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남정맥 제 13 구간(나밭고개~매리2교)
1. 산행일시 및 출발 장소
[1] 출발일시 : 2011년 12월 10일(토)
[2] 출발장소 : 수원--->김해--->나밭고개
2. 산 행 지 :
○ 신어산, 장척산, 동신어산
3. 날 씨 : 맑음(바람이 많이 불고 찬 날씨)
4. 참 가 자 :
○ 박봉하, 박상호, 윤희원, 이용준, 이태인, 장현옥(6명)
5. 회 비 :
6. 준 비 물 :
[1] 전 체 - 안전장구, 구급약, 사진기, 지도
[2] 개 인 - 비상식, 등산화, 배낭, 윈드쟈켓 및 우의, 예비옷(보온)과 양말, 모자, 장갑, 후레쉬, 식수, 세면도구, 신분증, 다용도칼, 휴지, 비닐봉투, 간식 등 개인용품
7. 산행정보 및 일정
[1] 총 산행 거리 및 시간
○ 총 산행 약 16.4km, 8시간 20분 정도 소요(시간 단축이 요구됨)
[2] 산행 길잡이
나밭고개에서 378봉까지는 20여분을 아주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정맥길은 378봉 10m 전에서 오른쪽으로 꺾인다. 378봉 오르는 길과 그 너머로 뚜렷한 길이 나 있기에 잘못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78봉 지나면서 정맥길 왼쪽으로 곧게 뻗은 편백숲이 이어진다. 편백숲 빠져 나오면 왼쪽으로 가야컨트리클럽과 641봉 너머로 멀리 금정산 뾰족한 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오른쪽으로 지나온 능선과 김해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삼각점이 있는 337봉에서 약 10분 가면 402.9봉인데, 이곳에도 삼각점이 있다. 415봉을 내려서면 곧 기능을 잃은 임도를 따라 정맥길이 이어진다. 약 20분이면 영운리고개 양옆으로 36개의 홀을 가진 1988년 개장한 가야컨트리클럽 그린에 닿는다. 그린을 가로질러 영운리고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클럽하우스 앞을 지나 412봉 허리를 따라 난 길을 우회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정맥길이 보인다. 다시 그린 하나를 건너면 곧장 가파른 오르막길인데, 30여분을 계속 치고 올라야 641봉이다. 꼭대기 거의 다 오를 즈음에 위험한 바위구간이 있다. 돌탑과 이정표가 선 641봉은 10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답게 사방 막힘없이 조망이 된다. 멀리 마산 무학산에서 대암산, 그리고 지나온 능선들이 얽히고 설키며 멋진 풍경을 풀어놓는다.
641봉에서 신어산까지는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경치 좋은 능선을 따라 30분이면 된다. 중간에 넓은 헬기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멋들어진 구름다리도 건넌다. 631.1m의 신어산은 낙남정맥의 마지막 봉우리다. 그런 만큼 어울리는 당당한 기품도 지녀, 김해 인근의 명산으로 이름 높다.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 돌무더기, 이정표가 너른 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서 마지막 지점인 고암나루터로 가기 위해서는 '상동 매리' 방향을 따른다. 3분 내려서면 은하사 갈림길이 있는 안부다. 오른쪽으로 1km 내려서면 신라고찰 은하사다. 정맥은 앞으로 보이는 605봉을 지나 왼쪽으로 꺾여 내려선다. 돌탑이 선 605봉 바로 아래엔 전망이 빼어난 바위가 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삼각주, 그리고 가야할 산길과 아래 생명고개 일대가 잘 보인다. 강 건너로는 낙동정맥 구간인 금정산 일대가 우뚝 서 있다.
300여m 고도를 내려선 생명고개엔 콘크리트 포장도가 지난다. NTB를 즐기는 바이커들이 찾는 이 고개 양쪽으로 민가가 있다. 고개 꼭대기에서 정맥 방향으로도 콘크리트 포장도가 하나 이어지는데, 이 길을 넘나들며 정맥이 지난다. 고개 바로 위 405봉에서는 특히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봉우리 오르기 직전에 급격히 왼쪽으로 꺾여 다시 포장도로 내려서야 한다.
생명고개에서 삼각점이 있는 522.2봉 지나 481봉까지는 1시간10분 걸린다. 481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정맥길 양옆으로 옛길이 가로지르며 지난다. 478봉 오름길엔 진달래가 많이 자라는 사이로 청미래 덩굴이 가끔 섞여 나타난다. 478봉엔 신흥기씨가 세워둔 낙남정맥 이정표가 있다.
20분 내려서면 감천고개, 이정표엔 오른쪽 덕산리, 왼쪽은 선무동이라 적혔다. 다시 약 20분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499봉에 서서 뒤돌아보면 켜켜이 겹쳐지며 신어산까지 이어지는 정맥 산군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고 있다. 오른쪽 아래로는 드디어 낙동강이 보인다. 진달래군락을 이루는 내림길은 가파르다.
삼각점이 있는 동신어산 정상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 이라 적힌 검은 대리석 이정표가 박혀 있다. 여기서 고암나루터까지는 내림길로 1시간 걸린다.
<퍼온글>
[3] 구간 거리
나밭고개(58번도로, 158m)--1.9km--402.9m봉--1.6km--영운리고개--2.1km-- 신어산 서봉--1.4km--신어산--1.5km--생명고개(295m)--5.8km--동신어산(459.6m)--2.1km--매리2교(69번도로, 고암나루터)
[4] 산행일정
(1) 산행지 이동
수원(00:20) ∼ 심야버스 ∼ 김해(05:00/아침/05:50) ∼ 택시 ∼ 나밭고개(06:10)
(2) 산행코스 및 시간
1) 산행 계획
나밭고개(06:30) → 337m봉(07:00) → 402.9m봉(07:20/07:30) → 영운리고개(08:10) → 클럽하우스(08:30) → 신어산 서봉(09:10/09:20) → 구름다리(09:40)→ 신어산(09:50) → 신어산 동봉(10:05) → 생명고개(10:30/점심/11:00) → 장척산(11:35) →481m봉(12:00/12:10) → 476m봉(12:20) → 감천고개(12:40) → 499m봉(13:05/13:15) → 동신어산(13:40) → 267m봉(14:05/14:15) → 굴다리(14:35) → 매리2교(14:50)
2) 산행의 실제(산악대장 제공 자료)
나밭고개(06:32) → 402.9m봉(07:13) → 영운리고개 육교(07:40) → 클럽하우스(07:56/08:03) → 신어산 서봉(08:37) → 신어산(09:00/09:25) → 신어산 동봉(09:31) → 생명고개(09:47/09:51) → 장척산(10:22/점심/10:58) → 백두산갈림길(11:40) → 감천고개(11:51) → 499m새부리봉(12:13) → 동신어산(12:31/13:05) → 267m봉(13:29) → 매리2교(13:53)
(3) 산행 후
매리2교(15:10) ∼ 택시 ∼ 김해국제공항 버스승차장(15:40/15:50) ∼ 시외버스 ∼ 가거대교 ∼ 고현(17:00/17:10) ∼ 택시 ∼ 해금강(17:40)
8. 탈출로 및 편의사항
김해버스터미널(1688-0117) / 중앙콜택시(055-335-3535) / 산청식당(055-322-9517)
고현시외버스터미널(055-632-1930) / 거제택시(055-635-4477, 681-8255) /
썬바다모텔(055-634-6412), 해금강펜션(055-632-3539, 011-9512-1517)
천년송횟집(055-632-6210), 멍게비빔밥집(055-638-3300)
해금강유람선(055-633-1352, 3079), 통영콜택시(055-644-9000)
9. 산 행 기
[1] 산 행 전
[1-1] 會員 動靜
2011년 02월 12일(토)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225.3km의 『낙남정맥』산행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 그저께 같았는데 이번 13구간 산행으로 낙남정맥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은 낙남정맥뿐만 아니라 1대간 9정맥(※총거리 : 대간683.4km + 정맥 2087.7km=2771.1km)을 완주하는 날이 된다.
그래서 산행은 평소와는 달리 A팀과 B팀으로 나누워 A팀은 12월 10일 00시 20분 수원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나밭고개에서 매리2교(16.4km)까지 낙남정맥 마지막 구간을 산행하고 B팀은 10일 06 : 00에 수원을 출발하여 김해『동신어산』산행(약 3시간)을 하고 A팀과 합류해서 거제「해금강」으로 이동하여 1대간 9정맥 완주 축하연을 하고 다음 날 거제 우제봉 일출, 바람의 언덕, 신선대 등을 관광하고 통영으로 이동하여 미륵산 일주 산행을 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혔다.
1대간 9정맥을 마무리 하는 산행이고 다음 날 관광 프로그램도 마련이 되 한배 산악회 회원뿐만 아니라 회원 주변분들도 많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산악회 카페를 자주 찾았으나 A팀으로 박봉하, 박상호, 윤희원, 이용준, 장현옥 회원님이 참여하고 B팀으로 이태인 총무만 본인 車를 운행하여 내려온다고 한다. 평소 늘 함께했던 노부장, 안교장 집안 일로 참석하지 못하고 강동규사장, 박기양교장도 B팀으로 동참하기로 했으나 다른 일이 생겨 참여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1-2] 아침 식사집을 찾아
12월 10일(토) 00 : 20분, 심야버스 승차, 수원 출발.
황간 휴게소에서 10여 분 정차,
05 : 00시, 김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터미널 앞에 있는「산청식당(055-322-9517)」을 찾았다. 지난 산행 때 점심 식사를 했고 산악대장이 미리 예약을 해 두었는데도 식당에 도착을 해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전화로 연락을 해 보았으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른 새벽이고 인원이 적어 식사제공을 포기한 모양이다.
터미널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이 없다. 터미널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김해 경전철 봉황역 방향으로 한 정거장 정도 이동하면 음식점 거리가 있다고 한다.
역 근처로 이동을 해 보았으나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해 좀 더 번화가로 이동, 택시 기사가 안내를 해 준 식당을 찾았다. 굴 해장국, 동태찌개로 간신히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 산행 출발지 『나밭고개』로 이동을 했다.
[1-3] 나밭고개(천리교 한국전도청)
06 : 20분경, 『나밭고개』에 있는 「천리교 한국전도청」입구에 공터에 도착을 했다. 김해시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이른 시간이라 어둠과 고요한 적막이 주변을 감싸고 손끝이 아릴정도로 날씨가 차다.
「천리교(天理敎)」는 1838년 10월 26일 일본 나라현 미시마조에서 교조 ‘나까야마미끼’가 창조주이신 어버이신님의 계시를 받고 시작된 종교로 1864년에는 추종자들에게 ‘부채수훈’을 내리고 10명의 근무인원에게 천리교 본부인 으뜸의 터전에 있는 예배의 대상인 감로대를 둘러싸고 춤을 추는 천리교의 독특한 의례인 구제근무(救濟勤務)라는 것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에는 1893년 포교되었으며, 1917년 4월에 용산구 동자동에 「천리교 포교소」를 설립하여 포교활동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불교 다음으로 최대종파로서 확산되었으나 해방이후 일본색 종교로 몰려 자치를 감추었다가 1948년 천경수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1963년에는 문공부 정식인가를 취득, 재단법인 대한천리교를 설립, 현재 서울 청파동에 대한천리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65년 8월 내무부가 천리교를 ‘민심을 현혹하고 민족주의의 주체성을 어지럽히는 유사종교단체’로 규정하여 창가학회와 더불어 활동에 제한을 가했다. 그러다 1970년 대에 들어와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고, 1975년에는 한국종교인협의회에 가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요교리는 신과 인간이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 즉 신인공락(神人共樂) 세계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천리교는, 인간은 다 같은 형제자매로서 서로 상부 상조하며 살아갈 때, 즐거운 삶이 이룩된다는 점을 전 교의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평등사상(平等思想)과 호혜정신(互惠精神)에 입각한 것으로 현 시대, 현 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주요경전으로는 친필(親筆), 신락가(神樂歌), 지도서(指導書)가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samill/TiJ/35?docid=oB0|TiJ|35|20030831045257&q=%B4%EB%C7%D1%C3%B5%B8%AE%B1%B3
[2] 378m 봉
06 : 30분, 어둠 속에서 산행 준비를 한 후 「천리교 한국전도청」뒤로 난 길을 따라 잠시 진행을 하니 의자와 「고사리 쉼터」표지판이 나온다. 쉼터를 지나면서부터 고도가 점점 가팔라진다 싶더니 산 중턱에 다다르니 초급경사를 이룬다.
찬 날씨에 잠시 올랐는데 이마에 땀이 고이고 등짝이 후끈후끈해 진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오르기를 20여분, 드디어 능선봉(378봉)에 올라섰다. 몸을 풀 겨를도 없이 급경사를 빡시게 오른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배낭에 다시 정리하고 곧바로 능선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苦盡甘來라 했던가. 378봉을 지나면서 어둠도 서서히 겉이고 길도 뚜렷이 보이며 평지 수준의 편안한 길로 이어진다.
[3] 337m 봉
『378봉』을 뒤로한지 12, 3분 돌무더기를 쌓아 통나무를 세워 놓았고 그 뒤로「←나밭고개 / 영운고개 →」방향 표시를 한 통나무 이정표를 세워 놓은 공터 봉에 도착했다. 『337m』봉이다. 쉼 없이 진행.
[4] 402.9m 봉
『337m』봉을 뒤로한지 10여분,「삼각점(밀양 464, NO.26)」과「낙남정맥 / 402.9m / 준·희」란 쓴 표지판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402.9m』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지나온 峰 중 가장 높은 봉이지만 나무가 시야를 가려 조망이 되지 않는 봉이다.
[5] 日出을 보기 위한 行步
날이 점점 더 밝아지고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면 붉은 해가 산마루에 쑥 솟아오를 것만 같다. 산행 중 일출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조금만 걸음을 빨리하면 앞에 보이는 산마루에서 日出의 壯觀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을 것 같다.
『402.9m』봉을 뒤로하고 5분여를 진행하니「입산금지」시멘트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안부 사거리가 나온다. 입산금지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은 김해시 「삼계동」방향으로 내가는 길이다.
안부를 지나 4분여 진행, 日出을 볼 요량으로 사면 길을 버리고 뛰는 걸음으로 산봉(418m)에 올랐는데 붉은 기운은 사라지고 동녘 하늘이 훤하다. 간발의 차로 일출의 장관을 노치고 말았다. 福이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6] 영운리고개
『418m』봉을 내려오니 벤취 2개와 자갈을 깔아 놓은 넓은 임도 길이 나온다. 임도 길을 따라 진행하다 산으로 접어들어「김해 천문대와 가야CC」갈림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꺾어 골프장으로 들어섰다. 골프연습장을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니『영운리고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나온다.
『영운리고개』는 김해, 활천, 삼방을 옛날에 영운마을이라 불렀으며, 나진리 안금에서 영운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영운리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 산신령이 구름타고 내려와서 놀았다고 한다.
http://www.gimhae.go.kr/03intro/02_03.jsp?&gcode=HIS01&currPage=4
[7] 가야컨트리클럽
선답자들에 따르면『영운리고개』구름다리를 지나면서부터 클럽의 여러 건물과 홀을 지나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관리원들과 다투는 일이 잦다고 하는데 관리원들이 우리를 보고도 제제를 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가야개발(주 : 가야컨트리클럽 : 경남 김해시 삼방동 산1 )는(은) 1984년 2월 김해 신어산 자락에 그 터를 잡아 부산, 경남 출신 재일동포 40명을 주축으로 재일동포 2, 3세들에게 조국의 얼을 계승하고 제 2의 고향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념으로 설립되었으며, 2006년 12월 신한캐피탈로 변경, 이후 2011년 12월 (주)신어홀딩스로 경영 주체가 변경되었다.
현재 54홀(회원제 45홀, 퍼블릭 9홀)의 메머드급 규모인 클럽은 메이저대회 및 각종 골프대회의 개최를 통해 골프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으며,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시민 휴양·위락 시설인 가야랜드, 청소년연수원, 수영장, 테니스장 외에 자연학습장, 캠프장 등 휴식 공간과 레저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종합레저 사업체라고 한다.
<출처> 가야컨트리클럽
http://www.gayacc.com/Club/n_view.asp?location=02
[참고자료] 김해시 삼방동(三芳洞)
김해군 활천면(活川面)에 속한 지역으로, 삼강 또는 삼방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좌부면(左部面) 삼방리가 되었다. 1918년 김해면에 편입되었고, 1931년 김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김해읍 삼방리가 되었다. 1947년 리가 동으로 바뀌어 김해읍 삼방동이 되었으며, 1981년 7월 김해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김해시 삼방동이 되었다.
삼방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삼안동(三安洞) 관할하에 있다. 동 이름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아들, 며느리가 화를 당하여 충신, 효자, 열녀가 동시에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1984~1986년에 택지개발사업을 실시하여 35만 1000㎡의 택지가 조성되었으며, 고천(古川)·영운개 등의 옛마을, 안금고개·작은 가리재·장군배기 등의 고개, 청렴암골·파밭골·할부리 등의 골짜기, 신어산(神魚山)이 있다. 삼안동사무소·칠암도서관, 신어산삼림욕장·김해시하키경기장·가야랜드·가야CC가 있다. 유적으로는 재령이씨 재실인 관천재(觀川齋), 동림사(東林寺) 터, 영운재, 예암서원(禮岩書院) 등이 있으며, 사찰로는 은하사(銀河寺:일명 서림사)·동림사(東林寺)·영구암(靈龜庵) 등이 있다. 예암서원은 조이추(曺爾樞)를 향사하는 곳으로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9년 복원되었으며, 동림사는 가야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985년에 중창되었다. 영구암은 가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순조 때 중창되었다. 문화재로는 김해 은하사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238)이 있다.
<출처> 삼방동 [三芳洞, Sambang-dong ] | 네이버 백과사전
[8] 神魚山 西峰 오르는 길
주차장을 지나 골프장 본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찬 날씨에 茶라도 마시며 몸이라도 녹이며 쉬어갈까 했는데 윤사장, 산행 시간을 앞당기겠다면 쉼 없이 진행을 한다.
약 10여분 휴식을 가진 후 본관 건물 옆에 있는 산(412m봉)을 올라 진행을 해야 하는데 그냥 홀 이동 길을 따라 계속 진행, 골프장을 벗어나 급경사를 이룬 산으로 올라붙었다. 된 비알을 스틱에 힘을 주고 오르다보니 숨소리가 점점 거치러지고 모자 창끝으로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평소 같으면 뛰어다니던 장부장도 속도를 내지 못한다.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2개월여 산행을 하지 못한 탓이리라.
있는 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르는데도 정상이 더 멀어 보이고 된 비알 바위 길이라 오르면 오를수록 힘이 부친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바위를 지나 전망 바위에 올랐다. 가쁜 숨을 가다듬고 주변을 돌아보니 眺望이 일품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낙동강이며 더 넓은 김해평야와 평야를 감싸고 있는 산의 모습이 額子에 넣어놓은 風景畵 같다.
[9] 神魚山 西峰
사방을 돌아보며 짧은 휴식을 가진 후 출발을 하는데 컨트리클럽에서 산행 시간을 앞당기겠다며 쉼 없이 진행하던 윤사장이 힘겹게 올라온다. 412봉 부처입상(지장보살)이 있는 곳에서 후미로 오는 우리를 기다렸다고 한다.
전망대를 뒤로한지 4, 5분. 어렵사리 산 정상에 올랐다. 좀 전 전망바위에서 휴식을 가졌는데도 힘이 다 소진 되었는지 정상에 오르니 氣盡脈盡이다. 팽개치듯 배낭을 내려놓고 가쁜 숨을 진정 시킨 후 주변을 살펴보니 『신어산(서봉) / 630m』라고 쓴 정상석과 돌탑을 비롯하여 이정표(←상동 묵방 1.7km / 신어산 헬기장 0.3km)가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조망도 뚜렷하다.
『신어산 서봉』에서 북동쪽 1.7km 거리에 있는 「묵방리(墨方里)」는 김해시 상동면의 가장서남쪽에 있으며 西로 생림면, 南으로 삼안동과 접경하며 자연마을로는 묵방(먹방), 상묵방(上墨方, 웃묵방), 하묵방(下墨方, 아랫묵방), 무건터 등이 있다.
묵방리는 신어산 뒤쪽에 있어 어두운 마을로, 어두운 곳에 등불을 달았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 또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등불을 달아 놓은 모양(가등형)의 명당이 이곳에 있어 자손을 보전할 자리라고 한다. 마을에는 골프장이 있다.
<출처> 묵방리 [墨方里, Mukbang-ri ] | 네이버 백과사전
어렵게 오른 정상이라 느긋하게 쉬고 싶었지만 날씨가 차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10] 신어산 구름다리
『신어산 서봉』을 뒤로한지 5, 6분, 「은하사」갈림 길인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세워 놓았는데 「신어산 1.0km / 영운리고개 3.4km / 은하사 1.3km」라 표시되어 있다.
『헬기장』을 지나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면서부터 능선 평지 길로 이어진다. 능선에 자리한 기암괴석도 운치 있어 보인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이리라. 헬기장을 뒤로하고 약 7분를 진행하니 능선 골짝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나온다. 우선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찰칵 사진 한 장 남기고, 장난 끼가 발동하여 구름다리 난간을 잡고 흔들고, 뛰어보고 ----
[11] 神魚山 主峰과 銀河寺
구름다리를 지나 얕은 봉에 올랐다 잠시 진행하니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쉼터를 지나 몇 걸음 더 가니 정자가 있고 그 뒤로『神魚山』主山의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낙남정맥상 마지막 고비가 되는『신어산(神魚山, 631.1m)』 주봉 정상에 도착했다. 頂上 初入에는「신어정과 전망대는 김해시민의 안락한 휴식과 아름다운 신어산 감상을 위해 경남은행이 김해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 2007. 9 / 김해시장 / 경남은행」이라 쓴 표지석이 있고 정상에는 돌탑을 비롯하여 烏石에 하얀 글씨로『신어산 / 631.1m』라 쓴 정상석과 삼각점(밀양 25), 이정표, 산불 감시탑, 전망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신어산(神魚山, 630m)』김해시 상동면·삼방동·대동면에 걸쳐 있는 높이 630m의 산으로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조 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 왕비의 神話가 어린 성산(聖山)이다. 신어(神魚)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하며 밀양 만어산(萬魚山:670m) 전설에도 나오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과 가락국(駕洛國)의 상징이다. 일명『선어산(仙魚山)』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을 核으로 市 복판의 황새봉(393m) · 경운산(慶雲山 : 379m) · 분성산(盆城山:375m)이 동쪽 백두산(白頭山:352m)·덕산(德山 : 457m) · 까치산(342m) 等과 連峰을 이루고 낙동강 건너 소백산맥의 산들과 대치하고 있다.
산마루에 서면 금정산(金井山:801m)과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몰운대(沒雲臺)로 뻗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山群은 물론, 지리산 영신봉(靈神峰:1,651m)에서 분성산에 닿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연산들을 비롯해 이웃한 무척산(無隻山:703m), 양산시물금읍 오봉산과 원동면토곡산(土谷山:855m), 웅상읍원효산(元曉山:992m)과 천성산(千聖山:812m) 등 동부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가야의 올림푸스산답게 초기의 고찰 은하사(銀河寺)와 영귀암(靈龜庵) 등이 있으며 기우단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구암사(龜岩寺) · 십선사(十善寺) · 청량사(淸凉寺) · 이세사(離世寺)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산은 불모산(佛母山 : 801m)의 신화와 함께 남방불교 전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대동면 초정리 원명사에서 출발, 약수터와 백두산, 510봉 감천재로 종주하고 상동면 대감리 고암마을로 내려오며 7시간쯤 걸린다. 신어천이 낙동강으로 흐르는 경관 속에 삼림욕장 등을 갖춘 종합레저시설 가야랜드와 골프장이 인근 도시민들의 주말 휴양지로 인기다. 경부선 · 경전선 · 남해고속도로 등이 통과한다.」라고 <네이버 백과사전>에 소개를 해 놓았다.
신어산(神魚山)에는 「은하사(銀河寺 :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가 있다.「은하사(銀河寺)」는 가락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절로서, 귀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신어산을 뒤로하고 낙동강 하구의 김해평야를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절의 창건은 서기 42년의 일로, 가락국(駕洛國)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야유타국에서 온 허황옥(許黃玉)의 오빠 장유화상(長遊和尙)과 함께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금강사(金剛寺)라 하였다. 이처럼 가야시대의 중심이었던 김해지역에서는 많은 사찰들이 은하사와 비슷한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은하사 대웅전의 불단(佛壇)에는 신어(神魚)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김해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문양으로 인도 아유타국과 가락국의 상징이라 알려져 있다. 수로왕릉에도 두 마리의 신령스러운 물고기(神魚)가 새겨져 있고 은하사가 자리한 산이름 역시 『神魚山』이라는 점 등에서, 가락국을 통한 남방불교전래설의 여러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神魚山』꼭대기에 가득 들어찬 기암괴석은 「천연의 나한상(羅漢像)」이라 불리고 있어 천연의 불교성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은하사」에서 바라보는 신어산은 나한을 품고 있고 그 나한은 「은하사」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신어산』은 가야인들의 진산(眞山)으로 여겨져 왔고, 그 중심에 자리잡은 「은하사」 역시 오랜 세월의 역사를 간직해 온 만큼, 자연과 사찰이 어우러져 佛國土의 聖地임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고즈넉했던 산사에는, 최근에 휴먼 코미디영화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작진들은 석 달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소박하면서도 기품을 간직한 사찰로 「은하사」를 찾아냈다고 한다. 따로 세트장을 설치하지 않고 법당과 요사채 등 있는 그대로의 사찰건물에서 한 달간에 걸쳐 촬영을 했기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에는 은하사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출처> 전통사찰 관광 정보 / 한국의 사찰 / 은하사
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history/view.asp?category_id=7&content_id=801&temple_seq=1363
[참고자료] 은하사(銀河寺)
「은하사(銀河寺)」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구야국(狗耶國) 수로왕(首露王: 재위 42∼199) 때 인도에서 온 승려 장유(長遊)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 시기는 아직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라 확실한 고증은 할 수 없다. 전하는 설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이 절을 지었으며, 동쪽에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대에 중창하였다고 한다. 『신어산』을 예전에는 『은하산(銀河山)』이라 불리었던 까닭에 은하사라고 부른다. 또 신어산의 별칭이 소금강산인 까닭에 소금강사(小金剛寺)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1989년 3월 신어산에 산불이 났지만 이 절만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화운루·설선당·명부전·응진전·요사채 2동과 객사·산신각·종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에 세워진 전각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용두(龍頭)와 봉두(鳳頭)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신어(神魚) 무늬가 있었으나 근래에 도난당했다. 그밖에 1668년(숙종 14)에 쓴 시왕전 상량문과 1791년에 쓴 시왕전 이건 상량문, 취운루 현판 등이 전한다.
[출처] 은하사 [銀河寺 ] |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자료] 동림사(東林寺)
신령스러운 물고기란 뜻을 가진 수려한 경관과 토속적인 느낌이 짙은 신어산(神魚山)에는 가락국(43-532) 초기에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동림사가 있다.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어졌다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크게 복원하였다.
[참고자료] 구야국(狗耶國)
○ 경상남도 김해 지방에 있었던 변한의 소국 중 하나.
○ 가야(伽倻)·가야(加耶)·가락(駕洛)·가라(加羅)·가량(加良)이라고도 한다. '구야(狗邪)’는 가야에 대한 한자 표기이다. 1~3세기에 낙동강 유역에는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변한이 있었다. 구야국은 변한 소국 중의 하나로 소국들 중 가장 우월한 지위에 있었으며 경상남도 김해 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야국은 후에 금관가야라고 불렸다.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패권(覇權)을 잡고 일본과 무역하였으며, 김해 조개무지[貝塚]에서 중국의 왕망(王莽)시대의 화폐인 화천(貨泉)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한(漢)나라의 영토였던 낙랑(樂浪)·대방군(帶方郡)과도 바다를 통해서 무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구야국 [狗耶國 ] |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자료] 분성산(盆城山)
『분성산(盆城山)』은 김해시 북부(北部) ·삼안(三安) ·활천(活川) 3개동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382m의 산 서쪽 사면에서는 해반천(海畔川)의 지류가 발원하고 동쪽 사면에서는 신어천(神魚川)의 지류가 발원한다. 또한 산의 남쪽 산중턱에 분산성(盆山城) ·수로왕비능(首露王妃陵) ·해은사(海恩寺) ·금성사(金城寺) ·성조암(聖祖庵) 등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다.
[출처] 분성산 [盆城山 ] |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자료] 허황옥(許黃玉)
허황옥(許黃玉, 33년 ~ 189년)은 가야의 초대 왕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한다.
본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48년에 오빠 장유화상 및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야에 와서 왕비가 되었다.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 그녀의 나이(156살)은 수로왕과 9살 연상의 나이차로, 수로왕의 나이(157살)와 함께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는 가야 사람들이 자신의 시조에 신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자 과장된 표현이 있던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 불교 전파설
일설에는 가야의 불교 전래에 기여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허황옥과 그녀의 친정 오빠 장유화상이 가야 지역에 불교를 처음 전래했다는 설이 있다. 불교의 승려였던 친정오빠 장유화상은 금관가야 지역에 장유암(長游庵)이란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셨으며 이후 가야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암(長游庵) 경내에는 장유화상사리탑이 현존하고 있다.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1983년7월 20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31호로 등재되었다.
○ 중국 도래설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오지 않고 아요디야 이민자들이 거주하던 지금 중국 쓰촨성 안악현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1]
인도의 도시국가였던 아요디아는 태국에도 아유티야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중국 서남부 쓰촨성 주변에도 건너와 이민촌을 건설하였다.[2]
안악현 근처에 보주 라는 마을이 있으며, 쓰촨성의 안악현과 보주 지역은 허씨(許氏)들의 집성촌이자 아요디야에서 이민온 인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인도계 이주민 중 고위직에 오른 인물 중에는 당시 한나라의 황제 선제의 후궁이 된 허씨가 있었다. 선제의 장인에 해당되는 평은후 허광한도 쓰촨성 출신으로, 허황옥 역시 그의 일족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 기타
10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다. 이 중 남편인 태조 수로왕에게 청하여 2명의 아들은 자신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 성을 쓰게끔 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수로왕의 동의를 얻으니 2명의 아들은 허씨 성을 쓰게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1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 : 태조 김수로왕(太祖首露王, 42년? ~ 199년, 재위 42년 ~ 199년)
아들 : 거등왕
손자 : 미품왕
아들 : 7명
아들 : 2명, 어머니 허황옥의 성을 따라 허씨 성을 쓰게 되었다. 이 2형제가 허씨(許氏)들의 선조가 되었다.
딸 : 1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수로왕과 허황옥에게는 1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친정오빠 : 장유화상(長遊和尙, 다른 이름은 보옥선인(寶玉仙人))
<주석>
* 쓰촨성에는 아요디아계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가 있었다.
* 아요디야는 국외에 식민도시와 이민자촌을 건설했고, 뒤에 아요디아가 망한 뒤에 아요디야의 주민들은 이들 태국의 식민도시 아유티야와 중국의 쓰촨성 일대로 흘러들어갔다.
<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허황옥
[12] 神魚山 東峰
신어산 주봉 정상을 뒤로한지 7, 8분. 이정표(← 신어산정상 0.3, 선암다리 6.1, 천불사 3.8km / 상동매리 10km →)를 세워놓은 「천불사」갈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약 3분여를 오르니『신어산 동봉』정상이다. 東峯 정상에는 정상석(신어산 동봉 / 605m)과 완성되지 못한 돌탑이 있다. 사진 한 장으로 흔적을 남기고 『생명고개』로 걸음을 옮긴다.
[13] 생명고개
「東峰」정상을 뒤로한지 약 17,8분 후 이정표(↑ 신어산 1.5km // ←대동(주동리) / 백두산 6.5km →)를 세워 놓은 시멘트 포장길에 내려섰다.『생명고개(300m)』다.
『생명고개』는 상동면 묵방리 절터골과 대동면 주동리 독지곡을 잇는 콘크리트 포장임도가 지나는 고개로 옛날 인적이 별로 없을 때 도적이 나타서서 이 고개를 넘는 행인들을 죽였으므로 『생명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人家도 생기고 절터골 長尺谿谷은 숲과 물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산행 계획에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점심 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10 : 00경)이라 더 진행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14] 405봉 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니「신어산 1.8km / 백두산 6.2km」라 표시된 이정표가 있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벗어나「백두산」방향 산길로 들어섰다. 가파른 산길을 약 5분여 올라 峰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는 산사랑에서『405m 봉』표지판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고 「←신어산 / 백두산 ↑ / 까치산 3.7km →」라 쓴 이정표를 세워놓았다.「백두산」방향으로 많은 정맥 표지기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15] 長尺山
느긋하게 휴식을 가진 후 많은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 좌측 「백두산」방향으로 바짝 꺾어 내려가니 시멘트 좀 전에 벗어났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생명고개』에서 이어진 도로다. 굳이『405m 봉』을 오르지 않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올라와도 될 것을 고된 다리품을 팔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것이 정맥산행이라 생각하고 시멘트 도로를 횡단하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오른다.
무덤이 있고 『452m 봉(산지킴이)』 峰을 지나 12분여를 오르니 「신어산 2.9km / 백두산 5.1km / 롯데야구장 3.2km」라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를 지나 다시 10여 m를 더 오르니(10 : 30분경) 앞서 갔던 대원(대장, 박상호, 장현옥)들이 점심 식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후미로 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배낭을 내리고 도시락을 꺼냈는데 워낙 날씨가 차 도시락이 어름처럼 차다. 먼저 온 팀이 따뜻한 국을 마련해 놓아 다행이다. 찬밥을 따끈한 국에 말았는데도 금방 식어 밥알이 모래알 같다. 억지로 식사를 끝내고 주변을 살펴보니 정상에는 이정표「하늘마당(상동대감) 70분 / / 장척산」이정표와 「낙남정맥 / 장척산 531m / 산사랑」이라 쓴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이 산이 위치한 「長尺」은 김해시 묵방리에 있는 마을로 「풍수지리설에 산돼지가 시내로 내려오는 모양(산저하계형)의 명당이 있어 자손이 많고 투향할 자리라고 하며 상동면(上東面) 묵방리 신어산 자락에 있는 「장척계곡(長尺溪谷)」자연발생 유원지로서, 동봉 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깊고 맑으며 울창한 산림과 큰 암석들이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부산 구포동에서 17㎞, 김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15㎞ 떨어져 있어 가족단위 휴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16] 백두산과 낙남정맥의 분기점『475m 봉』
『長尺山』을 뒤로하고 이정표(신어산 3.2km / 백두산 4.8km)를 세워 놓은『522.2봉』에서 약 13, 4분을 내려오니 큰 산(481m 봉)이 앞을 가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에「신어산 4.1km / 백두산 3.9km, 백두산 4km」라 표시되어 있고 산으로 오르는 길과 斜面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두 길이 다 「백두산」가는 길이라 斜面 길로 진행을 한다. 약 7, 8분 진행하니 안부에서 山峰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가 된다.
안부를 지나「신어산 정상 5km / 백두산 3km / 매리(낙남정맥 시발점) 5.3km」라 표시된 이정표를 세워놓은 삼거리 봉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백두산과 낙남정맥이 분기되는 지점으로 산사랑에서『475m 봉』표지판을 소나무에 매달아 놓았다.『신어산』主峰부터 길 안내를 하던『백두산』이정표와 작별을 하고 왼쪽으로 바짝 꺾어 내려간다.
『백두산(白頭山, 353m)』은 김해시 大東面에 槐井里 위치한 산으로『神魚山』의 한 줄기다. 일명 「방산」또는 「크나등먼댕이 : 괴정 서쪽에 있는 큰 산」이라고도 부른다. 정상부 부근은 가파르지만 능선은 비교적 완만하고 능선 중간의 암석지대를 제외하면 큰 위험 요소 없이 부드럽게 길게 늘어져 있다. 동으로 금정산과 백양산을 바라보고 북동으로 낙동강을 끼고 있어 전망이 시원하고 아주 좋은 편이며 대동면의 많은 자연 부락을 안고 있는 산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민족의 영산인『白頭山(2,744m)』과 대칭되는 시발점이 되는 산이라 『白頭山(353m)』으로 명명하였다는 설과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 : 저울의 추 마) 정도 남아 『白頭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백두산/장척산, 경남 김해|작성자 이수영
http://www.gimhae.go.kr/03intro/02_03.jsp?&gcode=HIS01&currPage=4
[17] 甘泉고개
『475m 봉』을 뒤로한지 10여 분, 안부 갈림길에서 우측 완만한 길을 따라 7분여를 빠른 걸음으로 내달려 안부사거리에 내려섰다. 대구 백두회에서 『감천고개』걸어 놓은 표지기를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감천고개』는 김해시 대동면 대감리와 상동면 매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大甘里(=甘內=甘泉)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운 단샘이 있다.」하여 「감천(甘泉)」이라 불렀다고 한다.
[18] 새부리봉
『감천고개』를 지나 낙남정맥상 마지막 오름이라 생각되는 峰을 오르기 위해 다시 다리에 힘을 모아본다. 이른 아침부터 몇 개의 산을 오르내리고 먼 걸음을 한 때문인가. 그리 높지도 않고 급경사를 이룬 산도 아닌데 오르면 오를수록 산 정상이 멀게만 느껴진다.
감천고개를 뒤로한지 23, 4분, 드디어 視野가 툭 터지는 『499m 봉』에 올랐다. 몇 개의 바위 群이 그럴 듯한 風光을 이루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바위 하나가 있다. 基壇을 이룬 바위 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얹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가 「새 부리」를 닮았다하여 「새바위」라 하고 『499m 봉』을 『새부리봉』부른다고 한다.
가야할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니 병풍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암벽 마루가 길게 능선을 이루어 활처럼 휘어지고 낙동강변의 백사장은 햇살을 받아 더욱 희게 빛나며 백사장과 논밭을 끼고 유유히 돌아 나가는 강줄기가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너무 멋진 風光을 이룬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을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담고『동신어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19] 東神魚山
능선을 따라 진행하기를 8분, 안부를 지나 『동신어산』정상에 도착을 했다. 정상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 / 동신어산 459.6M / 大宙 L·C 山岳會 / 二千二年 四月 二十一日』라 새겨진 정상석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이태인 총무님이 미리 도착해 「우리 산줄기 총 도상거리 2,795.9km / 1대간 및 9정맥 완주 기념 / 2003. 2. 8 ― 2011. 12. 10, 한배산악회」프랭카드를 걸어놓고 우리를 반긴다.
이총무님를 대하니 너무 반갑고 「 2,795.9km, 1대간 9정맥」을 완주 프랭카드를 보는 순간 가슴 한 곳이 뭉클해진다. 낙남정맥 완주에 도상거리 2,795.9km를 걸어온 성취감과 기쁨,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천의봉(天衣峰:1,442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봉화군 · 안동시 · 예천군 · 상주시 · 구미시 · 칠곡군 · 고령군 그리고 경상남도 밀양시를 거쳐 우리 국토의 최남단 위치한 김해시까지 흘러 대동면 남동쪽에서 갈래 쳐 한 줄기는 본류를 이루어 계속 남쪽으로 흘러 부산광역시 서구 명호도(鳴湖島)와 사하구 하단동 사이에 놓여 진 낙동강 하구 둑 갑문을 지나서 남해로 흘러들고 한 줄기는 서쪽 대동수문(大東水門)을 지나 서낙동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 유역면적은 2만 3,860㎢, 길이 513.5㎞인 낙동강을 옆에 두고 2009년 10월 24일 매봉산을 출발하여 부산 몰운대까지 남하를 했고 2011년 2월 12일 지리산 영신봉에서 祭를 올리고 낙동강 남쪽의 산과 들 그리고 고개와 마을을 지나 낙동강 하구에서 맥을 잠재우는 낙동강을 지척에서 굽어보는 감회가 뒤엉켜 가슴 한 곳을 치고 오른 때문이리라. 700리 낙동강 줄기를 낙동과 낙남정맥의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산을 오르내리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북받치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배낭을 내린 후 1대간 9정맥 완주와 낙남정맥 완주 프랭카드를 배경으로 개인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또 한 번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단체로 개인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낙남정맥과 1대간 9정맥을 완주한 기쁨과 성취감이 그대로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으리라.
[20] 낙남정맥의 끝자락 매리2교
완주의 기쁨을 가슴에 담고 매리 2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은 오르내림이 있지만 계속 내림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267m 봉』에서 우측으로 바짝 꺾어 급경사를 조심을 하며 내려서서 묘지를 지나 고속도로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내려가서 다리 옆으로 설치된 계단을 따라 5, 6m 내려가 다리 밑으로 빠져나가 얕은 봉(180.0m, 삼각점)에 올라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절개지 암벽 지대가 나온다. 동신어산에서의 아쉬움이 남았던가. 암벽을 내려서기 전 다시 한 번 「1대간 9정맥 완주 기념」프랭카드를 펼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절벽 아래「낙남정맥 / 신어산정상10.3km / 영운리고개14.3km」라 쓴 이정표를 세워 놓은 매리 삼거리에 내려섰다.
『낙동정맥』이 脈을 다하는『매리(梅里) / 고암나루』김해시 상동면에 있는 리(里)로 동쪽의 마을 입구만 제외하고 신어산의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상동에서 발원하는 물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이 보인다. 주택 및 작은 규모의 공단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개목, 동철곡(銅鐵谷), 동촉, 모산(牟山), 상매리(上梅里), 웃매리(상매리), 하매리(아랫매리), 선무동(仙舞洞), 새둘안, 포산, 소감, 신촌 등이 있다.
매리(梅里)는 뒷산에 매화꽃이 땅에 떨어지는 모양의 명당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며, 1914년 상매리와 하매리를 병합하였다.
포산(浦山)은 매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구리와 쇠를 도굴하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하며, 일제시대에도 철의 광산이 있어 일명 동철곡(銅鐵谷)과 한말에 申兵史이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둑을 쌓았다고 하는 새들안을 병합하여 포산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감(小甘)은 양달(陽達)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안쪽에는 안골이 있다. 風水地理說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나는 용(飛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飛龍上天形)으로 명당이 있어 3대후에 두 현인과 장수가 나올 자리라고 한다.
신촌(新村)은 1963년 1월 1일 창립되어 신촌마을이라는 호칭이사용 되었다. 절경이 빼어나 앞산은 배나무골, 뒷산은 챙이골, 선녀봉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유유히 흐르며 낙동강을 굽어볼수 있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곳이다. 주택 및 공장이 조화를 이루며 현재 공장수는 250여개업체가 입주하여 지역경제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출처> 김해시 대동면 홈
[21] 한배산악회, 드디어 1대간9정맥을 완주하다.
한매산악회는 2011년 12월 10일 13시 53분, 김해시 상동면 『매리』 삼거리에 내려서는 것으로 도상거리 225.3km의 落南正脈을 완주하고 동시에 도상거리 2,795.9km에 이르는 1대간 9정맥의 大長程에 마침표를 찍었다.
[22] 아직도『9988峰』이 남았다.
돌이켜 보니 2003년 2월 8일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2011년 12월 10일 낙동정맥을 완주하기까지 8년 10개월에 걸쳐 도상거리 2,795.9km를 우리 한배산악회 회원들은 酷寒, 酷暑, 거리의 長短, 宿食의 好, 不好를 무릅쓰고 「힘들다. 어렵다.」 하면서 1대간 9정맥의 대업을 이루었다.
대간을 완주 할 때만 해도 많은 대원들이 國土를 縱斷해 보겠다는 意志와 울력이 있어 발품의 고단함도 어렵지 않게 극복을 했는데 정맥을 시작하며 그 열기가 점점 식어 참여율도 떨어지고 급기야는 적당 거리로 산행 계획을 짠 산악대장에게「너무 멀다. 힘들다. 즐기는 산행을 하자.」며 어려움을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은 하지 않고 알게 모르게 탓을 한 것이 몇 번이던가.
때로는 個人事로 산행에 참여를 하지 못한 때도 있었고 참여를 했더라도 氣力이부처 중간 탈출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고달픔도 있었고 원거리 車輛 運行과 宿食 等으로 說往說來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참여를 하고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보듬고 아우르는 돈독함이 있어 도상거리 2,795.9km를 완주를 했다. 뿐만아니라 일반산행, 틈새산행을 비롯하여 해외 명산까지 생각하면 다녀온 산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산을 오르내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고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아직도 걷고 올라야 할 산이 부지기수로 남았다. 오르지 못한 100대 명산도 올라야 하고 정맥에서 가지 친 지맥도 이어가야 한다. 가고싶어도 가지 못하는 북녘 땅의 산도 남아 있다. 평생을 두고 올라야 할『9988峰』이 남아 있다. 1대간 9정맥의 완주는『9988峰』을 오르기 위한 한 과정이요 시작에 불과하다.『9988峰』은 멀고 높다. 1대간 9정맥 완주에 안주하면 도저히 오르지 못할 산이다. 혼자만 가서도 안될 산이다. 동반자와 함께 오를 산이다. 지금보다 더 훈련하고 한배산악회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해야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오르고 또 올라야 할『9988峰』이지만 하늘아래 뫼가 아닌가. 1대간 9정맥 완주의 여세를 몰아 『9988峰』을 필히 오르겠노라고 옹골찬 다짐을 해 본다.
그동안 산행 계획을 짜고 길잡이를 해 준 산악대장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종일관 관심과 지원을 해 준 이태인 총무님, 그리고 함께 산행하고 성원을 해 준 한배산악회 회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2011. 12.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