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의사 라비크와 무명 여가수 조앙의 사랑 이야기
레마르크의 개선문
▼Erich Maria Remarque
레마르크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 작가로, 반전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9년)로 오랜 무명 시절을 벗어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지만, 거기서 반전주의적 경향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접 학도병으로 참전해 전쟁을 겪은 레마르크는 주인공과 전우들을 통해 전쟁이 개인의 삶을 비참하게 한 면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귀로˝(1931년)를 발표한 이래로 그는 나치로부터 반전주의자로 지목받아 1938년에 독일 국적을 박탈당했고, 그의 작품들은 판금 처분을 받고 분서되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1939년 도미하여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4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개선문˝(1946년)은 그를 반전 작가의 반열에 확고하게 세워준 명작으로, 암울한 시기에 망명 의사 라비크와 무명 여가수 조앙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일으키며, 동시에 전쟁의 어둠이 휩쓸어가는 20세기 유럽을 커다랗고 컴컴한 감옥으로 그려내고 있다.
˝개선문˝의 줄거리는 이렇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파리는 어수선하였다. 개선문의 검고 거대한 모습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이는 몽마르트의 싸구려 호텔 ´앙테르나쇼날´에는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망명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망명자들 중 한 사람이 독일인 외과 의사인 라비크였다.
라비크는 반나치스 혐의 때문에 도망한 베를린의 유명한 병원의 외과 과장인 루드비히 프란센부르크의 가명으로, 그는 여권 없이 프랑스에 불법 입국해 파리의 유명한 의사를 도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환자가 마취되면 나타나서 수술을 해주고 환자가 깨어나기 전에 사라지는 유령 의사 라비크. 그는 수술을 마치면 지치고 피곤한 심신을 칼바도스란 술을 마시며 풀었다. 어느 날 그는 개선문에서 가까운, 밤 깊은 센 강 위에서 자살을 하려는 여가수 조앙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 하숙할 곳을 구해주고 카바레의 가수 자리를 찾아 준다. 이렇게 친절한 라비크를 향해 조앙은 연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비크는 쉽게 조앙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는데, 나치로부터 애인을 빼앗기고 고문을 당하고 모든 것을 박탈당한 운명은 그를 지극히 냉소적이고 찰나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왜 조앙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여백으로 남았다.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책임 질 수 없는 망명자요, 불법체류자인 자기 자신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가혹한 운명에 끌려 다니는 무능한 자기 자신을 자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싸늘해 보이지만 그의 가슴은 싸늘하지만은 않았다. 라비크는 어느 날 아침 인부가 불의의 사고로 부상당한 것을 응급 처치를 해 주다 불법 입국한 사실이 탄로나 체포된다. 자신의 신변에 위기가 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의술을 아끼지 않은 그에게도 속 깊이 억눌러 둔 따뜻한 가슴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조앙을 사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독일인은 끝까지 표현하지 않았다. 여기에 미스터리가 있고, 이 소설에서 독자의 생각할 수 있는 몫을 부여한다. 결국 그 일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되지만 3개월 뒤에 다시금 파리에 잠입해 조앙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라비크는 독일에서 그를 고문하고, 애인 시비를 자살케 한 게슈타포인 하케와 만나게 되었고, 그를 유도하여 교회에 있는 숲으로 유인해 그를 살해한다.
˝나는 복수를 하였고, 사랑을 하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으로서 이 이상은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라비크의 인간성이 얼마나 짓눌러 왔는지를 볼 수 있다. 너무 잔악하게 짓밟히고 구겨진 그의 인생, 비극으로 몰려가는 그의 운명, 그 속에서 소망이란 있을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운명을 이토록 비참하게 가해한 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착할 곳이 없는 그에게 사랑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를 뜨겁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그녀와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싸구려 바에서 칼바도스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그는 자기 자신을 억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이성으로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독일인 의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극도로 감성적인 프랑스인 여가수 조앙은 달랐다. 그는 자기 자신이 안식할 공간을 라비크가 허락해 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고독해질 수밖에 없었고, 공허한 마음을 이 남자 저 남자를 배회하며 관능적으로 풀어야 했다. 조앙에게는 표현해주지 않는 사랑은 소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독하고 불행한 인간 라비크,. 자기를 향해 사랑을 품으면서도 사랑의 팔을 벌려주지 않는 그를 향해 조앙의 마음은 한없이 사모하며 나아갔다. 결국 조앙은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동거하다 그 사나이가 라비크를 질투하여 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라비크는 조앙을 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조앙은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하면서 죽어갔다. 무의식중에 조앙에게서 쏟아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들. 그것은 조앙 속에 묻어 있던 천진난만한 마음이었고, 영혼의 독백이었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어울릴 수 없는 두 인간이 한 공간에서 만났고, 역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속으로 깊이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고, 결국은 이별로, 절망으로, 악몽으로 끝난 것이다. 이제 라비크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으로도 영원히 추방당한 망명자가 되었다.
히틀러 군대가 폴란드에 침입하면서 마침내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불법 입국자에 대한 검문이 시작되고 라비크는 체포되어 정부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트럭에 실려 가는 라비크는 담배를 찾아보았지만 한 개비도 없었다. 주위는 너무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볼 수 없었다.
이것이 ˝개선문˝의 개략적인 줄거리다.
20세기 유럽은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는 무한 욕망으로 인한 식민지 경쟁, 그리고 군비 경쟁으로 치열했다. 그것을 사상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쇼비니즘(일종의 이기적인 민주주의, 예를 들어 ´게르만족 우월주의´ 등)이 나라마다 창궐했고, 특히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즘적인 전체주의는 인간성 말살로 나아갔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 기득권으로 인한 여유가 있었기에 독일이나 이태리처럼 가공할 만한 공포정치가 없었지만, 이해의 대립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휴머니즘과 학문과 사상과 철학이 꽃피운 유럽이지만, 그보다 강한 힘은 부와 권력을 향한 국가적인 조직력이었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으면 우리 역시 온갖 위선과 껍데기를 벗고 순수한 영혼으로 사랑의 영역에까지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여기에 거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어서 나라는 병영이 되었고, 개인은 동원되었으며, 개인적인 삶이나 사랑은 파괴되고 희생되었다.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공포정치, 레마르크는 이 두 가지의 공포 아래에서 고뇌하는 수많은 문명인의 운명을 한 시대의 역사적 비극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역사적인 넓은 시야에 서서 개개인의 운명이 아닌, 세계사적 테마로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플롯과 사실적인 묘사에 넘쳐흐르는 서정적 감상을 섞어서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문제로 그려 나간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레마르크로 하여금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를 얻게 한 것이다.
˝개선문˝의 대미(大尾)처럼, 라비크에게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무너져 가고, 의지할 곳도, 버티고 설 발판도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불빛은 꺼지고, 어둡고 끝없는 공포와 절망이 파리를, 프랑스를, 전 유럽의 지평선을 내리덮는다. 신대륙으로 도망가는 20세기의 방주 노르망디 호는 죽음을 안고 있는 케이트를 태우고 유럽의 해안을 떠난다. 케이트는 라비크를 사랑한 미국 국적의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자로, 몸에 죽음의 병이 있는 역시 비극적인 운명의 여자였다. 라비크에게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마지막 밧줄은 끊어지고, 유럽은 고립된 커다란 감옥이 되어 버린다.
양차 세계대전과 수많은 전쟁과 비극으로 얼룩진 20세기 지구촌, 그 비극의 주범은 역시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탐욕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비극으로, 비참함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레마르크는 이 비극을 한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고발했다.
지금도 역사는 흐르고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고 태어난 수많은 인생들이 불행에 찌든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으면 우리 역시 온갖 위선과 껍데기를 벗고 순수한 영혼으로 사랑의 영역에까지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비극으로 끝나든 해피엔딩이든 시대의 어둠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준엄하게 심판할 수 있는 한 편의 사랑 이야기로 인생을 장식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인의 가슴에 담겨져 숨 쉬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이 시대에도 여기저기 꽃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밀입국자인 유명의사 라비크와 보호자 없는 무명가수 조앙 마두, 그들은 레마르크에 의해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서 태어났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의 연인이었다.
▲ 잉그리드 버그만, 찰스 보이어가 주연한 영화 ´개선문´(1948)의 포스트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banditsjy/3364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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