무진 한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이 된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오늘 같이 처음 오는 산에 대한 의문이다. 정상에서 찬란한 조망의 세계를 만나게 되면, 저 굽이쳐 흐르는 산맥이나, 산 이름을 구체적으로 아는 자 있어 설명이나, 거기에 더하여 그 곳에 얽힌 전설까지 들을 수 있다면 나의 산행의 기쁨은 더 깊어질 수 있을 테인데-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칠보산은 이름을 올리기에는 수줍었던가. 홀로 대충이나마 알아볼 수 있는 나침반은 준비되었지만 자세한 지도나 등산 자료를 쉽세 구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찾아온 것은 산 그 자체지 어찌 꼭 이름만일 수 있으랴고 하지만 ,저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하나 하나 불러 주지 못하는 것이 나를 자못 부끄럽게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 3. 각연사의 까치 전설
 사람들은 멋지고 좋은 경치를 보면 동양화 같다는 말을 한다. 그 동양화 속에는 으례 구름이나 안개 낀 산이 있고, 계곡이 있고, 폭포수가 있으며, 소나무 사이에 산사(山寺)가 있다. 그 산사가 저 북쪽 아래 분지에 동화 속에 나오는 모습 같은 절로 시선을 잡는다. 깨달을 각(覺), 못 연(淵)), 覺淵寺(각연사)였다. 각연사에는 이런 창건 전설이 전한다.
신라 말 유일 스님 '절말'에다 절 지을 무렵 까치들 대팻밥을 각연사 못에 떨구더레. 석불을 그 못에서 찾아 게다 각연사 지었다지.
그래서 못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시어 깨달음을 얻었다(覺有佛於淵中) 하여 각연사(覺淵寺)라 이름하였고, 우리가 하산할, 각원사로는 산 너머 '절말'은 절을 지으려던 마을이라해서 '절말'이란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절이 있는 작은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보배산, 칠보산, 덕가산이다. 각연사 동쪽에 비로전이 있는데 거기에 모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부처가 보물 제433호로 지정된 석조 비로자나 불좌상으로 바로 신라 법흥왕(515년) 창건 당시 건져 올렸다는 부처다. 비로자나불이란 절에 가서 보게 되는 왼손의 식지를 오른손이 감싸고 있는 부처다. 이때 오른 손은 부처를, 왼손은 중생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듯이,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둘이 아닌 평등을 의미하고 있다는 뜻이다.
* 4. 시 한 수에 술 한 잔
정상 못 미쳐서 등산모임에서 몇 번 만난 우리 일행 한 분이 반가이 나를 맞는다. 환히 웃는 얼굴, 정다운 말만으로도 황송한 것을 오렌지 한 쪽을 주는가 하더니, 거기에다가 막걸리 한 잔을 권한다. 직접 그의 부인이 담궜다는 가양주였다. 심심산천, 그것도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낯선 산정에서 혀끝에 전해오는 약간은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맛을 어찌 소주가, 양주가 우리의 탁주 맛을 당하랴. 막걸리를 탁주(濁酒), 백주(白酒), 소주와 섞이면 혼돈주(混沌酒)라고 한다. 어찌 이 겨레 역사 속에 각 계층과 함께 한 술을 한 가지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정상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주기로 하고 한 잔을 더 얻어 마시었다. 3, 5, 7, 9도 알 만한 모습인데- 사진 값을 너무 싸게 치나 보다 거기에다. 나는 성삿갓이 되어 시 한 수까지 넣어 보내 줄 텐데. 칠보산 정상을 향한다. 술이 거나하니 시흥에 겨워진다.
오솔길에 쌓인 솔잎 가지마다 매달린 봄 노송의 솔바람에 어울린 기암 능선 칠보산 봉우리 헤며 가다 잊고 맞는 778 정상
정상에 오르니 일행이 점식 식사를 하고 있다가 점심을 함께 하자 한다. "아내가 정성껏 싸준 좋은 찬 혼자서 먹을레요." 아침에 서둘러 오다가 김밥 사올 시간이 없었고,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잊고 그냥 지나쳐왔기 때문의 옹색한 변명이었다. 없을 때는 왜 이렇게 마음이 초라해 지는지. 하릴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좁은 정상을 피해서 동쪽 넓은 바위 끝에 가서 비상식으로 준비한 선식이라는 미숫가루를 물에 타먹는 것으로 점심에 점을 찍었다. 동쪽으로 향한 시장한 내 시야를 찌르는 백두대간의 회양산, 구왕봉, 장석봉으로 겹겹이 계속되는 푸른 연봉들-. 바다 같은 하늘에 파도처럼 계속되는 연봉(連峰)이 나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 5. 컬러 사진보다 아름다운 하산 길
하산 길은 절벽과 낭떠러지의 계속이었다. 암벽을 타는 산꾼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경사가, 칠보산의 비경에 풍덩 빠진 나를 시기라도 하는 듯이, 아깝게도 내 정신과 시선을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데만 쏠리게 하였다. 나보다 앞서 내려가는 내 아내 또래의 늙수그레한 부인이 있어 "웬 부인들이 있어 그렇게 바위를 탈 타시는가." 했더니 칭찬이 약인가 처음 볼 때보다 더 거침없이 내려간다. 그렇다. 꾸지람은 하나의 결점을 고칠 뿐이지만, 칭찬은 백 가지 결점을 고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칭찬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밧줄 길은 200m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밧줄은 한 팔 간격으로 미끄러 지지 않게 마디를 맺어 놓았고 새하얀 것이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산 같으면 반드시 철사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밧줄로 대신한 것이었다.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수직의 바위 길을 하산하는 것은 몹시 두려운 일이었다. 내 나이 이상의 나이로 오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염려하여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아녀자들도 저렇게 거침없이 가는데- 하는 오기는 망설임을 멈추게 하곤 하였다. 옛날 1962년에 설악산 오련폭포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철쇠다리가 있는 곳에는 큰 나무를 길게 가로질러 길을 만들고, 밧줄이 필요한 곳에는 칡넝쿨을 드리웠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모습으로 2003년 오늘까지 칠보산은 이 비경을 감추고 숨어있던 곳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온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바위와 노송과 능선이 어울린 하산 길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마주치는 널찍한 바위 가운데서 서있는 아름드리 한 그루 노송이 있다. 이삼 백년 이상도 더 된 소나무 중에도 소나무라는 적송이었다. 산 머리라서 풍우에 견디려고 그랬던가 옆으로만 굵다랗게 커 있다.
 바위 끝에는 절벽을 굽어보고 있는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누군가가 돌로 예쁘게도 탑을 쌓아놓았다. 무슨 소원이 저리 깊어 저렇게도 멋진 정성으로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산 위 능선 돌길은 자질구레한 너덜겅이 아니다.
제법 깊이 박혀서 하나하나가 다 앞으로도 긴 세월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의 바위도 있지만, 나무보다 더 높게 서서 산을 지키고 있는 바위다운 바위도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흔히 '그림같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 말은 이제는 생각하고 써야하겠다. 옛날에 아름다운 경치 등을 보았을 때에, 그것을 표현하는 길이 글이나 그림밖에 없었기에 생긴 말을 지금까지 진부하게 써서야 되겠는가. 그림 편에 서서 아무리 그림의 세계를 미화한다해도, 어떻게 사실적인 묘사성이나 표현성이 사진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는 동화상(動畵像)의 캠코더 이상의 표현을 흉내낼 수나 있는가. 그림에 예술성이 있어서라고? 그건 사진 예술의 경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미술보다 더 깊은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아시는가. 그러면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표현하자는 말이냐고 묻는 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컬러 사진 같이 아름답다' 아니면 '컬러 사진의 경지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면 어떨까? 관광 수첩에 나오는 사진은 실물보다 더 아름답기에 하는 말이다.
봄이 오는 산길에는 오솔길도 있고, 너덜겅도 있고, 마중 나온 도룡용도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청정 쌍곡계곡의 징검다리에는 곳곳에 개구리 알이 무수하게 떠있다. 봄볕에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넓은 계곡 길에 다리가 없으니 큰비라도 내리면 하산길의 산꾼은 어찌한다. 공연한 걱정을 하며 개울 넘어, 대나무 사잇길을 지난다.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그냥 징검다리뿐이요, 철사다리가 놓여야 할 곳에 고작 밧줄뿐인 괴산 칠보산.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개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있을 때다. 여인이 아름다운 때가 언제 던가. 화장으로 고쳐진 얼굴 이전이 마다. 단순호치(丹脣皓齒)란 화장 이전의 여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는 8m 정도의 반석을 타고 흐르는 물이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지면서 간장까지 서늘하게 할 정도로 시원함을 준다는 쌍곡 절경 중 7곡이라는 쌍곡폭포다. 한국의 산이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하지만, 한국의 폭포야 폭포다운 폭포가 있던가. 그러나 쌍곡폭포의 에메랄드 푸른빛이 감도는 청정한 소(沼)는 옛날 나무꾼과 선녀를 연상할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하였다.
 나는 그 아래서 본 일부러 깎은 바둑판 모양의 멋진 바위 반석과
 신비할 정도의 아름다운 계곡과 산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까치인가 까마귀 때문에 억울하게도 짓던 절을 산 너머 각연사에게 양보 당하고, 이름으로 만족해야 하게 된 절말(절마을)이로구나. 헌데 오늘 아침 오면서 생각 대로 속리산으로 가야 할 것인가, 집으로 그냥 돌아가야 할 것인가. 탐탁지 않은 상대라고 생각하고 기대하지 않고 선을 보러온 신랑 신부가 뜻밖에 멋진 상대를 만나 보고도, 저기 더 좋은 사람 있다고 선보러 가랴.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멋진 미를 보고도, 화려하게 단장한 여인을 찾아 가랴. 평지와 달리 산에는 아직도 봉오리뿐, 꽃도 피지 않았는데- 하면서. 이런 나를 방금 다녀온 칠보산 봉들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찾아가는 길: 1. 대중교통: 동서울 → 괴산직행버스(1일 18회) 1시간 50분소요 괴산 → 칠성. 쌍곡 시내버스(1일 4회) 30분소요 2. 승 용 차 : 중부고속도로 → 증평IC → 괴산 → 칠성 → 쌍곡
시인/수필가 | |
첫댓글 한번 가려고 찍어논 산이지요!!9개의 암봉이 절벽을 이루며 솟아 있고 바위틈새로 자란 노송들..정말 멋있답니다.다음에 정산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