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강민형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 포스코의 성공신화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
"혁신"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기업은 어디일까? 구글? 애플? 닌텐도? 혁신의 대표적인 기업을 떠올릴 때 굴뚝산업의 상징인 제철산업에서 한 우물을 파온 포스코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포스코가 지난 42년간 줄곧 흑자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끊임없는 혁신의 추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작가가 아닌 실무진들이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에 도입부의 과장된 표현들이 약간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나, 뒤로 갈수록 그 안에 녹아 있는 생생한 현장의 열정이 느껴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포스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혁신이란 실리콘밸리의 벤쳐기업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굴뚝산업에 속한 기업에도 충분히 가능한 도전인 것이다.
■ Top-Down방식의 혁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포스코 혁신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Top-Down"방식이라는 점이다. 즉, 혁신의 모든 시발점은 허남석 소장이며, 소장의 혁신 의지는 리더들로 전파되고, 최종적으로 현장 직원들의 호응 및 참여로 이어진다. 광양제철소에 새로 부임한 허남석 소장은 2005년 설립이래 최대 실적으로 들떠 있던 직원들에게 "최고 품질의 강판을 생산해 도요타자동차에 납품하자"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다. 포스코는 1990년대 이후로 물량위주의 생산방식을 고품질 위주로 전환해 왔지만 여전히 기술력은 일본 기업에 밀리고 있었으며, 원가경쟁력에 있어서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기업들에 쫒기는 상황이었다.
소장 본인이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현장을 돌며 변화의 의지를 전파했으며, 리더들도 함께 새로운 비전의 전파를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들이 현장을 방문해서 사원들을 칭찬하며 선물한 것은 도서상품권. 도서상품권 한 장의 금전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 인력들에게는 도서상품권이 경영진의 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며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끈끈함'이 강조되는 생산현장의 분위기 속에서 금전적인 보상 자체보다는 '경영진의 관심' 및 '격의없는 의사소통'이 더 큰 동기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허남석소장의 혁신의지는 현장방문 이외에도 공장장, 부장들과의 아침모임, 개선리더들과의 점심모임, 직원 워크샾, 비전선포식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파되었다. 특히 비전선포식에서 "자동차 강판 제조 기술이 세계 5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제조기술은 아직 품질 편차가 크고 결함이 반복되는 등 낮은 수준의 강종을 만드는 초보 단계(일본 고객사의 평가)"라는 충격적인 내용 들을 공유하여 직원들의 위기의식 및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현장의 변화를 일궈냈다.
■ 거침없는 실행력
하지만 모든 혁신과정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혁신에 따르는 변화를 손해로 받아들이는 측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현장을 24시간 관리하기 위한 4명의 교대주임을 1명의 상주주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포스코는 현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8시간 근무하는 4개조가 번갈아 운영되고 있었으며, 각 조마다 교대주임이라 불리는 책임자가 있었다. 24시간 중에 8시간씩만을 책임지는 교대주임 4명보다는 작업 전체를 책임지는 1명의 상주주임이 품질관리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판단되었으나, 현장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인식되는 주임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승진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교대주임이었다가 상주주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교대주임제도는 없어지고 교대주임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고 한다. 교대주임의 지위를 뺏긴 직원들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보상을 통해 변화에 동참하게 했는지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실제 기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결과보다는 저항을 극복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쉽게 추진하기 어려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데는 포스코 경영진의 거침없는 실행력 (나쁘게 말하면 밀어붙이기)가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옳다고 믿는 문제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변화를 추진하는 능력도 혁신의 성공에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추진력은 석회소성 공정의 직원들을 자회사로 분사해 전문화함으로써 품질을 개선한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석회소성 공정은 제선, 제강 등 제철과정의 주공정에 생석회를 공급하는 보조공정의 하나로, 규모도 큰 편이다. 하지만 포스코에서는 보조공정이라는 이유로 설비나 인력 투자를 최소화 해 운영하고 있어 주공정에서 가능했던 생산성 혁신이 어려웠다. 허남석 소장은 석회소성 공정을 자회사로 이전하여 자회사의 핵심공정으로 만들면 생산성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석회소성 공정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국민기업 포스코에서 외주 자회사의 직원으로 전직을 해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을 무마하기 위해 희망퇴직금, 전환금 등의 금전적 보상 뿐 아니라 기존 사원들과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계속해 애초에 목표했던 품질 및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
여성인력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최초의 여성공장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는 좀더 부드러운 변화방식을 택한다. 내부검토 결과 적합하다는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원을 곧바로 공장장으로 임명하지 않고 관련 정보를 사내에 흘려, 직원들간 자발적인 토론이 먼저 벌어지도록 유도했다. 그 사이 직원들의 여론은 여성공장장에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 3개월 뒤 여성공장장이 정식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직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허남석 소장은 강한 드라이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직원들의 자발적인 변화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변화의 움직임이 스스로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 포스코의 혁신기법
본 서에서는 포스코의 독특한 혁신기법들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마이머신 활동은 품질관리 활동의 일환으로 모든 설비에 담당자의 이름을 붙여 애착심을 갖고 청결을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20년 이상 묵은 기름때가 엉겨 붙은 설비를 닦고 조이는 일을 전 사원에게 전파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사원들의 호응을 위해 본사에서 온 임원들이나 고참 간부들이 현장에서 땀 흘리며 설비에 붙은 녹과 먼지를 제거하고, 함께 공장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나눠먹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이를 통해 현장 사원들의 동의를 얻고 제철소 전체에 마이머신 활동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생산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방법으로 금전적인 보상처럼 계산적인 방식보다는 경영진의 솔선수범과 같은 끈끈한 생산현장의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산업의 생산현장에서는 특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비주얼 플래닝(Visual Planning)은 포스코의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농심, 웅진 등 다른 한국기업에게도 이미 전파되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업무를 월, 주, 일단위로 상세하게 계획을 세워 보드에 적어놓고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업무 뿐 아니라 동료들의 업무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업무분담의 효율성도 높이는 방법이다. 이것은 프로젝트 관리기법을 생산현장에 적용한 것이다. 철저한 계획없이 그날그날 떨어지는 급한 일 위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막상 더 중요한 일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비주얼 플래닝은 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도와주어 업무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일을 중요도에 따라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비주얼 플래닝을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 사원이 자신의 업무를 사전에 꼼꼼히 계획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모두들 어려워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팀리더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변화관리를 통해 직원들에게 정착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습동아리는 지식경영의 실행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 개념을 포스코에 특화시켜 적용한 것이다. 제철소는 24시간 가동을 위해 교대근무가 원칙이고, 최신 설비가 갖춰진 제철소는 운전실에서 소수의 인력이 원격 조종하는 형태로 근무를 하기 때문에 같은 부서라 해도 부서원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게 자주 모이지 못하는 사원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학습동아리를 활용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원들간에 친목도모를 위한 의사소통이 우선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따뜻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에는 문제해결을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내부 직원들 뿐 아니라 외주 파트너사의 직원들도 참여시켜 '조직간' 학습동아리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
포스코의 독특한 점의 하나는 포항과 광양의 두 곳에서 제철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제철소는 창립시기나 지역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포항제철소는 포스코의 뿌리답게 진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광양제철소는 도전정신과 속도를 앞세운 혁신활동에 적극적이다. 이 두 제철소는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혁신을 가속화할 뿐 아니라, 서로의 성공적 혁신사례를 벤치마킹해 왔다. 포항은 광양의 비주얼 플래닝이나 학습동아리 활동을 벤치마킹해 업무방식을 개선했으며, 광양은 포항의 마이머신 성공사례를 동일 영역에 도입했다.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배워 나가던 포항과 광양제철소는 2002년부터는 아예 메가-와이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포항과 광양의 직원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전사차원의 경쟁력 극대화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한편 제철소내 부서간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는데 바로 설비 운전부서와 정비부서간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설비의 운전부서는 지연없이 24시간 설비를 가동하고 싶기 때문에 정비부서에 독촉을 하는 경우가 많고, 정비부서는 운전부주의로 인한 고장에 운전부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두 부서간에 서로의 입장차이로 인해 잦은 시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두 부서가 기능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운전부서는 정비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안전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정비부서는 운전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설비의 취약점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허남석 소장은 두 부서의 통합을 결정했다. 부서간의 이해충돌이 심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사무실 배치나 평가제도 등을 변경해 실질적으로 운전과 정비부서가 서로의 업적과 성과를 공유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통합이 가능했다.
■ 2020년의 포스코는?
이 책을 통해 살펴본 포스코의 혁신일지는 한국제철산업의 미래가 밝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준다. 과연 10년 뒤 포스코의 모습은 어떨까? 중국 등 신흥국의 제철업체들을 따돌리고, 일본의 기술력까지 따라잡고 나면 포스코의 새로운 비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10년 뒤의 포스코에도 현재와 같은 혁신의 리더십이 유효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이 1위가 되어 따라잡을 목표가 없어지고 스스로 혁신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역시 비전을 가진 리더에 의해 주도되는 혁신모델이 유효한 것일까? 아니면 직원들이 스스로 기회를 발굴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현재까지 포스코의 혁신사례는 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지만, 계속되는 혁신의 마인드가 직원들 하나하나에 이식된다면 미래 포스코의 혁신은 후자의 경우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사에 적합한 혁신 모델, 특히 제조중심, 현장중심의 조직에서 가능한 혁신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제시된 포스코 방식(POSCO Way) 혁신이 생생한 교훈으로 다가올 것이다.
| |
|
|
|
|
|
첫댓글 다 읽어보고 싶은데, 시험은 내일이고 시간은 없고....담에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네요..
네~~~
감사합니다.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